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lse Triste(슬픈 왈츠)를 카라얀의 연주로 듣다보면 푸르트뱅글러에게 미움받은 것도 당연하지 않나 싶다. 물론 카라얀은 천재적이고 성실하였지만 다소 기회주의적이었고 나치에 두번이나 입당하였기 때문에, 내성적이고 상처를 잘 입던 푸르트뱅글러와 성격이 맞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에 대해 보여준 적대감에서 유추하다시피, 푸르트뱅글러는 자기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경쟁자에 육박하는 지휘자들에게는 병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다. 민감하단 얘기는 즉 무언갈 두려워한다는 의미다. 푸르트뱅글러가 실제로 카라얀의 어떤 재능을 두려워했는지는 저승에 가서 직접 물어보지 않은 이상은 모른다. 사실 베토벤/브람스/바그너 등에 있어서는 푸르트뱅글러가 월등하다. 자, 이제 우리는 깊은 질문을 던져보아야하겠다. 어디서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를 위협한 것일까 ? 몸서리쳐질 정도로 완벽한 현의 앙상블. (그것도 베를린필), 레가토를 구사하면서 몰입을 금하고 대상을 객체화시킨 루바토, 우아하면서도 시종일관 작품의 탐미적인 면모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우수적인 정서. ‥ 확신은 위험하지만 푸르트뱅글러와 비교해보면 카라얀의 두드러지는 장점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카라얀의 장기는 후기 낭만주의에 속하면서도 "탐미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작품에서 빛을 발하지 않나 싶다. 말러 교향곡 9번의 아다지오, 시벨리우스의 후기 교향곡, 브루크너 후기 교향곡, 아울러 서양고전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한번 정도는 접해보았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특히 6번 교향곡 "비창")‥ 하지만 그런 탓에 나는 카라얀의 지휘가 탁월하다 인정하지만 즐겨듣지는 않는다. 뭐랄까 ? 완벽무결한 미녀 마네킹과 데이트하는 기분이랄까 ? 그에 비해 푸르트뱅글러는 인간적인 느낌이 오고, 번스타인은 과잉반응이 있더라도 숨통이 트여있으니까. (* 사실 번스타인 말년 녹음은 그 자아도취가 청자를 못 살게 하지만) 그래도 이 음반은 마음 편히 들을 수가 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홀베르크 조곡은 물론 카라얀과 베를린필 버전으로 "결정화된 탐미적인 관현악"으로 연주된 것이지만‥ 조용한 분위기에 명상을 하거나 차분히 책을 읽을 때 배경음악삼아 들으면 좋다. 무엇보다 시벨리우스 관현악이 압권인데 "핀란디아"와 "슬픈 왈츠"의 경우는 카라얀 혐오증자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수연이 아닐까 싶다. 콜린 데이비스나 바르비롤리 등의 시벨리우스를 들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곡가만큼은 카라얀의 "탐미적인 연주"가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인적없는 북구의 석양빛 머금어 홍조띤 외로운 만년빙하를 바라보는 순록의 눈빛처럼‥ 생전의 시벨리우스가 카라얀이야말로 자기 작품의 최고 해석자라 인정했다고도 한다. 핀란디아 연주의 경우는 "제국부대"같은 카라얀 특유의 "과시"가 흘쩍 엿보이나, 슬픈 왈츠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매정한 완벽함"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곡의 주제가 잘 살아나지 않는지. 북방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무표정이 더욱 애잔하듯이‥ 카라얀의 음반을 즐겨듣지는 않지만, 이런 종류로 장기가 잘 발휘된 경우는 가끔씩 들으며 그의 장인정신을 떠올린다. 생전 많은 구설수가 따랐고 인간적으로는 별 매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20세기 후반에 넓혀놓은 고전음악의 영토는 매스미디어와 확장과 더불어 수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안겨주었지 않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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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퀸트의 솔베이지 조곡을 들으려고 뒤적였던 앨범이 마침 이녀석이었다. 몇번 듣고 나서야 카라얀의 지휘였다는 것을 알고는 역시나 싶었었다. 어찌나 장중하신지. 베를린 필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만 소리가 풍부하고 모두가 하나로 울리는듯한 장중함은 최고였다. 듣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느낌이라니...... 구성도 참 잘했지 싶다. 그리그와 시벨리우스가 이리 잘 어울리는줄이야 소장할 가치 있는 앨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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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g, Gavotte & Musette, Quintessenz 홀베르그 모음곡중 Gavotte & Musette 연주를 들었습니다. 새아침의 상쾌함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곡이 었습니다. 음악에서의 상쾌함과 상큼함이라고 해야겠죠. 원래는 관현악 곡인데 이 음반에서는 플루트 곡으로 편곡했네요, 퀸텟센츠라는 플루트 악단이 연주했고요, 낭만적인 홀베르그 모음곡중의 추출곡이라 듣기도 아름답고 편합니다. 음악의 행복을 느낄수 있는 곡이네요. *********************************************************************************** 에드바르 그리그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년 6월 15일 ~ 1907년 9월 4일)는 노르웨이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다. 베르겐에서 출생하였으며, 극작가인 입센과 비교할 정도로 유명한 민족주의 음악가이다. 그리그의 증조부는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의 베르겐에 이주해 온 사람이며, 어머니는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므로 그는 최초의 음악교육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15세 때 독일에 유학하여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 모셸레스, 리히터, 라이네케 등에게 배웠다. 당시 독일에 유학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 음악가의 대부분은 그대로 독일에 머물러 독일의 음악가들과 어울리고 싶었으나 그리그는 졸업 후 곧 스칸디나비아로 가서 가데(게제)를 알게 되었고 다음 해에는 노르드라크와도 만나 민족주의적인 음악사상을 품게 되었다. 1867년 4촌누이인 가수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하여 귀국, 노르드라크와 협력하여 1869년 오슬로 크리스티아니아에 음악협회를 설립, 1880년까지 그 지휘를 맡아 보았으며, 한편으로 민족색이 풍부한 명곡을 차례로 내놓았다. 1880년 이후에는 고향인 베르겐으로 물러나와 작곡에 전념하였고 그의 간단한 작업장이 지금도 국립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곳은 피요르드라고 하는 빙하로 생긴 골짜기가 강입구로 된 해안선 근처까지 뻗어나온 것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서, 숲 사이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그는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또 지휘자로서 몇 차례나 외국에 갔으나 본거지는 늘 조국이었다. 만년의 약 10년간은 학생 때 앓은 폐병이 재발하여 어두운 나날을 보내야 했고 64세 때까지 살다 출생지에서 사망했다. 유골은 작업장 아래에 있는 피요르드의 벽면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안치되었다. 작품 세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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