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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슬픔. 보이지 않는 전쟁...
"아프간의 슬픔. 보이지 않는 전쟁..." 내용보기
우린 빈라덴을 나쁜 놈이라 욕한다. 그가 많은 사람을 죽인 테러범임은 확실하다. 미국이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희생되어야만하는 아프간의 국민들과 유린되어버린 국토는 누구에게 원망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들이 무슨죄이기에 그런 아픔을 격어야 하는 것일까? 이문열의 단편중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게 있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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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빈라덴을 나쁜 놈이라 욕한다. 그가 많은 사람을 죽인 테러범임은 확실하다. 미국이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희생되어야만하는 아프간의 국민들과 유린되어버린 국토는 누구에게 원망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들이 무슨죄이기에 그런 아픔을 격어야 하는 것일까? 이문열의 단편중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게 있다.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일그러진 영웅이 아닐까? 과연 그들이 세게평화의 수호자인지...약한자의 슬픔이란 말이 있다. 그들이 세계에서 나타낼수 있는 입지가 없기 때문에 억울함에도 하소연도 할수 없다. 사설이 넘 길었지만 아프간의 슬픔을 아주 잘 보여준 책이다. 그들의 슬픈 현실. 유린당한 국토. 희생당한 가족들 귀머거리 손자는 할아버지가 벙어리라고 한다. 그 자신이 듣지 못하는걸 모르고서... 글의 구성 역시 흔하게 볼수 없는 독특함이 묻어난다.
t*******9 2003.0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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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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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크 라히미의 소설은 ‘끔찍함’이라는 가치가 있기에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쓰는 소설은 꿈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경험이다. 꿈 속에서 내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내 눈과 마주쳤을 때, 이 순간의 나는 어느 누가 참 나인가?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즉 눈을 감고 잠들고 꿈꾸고 있는 나인가? 아니면 지금 저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흙과 재" 내용보기
  아티크 라히미의 소설은 ‘끔찍함’이라는 가치가 있기에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쓰는 소설은 꿈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경험이다. 꿈 속에서 내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내 눈과 마주쳤을 때, 이 순간의 나는 어느 누가 참 나인가?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즉 눈을 감고 잠들고 꿈꾸고 있는 나인가? 아니면 지금 저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나인가? 내 눈에 마주친 내가 씨익 웃는다. 그 모습에 나는 행복을 느낄 것인가, 공포를 느껴 비명을 지르며 순간 현실로 달아날 - 혹은, 파문당한! - 것인가. 으악, 비명을 지른 순간 나는 현실로. 거울을 보니 땀에 젖은 나를 보고 누가 씨익 또 웃는다.   이 글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 꿈인지, 그리고 꿈꿀 수 있다는 현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나는 전쟁을 상상해본 적이 많다. 그러나, 결코 내 상상력이 아무리 위대한다고 한들, 아무리 실체를 갖추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들, 직접 전쟁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와는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상상력의 위대함은 인정하지만, 현실의 무게감과 고통을 짓이기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의식적으로 나는 저항하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재빨리 잊어버리고 안락하고 편한 현실에서 노니는 게 낫다. 그래도 이런 소설은 읽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현실은 더 아름답고, 세상은 더 기괴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인칭의 형식으로 담아낸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인칭의 형식을 통해 이 글은 소설을 읽는 경험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이미 내게 닥쳐 온 반복적인 현실을 고통스럽게 돌이키게 만들도록 강요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는다는 건 소설 속의 내 경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고 이 경험은 너무도 소름끼치게 고통스럽기에 서둘러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무슨 현실로 돌아올 것인가? 흙과 재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가족도, 고향도, 조국도, 그리고 미래와 꿈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흙과 재로 변하지 않는 한 이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죽을 때까지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너의 고향은 순식간에 소련의 군대에게 포격당해 모두 재로 변했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아들과 귀 멀어버린 손자를 제외하고는 가족 모두가 죽어버렸다. 너는 며느리가 불타 죽은 고통보다 포격 때 미쳐버려 발가벗고 웃음을 지으며 날뛰다 불타죽은 수치를 더 크게 여긴다. 너는 손자 야씬이 “할아버지, 왜 갑자기 세상이 모두 조용해진 거예요, 할아버지랑 다른 사람들은 왜 다 벙어리가 된 거예요?” 하고 묻는 것에 대해 도저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너는 아들에게 고향에서 벌어진 비극과 슬픔을 말하는 게 고통스러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너는 아들을 찾아 흙과 재과 석탄가루가 흩날리는 탄광으로 간다. 그리고는 아들을 만나지도 못한 채 다시는 아들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느낀다. 너는 흙과 재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n******s 200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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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량한,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땅의 기록
