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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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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고교 시절인 16세에 이미 짧은 농담들을 써서 뉴욕의 유명한 칼럼니스트들에게 제공하는 재담 작가로서 직업적인 코미디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즉흥적인 유머를 날마다 30-40개씩 써낼 정도로 재담가로서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17세에는 어릴 적 우상이었던 봅 호프의 단골 작가로 활동했는데, 그의 스타일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재담들을 만들어 내 호프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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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고교 시절인 16세에 이미 짧은 농담들을 써서 뉴욕의 유명한 칼럼니스트들에게 제공하는 재담 작가로서 직업적인 코미디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즉흥적인 유머를 날마다 30-40개씩 써낼 정도로 재담가로서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17세에는 어릴 적 우상이었던 봅 호프의 단골 작가로 활동했는데, 그의 스타일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재담들을 만들어 내 호프가 개인적으로 앨런을 만나 보고 싶어했을 정도였다.

 

이런 재담가로서의 그의 면모는 나중에 그가 만든 영화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재치가 번득이는 대사적인 유머로 자신의 어릴 적에 보고자란 슬랩스틱류의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코미디 세계를 일구어 냈다.

 

 

다른 코미디언들을 위한 재담을 쓰고 유머 소설을 쓰는 등 작가로서 활동하던 그가 영화에 관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58년부터 그의 개인 매니저로 활동한 잭 롤린스와 찰스 H. 조프 두 사람이 반강제적으로 그를 카바레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데뷔시킨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그의 영화에서 익히 보아 온 바보스런 캐릭터와 지식인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지적인 농담으로 명성을 얻었다.

 

어느 날 카바레에서 그의 공연을 본 찰스 펠트만이 ‘별일 없니, 암코양이야?’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부탁함으로써 앨런은 밤무대 코미디언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배우로, 다시 영화 감독으로 변신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가 코미디 작가, 이어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결국엔 영화 감독, 즉 시각 예술가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그의 초기 작품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코미디언으로서의 내 재능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코미디언으로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관객들을 웃기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우스갯소리의 나열이 아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졸지에 감독이 된 한 코미디언이 영화란 매체가 무엇인가를 배워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는 랄프 로젠블럼으로부터 편집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으며, 고든 윌리스로부터 촬영의 다양한 가능성도 배우게 된다.

 

자신의 매체에 대한 장악력이 향상되면서 그는 자신의 우상인 베르히만처럼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는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기 위한 타협을 거절했으며 독창적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웃기는 작품을 만들고 나면 다시 진지한 작품을 만드는 등 코믹한 세계와 진지한 드라마의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지한 드라마의 세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가 만든 진지한 드라마들은 미국의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비판과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개그와 시각적인 즐거움이 함께 하는 초기의 코미디 영화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집착은 그의 어릴 적 영화 체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섯 살 때부터 극장에 드나들어 마을에서 개봉하는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본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감독들은 미국의 코미디 거장 막스 브라더스와 스웨덴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다.

 

 우디 앨런은 어려서부터 광대적인 희극 영화보다 지적인 코미디 영화에 끌렸으며 미국에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유럽 영화, 특히 베르히만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고전 코미디 영화들과 베르히만의 작품들은 그의 영화 세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큰 줄기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앨런에게 베르히만은 앨런 그 자신이 가장 높이 사는 예술 장르인 비극의 거장이며 내면의 심리, 감정들과 혼란스런 세계를 탐험하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 언어를 창조해 낸 위대한 감독이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특히 초기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패배자의 캐릭터일 것이다. 우디 앨런 자신이 연기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은 현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안정하고 노이로제적인 인물이다.

 

영화에서 이 같은 패배자의 전통을 굳힌 사람은 찰리 채플린인데, 그는 거리의 부랑자로 출연해 주변의 위압적인 환경들과 비인간적인 세계에 대항하지만 그의 순진함과 성실함은 오히려 거대한 하나의 농담의 일부를 이루며 조롱당한다.

