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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태어나기도 잘 태어나야겠지만 죽기도 참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를 얘기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연수를 다 채우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얼핏 강간 살해 피해자의 가족과 피의자간의 법정 싸움을 그린 작품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피해자의 유가족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올 즈음 다 아는 일이지만,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에 꼬리의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던 일련의 사건들은 차마 입에 떠올리기도 싫다. 물론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샀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의 살아남은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은 선량해서만도 아니다. 누구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당한만큼 복수하며 살고 싶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문명국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일수록 예외 없이 법치국가이기도 하니 총이나 칼이 있기 전에 먼저 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찌 보면 고통을 가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재판에서 만족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나마 법의 위로를 받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당하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배심원 제도라는 게 있긴 하지만, 미국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이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어쩌다 미국의 법정 드라마를 보면 배심원이 근엄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 배심원 제도라는 게 다수결의 원칙 같은 것이 아니라 평결의 원칙 그러니까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다면 상대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만장일치의 평결을 얻어 피의자인 산자를 구형 받도록 하는데 승리하지만 나중에 항소해 다시 법정에 서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재판에서도 승소해 결국 산자를 최소 25년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고 아마도 살아선 교도소 밖을 나오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우리나라 법은 과연 어떨까 싶기도 하다. 대체로 우리나라 법은 무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이은 여성 대상 범죄에 우리나라 법정은 어떤 형을 내릴지 모르겠다.
얼마 전,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자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증거불충분으로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법은 어떤 경우에도 약자를 보호해 줘야하는 것인데 증거불충분이라니.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피의자에게 정신병이니 심신미약이니 온갖 이유로 그들을 보호해 주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이 범죄에 취약한 여성을 얼마나 대변해 주는 책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의도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 내 촉망 받는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의 비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로선 공교롭게도 시의가 그렇게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제발 부탁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엄한 법의 구형을 적용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물론 피의자의 가족도 못지않은 고통을 당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도 엄한 법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실력 있는 소설가다. 그러니만큼 문체가 유려하기도 하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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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차, 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차학경이라는 이름도 처음이다.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은 어렵다고, 관심은 있지만 깊이는 잘 모르는 평범한 나로서는 미국에서 신진 예술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젊은 여류 예술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몰랐다는 데에는 조금의 죄책감이 든다.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녀였다. 한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강간 살인 당한 그녀의 짦은 생을 몰랐다는 사실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죄책감이 들게 한 것이다.
<안녕, 테레사>는 테레사 차의 친오빠인 존 차가 20년에 걸쳐 집필한, 법정 장편 실화 소설이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아픔일 테다. 그 죽음이 자연사나 병으로 인해 혹은 사고로 인한 것일 경우에도 견디기 힘들 것인데 테레사 차의 경우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의 아픔을 주는 죽음이었다. 이후 그녀를 강간 살인한 범인이 지목되고 그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면서 그 아픔은 또다시 파헤쳐지고 파헤쳐져 끊임없는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오빠 존 차는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재판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자 했다. 물론 직접 증인으로서 서야 했기에 법정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숱한 담배와 서성거림으로 버터야 하는 시간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른 이들의 말을 통해, 법정 기록을 통해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사랑하는 동생을 잘 보내주기 위한 그의 버팀목이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동생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책으로까지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오빠 존 차의 의식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따라서 존 차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독자는 함께 느낄 수 있다. 함께 궁금하고 의아하고 분노하고 한탄한다. 뻔뻔한 변호사들의 말도 안되는 변명이나 주장도 함께 들어야 하고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없는 답답함도 함께 느껴야 한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도대체 이 재판이 어떻게 끝나갈지 함께 흥분하고 함께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네 장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난 인생이 변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몰랐다. 난 장갑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93p