"이 황량한,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땅의 기록" 내용보기
성글게 엮어진 문장과 문장 사이로 생각의 물줄기가 가지를 뻗는다. 책장을 덮으면, 이제, 문장은 사라지고 말과 말 사이의 틈, 문장과 문장 사이의 심연(深淵)만 오롯하다. 애당초 문학은 언어로 현실을 복원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의 아류로서의 문학은 재구성된 논리 속에서만 존재한다. 문학의 쓸모 없음을 비웃기 위해 현실론자들이 문학의 곁에 현실을 놓아두곤 했다.
"이 황량한,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땅의 기록" 내용보기
성글게 엮어진 문장과 문장 사이로 생각의 물줄기가 가지를 뻗는다. 책장을 덮으면, 이제, 문장은 사라지고 말과 말 사이의 틈, 문장과 문장 사이의 심연(深淵)만 오롯하다. 애당초 문학은 언어로 현실을 복원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의 아류로서의 문학은 재구성된 논리 속에서만 존재한다. 문학의 쓸모 없음을 비웃기 위해 현실론자들이 문학의 곁에 현실을 놓아두곤 했다. 그때마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문학의 행색. 쉽게 부러지는 펜끝. 가혹한 현실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것,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려는 부질없는 말짓,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안타까움. 한줌의 언어로 고통을 상기시키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이야기한다. 때로, 그 이야기들은 낮은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분열증적인 증세로, 환(幻)과 현실의 겹침으로 나타난다. 현실의 고통을 생생히 보여주기에는 르뽀만 못하고, 시청각적 직접성에는 필름만 못하며 기껏해야 골방에서 책장을 넘기며, 혹은 밑줄을 그어가며 촘촘히 박힌 활자들의 길을 따라갈 뿐인 독자들에게 불투명한 고통의 흔적만을 보여주는 문학은 안타깝기 때문에 문학이다. 그 안타까움을, 나뭇결에서 잘못 일어난 거스러미같은 안타까움을, 다시 쓰다듬어 보듯이, 이 얇은 책을 읽고 다시 읽는다. 가뭇없이 스러질 안타까움이 보편성을 얻는 것은 바로 이 자리에서다. 되읽히는 안타까움. 왜 사랑도, 행복도 영원하지 않은데 고통만 영원한가.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폭격으로 모든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할아버지와 귀먹은 손자가 손자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아들인 '무라'를 찾아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그 망설임의 오랜 시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속깊은 절망, 차마 되돌아볼 수 없는 참혹(慘酷), 그 가운데서 노인(다스타기르)은 귀먹은 손자(야씬)의 아버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소자의 아버지에 이르는 거리는, 작가가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 현재와 미래 사이의 거리이다. 종교가 근대적 세속화를 겪지 않은 이슬람문화권은 소련의 무력으로 강제적인 세속화가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개혁을 표방하는 탈레반 세력에 의해 다시 한번 고통받는다. 인간의 존엄은 전체성의 논리 앞에 파스라져 이제 옛 그림자 같은 낮은 신음소리는 어두운 거리에 스며들어 있다. 결국, 그 시간의 끝자락에 도달한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고통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배어나오는 양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시시각각으로 갈마드는 그날의 비참의 기억만으로 이미 고통은 포화상태라고, 그러니 이제, 귀먹은 아이와 미래가 닫힌 노인을 통해서라도 도망하고 싶다고, '현재'가 아닌 곳이라면, 그곳이 빛나는 명예가 숨쉬던 과거이든, 어렴풋한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 미래든 어디라도 좋으니 도망하고 싶다고, 제발, 현재의 고통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이 괴로운 현실은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소리없는 울음을 운다. 낮게. 숨죽여. 추억의 힘도 쇠잔하고 희망의 동력은 끊어진 바로 지금, 여기서 하릴없이 담배나 씹어야 하는 노인의 처지, 아니, 이제는 담배마저 없어 흙을 씹어야 하는 처지. '너는 걸음을 늦춘다. 잠시 멈추어 선다. 고개를 숙인다. 잿빛 흙을 손가락 두개로 집어 혀 밑에 넣는다. 그리고는 다시 길을 간다....뒷짐을 진 네 두 손엔 아내의 골레세브 스카프로 싼 보따리가 들려있다' 이 황량한,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땅의 기록.
YES마니아 : 로얄 l********n 2002.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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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광기의 폭력이 인간에 남기는 것
"'전쟁', 광기의 폭력이 인간에 남기는 것" 내용보기
신작로 한쪽에 노인과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계속 귀찮게 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주문한다. 노인이 사과를 꺼낸다. 앞니 없는 아이가 사과를 깨물어 먹는 것이 힘겹다. 노인은 칼을 꺼내 사과를 자르고 다시 손자에게 준다.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는다. 사과위에도…….사과를 손으로 덮어서 감싸자 아이는 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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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한쪽에 노인과 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계속 귀찮게 한다. 그리고 이것저것 주문한다. 노인이 사과를 꺼낸다. 앞니 없는 아이가 사과를 깨물어 먹는 것이 힘겹다. 노인은 칼을 꺼내 사과를 자르고 다시 손자에게 준다.

