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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 제임스 던/ 박규태 역/ 좋은씨앗/2016/ 강산목사 서평 최근에 내 친구 중에 한명이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서 운전을 하러 나갔다가 정말 황당한 일을 당했노라고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운전이 서툰 내 친구는 조심조심 운전을 하다가 그만 앞에 있는 차의 뒷 범퍼에 자신의 차로 살짝 부딪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 차가 급정지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뒤에서 받은 내 친구의 차에는 작은 스크레치 정도 밖에 없는데도 앞에 서 있던 차의 뒷 범퍼가 통째로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장난으로 친구 어깨를 살짝 쳤는데 그 친구의 어깨가 빠져버리거나 부서진것처럼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사고를 당했을 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빨리 합의를 보고 수리를 해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천천히 생각을 해 보니 자동차 범퍼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떨어지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천천히 다시 보고 피해자를 만나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오롯이 자신의 실수로 그 범퍼가 떨어진 것이 확실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당신이 뒤에서 차를 받았으니까, 앞차에 피해가 생긴 것이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겠지만. 운전의 경력이 많고 다양한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나, 이 사건을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보고 질문을 던져보면 단순히 그 사고 하나로 그 피해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확한 평가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차원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제임스 던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회안의 한 진리에 대하여 우리에게 다시 한번 더 크고 꼼꼼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살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바로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예배했는가?”라는 것이다.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급하게 “아니 그러면,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예배 안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위험한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에 앞서서, 먼저 “예배”라는 가치가 가진 의미를 우리가 더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배와 관련된 언어학적인 내용을 살핀다. 예배와 관련된 상세하고도 다양한 언어적 어휘적 표현을 살핀 결과 ‘예배하다’라는 동족 어휘 자체를 예수와 관련지을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제시한다. 동시에 예배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 찬송과 기도와 같은 실제적인 표현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거나,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내용으로 삼아 찬양을 하지만, 직접적으로 예수께 찬송을 하거나 예수께 직접적인 기도를 하는 모습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정리를 한다. 결국 이것은 초대교회 시대에, “예수가 예배를 받거나 경배를 받았다”라는 분명한 진술이 성경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킨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예수가 전혀 예배나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혹은 그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도 초대 교회가 직접적으로 그 분을 예배나 찬양 혹은 기도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게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예수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에서 어떤 역할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더 파고 든다. 쉐마나 쉐키나와 같은 예배의 핵심적인 유대적 요소로부터 연속성을 가지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에서 예수는 ‘주님’으로서 위치를 선명하게 가지고 있으나, 이 칭호가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성을 나타내기 보다는 예수와 하나님을 구분하는 선명한 표현이라고 보고, 예수를 주로서 고백하는 것이 결국 한분이신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예배의 형태로 확장되고 풍성해 졌을 뿐 그것이 예수에게 직접적으로 올려진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단서는 매우 적거나 희미하다고 주장한다. 던의 강점은 이러한 내용을 단순히 추측이나 부분적인 성경 내용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만들어낸 성과물이 아니라,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게 신약성경 전부를 주해하고 석의한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하게 예수를 향해 올려진 신성의 인정과 경배 및 송축이 있음을 인정한다(물론 다른 신약성경에도 미약하지만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이 가지는 독특한 문학적 장르로 인한 것이라고 갈무리하고, 더 많은 신약의 본문들과 초대교회의 문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예배와 찬미를 받으신 분이라기보다 오히려 찬미와 찬송의 주제였고 초기 기독교 예배의 내용이었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예수로 말미암아서 가능해진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다”고 결론을 맺는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제임스 던의 주장은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도전적이었다. 최근에 고 기독론에 대한 미국이나 영국 및 한국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탁월한 저서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래리 허타도나 보컴과 같이 세계적으로 탁월한 저자들도 있고 한국에서도 최근에 아주 우수한 학자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던은 이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예수의 신성과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조금 더 세밀하고 날카롭게 그들이 주장한 내용과 선을 긋고 있다. 이런 책들이 워낙 난이도가 높아서 나 같이 실력 없는 목사가 세세하게 차이점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읽어 본 래리 허타도나 보컴과 같은 신학자들의 입장은 큰 틀에서 성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성자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 거의 같은 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던은 성부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형태에서 성자 예수님의 위치를 좀 더 날카롭고 세밀하게 차이가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 또한 던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지는 않는다. 특히 요한계시록 부분에서 단순히 문학적 장르에 따른 특수성만으로 예수 예배에 대한 그의 일관된 주장을 합쳐버리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예배에서 예수님의 위치와 상관성”을 더 깊게 살피고 연구해 볼만한 도전장이 된 것은 사실이다. 탁월한 번역자인 박규태 목사님의 친절하고 세밀한 번역 뿐만 아니라 좋은 씨앗 편집팀의 수고가 합쳐져서 참 귀한 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저 “예수를 초대교회가 예배 했는가 안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는 단순한 대답을 찾는 것보다 더 큰 질문과 도전을 던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예배라는 귀한 가치의 다양한 측면과 의미를 깊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준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 한번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며 부족한 서평을 마무리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