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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나. 그나마 돈 주고 사 먹으면 간단한 일을, 하지만 돈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쓰려고 한다. 결국 우리 사회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사회가 되었다. 이 흐름에 휩쓸리다 보니 적정한 생산과 소비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안 해도 되는 생산을 하고, 안 해도 되는 소비를 하느라 또 다시 적지 않게 에너지를 쓴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에 치여 살고, 삶을 건강하게 이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은게 또 하나의 현실이다. 겉보기에는 번지르르 잘 사는 것 같은데 알맹이가 없는 삶.
내가 벼농사를 짓는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쌀을 얻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쌀을 자급할 때 자족할 수 있는 범위 역시 상당히 넓다는 걸 깨닫는다. 삶의 근본으로 다가갈수록 모든 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근본이 되는 먹을거리는 건강, 자녀교육, 문화, 예술과도 뗄 수 없는 관계다.
나 역시 무투입 농사에 대한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다. 쌀겨 투입을 해마다 줄이고 있다. 이렇게 무투입 농사로 나아가려면 논 생명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을 잘 정리한 책이 이와사와 노부오가 지은 『세상을 바꾸는 기적의 논』이다.
이와사와가 말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겨울철에 논에 물을 채워두라는 것. 또 하나는 논을 갈지 말라는 것, 나로서는 첫째 부분에 크게 공감을 한다. 그동안 내가 부분적으로 경험했더 내용을 이와사와는 체계적으로 설명을 한다.
우리는 많은 걸 돈을 주고, 사고, 또 소유한다. 더 나은 게 나오면 먼저 산 것들이 초라해진다. 형편이 허락하면 쉽게 버린다. 소비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항상 있다. 하지만 손수 만드는 것들은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몸과 마음이 함께했기에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물건에 스민다.
상대적 박탈감 대신에 절대적 만족감을 느낀다. 누구보다 더 잘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걸 쓰는 내내 그야말로 소비가 아니라 아름다운 소유가 된다. 쓸수록 더 빛나는 물건들. 쓰다가 버릴 때는 쓰레기가 아니라 거름이나 땔감이 되는 것들. 소비하는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는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누리는 이런저런 창조 행위가 아닐까.
얼나마 지어냐 자급자족이 가능할까? 이렇게 앞뒤를 다 따져보고 또 정농 선배들 가운데 롤 모델이다 싶은 분의 농사 규모를 알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대략 2,000평 남짓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보니 규모가 얼마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말하자면 경영의 문제다. 투자 대비 수익을 따지게 된다. 기계르르 안 쓰고 무경운으로 농사를 짓겠다면 1,000평도 결코 적은 규모가 아니다. 우리 가족이 쓸 최소한의 생활비라는 것도 사실 일정하지 않았다. 소비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기에 농사에 맞추어 소비패턴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팔 것들을 제대로 다 나누지 못해 한 해를 보내고 나면 벌레가 먹거나 짐승들 먹이로 나가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비록 자급은 안 되지만 자족하는 길이 다양하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차 자급보다 자족에 무게 중심이 쏠린다.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이란 사람이 제 삶의 주인으로 굳건히 서, 여러 생명들과 조화 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펼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무경운 농사는 오롯이 자연과 만나게 된다. 무경운을 하면 논 생물들이 아주 다양해진다. 다양성의 극치는 신비함이다. 설렘과 경이로움과 적당한 긴장감…… 삶의 큰 가치를 신비로움으로 둔다면 무경운 농사를 꼭 해볼 만하다. 우리 자신도 논 속에 푹 파묻혀, 다양한 생명 가운데 하나로 즐겁게 살아갈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
자급자족농을 아주 잘 설명한 책이 나왔다. 나카시마 다다시가 지은 『자급자족농 길라잡이』(들녘 출판). 나카시마는 한 사람이 500㎡(150평)이면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다 한다. 쌀과 보리를 이모작으로 짓는 데 200㎡(60평), 채소를 골고루 짓는 데 300㎡(90평)이면 된단다. 닭을 키워, 거름과 최소한의 돈벌이를 해결한다. 50마리 닭똥이면 1500㎡(450평)의 농지까지 거름이 가능하단다.
설사 체력이 남아돌더라도 농사를 늘리지 말라고 충고하낟. 땅이 남는다면 차라리 풀밭으로 남겨두라고.
귀농이 선택이듯, 자급자족농도 선택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선택. 먹고 사는 그 근본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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