 

군용트럭이 지나간다. 먼지가 자욱이 내려앉는다. 사과위에도…….사과를 손으로 덮어서 감싸자 아이는 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끈다. 먼지가 앉는다고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을 뿐이다.

 

노인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위에 기에 있다. 언제 지나갈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손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다리 옆의 건널목을 지키는 사내에게 차가 오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초소를 지키는 이는 신경질 적이다. 노인은 쩔쩔 매면서도 꼭 차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노인의 가족은 다 죽었다. 전쟁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와 폭격의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노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한탄하며 손자를 바라본다. 손자는 운이 좋아 살았으나 폭발음으로 청각을 잃었다. 노인은 발가벗은 며느리가 폭발의 화염 속에 찢겨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물을 얻기 위해 갔던 가겟집 주인은 무척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서 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이 둘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위해 아들에게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떼를 쓴다. 차가 올 시간이 다가온다. 노인은 갈등한다. 가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가지 않고 아들이 모르는 채 탄광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은가. 남에게 전해 듣는 것 보다 노인이 직접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이는 결국 가겟집 주인이 맡아 주기로 한다. 가서 잘 곳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자신의 아들이 귀머거리가 되었음을 일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본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도 될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버스기사가 가겟집 주인의 인품을 칭찬하고 나서는 안심한다.

 

탄광에 도착하고 아들을 만나게 될 두려움에 망설인다. 결국 감독관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아들을 만나기를 요청하지만 감독관은 아들이 갱도 깊이에 일하고 있으며 가족모두가 다 죽은 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알면서도 집으로 오지 않은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사실 감독관의 술책으로 아들의 면회는 거절되었다. 돌아가는 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서는 노인. 동료청년에게 자신임을 증명할 담배통을 맡기고 돌아선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영화,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들은 하나같이 그 현실의 어두움과 인간성의 파괴, 잔혹성과 야만의 그림자 속에서의 삶을 그린다. 저자 아티크 라미히는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모국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쟁속의 무자비한 폭력의 광기는 지식인에게 가장 먼저 큰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이를 아는 이들은 국외로의 망명길에 오르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고국에서 죽음을 맞는다.

 

외세에 의한 전쟁과 동족끼리의 전쟁을 겪은 한국의 역사를 보아도 수백만의 눈물과 고통, 아픔이 오늘날에 전해지는 것은 기껏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전쟁이 앗아간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잃는 것에 대한 내면을 잘 그리고 있는 ‘흙과 재’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전쟁 후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이다.

YES마니아 : 골드 s******e 2009.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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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삶 자체가 고통이 되어버리는 순간
"전쟁, 삶 자체가 고통이 되어버리는 순간" 내용보기
나는 전쟁 중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정작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흙과 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다. 때문이 이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알지 못하는 것을 더듬어 유추해내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서 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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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 중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정작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흙과 재]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다. 때문이 이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알지 못하는 것을 더듬어 유추해내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외국 친구들에게서 얻은 간접적인 전쟁의 체험들을 이 책에서 느낀 것들과 엮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흙과 재]를 집필한 아티크 라히미는 전쟁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이민자 가운데 하나다. 내 친구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이민자들이 몇몇 있었다.

