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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의 대표작 《키로파에디아》를 읽은 뒤, 그의 사상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마침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하여 출판한 곳에서 《크세노폰 소작품집》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알게 됐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은 크세노폰의 저작들 중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경제학적인 소작품들을 묶어서 번역한 책으로 책 안에 포함된 작품은 《히에론》, 《아게실라오스》, 《라케다이몬의 국제》, 《수단과 방법》, 《기병대 사령관》, 《기마술》, 《사냥술》, 《아테네의 국제》 등으로, 총 8개다. 이 8개의 단편들은 매우 짧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명료하게 서술되어서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을 읽으며 가장 다가왔던 점은 확실히 저자 크세노폰은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저술한 철학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라이벌이라 불리는 플라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두드러진다. 플라톤의 저작이 사색적이고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저술됐다면 크세노폰의 저작은 관념적이기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학, 경제학, 군사학, 역사학 등등 그가 집중적으로 고찰한 부분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복무했던 군사 경험을 토대로 병법서를 저술하였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군사 저작을 읽어보면 그가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확실히 그의 글은 매우 담백하고 간결했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 자체도 투박한 부분이 많았다. 이는 라이벌인 플라톤의 저작과 매우 대조적이다. 플라톤의 저작은 매우 현학적이며 고도의 수사법으로 기록된 문헌이다. 따라서 짧은 저작이더라도 텍스트 자체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크세노폰의 글은 담박하고 투박하며,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저자의 논지가 명확하며, 문장의 구조도 꽤 단순하고 명료한 편이라서 글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저작 속에 자신의 의도를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겨놓고 아리송하게 흐려놨지만 크세노폰의 글은 말미에 교훈적인 내용으로 대부분 끝맺는다.
이런 투박한 크세노폰의 글이지만, 의외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꼼꼼하고 세심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마술》과 《사냥술》같은 저작에서 그는 말을 고르는 방법, 관리하는 방법, 사냥개를 관리하는 방법, 토끼를 사냥하는 방법 등, 당대의 지적인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가지고 싶지 않은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사냥술》을 읽으며 굳이 토끼를 잡는 비법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꼼꼼함과 세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그리스 사회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바로 극단적인 공리주의 사상이다. 크세노폰은 국가의 발전과 집단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크세노폰의 사상은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극단적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의 자유는 사회 집단의 공리를 위해 어느 정도는 제한해야 마땅하지만 과연 크세노폰이 주장하는 대로 극단적인 평등과 집단을 위해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은 고대 의 정치에서 집단의 공리성을 극단적으로 내세운 국가들이 대부분 위업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키루스의 페르시아, 중국 진시황의 진나라, 그리고 한국에서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사회 제도를 일원화하면서 고대 국가들이 발전했다. 다만 이러한 사상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 이런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전 세계에서 비난의 화살이 몰려올 것이다. 모든 고전은 태생적으로 시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크세노폰의 공리주의 사상 역시도 이에 속하는 듯싶다.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적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생활 모든 부분에서 현실주의는 이상주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과거의 생활 전반에는 현실주의보다 이상주의적인 관념이 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서양의 전통 지식인층은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플라톤을 크세노폰보다 우위에 뒀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전통은 이어져왔으며,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직까지 크세노폰은 학계로부터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책은 원전 번역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주류 철학자들의 번역 역시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 크세노폰의 저작을 번역할 여유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를 전통적으로 폄하해 온 시각은 거둘 필요가 있겠다. 자신을 추방한 조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끄적인 글이 이토록 후대에 저평가 받는다는 것을 무덤 속에 그가 안다면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투박한 글이더라도, 그의 글은 나름 진솔했고 전문적이며, 플라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위치를 다시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