 

앨런의 영화에서 그가 연기하는 이 패배자의 캐릭터는 바로 이 같은 채플린의 모습을 지식인화, 도시화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앨런의 바보 캐릭터는 아는 것은 많지만 실생활에 무능하고 또 현대적인 갖가지 노이로제에 시달린다.

 

특히, 그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하며 섹스는 불안과 걱정의 근원을 이룬다.

그는 비겁하고 죽음과 섹스, 부당함에 대해서 노이로제에 가까운 강박증을 보인다.

우디 앨런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관객들의 대리인으로서 공감을 사는 역할인 동시에 영화의 세계와 관객들을 이어 주는 중개자 기능을 한다.

 

우디 앨런이 이 패배자의 모습을 통해 전달하는 농담들은 낙관주의에 대한 불신이며 바보 같은 주인공의 순진하고 사실적인 말투의 농담들은 전체의 진지함을 조롱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주인공 자신까지 조롱한다.

 

 

우디 앨런은 아마도 관객들이 영화 속의 페르소나와 실제의 인물을 거의 구별하지 않으려 드는 유일한 영화 감독일 것이다.

그의 대중적인 페르소나는 너무나 그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어 영화 속 이외의 우디 앨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대중적인 페르소나로서의 우디 앨런과 브루클린 태생의 실제 우디 앨런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다시피 실제의 앨런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프로페셔널이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관리 아래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의 완전주의자이다.

 

그래서 그가 대중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그다지 응하지 않는 것은 그의 성격 때문만 아니라 이러한 자기 노출에 대한 인색함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의 철저함이 어느 정도냐 하면 영화의 신문 광고까지도 그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서는 게재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좋은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지식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판단, 철학과 대학원생으로부터 독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독서는 그의 영화 곳곳에서 보여지는데 초기 작품보다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77년 ‘애니 홀’에서 두드러진다.

 

‘애니 홀’은 앨런이 스타일의 변화를 진지하게 추구한 작품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어느 코미디언의 연애 실패담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시공간을 마구 뛰어 넘는 내레이션상의 대담한 실험이 돋보인다.

 

우리는 주인공 앨비 싱어로부터 영화 앞부분에서 그의 연애는 이미 실패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러므로 영화 전체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앨비의 플래시백으로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이 회고 자체도 연대기적인 논리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알기도 전에 그들이 어떠한 갈등을 겪는지를 알며 심지어는 애니의 전 남자 친구들이 어떤 인물이들어었나까지 알게 된다. 인과 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이러한 회고의 전개는 거의 꿈의 논리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로 앨비는 현실 생활에 적응하는 데 문제를 겪는 인물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스타일이 다른 코미디 감독들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기의식적 혹은 자기 반영적이라는 앨런의 영화성격에 기인할 것이다.

이 같은 자기 반영적 스타일은 소설이나 영화가 드라마라는 매끈한 형식을 통해 현실을 모사한다는 전제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이 현실에 대한 환영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환기한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작품을 독자나 관객이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고 독자나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하고 작품과 대화하도록 요청하면서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관습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전통적인 영화들이 ‘영화란 스크린이라는 투명한 창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자기 의식적인 영화는 이런 가정을 비웃으면서 우리는 기껏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텍스트들, 기존의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을 마주할 뿐이라고 본다.

 

