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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도 많은 경우 삶의 격정을 겪는 시점과 그 격정적 삶의 정체적 가장 선연하게 인지하는 시점 사이에 일종의 Time Lag이 존재한다. 문장을 시작하면서 나는 '재미있게도..'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 이러한 현상은 재미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슬픈 쪽에 가깝다. 그건 가까스로 표를 구매했는데, 이미 기차가 떠나버린 경우나 누군가의 결혼식장에 다녀오고 혼자 쓸쓸히 돌아오면서야 오늘 결혼한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상은 다소 불가항력적이다. 이를테면 삶이 필연적으로 지닌 현실적 제약 같은 것이랄까.
이러한 Time Lag은 연쇄적인 반응의 형태로 나타난다. 누군가 예전의 격정을 반추하는 현재의 행동은 다시 현재 자신에게 와 있는 또 다른 격정을 인지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연쇄반응의 마법에 걸리게 되면 늘 과거의 격정 속에 뒤늦게 휘말리어 현실을 허무하고 쓸쓸하며 생마늘이라도 씹은 듯 아린 느낌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생이 가진 필연적인 고독이나 아픔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곰탱이나 불감증 환자 쯤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꼭 옳은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의 기저엔 어쨋거나 자신이 상대방보다는 조금 나은 자각을 가지고 사는 인간이라는 편견에 기인한 오만이 깔려있다. 물론 스스로는 절대로 아니라고 믿지만.
이 단편집은 대부분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담고 있다. 그건 아마 작가 자신이 프랑스에서 꽤 오랜 동안 유학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인 듯 싶다. 대부분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낭만적이라거나 희망적이라거나 하는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사랑 들이다. 현실의 제약과 뒤늦은 인지로 인해 시든 꽃처럼 떨어져 문드러지고 말라붙어버리거나 가루가 되어 바람에 종적도 없이 날려 스러진 사랑, 그 사랑의 이야기들을 무덤덤하게 담아내고 있다. 편한 마음으로 읽히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강렬하거나 그다지 자극적인 느낌도 없다. 편하게 읽을 수 있다고 표현하면 장점이고 그저 먼 곳에 사는 남들의 이야기처럼만 들린다고 말하면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다.
예전 <4월의 물고기>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은데, 그녀의 작품은 묘한 색채를 띤 우울함을 담았다. 허탈하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 작가 나름의 독특함은 발산하는데, 그 개성의 정체성이 반투명 유리막에 가려진 듯 모호하다랄까. 그런데 나는 그 모호함 속에서 글의 처음에 이야기를 꺼낸 바로 그 Time Lag이 생각났다. 어쩐지 단편집의 주인공들 모두가 바로 그 Time Lag의 마법에 걸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랑이나 불륜이나 어쩐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추억을 망각 속에서 불현듯 꺼내버리는 상황까지도 모두 한 가지 이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십 여 페이지의 단편 다섯 편과 오십 여 페이지의 중편 세 편이 실렸다. 앞의 단편들보다는 뒤에 몰려있는 세 편의 중편이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로웠다. 작품 속에선 한결같이 사랑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그 사랑은 고결하다거나 두근거리는 순수 내지 순정을 담아낸 것들이 아닌, 일종의 위험한 불장난이나 삶의 고통을 순간의 쾌락을 통해 잠시 잊게 만드는 마약같은 느낌이다. 그런 느낌 속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모습들 중 얼마나 많은 비중이 이런 속성에 기인한 사랑일까나.. 하는 생각까지 해 봤다. 어쩌면 무척 많을 수도 있겠다 싶다. |
| 대형 작가의 탄생을 예감하게 한다. 작가 권지예의 출세작 뱀장어 스튜를 읽고 주저없이 사서 본 책이다. 그녀의 역량이랄까 내공이 심상치 않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인고 하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엮어지는 이야기에서 우리 문학의 영역이 성공적으로 넓어졌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 여인의 병상 일지인 고요한 나날, 억척스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중산층 여인의 상처와 결혼 생활을 그린 꿈꾸는 마리오네뜨, 베이컨의 그림에서 잉태되었다는 정육점 여자, 문 밖의 여인들을 그린 섬과 나무 물고기, 차력사를 보고 불꽃처럼 써내려갔다는 상자 속의 푸른 칼, 이상하게도 유럽에 가 있을 우리의 황소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투우, 우리 시대의 마녀들을 그린 사라진 마녀에 이르기까지 숨도 돌리지 못하게 독자를 채찍질하는 작가의 솜씨가 눈부시다. 