사건이 발생한 빌딩은 테네사 차가 강간 살해당한 곳이다. 하지만 깊고 깊은 지하실 속에서 그 발생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고, 신기하게도 피해자 가족(남편, 오빠, 동생 등)이 이 장소를 발견하고 그녀의 유품 몇을 찾게 된다. 자신들이 찾아냈다는 자랑스러움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이가 존재했던 그 마지막 장소와 남겨진 물건들의 기억이 이들에겐 평생을 쫓아다닐 것이다. 더군다나 예술가 테레사가 남긴 장갑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이해하는 오빠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책을 읽으며 내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인 듯 미소짓게 만든 것은 이 피해자 가족에게 우호적이었던 경찰, 검찰측이다. 직접 사건 발생 장소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 진행을 수시로 연락하며 알려주는 등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언제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이 젊은 한국 예술가가 이렇게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기회가 되면 그녀의 "손 전시"를 꼭 관람했으면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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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의 시선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차마 상상해보고 싶지 않을만큼 괴로운 일이다. 서먹서먹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나이들고 서로 가정을 이룬 이후에도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거나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유할 정도로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다면 상실감이 너무도 컸을텐데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내기에는 아픔보다 아쉬움이 컸었을 것이다. 1982년, 개념미술가로 촉망받던 테레사 차, 차학경 아티스트가 강간 후 살해된다.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아니고 흉악범에 의해 가족을 잃게 되면 원망도 컸을텐데 [안녕, 테레사]의 존 차는 동생 자신도 피살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 죽어갔을지 궁금했을거라고 여기며 동생에게 그때 일들을 전달하는 어투로 글을 써내려 간다. 처음 시작은 테레사의 남편인 리처드가 저자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저자는 쉽사리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해서든 동생이 있었던 뉴욕에 가야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동생이 죽었던 그 날, 그리고 그 이후에 수년간 이어진 법정의 모습이 계속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그 사이사이 테레사의 삶의 시작과 과정을 들려준다. 한국전쟁 중 테레사를 가진 어머니는 전쟁중에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늘 맘이 쓰였다고 말한다. 그 때에는 누구나 그랬다. 어떤 누구라도 아이에게 풍족하게 먹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저자가 어머니를 달래주지만 그래도 좀 더 애써야 하지 않았냐며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과연 그 힘겨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싶을만큼 애닯다. 법정에서 검사가 범인을 지목하며 테레사가 죽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마음을 간신히 다잡으며 딸의 마지막을 다 알고 지켜주려고 했던 어머니와 오빠 존 차. 테레사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의 태를 땅에 묻었다. 그렇게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옛말대로 따랐고, 마찬가지로 테레사가 죽고 난 뒤 그녀의 블라우스를 자신의 어머니가 묻힌 산소로 가서 태웠다. 흙으로 나와서 다시 흙으로 그렇게 바람처럼 떠나간 테레사. 그녀의 결혼식이 있었던 집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열리는 것이 먼 이국땅 전혀 관련없는 독자가 읽고 있어도 너무 쓰리고 아쉽고 괴로웠다. 살아있었다면 역자의 말대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주요한 활동을 했었을 테레사 차. 그녀가 죽기전까지 기획하고 진행중이었던 '손'시리즈의 완성된 전시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정말 아쉬웠지만 그야말로 그녀는 우리곁은 떠났어도 그녀가 가졌던 예술성과 예술에 대한 갈망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오빠에 의해서, 또 이 책을 읽은 독자에 의해서 영원히 이어질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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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범죄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제 내 앞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즐기고 가볍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추리나 탐정,재판 소설 속에서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 하고 찾으려 한다. 그러한 일들이 실제 내 눈앞에 벌어진다면 소설과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소설이 대체로 범인을 찾고 죄를 묻는 과정이 짧게 그려지는 반면 실제 현실에서 범인을 잡더라도 재판을 통해서 그 범인이 실제 범인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떠올려야만 한다. 물론 가해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줄여나가기 위해 증거를 훼손하고 재판을 방해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 속의 강간,살인사건을 다룬 책이 바로 <안녕, 테레사>이며 저자는 피해자 테레사 차의 오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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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행복한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에게 안타깝고 아쉽고 그리움에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라면 우리는 백남준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의 사후에는 잔인한 살해가 이루어지고 흔적 없이 사라진 것에 비해 어쩌면 경찰의 조사는 증거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우리나라의 수사물을 보면서 느낀점이 이러한 문제들도 어쩌면 6.25 전쟁을 겪고 해외로 발길을 돌린 해외동포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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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 천수를 누리다가 이 세상을 떠나도 그 가족을 쉽게 잊어버리지는 못하는데 만약 그 혹은 그녀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면 사랑하는 그 가족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까? 게다가 잔인하게 살해된 것도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사랑하는 이를 살해한 용의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럴 것 같다. 미쳐버리거나 미친 짓을 하거나.
이 책의 담긴 내용이 바로 그렇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동생의 이야기를 친 오빠가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긴장과 분노, 스릴과 반전이라는 문구가 스릴러 혹은 추리 소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지만 실제 책 내용은 그렇지 않다. 스릴과 반전보다는 동생의 죽음을 기린 오빠의 마음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촉망받는 젊은 여성 예술가 테레사 차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이야기이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테레사 차. 그녀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 이는 빌딩 관리원이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와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그가 그녀를 살해한 범인임을 밝히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오빠 존 차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동생의 죽음 앞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5년간 법정 공방을 이어간 오빠 존 차. 누구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동생이 강간을 당한 채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면, 그녀의 살해범이 분명한 자를 법의 심판대 앞에 세워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하지만 이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가족에 대해, 정의에 대해, 법과 심판에 대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가 무겁게 내 마음을 내리누르는 시간이면서도 동생의 죽음을 작품으로 다시 부활시킨 오빠의 염원이 이루어진 작품이기에 또 다른 위안을 얻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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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약간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냥 뻔한 법정 이야기이니까 게다가 장갑에 대해 집착하듯이 적은 모양새도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정말 이 책을 잘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테레사 차 사건을 매우 간략하게 되짚는다면
결혼 후 6개월인 상태에서, 부부가 따로 통장을 썼기에 전시회를 위해서 남편에게 자신의 차를 팔았던 테레사 차는 예전 자신의 차, 지금은 남편의 차를 쓰려고 이리 저리 남편과의 전화 연결을 부탁하다가 남편의 직장으로 갔는데 남편은 생전 술집에 안 가던 사람인데 그날 따라 직장 동료와 아내가 올 듯한 시간대에 술집에 감, 게다가 자신이 2층에서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아내 테레사 차가 지하층에 가도록 함 테레사 차가 죽자 남편은 보상금으로 100만 달러를 받았음...... 그리고 아내가 죽자마자 재빠르게 아내의 재산을 처리했고 보상금을 받았다는 말도, 자신이 2층에 있었다는 말도 하지 않다가 재판 중에 드러남.