그래서 자기 의식적인 영화들에는 ‘상호텍스트성’과 함께 다른 작품에 대한 패러디, 자기의 영화와 영화 매체 자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앨런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중산층이거나 여피인 것으로 보면, 그리고 영화에서 대부분이 비정치적인 것을 보면 앨런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앨런의 이러한 비정치성은 초창기 영화에서부터 후반 영화에 이르기까지 꾸준한데 이같은 나이브한 정치성 때문에 그의 재능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8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의 영화성향은 철저히 블록버스터화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은 일부 독립영화를 제외 한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 영화들의 발전이 체제 내화된다거나 소멸되는 반면에 일부 대가(앨런을 포함한)들은 이러한 헐리우드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독야청청하고 있는 것은 그의 나이브한 정치성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를 상업적 혹은 산업적 시각으로 볼 것인가 혹은 예술적 시각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에 따라 앨런의 현재성 혹은 앨런의 전성기 작품의 현재성은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m*****a 2010.06.28. 신고 공감 9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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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싸랑 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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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과 하루종일 함께 해놓고도 돌아오는 길에 내게 남은건 우디알렌이었다. 무려 8시간여에 걸친 히치콕의 영화들을 줄지어 눈에,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도 난 그안에서 우디알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 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히치콕의 '그림'들에서 그리움이 싹텃던 모양이다. 시작전 평론가 한상준씨의 강의에서도 심심찮게 거론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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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과 하루종일 함께 해놓고도 돌아오는 길에 내게 남은건 우디알렌이었다. 무려 8시간여에 걸친 히치콕의 영화들을 줄지어 눈에,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도 난 그안에서 우디알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 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히치콕의 '그림'들에서 그리움이 싹텃던 모양이다. 시작전 평론가 한상준씨의 강의에서도 심심찮게 거론되었었고, 우연찮게 극장에서 할인판매하고 있던 책목록에서 그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처음 우디 알렌을 알게 된건 <카이로의 붉은="" 장미="">였다. 어찌나 온몸을 저리게 하던지, 숨이 차오르고 뇌가 터질 듯하더니 공중으로 붕 뜨는 황홀감을 맛보게 해준 영화였다. 더욱이, purple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지 않던가^^ 그 다음,그의 영화를 찾아서 또는 우연히 만나게 되면 될수록 그가 좋았다. 너무 좋은건 순간의 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법! 그의 영화가 그랬다. 그의 속사포같은 대사들을 다 가지고 싶어 안달인 내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첫사랑을 떠올리듯, 그렇게 그에 관해 늘 자랑을 늘어놓고 싶다. 스웨덴의 영화저널리스트이자 영화감독인 '스티그 비에르크만'과 우디알렌과의 문답형식으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내가 우디알렌에게 첫눈에 반했던 이유를 하나씩 찾게 되었다. 직선적이면서 분석적이고, 노골적이기까지한 비에르크만의 질문법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그에 솔직담백하면서도 자기주장이 정확히 담겨져있는 쿨하고 리버럴한 우디알렌의 답변 또한 근사하다. 자연스럽게 놀라는 부분들이 있었다면, 순간순간 거론되는 릴케, 에릭사티, 구스타프 클림트 등...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튀어나올 때나, 거듭된 사고에 의해 얻어냈다 생각하는 '내것'들이 그의 입을 통해 날려져있는 것을 볼 때면 그랬다. 더욱이, 그의 수많은 영화중에 가장 만족스럽고 좋아하는 영화가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 한 곳에선 정말 짜릿했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건 순간의 우연이 아니었던게다. 이건 운명이야^^ 내 싸랑 woody는 이미 내가 아닌 우리의 '쑨이'에게로 가 버렸지만, 그가 이세상에 존재하고 설령 나를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발산해주고 있음이 행복할 따름이다. 아직 보지 못한 그의 영화가 더 많기에, 연대기적인 영화순으로 나열되어있는 책을 읽고 있자니 약간의 약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우디를 이해하기 때문인지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언급일지라도 답답하지는 않더라. 천천히 감추어놓고 하나씩 꺼내먹으며, 내 삶의 비타민으로 삼을 요량이다. 그가 오래오래도록 살아 내 숨쉴공기를 계속 공급해주었음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행복한 며칠을 보냈다.
b******8 2003.04.14.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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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내 작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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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지금까지 26편이 넘는 우디 앨런의 감독 작품들 가운데 10편도 못 되게 본 상태였으므로 자신이 번역 작업에 자격 미달이라 느꼈다는 고백을 '옮긴이의 말'에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디 앨런과 인터뷰어 스티그 비에르크만(베르이만과의 대화집을 펴낸 경력이 있는 스웨덴의 영화 평론가라고 한다)이 이야기하는 작품 가운데 우리 나라에 출시된 것은 실제로 10편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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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지금까지 26편이 넘는 우디 앨런의 감독 작품들 가운데 10편도 못 되게 본 상태였으므로 자신이 번역 작업에 자격 미달이라 느꼈다는 고백을 '옮긴이의 말'에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디 앨런과 인터뷰어 스티그 비에르크만(베르이만과의 대화집을 펴낸 경력이 있는 스웨덴의 영화 평론가라고 한다)이 이야기하는 작품 가운데 우리 나라에 출시된 것은 실제로 10편이 채 되지 못한다. 역자 자신의 말마따나 '국내에서 나온 그의 비디오 작품을 모두' 보았다는 것일텐데,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우디 앨런의 작품을 이 정도만 보았더라도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 제목들이 목차의 각 제목이 되고 있다. '우디 앨런: 내 작품을 말한다'의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각각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우디 앨런의 성장 배경이나 사생활에 대한 내용이 언뜻언뜻 비치므로 '사생활의 공개를 극히 꺼린다는' 우디 앨런의 숨은 면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들도 있다. 다이앤 키튼과의 관계, 유년기의 체험, 그리고 미아 패로우에 대한 애증어린 감정들을 내보이는 대목들도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면 이유야 어쨌든 재밌고 즐겁게 읽을 책.

