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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 받고 세상 사람들과 격리되어 자라온 히로히토는 1926년 천황이 되어 쇼와 시대는 시작되었고, 그것은 64년 간 이어졌다. 전전의 쇼와 시대에는 군국주의의 물결 속에 대외적으로 만주 사변,,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구호 아래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하였다. 천황으로서 히로히토는 표면적으로 군부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결코, 수동적이거나 평와주의자도 아니면서도,공식적으로는 자신의 태도를 모호하게 취함으로써 전쟁의 책임 등을 군부에 떠넘겼다. 종전 후에는, 맥아더의 지원을 받아서,,결국 전범에서 제외된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못지 않은 책임을 지고서도, 다른 전범들과는 대조적으로 전쟁의 책임에서 면제부를 받고 종전 후, 44년 간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 과학자로서 천수를 누려온 그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그의 실체를 자세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또,,일본이 팽창정책을 추진하게 되는 상황과, 일본내의 분위기,전쟁등과 관련해 잘 몰랐던 일들과 여러 영향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어서 나름대로 유익한 책이었다. [인상깊은구절] 2월 중순 기도가 히로히토에게 싱가포르의 함락을 축하하자 천황은 기분이 한층 고조된 상태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기도 씨, 예전에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전 준비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승전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
| 일본이 천인공노할 전쟁을 벌인 국가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당시 천황이 히로히토란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히로히토란 인물이 어떤 인물이며 어떻게 전쟁을 치뤄냈으며 그 주위인물들은 어떠했는지 알고 있는가? 맹목적인 반일과 합리적인 지일의 차이는 이런 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일본의 만행만을 이야기하지말고 그 뒷면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정말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히로히토는 그 내용들을 충실히 담고 있다. 중간중간 흑백화보들도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보고 서점에서 국내작가가 쓴 히로히토에 관한 책을 찾아봤다. 결과는 너무 불충분했다. 그동안 삼일절, 광복절마다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정말 일본을 모른다. |
| 히로히토는 2차대전의 전범으로 처벌을 받기 보다는 전제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변신에 성공하여 전후 일본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맥아더는 전후 일본을 재건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천황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본 황실을 유지시켜야 했겠지만,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전쟁에서 그 수장이었던 히로히토의 과오나 범죄행위가 잊혀지고 용서까지 받은 것은 너무나 불합리합니다. 이책의 저자 에드워드 베르는 이러한 의문을 갖고 히로히토의 일대기를 써내려가면서 2차대전에서 그의 주도적 역할을 파헤치며 책임을 단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명치유신 이후 일본 근대사를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쭉 훑어보는 통찰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문 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가 쓴 역사서는 흥미와 사실 두가지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단 어느 정도의 편견은 감안하고 읽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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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일본 왕 '히로히토'가 정신상태가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색다른 전쟁광, 정신병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히로히토'라는 괴물을 만나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마음이 곧 1억 2천만 일본인의 정서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꺼운 볼륨으로, 역사적 증언에 충실하기 위한 저자 의도 때문에 단 번에 읽기가 약간 부담스러웠으나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배후에 극우 핵심세력으로 흑룡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현재의 야마구치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명성황후를 죽이고 전쟁을 일으킨 단체로 황실의 배경이었고, 일본정신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흑심은 우리에게 이념대립과 동족상잔의 6.25까지 안겨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릎 꿇고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던 고다마(兒玉)라는 인물이'흑룡회'의 핵심멤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국교훈장 수교장을 주었고 이걸 통치술이라고 배운 전두환이 하나회를 만들게 된 정신적인 텍스트였던 셈입니다. 서북청년단, 호국청년단, 양지회, 하나회로 돌출하는 불순조직을 보면서 용팔이 태촌이 등과 유전인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신념을 갖게해준 책이 '히로히토'였습니다. 