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수한 통로가 열려있는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가 이방인. 누구나가 바람처럼 휙 하고 이 세상을 불어갈 뿐. (p413) 하루를 온통 한 편의 소설에 쏟아 부었다. 두 번째 읽고 났을 때 바야흐로 미명이었다. 시계초침 옮기는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도 없이 시간은 흘러 날이 새고 있던 것이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벌써 누군가 학교 운동장 트랙을 따라 달리고 있다. 그의 뺨과 목덜미에 스칠 차고 맑은 공기가 향기롭게 전해왔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빳빳한 수건에 물기 스미는 감촉과 비슷하리라. 몇 년 전 회사에서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일정 틈틈이 들른 신사에서 본 수많은 등과 소원을 적은 하얀 쪽지를 나무에 묶어놓은 것이 신비한 설화처럼 각인 되어 있다. 고층 빌딩 위를 날던 현란한 까마귀 떼의 춤사위, 길다란 우산을 어설프게 짚고 다니던 흰 와이셔츠 차림의 샐러리맨들, 세 보폭 정도의 차도에도 어김없이 달려있던 충실한 신호등, 경적소리 하나 들리지 않던 도로, 나무가 잘 가꿔진 작은 정원을 가진 아담한 주택가, 우리나라 경주와도 같다는 "나라" 의 겁 없는 사슴들, 아쉽게도 가부키는 관람하지 못했다. 1970년 11월 25일에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제 부활을 외치며 자위대 사령관에서 할복자살을 했다는 일본,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일본인, 아마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네 정서와 맞물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깊숙한 곳에 숨기고 있을 것 같은 이질감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리라. 헌데 마루야마는 달랐다. 수도승으로 비유되는 그의 간결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주는 신선한 자극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롭고 빠르게 파고들었다. 치열한 절제와 금욕에서 오는 사리(舍利)와도 같은 그것은 세인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위엄을 느끼게 했다. 그의 여러 장편 중에서도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가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제목이 주는 강한 끌림 덕분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미지의 세계였던 달에 인간이 첫발을 내디뎠다는 이유뿐만 아니더라도 달이 안겨주는 이미지는 독특하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프시케>라는 시집이 있다. 현직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동 환자들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낸 것이었는데 서점에서도 푸대접을 받아 맨 아래 칸 구석에서 먼지를 부옇게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소년의 "그런데 나는 왜 달을 좋아할까?"라는 물음은 아직도 먹먹한 목소리로 맴돌고있다. 이렇듯 달은 소외된 사람에게는 생소한 존재가 아니다.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접근한 달의 이미지, 즉 '충만'은 상처받은 인생의 그늘진 뒤안길에도 온화한 질감의 밝음을 골고루 선사한다. 더도 덜도 없이, 가진 자나 가난한 자나 한줌의 차별도 없이. 이 소설의 화자는 달이 아니다. 자신을 타고 질주하는 인간을 "기수"라고 표현하는 50년이나 된 골동품이면서도 차검을 통과한 낡은 오토바이다. 쇳조각이랑 구리, 약간의 유리로 이루어진 금속성의 오토바이가 뱉어내는 언어들은 혹독하리 만치 객관적이다가 어느새 땀나는 손으로 책을 움켜쥔 나의 이야기로 화하기도 한다.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수시로 넘나들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진의를 놓치기 십상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인 <노르웨이의 숲="">을 네 시간만에 독파한 사람일지라도 마루야마의 소설은 좀더 시간을 투자해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이것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아니다. 행간을 비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 이번에야말로 움직이는 자가 되고 싶다. / 그리고 바람 앞을 달리고 싶다. / 그리고 수냉 엔진의 가르침을 체현하고 싶다. / 그리고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흘러가고 싶다. / 그리고 온갖 형태의 달에게 뒤를 쫓게 하고 싶다. // 우리는 고요하게 잠든 별빛에 잠긴 마을로 돌아간다. (p59) 역자도 언급했듯이 1994년에 상재된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에 가깝다. 자신의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에서 질펀하게 시인의 나약함을 늘어놓은 후 "내게 시란, 물로 희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마실 수 없는 독한 술 같은 것이었다."