그것은 비단 글솜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글은 그림에서 촉발되었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우선 강렬한 회화성을 갖고 있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여기 대한민국과 똑같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의 현장으로 녹아있고 그것이 권지예 문학의 격조와 개성을 드러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녀의 문학을 관통하는 결혼 생활, 그 어려움과 허구에 대한 샅샅한 파헤침이 소름끼치도록 적나라하고 현실적인 것 역시 미덕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갈비뼈 어디께쯤 푸르디 푸른 칼이 녹슬지 않도록 끊임없이 벼려 온, 그것도 낯선 이국땅에서 몇십년동안,작가 권지예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새로운 마녀가 앞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
| 권지예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첫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열일곱에 세상을 뜬 세살 아래 여동생에게 헌사한다고 얘기한다. "어느날, 갓 여중생이 된 동생의 서랍을 열어보니 자신만의 문집이 여러권 있었다. 빨려들어가 읽다보니 창밖으로 먼동이 트고 있었다. 깊은 한숨과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모짜르뜨를 바라보는 쌀리에르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라고 시작되는 죽은 여동생에 대한 추억. 글쟁이들에겐 자신만의 문학적 모태가 필요하다. 무언가 끊임없이 끄집어낼 수 있는 자양분. 그것이 있는 권지예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권지예는 작가의 말에서 표제작 「꿈꾸는 마리오네뜨」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울 아내와 파리 남편, 이방인처럼 낯선 그들의 해후를 그리면서, 마치 프랑스는 연인, 한국은 조강지처 같은 나라,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고 쓰고 있다. 프랑스에서 보낸 작가의 8년, 30대, 90년대를 생각해볼 때 그녀에게 있어서 프랑스는 또 다른 문학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권지예의 파리가 백석의 함흥 혹은 카프카의 프라하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한쌍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권지예 소설의 파리는 명품의 사치스러움처럼 어떤 거리감을 형성한다. 그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타난 댄디즘(dandyism)과 비슷한 것이다. 서울 아내와 파리 남편의 해후와 그들의 불륜을 그린 「꿈꾸는 마리오네뜨」는 비행기 타고 먼 이국땅에까지 가서 생각하는 불륜의 한 방식이다. 서울 아내의 돈으로 빠리에서 공부하는 남편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과 공허감, 생계에 대한 부담감을 떠맡은 서울 아내가 느끼는 공허감은 각각의 불륜을 낳고, 남편의 불륜을 눈치 챈 바람난 서울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순결 혹은 지켜야 할 결혼서약에 대한 강박증을 털어놓는다.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서 권지예는 프랑스 인형극 '마리오네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어쩌면 소설을 쓰는 것은 한편의 마리오네뜨를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인형줄은 신비스런 운명의 줄일 수도, 한국과 프랑스의 인물들이 끊임없는 긴장으로 두 나라 사이의 '시차'나 '거리'에서 자기정체성을 모색하는 줄일 수도 있다." 멋진 표현이다. 하지만 그녀가 조종하는 마리오네뜨 인형에 매달린 나는 두 나라 사이의 '시차'나 '거리' 사이에서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진다. 「꿈꾸는 마리오네뜨」에 탑승하기 위해서 지불해야할 비행기값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고요한 나날」은 또다시 불륜의 사랑과 그것의 공허함과 상처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얘기한다.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이 사랑의 테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꿈꾸는 마리오네뜨」의 서울 아내처럼 삶의 운명론을 신봉한다. 「고요한 나날」의 그녀는 죽은 남자를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인가봐요. 불행이든 고통이든 말이지요. 어떤 호르몬의 화학작용인지는 몰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나 불행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지요. 그러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란 없을 거예요." 라고 읊조린다. 하지만 그녀의 깨달음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의 빛나는 성찰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운명을 통념처럼 얘기하는 권지예 소설의 여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돌연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그녀들이 정말로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주지 않는다. 그러기엔 「고요한 나날」의 그녀는 지나치게 낭만에 사로잡혀 있고, 「꿈꾸는 마리오네뜨」의 그녀는 어찌할 수 없는 정념과 그에 맞먹는 도덕이라는 율법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권지예의 소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
