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우리나라나 중국의 신화가 오히려 더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우리는 늘 서양의 시간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았고, 역사 역시도 서양의 것에 중요성을 부여해왔기에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의 신화는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것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그것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던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어느 순간부터 중국을 어버이의 나라로 신성시해왔던 듯 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 때문이었는지 신화 역시도 꽤나 흡사하다. 인간이 역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인류의 정체성 획득에 대한 요구로부터 비롯되었다면, 신화 역시도 비슷한 이유에서 각광 받지 않았을까 한다. 특히, 신화들 중 많은 부분이 실제 역사와 혼돈되면서, 기록만으로는 희미해 복원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복원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신화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신화인지,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일부분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중국의 신화는 실로 우리의 그것과 비슷했다. 견우, 직녀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똑같아서 그 기원이 중국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중국 대륙이 크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만큼 그 종류의 다양성에 있어서는 우리의 그것보다 뛰어난 듯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의 신화가 돋보였던 것은 바로 그 환경 친화적인 관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경우,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의 형체를 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것으로부터 신화가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은 늘 자연 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개발하고 또 훼손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태도가 오늘날의 발달된 문명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진 모르겠지만… 중국의 신화에서는 신들간의 주종 관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또한, 세계를 창조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특정 신이 창조하였다기 보다는 자연의 일부인 신이 죽음으로써 자연스러운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인간이 죽으면 자연의 일부가 되듯이, 신 역시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인간 그리고 세상을 빚어냈다고 중국의 신화는 바라보고 있었다.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따스한 관점이 서양의 그것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물과 관련하여 관개 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신화로 이루어져있는 부분은, 신화가 인간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인간 생활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신화는 실제 문명에도 영향을 미쳐, 후대의 소설 등에서 신화적 소재가 채택된 부분들이 많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각 문명의 신화를 비교함으로써 중국 신화가 지닌 독창성을 알 수 있었고,우리의 신화와 중국신화가 가진 유사성 역시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동안 서양의 것이 익숙해왔던 우리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
| 신화란 대개 집단적 기억의 원형으로 정의된다. 문자가 없던 시절,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알기 쉽고 기억하기 쉽도록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 신화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가 주신(主神)의 위치를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그리스 반도를 지배한 민족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또 이집트 신화에서는 주신 자체의 변천을 통해 지배 민족의 변화상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의 땅은 좁았다. 중국 신화에는 특별히 정해진 주신이 없다. 주신의 자리에 가장 근접했다고 할만한 황제(黃帝)는 한족이 섬기는 신이기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지고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중국 전역에 흩어진 오제(五帝)의 하나일 뿐이다. 한때 한족의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황제의 자손이라고 명명된 중국인에 대한 지칭은 어느 때부터인가 염황(炎帝+黃帝)의 자손으로 바뀌었다. 남방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서 양쯔강 유역을 지배하던 염제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려 5천년동안 단군의 자손이라는 말 한마디로 살아오는 이 반도의 민족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런 모습은 창세신화가 여러 판본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국의 창세신화라면 반고(盤古)가 계란 모양의 혼돈에서 매일 키를 키우며 하늘과 땅을 벌여놨다는 얘기겠지만, 이는 여러개의 창세 신화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55개에 이르는 이민족이 저마다 각자의 창세신화를 갖고 각자 발전시킨 것이 모두 중국 신화라는 이름으로 공존하고 있다. 신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영웅 신화인데, 중국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영웅들의 개성이 강하기로 말하면 그리스에 비길 바가 아니다. 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젖꼭지를 눈삼아, 배꼽을 입삼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싸움을 계속한 형천(刑天), 태양하고 달리기 시합 한판을 유감없이 벌이고는 목말라 죽은 과보( 父), 바다에 빠져 죽은 처녀가 새로 변해 나뭇가지를 하나씩 던져 바다를 메우려 한 정위조(精衛鳥), 태양 10개가 한꺼번에 떠올랐다고 9개를 화살로 쏘아 떨어뜨린 예(예)... 영웅신화 가운데에는 중국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있는데, 바로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에 있는 곤( 과) 우(禹)의 얘기다. 치수사업을 맡은 곤은 물길을 흙으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곤은 저절로 자라나는(많아지는) 흙인 식양을 천사에서 훔쳐와 치수사업을 한다. 돌아오는 것은 명성이 아닌 죽음이다. 그 아들 우는 발상을 전환한다. 물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바꾼 것이다. 돌아온 것은 역사에서 인정하는 중국 최초의 군주 자리였다. 자연을 거스를 때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자연에 순응해 돌아가는 것이 곧 빨리 가는 길이라는 중국인들의 사고가 엿보인다. 본문 가운데 일부를 중국신화와 한국신화의 비교에 할애하고 있는데, 불행히도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퍽이나 비슷하다. 아니 대개의 경우 같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견우와 직녀도 이름까지 똑같은 중국 신화다. 주변 문화의 흔적에 비애를 느끼지만, 동시에 이 시대 우리의 문화코드를 찾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원류를 좇을 당위를 확인한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데 동양의 신화나 신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전반적이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들의 사상과 생활 및 세시 풍속에 어떠한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입문하는 사람들의 생소함을 해소하기 위한 주석이 본문의 말미에 한꺼번에 몰려 있어서 읽다가 바로 해석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으며, 시문에 인용된 구절을 중심으로 이들 신화가 신화로써의 역할을 하거나 신화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녹아 들어 있음을 역설한 부분은 너무 강요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하여 차근차근하게 동양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신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