라고 털어놓은 그가 영화에 대한 대항의식을 갖고 영화로는 절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이미지를, 글자이기에 가능한 선연한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싶은(소설가의 각오 p104) 열정을 잘 소화한 작품이다. 유일하게 생명의 진동음을 발휘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밤낮없이 바다와 마을과 영혼불멸설을 조감하고 있는 누대, 완쾌의 축하연하고는 죽는 날까지 인연이 없을 듯한 파도 색감으로 물들인 모기장 바닥에 누워있는 늙은이가 있는, 이미 거절할 힘을 상실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는 물꼬를 튼다. 드디어 화자가 고대하던 세 번째 기수는 스무 살이 된 단순한 마음의 소유자, 결점 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현재로선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한 조종기사다. 간간이 등장하는 움직이는 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 단정되는 특공대 출신으로 군용 권총으로 자살한 첫 번째 기수와 여자를 밝히는 신문기자로 49년이라는 세월을 이 세상에서 보내고 오토바이와 함께 한 질주로 생을 마감한 두 번째 기수는 과묵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머리가 채워져 있는지 짐작이 안 되는 세 번째 기수를 받쳐주는 조연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그리고 세 번째 기수를 움직이는 촉매역할의 소꿉친구는 부정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사건발단의 중요한 불씨가 된다. 그녀와 공범으로 한 남자의 시체를 유기하고 달의 쫓음을 받으며 괴물 빌딩이 솟아있는 도시로 향하는 세 번째 기수,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이기를 권유하는 집요한 오토바이의 밀어, 탄주되는 샤미센의 음울함, 얼굴을 허옇게 덧칠하고 일본 옷을 입은 인형, 찼다 이지러졌다 하는 달, 그리고 달빛이 무척 어울리는 되바라진 오토바이가 잘 반죽되어 하나의 구심점으로, 소용돌이로 쏠리고 있다. 물론 결말의 반전도 아주 멋지다. 여전히 수성 펜으로 글을 쓰고, 다 쓴 원고를 두 번 세 번 정서 한다는 마루야마의 고집이 빚어낸 아우라가 내 생에 쉬이 잊을 수 없는 음화 한 장을 새겼다. 근간 목이 뻣뻣하도록 읽어 댄 책 중에 가장 날카롭고도 무딘 칼날이었다.소설가의>노르웨이의>프시케>봐라> |
| 시소설이라고 표현되는 낯선 문체, 독설에 가까운 작가의 거침없는 외침은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낯설음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낯익음으로 화할 때야말로 진정한 미학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캐니와 언캐니' 개념을 빌리지 않고도 겐지의 소설은 소설미학에 가장 접근해 있는 것이 아닐까. 움직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이분법에서부터 고향, 그리고 도시 문명에 대해 독설,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비판. 그러나 언제나 마지막에는 고향으로의 회귀다. 겐지에게 고향은 언제나 그 마지막으로 가야할 공간이다. 그것이 비록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도. 겐지의 '시소설'은 분명 영화 이미지보다도 더욱 강렬하다. 막판의 폭주족의 추격장면은 표현대로 역동적인 '씬'이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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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이냐, 산문이냐,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산문을 선택할 것이다. 일정한 율격에 맞춘 시문학은 언제나 난해하고 해석의 어려움을 동반하는 문제를 갖고 있기에, 운문형식의 글 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한 산문극 형식의 글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시를 접할 때, 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은 소설을 압도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양보다는 질이다, 라는 아주 단순한 명제의 성립도 해당될 것이고, 짧은 한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전율의 깊이도 소설보다 깊고 웅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소설다워야 하고, 시는 시다워야 하는데, 이 둘을 절묘하게 버무려서 자유자제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처음 만나고는 굉장히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요리조리 잘도 말을 돌려 버리고, 줄이고 줄여 함축적인 느낌만을 담아 놓은 문장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처음「물의 가족」을 통해 마루야마 겐지라는 대작가를 알게 되고, 그의 문장을 이해하게 되고, 마침내 낯선 전율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지금도 아련한 첫 문장의 그 느낌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소설은 화자가 ‘오토바이’다. 사람, 동물, 지상의 모든 사물이 화자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지만, 오토바이가 화자라니….