| 새로운 소설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 세계가 나를 감싸안을 수 있길...내가 그속에 빠져들 수 있길. 나는 불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경린, 공지영, 권지예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왜냐고? 굳이 묻는다면, 달리 꼬집어 논리를 세울수는 없다. 어디 그런 것들이 논리로 설 만한 것들이냐? 다만 그 신랄한 일탈이 좋고, 내게 주어지는 신선한 충격이 좋다. 이 책속의 작품들은 죄다 사랑... 그중에서도 적절히 불륜이 뒤섞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반드시 프랑스가 나온다. 처음 두세 작품은 그려려니 했는데, 끝까지 몽땅 그런 얘기니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얘기를 여러번 다르게 엮어낼 수 있는지 그게 신기할 정도였다. 허나 뒤로 갈수록 꽤 나를 만족시키는 구석이 여럿 있었다. 여러작품들중에 '꿈꾸는 마리오네뜨'와 두 중편 '상자속의 푸른칼','사라진 마녀'가 특히 좋았다. 읽을 땐 뭐 이런 똑같은 소재만 되풀이 되는 소설집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읽고 보니 분명 각 이야기마다 담긴 다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소설책중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참 드문데, 이책은 꼭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륜을 소재로 한 앞부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얼마전 KBS의 한 드라마가 생각났다. 드라마극장에 <아주 오래된=""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정말 괜찮게 본 드라마가 있다. 과연 그 사랑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상자속의 푸른 칼'은 소설적 매력으로서 가장 나를 강하게 이끌었던 작품이다. 어찌보면 무라카미류를 보는 듯한 이 글은 특유의 음산한 매력을 발산한다. '사라진 마녀'는 이책에서 좀 독특한 작품이다. 우선 유일하게 프랑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단지 아일랜드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륜의 사랑이 그 중심에 있지 않다는 점... 웬지 권지예의 작품같지 않으면서도 정말 권지예의 작품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말 나로서는 제일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여성작가들에게 있어 여성이라는 화두는 상당히 끈질긴 유혹같다.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여성작가도 쉬이 이 화두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또 너무나 당연하다... 왜 여성들은 소설속에서까지 그렇게 힘들기만 한 지 모르겠다. 하긴 현실이 그러니...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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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첫 단편집도 내고 "뱀장어 스튜"란 작품으로 '이상문학상'도 수상한 작가 권지예. 그녀의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읽게 된 것은 한겨례 신문 책정보 섹션 한 귀퉁이의 "탐나는 책"이란 코너에 소개된 글을 읽고서였다. 프랑스 유학을 한 작가의 프랑스 체험이 녹아있다기에 독특할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쓰여진 여덟 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난 느낌은 전체적으로 좋다. 하지만 작품간에 편차가 확실히 있다. "섬(2001)"과 "사라진 마녀(1997)" 등이 완성도가 높은 글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섬"은 여덟편의 작품 모두가 그런 것처럼 역시 '유부남/유부녀의 외도'를 재료로 삼고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작가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코스 요리라고 했을 때 애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닭고기로만 요리한다면 먹는 사람들은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화자의 유학생 부인으로서의 고립된 삶을 "유폐된 섬, 무인도"에, 그리고 시국을 잘못 만나 주류로부터 벗어난 삶을 사는 남편 후배 용빈("투우"의 황병우의 변주)의 삶과 둘 사이의 관계를 밀물이 들면 섬이 되어버리는 요새 도시 몽쎙 미셸로 설정한 것은 주효했고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앞서는 느낌이었다. 다만 끝마무리가 '꽁뜨'처럼 다소 싱겁게 (독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못잡을 것 같다) 끝나는 것은 작품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느낌이 든다.