테레사 차의 가족으로서는 남편을 좋지 않게 볼 수도 있는 일이고 이 책에서 남편을 더 나쁘게 쓸 수도 있는 일인데, 이 정도로 썼다는 점을 크게 보아서 편집 별이 4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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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차, 차학경, 연쇄 강간범에 의해 희생된 비운의 예술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술에 문외한이어도 백남준은 아는데, 제 2의 백남준이라 불리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가 그렇게 비극적으로 살해되었는데 어떻게 전혀 몰랐을까 라는 안타까움과 그 사연이 궁금했다. 1982년 뉴욕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간 살인 사건을 다룬 법정 실화라는 한 문장만으로도 그 끔찍함이 예상되어 읽기가 꺼려졌지만, 사건 발생 34년 만에 친오빠가 내놓은 책이라고 하니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긴장과 분노, 스릴과 반전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금방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스릴과 반전이라기 보다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고 개인적으로는 재판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번복을 반복하는 재판 일정과 법정에서의 공방이 우리가 법정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스릴과 긴급함과는 달리 지리하고 피 말리는 시간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테레사 차는 아주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당시 현지 경찰은 살해 현장과 시체가 옮겨진 곳이 다르다고 했으며 살해 장소를 찾기 위해 테레사 차가 남편가 만나기로 한 남편의 작업실이 있던 빌딩을 조사했다. 수색견이 격한 반응을 보였으나 경찰들은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고, 테라사 차의 오빠 존차와 남편 리차드는 경찰을 대신해 살해 추정 장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고 드디어 그 장소를 발견한다. 수색견이 반응하던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벽에 710이란 숫자를 적혀져 있는 곳... 테레사 차의 어머니가 꿈에서 봤던 숫자, 710. 예지몽을 꿔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테레사 차와 관련하여 그의 가족들이 꾸는 꿈이 낯설게 느껴지긴 했지만 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들 가족들을 연결해주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테레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한 가족들의 의지가 그녀의 영혼과 맞닿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생의 유품은 찾았지만 테레사 차를 죽였을 것으로 지목받은 빌딩 경비원인 산자가 범인임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 명확해 보이는데 뚜렷한 증거와 증인이 없어 미궁에 빠져야 한다니... 옛날에는 얼마나 억울하고 어의없는 일들이 많았을까? DNA 분석이 가능했다면, 그런 지리한 재판들로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산자는 그냥 한방에 유죄였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DNA 분석이 불가능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너무 끔찍스러웠다.
스릴러 소설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맥빠지는 감이 있고, 예술가 테레사 차의 마지막에 대해, 그녀를 사랑한 가족들이 그녀를 갑자기 잃고 아파했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존 차의 기획 의도가 충분히 잘 드러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그 동안 얼마나 생각하고 분통해하고 애통해했을지 느껴졌다. 그의 의도대로 이 책을 통해 테레사 차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내가 차학경에 대해 몰랐을 뿐, 검색해보니까 그녀는 백남준을 제외하면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특별전이 열린 유일한 한국작가로 국외에서는 꽤 유명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사고를 당한 후 며칠 후 출간된 '딕테'(Dictee)는 문자와 영상텍스트가 예술적 기표로서 상호교차되는 하이퍼텍스트성을 발현한 작품으로, 출간 직후 뉴욕 일대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버클리대학의 신입생 권장도서로도 채택되었고 미국의 각 대학에서 여성학 및 아시안-아메리칸 문학 수업교재로 활용되고 있단다. 딕테가 탈식민주의 문학, 여성과 소수민족 문제를 다룬 서사시적 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조금 난해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차학경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고 싶어졌으니까... 32년이라는 짧은 생애 때문에 국내 미술계에서 조명할 기회가 없어 재조명이 가장 시급한 현대미술가 1위에 선정됐다고 하니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알게 되고, 전시회 등 그녀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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