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눈을 의심하며 오토바이가 과연 화자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몰두했으나, 이내 부질없음을 깨닫고 몰입된 감점으로 문장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루야마 겐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편애할 수밖에 없을 작가군 중에서도 단연 사랑해마지 않는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의 힘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한 자 한 자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간결하고 깔끔한 서정미. 소설임에도 곧장 직역되지 않는 어지럽고도 난해한 시적인 이해관계들. 긴 호흡을 요하면서도 명쾌하고 거침없이 씌어진 남성적인 강인함과 가녀리고도 섬세한 여성적인 흐느낌이 공존하는 오묘한 문장들. 스스로의 찬사가 절로 터져 나오며 예의 낯선 전율 속으로 빠져 버리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일정하게 딱딱 이어지는 균일한 템포의 스토리 라인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이 유유히 흘러가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뭐라고 콕 집어서 ‘이러 이러 해서, 이러 이러 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러하다.’라는 소설의 기승전결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문장은 독자를 더더욱 사색하게 만들고, 더욱 숨 가쁘게 만들며,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영화의 영상보다 더욱 또렷하게 머릿속에서 이미지의 심상이 그려지게 만드는 것이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의 화자 오토바이를 제외하고 주요 등장인물은 달랑 두 사람이다. 오토바이의 주인인 기수와, 그의 소꿉친구인 스무 남짓의 젊은 처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여느 소설들과는 달리, 달랑 이 두 사람만 나온다면 자칫 심심하고 무료한 소설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복잡한 구도가 아니더라도 작품의 기본기가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글 자체에서 타고난 그의 재능이 느껴진다.
낡고 초라한 바닷가 고향 마을과 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집단의 무리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결단코 이상적이지 않은 도시. 문명의 비하가 난무하면서도 지나간 것들을 버리라고 무심하게 읊어 대는 오토바이의 조언이 귓전을 울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밤. 그들의 뒤는 휘영청 밝은 달이 뒤를 쫓고 있다. 낮과 밤이라는 흑백의 대비와 50년 된 조악한 오토바이가 늘어놓는 환상의 독백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 움직이는 자가 되어 달이 뒤를 쫓게 만들어라. 끊임없이 주문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먼지 자욱한 고속도로 너머로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온다. 젊음을 즐기고, 젊음을 느끼고, 젊음에 감사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결단코 서두르지 말지언정 결심은 단단하고 예리하게 이행하라는 누군가의 부르짖음이 들려오는 듯 하다.
낭만과 환상을 즐기면서도 지나칠 만큼 냉혹한 현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는 작품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갈등하고 있는 감정선을 너무도 리얼하게 잘 살리고 있으면서, 은근하게 이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멋진 소설이다. 마루야마 겐지와 함께라면, 낯설고도 익숙한 전율이 내내 전신을 휩싸는 이 느낌을 언제고 다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바로 살았다는 증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니 정자가 난자에 뛰어 들어간 순간부터, 애당초 모든 것은 잘못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 131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말라. 지금은 오직 이 마을을 벗어날 일만을 생각하라. 이승에서의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 무관한 척 모든 인연을 끊어 버려라. 여명의 빛은 이별의 피안에 있다. 계란껍질을 깨지 못하는 병아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질식사뿐이다. 174 - 175 천애 고아의 처지를 지향해라. 움직이는 자에게 부양가족은 필요 없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치울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네 편으로 만들어라. -263 |