"사라진 마녀"는 '마녀'라는 주제는 신선했으나, 그리고 두 명의 주인공 여성들도 각각 매력적인 캐릭터였으나, 이 셋 사이의 버무림이 매우 잘 어우러졌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주인공을 '마녀'에 비유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그림자극 에니메이션 "Prince and Princess" 중의 "마녀"라는 단편을 최고로 꼽는데, "사라진 마녀"에서는 여주인공 서현이 주홍글씨를 단, 마녀사냥의 대상이었다는 뜻에서 '마녀'로 지칭된 것 같지만 그녀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유였고, 화자의 학창시절 여교사는 남학교의 짓궂은 학생들과의 대립이 극에 달하며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함께 '마녀'로 묶인 것 같지만 조연(여교사)에 대한 설명이 지나쳐 작품의 일관성을 흐리게 된 것 같다.
한편 "상자 속의 푸른 칼(1997)"이나 "나무 물고기(2001)","정육점 여자(2001)", "투우(1998)" 등은 아직 습작의 냄새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 듯한, 요리로 말하자면 약간의 덜익은 밀가루 반죽 냄새가 남아있는 듯한 느낌들을 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경험'과 '상상'이라는, 두 가지 재료 사이의 어울림이 완벽하지 못한 탓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결과 시식자(독자)에게 '느낌표!(감동)'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서양에서처럼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세월을 두고 작품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거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작품들이었다. 단발성 흥행을 노리는 작가가 아니라면 이미 출판된 이후에라도 아직 완벽하지 못하다 싶은 작품은 계속 다듬어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에 당의정 같은 환상이 칠해져 있지 않다면 어느 누가 사랑을 하겠니.꿈꾸는> |
| 드라마 애인 이후로 열풍처럼 닥치고 있는 불륜이란 테마. 습관처럼, 유행처럼, 봄날의 들불처럼 번연히 드러나 온 지면을 다 태우는 그 속에서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불륜에 빠진 이들은 정말로 그네들이 사랑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까를 말이다. 아니라면 불륜이라는 위태로움 속으로 몰아넣는 그 공허함의 정체는 무얼까... 시고, 소설이고, 노랫말이고, 드라마고, 심리학 책이고 어디서듯 들끓고 있는 남녀간의 사랑. 하루에도 몇 번씩은 마주쳐지는 사랑이란 단어. 과연 이 세대는 사랑의 바다에 섬처럼 떠있는 것일까.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사랑이란 감정이 어디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지. 내게서 에로스의 자리는 술래잡기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버린 텅 빈 공터같다. 하여 때론 어디서곤 넘치고 있는 사랑타령이 지겨울 때도 있다. 헌데 이 소설엔 어김없이 불륜이 있다. 그러나 그 불륜에 흔히 주장되어 왔던 타당한 이유나, 사랑이나, 치열함이나, 눈물, 구속은 없다. 그냥 불륜만이 실존한다. 자신도 알고 있고, 상대도 알아차리고 있지만 그냥 그대로 놓아두고 있는 정물같은 불륜. 마치 인형극의 인형처럼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 그래서일까 모든 작품 속에서 세월을 겪어낸 묵직함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진부하지 않고. 금방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세월을 오래도록 빨아들이고 물먹은 스펀지처럼 묵직한 진실덩이를 상품 진열하듯 펼쳐놓은 것 같다. 비로소 불륜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사랑은 있을까에 대한 내 희미한 대답을 선명하게 찾아 낸 느낌이다. 소설의 행간에서 늦게 소설쓰기를 시작했다지만 결코 글쓰기를 멀리한 사람답지 않은 노련함이 느껴지는 것도 큰 매력이다. |
| 서점에 가면 그 넓은 공간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쌓여있는 책들은 보면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다. 저 많은 책들중 어떻게 내가 읽을 책을 정하고 골라야 할것인가. 그 현기증을 견디기 어려워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게되었고, 다른 책들에는 눈을 돌릴 필요 없이 내가 읽은 책만 골라 돈을 지불하면 되는거였다. 그러나 가끔 책 내용을 살펴보지 못하고 주문해야 하는 특성 상 실패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책 고르기는 신중함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배달된 책 중에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이란...이루 말할 수가 없다. '꿈꾸는 마리오네뜨'가 그랬다. 소설집 속에 들어있는 소설들 하나하나가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얇고 투명한 유리위를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삶의 여성의 내면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뛰어났던 것은 본 소설이 나오기 전의 '작가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의 이름만을 나열하는 작가의 말과는 달리 이 책의 작가의 말은 작가 본인의 내면고백과 창작동기가 역시 아름답게 쓰여져있다. '작가의 말'까지도 빼놓지 말고 읽어야할 이 소설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