 

 

 

 

호주에 갔을 때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70세 스리랑카 할아버지 라자와 30대 중반의 팔레스타인 아저씨 아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내전을 피해 나라 바깥에서 사는 이민자였다. 라자는, 딸은 영국에, 아들은 호주에, 다른 딸은 또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영국에 있었으며 자신은 손자를 봐주며 호주 이민을 준비하는 중이라 했다. 그는 전쟁에 관해 말을 많이 아꼈다. 라자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수 없었고, 나는 가족이 떨어져 사는 아픔을 위로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전 때문에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사는 거냐는 물음에 말 없이 고개만 까닥였을 뿐이었다.

 

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땅은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다. 아담 역시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고 있었다. 아담과 함께 있는데, 여동생이 팔레스타인 시내에 나갔다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밤새 어딘가에 전화해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고, 분노로 가득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어, 아담의 친구인 또 다른 팔레스타인에게 길을 걷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자주 있는지 넌지시 물었다. 그 친구는 차를 몰고 가다가 군인이 총을 들고 다가와 쏘려고 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호주 시민이다"라고 외쳐 살아남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또다른 충격을 받았다. 죽음이 일상인 것처럼 들리는 그들의 말은 마치 농담 같았다.

 

아침에 웃으며 헤어졌던 가족이 저녁에 죽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인 생활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아담과 라자처럼 삶이 조금은 윤택한 자들은 이민이라는 길을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신의 가호를 바라며 살던 땅에 발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흙과 재]에 나오는 인물들도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아내와 며느리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할아버지, 깊은 탄광 속에 들어가 석탄을 캐느라 죽음이 비켜간 아들, 전쟁의 거대한 폭발음으로 인해 청력을 상실한 어린 손자.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죽음이 휩쓸고 간 고향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들에게 가는 길이다. 탄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총칼은 가족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손자는 자신이 청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신들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든, 마을을 점령한 자가 민병대든, 소련군이든, 심지어 그것이 정의든 불의든,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가 그저 가족의 목숨을 빼앗는 얼굴 없는 존재들일 뿐이다.

 

"어르신, 지금은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복되고 행복한 때이지요. 어쩌겠습니까! 험한 시대를 만난 겁니다. 우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을 잃어버렸어요. 권력이 인간의 신앙이 되었지요. 신앙이 우리의 힘이 되는 게 아니고 말입니다. 이제 인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엄성을 간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용기 있는 사람도 없고 말입니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의 과거를, 아들은 현재를, 손자는 미래를 상징한다. 소설이 묘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암울하다. 과거를 상징하는 할아버지의 고향은 아프가니스탄의 전통과 함께 폐허로 변했다. 현재를 상징하는 아들은 탄광이라는 깊고 깊은 어둠속에 갇혀 과거도 미래도 만날 수 없는 고립된 상태다. 미래를 상징하는 손자는 그 어떤 사실도 들을 수 없게 되었고, 곧 말하는 법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희망의 매개체로 읽히는 사과는 먼지로 가득하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손자에게 건네주기 위해 깨끗하게 닦으려 노력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자꾸 먼지가 앉는다. 위로로 읽히는 안정제 나스와르는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한 할아버지에게 결코 안정을 주지 못한다. 신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희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나오고 입에서는 계속 거친 말이 쏟아져 나온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슬픔이 나를 잠식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때때로 고통은 녹아내려서 우리의 눈으로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말이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기도 하지요. 아니면 우리 안에서 폭탄으로 변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발로 우리를 파열시키기도 하고 말입니다."

 

 소설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어설픈 희망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책에서는 "전쟁과 희생은 같은 논리다. 설명이란 게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전쟁에는 원인도 결과도 없고, 다만 소위 말하는 행위란 것만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작가가 배경을 생략하고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 소설을 쓴 이유라고 생각이 든다. 그는 전쟁의 민낯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념과 경제 논리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인간의 뿌리까지 파괴한다. 존중과 존엄이 사라지고 폭력과 권력이 난무한다. 서로의 논리가 정의라며 상대를 공격한다. 그러나 어떤 논리로 전쟁을 미화시킨다 해도 모든 피해는 전쟁의 정당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아닌 그 전쟁이 일어나는 땅의 사람들이 입는다.

 

그 거대한 비인간성 앞에 선 나약한 존재들에게 난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라자와 아담 앞에서 그들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했던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식의 위로를 건네지 못하겠다.

 

s******a 2014.10.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