|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은 매우 모호한 느낌들을 많이 주었으나 , 이 소설에서는 모호함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의 이야기와 그를 만날 수 있다. 어두운 밤, 그 밤에 어울리는 50년이나 된 파아란 오토바이의 기나긴 여정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화자가 오토바이이기 때문에 소설은 질주와 정지로 교차되며 이어진다. 낡고 후퇴한 시골에서 벗어나 보려고 질주하는 두 주인공.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가고 싶어한다. 길게 늘어진 길을 보고 있으면 그 끝까지 가 봐야 할 것같은 마음. 길 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밤하늘이라면 더 좋겠다. 그리고 그 하늘에 달이 떴다. 어디를 가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당신 뒤를 달이 열심히 쫓아올 것이다. 벗아나고 싶은 것들을 뒤로 하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그것들이 당신의 뒤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 거기 있듯이 말이다. 마치 기나긴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는 이 소설은 몇몇 부분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고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아주 흥미로웠다. 오토바이와 함께 밤길을 달려보고 싶을 정도로. 부릉부릉~!! |
| 무척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오토바이란 녀석이 깐죽거리는 것을 인내하며 듣고 있기란... 녀석이 쉼없는 깐죽거림으로 인간이란 그래,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떤 존재일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네온사인과 폭주족으로 대변되는 현대 물질문명과 그 어둠, 또 바닷가 마을과 원자력발전소. 누대와 오토바이... 이런 생각으로 깊이 잠들 즈음에 그 녀석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정신차려! 쓸데없는 감상따위는 집워 치워"라고 말이다. 나도 몰래 오토바이에게 쉼없이 속으로 욕을 퍼 붓는다. 신난다. 기분 나쁘지 않은 녀석의 깐죽거림과 나의 욕설이 무척이나 잼있다. 밉지 않다. 녀석이 질주할 때마다 여름의 후끈한 날씨에 습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 내 볼 주위로 건조한 바람이 날린다. 싫지 않다. 어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일행이 어둠 속에서 단 한방에 쓰러져 갈 때, 무척이나 많은 아쉬움을 느끼는 내 자신을 보며 또 놀랐다. 녀석, 가끔씩은 원하는 대로 해주지...하지만 내심 또 그렇게 쓰러지길 바랬던 건지도 모른다. 많은 생각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기심에서 시작하는 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접으니 건조한 바람이 분다. |
| 오토바이인 무생물과 젊은이라 불리는 인간. 책 끝까지 그 젊은이는 말이 별로 없다. 말대신 동작으로 차림새로 그의 의지를 나타낸다. 그에 반면 오토바이는 말이 너무 많다. 말많은 오토바이는 이러쿵저러쿵 말을 쏟아낸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젊은이와 아픔을 모르는 오토바이. 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이 여행을 떠난다. 오토바이가 퍽이나 신경쓰여하는 또다른 여자인간과 함께. 대단한 여행도 아니다. 그저 떠난다는 의미가 중요했던 출발이었다. 그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우리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달리 유별날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뺏는 자와 빼앗긴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소리를 내는 자와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 그 자들을 만난 젊은이는 그저 그들을 풍경으로 보고 있다. 젊은 이와 오토바이 사이에는 그림자가 있다. 아주 분명한 경계가 있는 그림자다. 오토바이는 젊은이를 태우고 다닌다. 오토바이는 움직일 수 있는, 움직여야하는, 움직이는 자다. 그에 비하면 젊은이는 그의 등에 올라타기만 하는 존재다. 오토바이가 지껄인 말따윈 신경쓰지마라. 움직이는 자에게서 나온, 그 만의 풍경을 본 소회 일뿐일테니. 움직여라.움직여라..그렇게 재촉하지 말라. 그러지않아도 네 등에 올라 타 지나쳐가는 풍경들을 나도 곱씹고 나도 느끼고 있는 터. ''돌아가자'' 그 말이 들리는 순간 그들은 다시 출발점이 되었던 그 곳으로 돌아가자한다. 긴 유턴지점이었다. 샤미센을 타며 그들 곁을 떠돌던, 얼굴에 흰 칠을 한 그것들이 그들을 마중하러 나온다. 그들은 잃은 것도, 잊어야 할 것도 없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 |
| 소설을 읽은 내내 나는, 오십년은 나이를 먹은 구식 오토바이로 분하여,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선 어촌 마을을, 신문기자가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고원도시를, 괴물 빌딩이 내려다보고 있는 대도시를 시속 100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질주하였다. 때론 사이트카가, 패트롤카가, 폭주족들이 나의 역주를 방해하곤 했지만, 나의 움직임을, 흐르는 자의 운명을 막지는 못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결코 오토바이에서 내려서고 싶지 않았다. 좀더 그들의 질주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지만, 결국 다시 내 삶에 안주할 수밖에 없구나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고향에 안주하고 있던 젊은이에게 소꿉친구였던 여자가 정부인 남자와 함께 피신해 온다. 