| 마리오네뜨라는 말이 꼭두각시극이라는 말을 이 책의 평론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사람에 의해 연극을 해야하는 꼭두각시인형. 자신이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투철한 독립 정신을 가진 이라도 인생의 한 시절을 꼭두각시로 보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엄격한 부모나 선생님, 힘있는 친구나 동료, 기가 센 배우자, 자식 등등. 개인의 존재를 얽어매는 타인과의 관계맺기 어려움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작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변해가는 인간관계, 가치관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그려내고 있다. 또 사랑이라는 테마에 집중하여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 변질하기 쉬운 부분, 그래도 믿고 싶어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사랑을 위해, 혹은 사랑때문에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우리가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랑 얘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
| 권지예 소설의 여성들이 가슴에 담고 있는 광기와 정열은 진정한 사랑과 소통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항하는 삶의 호르몬이다. 책 마지막에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을 했지만, 난 왜 공감할수가 없을까? 권지예라는 작가가 쓴 여덟편의 소설들 중 위에서 언급한 진정한 사랑은 있을지언정 정상적인 사랑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서일까? 진정한 사랑과 소통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항하려는 수단이 '불륜'으로 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그만큼 이 소설집에 있는 소설들 중 거의가 불륜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에서의 불륜은 이젠 나에게 너무 식상하달까... 그리고 흔히 말하는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들.. 특히 사랑의 아픔으로 마음의 멍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했기에 여덟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먹구름이 잔뜩 낀, 좀처럼 햇빛을 볼 수 없는, 마치 우울한 장마기간을 느낀 기분이었다. 여덟편의 소설들 중 개인적으로 '투우'라는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다른 소설들이 비극적이었던데 비해 그나마 엔딩이 밝아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그점 뿐만 아니라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한 이유도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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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의 당선 작가로 뱀장어 스튜를 먼저 접하고,이책을 훓었다.단편이 주는 긴장감이 오랜만의 글읽기의 쾌락을 즐길수있게 해준 시간이었다.특히나 8편의 작품중에서 상자속의 푸른 칼이 개인적으로 여운이 길다.
오늘도 여전히 무참한 하루였다.일상의 단조음속에 줄기차게 내리는 햇빛이란 정물의 시각일 뿐이듯이,변하지 않는 일상이란 얼마나 견고한 수렁일 것인가.그것은 흘러가는 시간.육체적 쇠락과 더불어 속수무책으로 바래어 가는 존재가 꿈꾸었든 가치에 대한 슬픈 사랑인 것이다. 상자속의 푸른 칼 처럼. 또는 마음속 깊은 곳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잘 벼린.... 서늘하게 푸른 빛 도는 칼 하나를 가지고 살아 가는 것 처럼.
삶에 대한 가열찬 열정이 아니면 결코 쓰여질 수 없었으리라 믿으며,또 다른 작품의 구조가 어떤 형식으로 풀어질지 사뭇 기다려진다. [인상깊은구절] 이 칼은 내 몸입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내 몸대신 당신꼐 바칩니다. 이 칼로 나는 사람들에게 거짓 죽음을 보여주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했습니다. 이제는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더이상 죽음을 기다리진 않겠습니다. 제발 슬퍼하지 말아요. 죽음이란 비온 다음의 무지게 같은 것이겠지요. 이 칼이 당신에게 푸른 생명의 칼, 희망의 칼이 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파란색의 그림처럼 말입니다. 내 마지막 사랑,아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