동국대 한상범 교수는 이것을 일컬어 '깡패공화국'이라고 썼습니다. 폭력으로 국민을 침묵 시켰던 박정희의 '국토건설단' 전두환의 '삼청교육대' 발상이 일제 식민史觀의 부산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이 책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갔던 '일본 이야기'입니다. 앞서 간 이유가 일본 자체에 있지 않고 맥아더와 미국의 음모에 있었다는 통렬한 지적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결국 현대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의 깊은 뿌리가 '어둠의 자식들'이었고 이들이 미국과 야합했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데는 미국이 뿌려놓은 '유전인자' 탓이라는 확신을 가능케 해줍니다. 천황은 미주리 함상에서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는 입증, 침략은 시혜였고 일본 사전에 패전이나 항복이란 없다는 예리한 지적, 이런 이야기들이'히로히토'의 중요한 내용으로 머리에 남습니다. 우리보다 일본인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에드워드 베르에 고마움을 느끼고 10년이 훨씬 지난 책이지만 '가치'를 발견해서 번역, 출판한 을유문화사에 감사드립니다. [인상깊은구절] <다음은 일본이="" 노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국의="" 주인'="" 행세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타임지는 일본의 대 러시아 승전에 대해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획기적인 승전 앞에서 일본 사람들의 태도는 남자다움의 극치였고 신성하게 까지 보였다." 1905년 6월 7일 타임지는 일본의 승리를 격찬하면서 또 이렇게 썼다. "아무런 소란이나 승전을 자축하는 외침이 없었고, 자화자찬도 없었으며, 패배한 적에 대한 승전보도 없었다. 오직 천황의 화려한 통치력과 권위에 승리의 원인을 돌리는 깊은 감사와 조용한 만족만이 있었다." 영국계 언론이 지나칠 정도로 일본에 우호적인 보도태도를 취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 전함의 엔진을 사용하고 전함 건조술을 이전 받은 외에도 영국 왕립 해군이 교관을 파견하는 등 '영국 해군이 만들어 낸 결과'에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토고 제독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해서 최단 시간에 괴멸시켜 버리자 밤사이에 그는 근대 해군 전사에 길이 남을 중요 인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동시에 영국 해군에게도 영웅으로 부각됐다. 포츠담 협약(뉴햄프다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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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패전이라고 하지 않고, 종전이라고 얘기하는 일본내의 2차대전 종결방식에 대한 인식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일본의 천황제에 대한 의문이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였다 일본의 2차대전 패전후의 처리는 다른 추축국의 패전처리방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더구나 그 2차대전 패전국들의 지도자들의 운명을 살펴본다면, 독일의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그렇지 않았다면 전범으로서 처형되었을 것이다) 무솔리니는 전쟁종반무렵 독일군 장교의 복장으로 탈출하다가 총살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1차 대전시의 패전국 지도자들의 운명들과도 비교해 보아도 그 차이는 극명할 것이다 독일의 제국은 해체되었으며, 독일의 빌헬름2세 황제는 퇴위되었고 이후 망명생활을 거쳐서 사망하였으나, 사망당시는 2차대전중의 나치독일 점령하의 네덜란드였던 만큼, 나치독일은 그의 장례를 소소하게 치뤘다 반면에 히로히토는 2차 대전의 주범이자 종범이자, 최종 책임자로서, 대만병합, 조선병탄, 만주국 수립, 중일전쟁, 대동아 전쟁, 태평양 전쟁 등의 최고의 공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수를 누리면서 존경받는 국가의 통수로서 죽음을 맞았다 또한 일본내에서 2차대전은 어디까지나 패전이 아니라, 종전으로 취급되며, 한국의 광복절에는 일본은 종전기념일로서 취급되고 기념되고 있다 패전이지만, 패전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는 침략이 아니라, 대만출병, 시베리아 출병, 조선병탄의 합법성 주장 등등의 논지들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일본내의 역사인식이다 그렇다면 2차대전의 발발, 좁게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발의 최종의사결정자와 책임자는 누구인 것일까? 태평양전쟁 시작의 기화점이었던, 진주만 공습당시의 전시내각의 수반이었고 전쟁 최후반까지 내각의 총리였던 도조 히데끼였을까? 당초 필자가 의문을 지녔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일본은 패전이 아닌, 종전으로 역사인식을 왜곡함으로서,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준 은혜롭고도 고귀한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천황을 인식함으로서 오히려 비참했던 전쟁종결의 공로자로서의 천황을 인식하게 된 것이 모든 왜곡의 시작이자 종착점이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 2019년 5월 1일, 일본의 연호는 바뀌었다 쇼와-헤이세이-레이와로 이어지는 연호의 변경은 마치 새시대로의 변화를 알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본만의 연호사용이라는, 다시 말하자면, 레이와라는 일본의 연호사용은 여전히 일본의 천황제가 존속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는 또다른 역설에 다름아닌 것으로 비춰진다 일본의 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은, 일본국민 스스로 천황의 존재를 지우고, 일본제국에서 일본국으로 변화로 상징되는 2차대전의 결과가 일본민국으로의 변화로 완결될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