인정에 끌린 젊은이는 여자에게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주고, 여자의 정부가 죽자 망설임없이 여자와 함께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아간다. 물론 젊은이의 오토바이와 함께 '흐르는 자', '움직이는 자'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다다르자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당연한 귀결. 그들은 마치 도시에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가버린 것이다. 그러나 귀향길에 폭주족과 다툼이 발생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오토바이도, 젊은이도, 여자도. 이 소설은 좀 어렵다면 어렵다. 압축된 한자단어와 영어문장(?) 때문에 나는 몇 번이나 사전을 뒤적거렸다. 서사시를 읽 듯 문장과 문장사이의 균형감각과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이미지. 그런 것을 잘 음미해보려면 한 밤중, 적막한 방 가운데 꼿꼿이 등을 세우고 앉아 낭독을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독서방법일 듯 하다. 나도 몇 번 그렇게 해 보았으나, 몇 번 꾸벅꾸벅 졸았었다. 지독히 잠언적인 문장이 맥을 빠지게 만들었고, 직설적으로 내 뱉는 '화자'의 사회비판이 때론 지루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내 뱉는 오토바이의 목소리도 더이상 내 뇌를 각성시키도 못했다. 단 한 번의 외침이면 충분하다. 나는 고백하건데, 진정 흐르는 자는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흘러보지 못한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도 위로를 받았다. 위로가 아닌 체념인가? 자포자기인가? "움직이지 않는 나날에도 나름대로의 의미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설득한다." 젊은이와 여자가 다시 고향으로 귀향할 결심을 하자, 처음에는 반기를 들던 오토바이가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몸뚱어리만 움직인다고 해서 진정 흐르는 자가 아니다. 정신이 변하는 순간, 가치관이 변하는 순간, 진짜 움직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여자가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돈가방을 도로에 내던지며 '이까짓 것, 이까짓 것!'하는 순간 여자는 진정 흐르는 자로 변한 것이리라. (글을 읽으며 교과서에 실렸던 김수영의 싯귀가 떠올랐다. 단지 이문장, 나타와 안정을 뒤집고~ 제목이 폭포였던가?? 진정 흐르는 자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명이 끊어진 젊은이와 여자의 몸에서 나온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갈까라고 주고받을 때는 영화처럼 (포스트맨 블루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극적이었고, 감동이 있었다. 끝까지 읽기를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아쉬운 점은 내가 오토바이를 탈줄 알았다면 좀더 멋진 라이더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생채기투성으로 겪고 보니, 나는 참 행복한 인간이구나! |
| 극단은 초극과 초월의 길과 통한다. 극단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길이 극단임을 모른다. 당연히 옳은 길로 여긴다. 그러나, 그 자의 행동을 보는 타인, 더구나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은 몸서리쳐지게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자의 행동을 보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모해보이고 위험스러워 보인다. 맨머리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람에 눈물을 휘발하며 밤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폭주의 아해들을 보노라면 눈물나게 아름답고 부럽고, 또 위험해서 안타깝고, 남까지 죽일 것 같아 저 씨박새끼들! 욕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끝내는 한숨 내쉬며 부러워하게 된다. 아름다움이란 바라보는 자가 참여하지 못했기에 느끼는 감정, 이때의 마음은 자신은 인정하기 싫지만 패배와 나약, 부정하고 싶지만 도태와 좌절, 거부하고 싶지만 파문과 징계, 절망스럽게도 쇠잔과 피폐, 벗어나고 싶지만 비참과 현실이다. 마루야마 겐지라는 소설가를 동경하는 이유 중의 큰 요소가 그의 수도승 같은 구도자의 삶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소설이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가를 몰랐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몹시 손해보고 있는 경우, 겐지의 삶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그의 소설, 그의 문체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는 적요하고 고독한 시골로 은둔해 오로지 소설, 소설을 쓰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 그를 알린 것은 그의 각오. 이러니 세상은 참 재미나기도 하다. 마루야마 겐지는 그의 산문집에서 그의 인생의 유일한 외도가 오토바이 타기라는 걸 고백한다. 그래서 사막이나 오지를 횡단하는 오토바이 경주에 대해 참여하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탕진했다. 