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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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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카레라스의 <Passion> 앨범이 예스24 음반코너를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지중해의 열정> 앨범은 내용이 전혀 다르고, 그러니깐 <Passion>의 음반 리뷰도 불가능하다. 일요일 오후에 듣는 The kings singers의 <Chanson d'amour>, 아카펠라의 솔로 혹은 중창이 감미롭고도 그윽하다. 이것 역시 품절... 이전의 정리한 리뷰들도 어찌된 노릇인지 품절앨범 리뷰가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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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카레라스의 <Passion> 앨범이 예스24 음반코너를 뒤져도 나오질 않는다. <지중해의 열정> 앨범은 내용이 전혀 다르고, 그러니깐 <Passion>의 음반 리뷰도 불가능하다. 일요일 오후에 듣는 The kings singers의 <Chanson d'amour>, 아카펠라의 솔로 혹은 중창이 감미롭고도 그윽하다. 이것 역시 품절... 이전의 정리한 리뷰들도 어찌된 노릇인지 품절앨범 리뷰가 꽤 된다. 

이번 주의 음반 리뷰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며칠 전 음치프로젝트에 대한 티비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상당히 황당했던 적이 있다. 미디어가 지향하는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지 재미와 웃음뿐인지, 소재의 다양성을 찾다보니깐 클래식까지도 웃음거리로 뭉개버리는 평가절하의 상황을 보고 어찌나 씁쓸했는지 모른다. 음치는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고 볼 일이다. 귀의 이상을 점검해 보지 않고 음감을 기대하거나 멜로디를 따라 갈 수 없는 노릇이다. 악보 붙들고 노래 연습을 백날 해봤자 구제가 불가능하다. 노래하는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경박한 미디어물에 실망하면서 리뷰로 한번 써볼까하다가 품절로 인해 좌절된 내 넋두리였다.

 

한 장의 앨범을 올려 놓고 듣는 중이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D단조 작품 125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연주, 레이블은 도이치 그라모폰이다.

독일의 악성 베토벤은 청각의 문제가 깊었던 음악가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속에 등장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피아노몸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으려는 가련하고도 열정적인 음악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824년 5월 7일 <교향곡 제9번>의 초연이 이루어졌다. 미하엘 움라우프가 지휘를 맡았고 이미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그 옆에 자필 총보를 들고 서서(비록 들리지는 않았지만) 연주를 이끌고 빠르기를 지시했다. 연주자들은 지휘자에만 집중하고 베토벤의 동작은 철저히 무시하도록 사전에 누누이 교육받았으며 이는 그대로 지켜졌다. 스케르쪼 악장이 끝나자 갈채가 터져나왔다. 피날레가 끝나고 청중이 환호하는 동안에도 베토벤이 객석을 등지고 이를 알지 못하자 그의 소매를 끌어당겨 돌아서게 했고, 비로소 베토벤도 청중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갈채에 답례했다. 작품은 열정을 불러 일으켰고 청중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서서히 청력을 잃어가는 음악가란 상상도 안되는데 베토벤은 그런 천재였다. 아마도 불같은 성격의 괴팍함은 잘 들리지 않은 것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악보 원본을 보면 아주 번잡하기 이를 데 없다. 고침의 반복과 낙서같은 필체, 머릿속을 뒤흔드는 폭풍같은 음들은 소리로 탄생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머릿속으로 그 선율을 그릴 뿐이다. 아무리 비범한 음악가라고 해도 정말 그게 가능할까?

성악가가 성대를 심각하게 다치면 그의 무대수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장기들은 이식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성대는 이식이 불가하기에 화려한 무대를 약속할 수가 없다. 청력이 희미해지기까지 보청기에 의지하며 작곡에의 열정을 불태웠던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일명 <합창>은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준 것으로 학창시절 음악시간에도 불렀고 드라마에도 등장하여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야 인지도가 조금 상승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나마도 잊어버리는 저렴한 예술 품격이 지겹지도 않은가.

편의성과 접근의 용이함을 핑계로 되는대로 섞어버리고 재창조라 뽐내는 기형학적인 쟝르들. 주변에 정말 많다. 클래식은 그 나름대로의 존재이유가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서늘하기만 할 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내게 그런 존재이다. 

 

 

 

 

 



b*******e 2010.12.13. 신고 공감 10 댓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