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다니자키가 등장했던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1909년 그의 나이 24세 때 희곡『탄생』으로 데뷔-부터 차근차근 얘기해 보자. 우리나라 자연주의 문학운동이 끝내 독특한 사소설을 생성하게 된 것은 일본인의 기질에서 온다는 등의 주관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서구에서 자연주의 문학이 태어나게 된 외적 배경이 없었던 데 연유한다. 자연주의 문학은 수입되었으니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실증주의 사상이 쓸데없는 옛 비료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외래 사상은 기법상으로만 수용되었다. 수용된 것은 사상이 아니라 감상이었던 것이다. 일본 문학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사소설. 그 모체인 자연주의 문학에 대해 문인(文人), 고바야시 히데오는 이렇게 논하고 있다. 여기에서 “일본 자연주의 문학은 부르주아 문학이라기보다는 봉건주의적 문학이고, 서양 자연주의 문학의 일류 작품이 그 경계선에 시대성을 지니는 데 반해, 일본 사소설의 걸작은 개인의 명료한 얼굴을 지닌다”는 고바야시의 유명한 말이 도출되기도 한다. 일본 사소설이 지니는 참회적 성격에 대해 작가가 자기의 아픈 점, 약점을 통렬히 드러내는 자기 고백이나 참회의 정신적 강도, 자기 학대 및 응시의 강도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하고 있다. 문단생활은 곧 윤리적․사상적 수련의 길이며, 문단은 그 도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진지한 작가적 자세에 의해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이 결국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나 신변잡기적 소재를 구하게 만들었다고도 하겠다. 이러한 추구가 상상의 포기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길을 제시하게 하였고, 작품 속에서 작가의 얼굴을 명료하게 엿보이게 만든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자연주의 문학은 단조롭고 평범한 살을 회색의 현실로 받아들여,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비약을 바랄 수 없는, 소시민적 삶의 영위와 그 묘사로 귀착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자연주의 문학의 성격을 감안할 때 다니자키의 등단이 얼마나 극적인 사건이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겠다. 다니자키 문학의 기조를 이루는 여체 숭배사상을 검토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다니자키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지녔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그의 어머니는 미인이었다. 아담한 키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도 그렇거니와 그 뒷모습조차 화려했다는 그녀는 특히 대퇴부의 살이 희어서 같이 목욕하던 어린 다니자키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다시 보곤 하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부유한 상가의 상속녀이다. 데릴사위인 부친이 무능하여 집안은 몰락하나, 몰락한 후에도 취사를 제대로 못하는 그녀를 위해 부친이 취사는 맡아했다 한다. 왕후와 같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던 그녀와, 그 그늘 아래서 천국이나 몽환의 세계를 사는 것과도 같은 느낌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다니자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첫째 지난날의 부유한 환경의 상징으로써, 또한 감각과 의식상의 낙원으로써, 마지막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미(美)에 부합하는 완벽한 여성상으로써, 어머니 이상의 의미를 두었고 바로 거기에서 그의 문학은 시작되었다. 이후 그가 죽는 마지막 날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고 문학의 뿌리이자 몸체가 되었던 것이 바로 여성 혹은 여성의 미(美)에 종속된 남성이었다. 종횡무진, 소비적이면서 동시에 생산적인-그의 수많은 작품을 보라.- 그의 수많은 여성들을 잠깐 얘기해 보자. 신진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다니자키는 30세 때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한다. 그녀는 다니자키가 결혼하고 싶어하던 기생 오하쓰의 여동생이었는데 요부형의, 말하자면 남들이 악마주의 작가라 칭하고 본인도 그 칭호에 걸맞는 삶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다니자키의 이상형의 여성이었던 셈이다. 그런 오하쓰는 다니자키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중매했는데 그녀의 여동생이면 오하쓰를 닮았겠거니 하고 결혼한 치요코가 현모양처형의 유순한 여성임을 알게 된 다니자키는 자신의 결혼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 즈음 치요코의 여동생 세이코-14세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남자를 남자로 여기지도 않는 요부적 기질을 천성적으로 지니고 있었다.-를 데려다가 자기의 악마주의적 예술관에 부합하는 여성으로 키우기 시작하고, 세이코에게 빠져 결혼생활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간다. 이러한 세이코와의 관계가 바로 『치인의 사랑』의 소재가 된다. 20살 연하의 여기자 후루가와 도미코와 결혼하였다가 3년 만에 이혼했고, 우연히 찾아간 여관집의 여주인 마쓰코 부인-17년 연하의 이 여인은 다니자키의 정신적 지주이자 거의 모든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을 만나 결혼하게 됨으로써 그 자신이 일컫는 위대한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된다. 특히 마쓰코 부인의 영향 하에 고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군을 억제된 문체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다니자키는 초기의 현란하기는 하나 얕은 문학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문학인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작가의 위치를 확립하게 된다. 마쓰코 부인이 후기 다니자키 문학에 결정적이며 숙명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가 처음 문학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면, 죽기 전까지 그가 ‘여성’이라는 화두로 문학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원천적인 힘은 마쓰코 부인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여성은 특히 여성의 몸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리들의 상식이나 도덕적인 관념, 사회적인 통념 그 너머에 가 있다. 그것은 위험한 독과도 같다. 악하고 변태적이고 음탕한 그것은 그러나 달콤하다. 발가벗은 채 다 달콤한 여인의 살점을 한 입 베어 물고 있는 다니자키. 일본인이 전통적으로 지니는 미의식의 세계에는 신도 없고 악마도 없었다고 한다. 있는 것은 미에 대한 탐닉과 에로티시즘의 전적인 긍정이었고, 에로티시즘의 전적인 긍정만을 그리는 다니자키 문학이 화려하게 ‘모란 꽃’마냥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꽃이 한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자질을 정확히 파악한 다니자키가, 그가 잘 알고 있었던 일본의 서민문화 속에 깃든 에로티시즘을, 오로지 그것만을, 철저하게 추구한 데에 다니자키 문학의 성공의 열쇠가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