그러나 그의 외도는 결국 이 멋진 소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를 탄생시켰으니 충분히 가치있는 일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뛰어넘는 영상, 영상에서 좀더 나아가, 오로지 문장만으로 이어지는 시적인 이미지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소설은 겐지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한 길, 그의 인생처럼 멈추지 않는 길, 산 자의 길,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 굳고 확신에 찬 길을 보여준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오토바이다. 오토바이가 화자인 이 소설은 인간을 바라보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삶을 전지전능한 관점 - 신이 아니라 인간성과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갈고 닦은 소설가의 눈- 으로으로 면밀히 살피고 있다. 시시껄렁하고 자신의 가치를 모르며 한심한 인생을 살아간 주인이 죽고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멋진 삶을 살아가는, 후회를 모르는 주인을 만나게 된 이후 벌어지는 변화에 대해 오토바이는 멋지고 비장하고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산문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적합한 문장은 여전히 싱싱하게 빛난다. 그렇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의 패턴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올곧은 극단과 초월을 지향하던 존재가 어떤 사소한 계기로 말미암아 변화해간다는 것이다. 그 계기는 인정이며 동정이고 인간미이다. 이걸로 말미암아 오토바이와 오토바이의 주인은 죽음에 이르지만, 후회는 없는 삶이다. 이렇게 되면 겐지가 추구하는 초월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어찌보면 이러한 말하기야말로 인생을 보여준다. 오체투지로 몸을 굴리며 평생을 길을 구르며 사는 인도의 구루를 본 적이 있다. 결국 인간의 삶도 평생 길을 찾다가 길을 가다가 길을 만들다가 길 속에서 길을 잃고 마침내 길을 떠난다. 태어난 곳으로 한바퀴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여정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그 여정의 은유가 이 소설이다. 유일한 문제는 이것이다. 내 인생을 살 것인가! 내 인생만 살 것인가! 내 인생만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그러나, 오로지 한 길을 갔던 자들은 위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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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장정일을 좋아한다. 한참 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성 논란을 불러 일으킬때에 난 군대에 있었고 그 '음란소설' 작가의 작품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는게 범인(凡人)독자의 습성인지라 나는 장정일이 좋아한다는 마루야마 겐지를 '따라' 좋아하게 되었다..
소설은 한 오십년된 늙은 오토바이가 한 어촌의 젊은이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화자인 오토바이는 극히 방랑자적이고 퇴폐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객체이고 다분히 그런 기질을 숨기고 있는 자신의 주인을 맘에 들어하게 된다. 젊은이는 결국 자신의 어린시절 여자친구(자라선 범죄조직원의 애인이 된) 와 도시로 향하게 되고 오토바이는 그런 그의 행보에 만족해하면서 질주를 계속한다. 그들을 뒤쫓는 것은 전통과 안주의 상징인 창백한 얼굴의 샤미센을 연주하는 인형의 환영이나 변화와 속도, 파격을 고귀한 정신으로 숭배하는 오토바이와 젊은이에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갖은 고초끝에 당도한 화려한 도시, 그 이면에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부분의 반전은 가슴 서늘할 정도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수많은 한자어와 독단적인 화자의 어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매력있는 이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냉철한 물질문명에의 경고와 날카로운 현실인식뿐만 아니라 겐지의 천재소설가의 면모가 돋보이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묘사와 독특한 문체 때문일 것이다.반항자의 삶을 꿈꾸던 이십대의 초엽을 보내고 세상의 냉정함에 이제 눈떠가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한번 읽어볼 책이라고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두 사람이 낸 답의 방향으로 부지런히 바퀴를 회전시킨다. 둘의 마음에서 가장 예민하게 아픔을 느끼는 부분은, 저 원흉 같 은 바닷바람을 쏘이고 싶어하고 있다. 두사람은, 그런대로 변화를 주며 일순하는 계절을 영혼의 의지처 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면 서, 때로는 팔각형 누대 녀석과 격론을 벌이면서, 점차 녹슬어 가다, 끝내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로 화해 썩어가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