[인상깊은구절]
이 책을 쓰는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우디 앨런은 우리가 익숙한 그의 영화 속의 페르소나, 즉 우울한 늑대와 치유 불가능한 신경증 환자와는 그리 크게 닮지 않았다. 또한 그가 거의 자학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드러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단점들의 바탕을 이루는 모든 고통, 혹은 최소한 자기 비하와는 거리가 멀다. 즉 우울증, 자기 도취, 우유 부단함, 기타 다른 여러 공포증들 말이다. 대신 그는 매우 단련된 직업인이고 결정권자이며 자기 자신에게 훨씬 철저함을 요구하고 자신의 예술과 상상력에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진지하고 의식 있는 예술가였다. (머리말)
c******r 2001.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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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알렌을 좋아하십니까?
"우디 알렌을 좋아하십니까?" 내용보기
네 저는 좋아합니다. 그것도 무지무지 좋아하지요. 영화에서 코미디의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챨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같은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를 뻬 놓을 수 없겠지만 그러한 진정한 코미디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 이름 중에서 우디 알렌의 이름은 그 화려한 현재의 코미디 영화의 현 주소를 결코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영화가 주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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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좋아합니다. 그것도 무지무지 좋아하지요. 영화에서 코미디의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챨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같은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를 뻬 놓을 수 없겠지만 그러한 진정한 코미디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 이름 중에서 우디 알렌의 이름은 그 화려한 현재의 코미디 영화의 현 주소를 결코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영화가 주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책 [우디가 말하는 앨런]은 궂이 우디 알렌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우디 알렌의 영화를 좋아하고 그의 영화를 즐겨보고 그의 수다가 주는 맛을 나는 이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책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밖의 우디 알렌을 읽을 수 있으며 자기의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각 영화마다 우디 알렌이 겪었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 책은 영화를 넘어서는 재미를 안겨다 준다. 우디 알렌이 바라본 세상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영화,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그가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 영화는 그렇게 계속 되고 그의 수다는 삶에 대한 독특한 뒤틀기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의 삶에 조금은 그의 웃음이 담긴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그의 생각대로 자기 생각을 가지고 그의 말처럼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웃음이 넘치고 여유로운 삶이 또 있을까 싶다.더군다나 우디의 영화를 보는 이들에겐 영화에 대한 좋은 지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대화가 수다가 아닌 말 그대로의 말이 되어 나의 귓가를 울린다.
c******e 2002.05.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