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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자 세키구치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고 있다. 한때는 잘나가는 주간지의 프리랜서이기는 했지만 기자로 활동했고 외국계 금융업에 종사하는 똑똑한 아내와 어여쁜 딸을 가진 어엿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난과 매체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주간지의 폐업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고 이로인해 아내와 딸마저 세키구치의 곁을 떠나 시애틀로 떠나게 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세키구치는 허탈함과 함께 찾아온 마음의 병으로 허름한 여인숙 같은 아파트에 기거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노숙자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록 폐업하긴 했지만 다른 루트를 찾아 웹매거진 매체로 재기에 성공한 옛 주간지에서 근무하는 과거 선배에게 전화 한통이 온다. 기사거리가 생겼으니 한번 일해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다. 취재비는 얼마 되지 않지만 당장 몇푼이 아쉬운 세키구치는 승낙한다. 헌데 왜 자신인지 의아해한다. 다른 멀쩡한 기자들도 많을텐데. 진상은 매거진으로 테러를 일으킨다는 내용의 예고 전화가 왔고 취재를 해줬으면 하는 기자로 정확히 세키구치를 지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는 노인 남성이었고 이에 장난전화라고 여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테러 예고 장소인 NHK방송국으로 간다. 장난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참에 세키구치 눈에 의심스러운 큰가방을 든 젊은이가 들어온다. 겉은 멀쩡하지만 무언가 초점 없는 눈이라든가 기이하게 뻣뻣한 몸짓이 수상쩍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 어떤 특수한 인화물질을 이용해 순식간에 해당 구역은 불길에 휩싸이고 범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데 이 모든 끔찍한 아비규환의 생생한 현장을 세키구치는 목격하게 된다.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 되고 현장의 목격자였던 세키구치는 그 누구보다 생생한 기사를 쓸 수 있었기에 매거진에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전격 기용된다. 후에 후속 취재를 위해 여러 단서를 추적하던 세키구치는 다시 테러 예고 메시지를 받고 끔찍한 사건 현장들을 연속해서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예초기로 일반 시민의 목을 절단하는 사건과 한 영화관에서 벌어진 천명 가까운 사상자들을 만들어낸 흡사 지옥도를 연상케하는 폭발 테러등. 그리고 이 사건들을 일으키는 건 언제나 눈에 초점이 없고 뻣뻣한 마음의 병이 있어보이는 젊은이들이었고 현장에서 즉사한다. 세키구치는 단순 취재를 넘어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사명감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가고 테러를 일으킨 젊은이들의 배후에는 정체 모를 노인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이 바로 젊은이들을 시켜 테러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리고 범상치 않는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실력자들이나 부를 이룬 자들이 속한 위험한 자들이었다. 이 노인들은 모두 2차세계 대전 당시의 만주국이라는 키워드로 연결 된 집단이었다. 결국 노인들과 접촉하게 된 세키구치는 그들의 정체와 최종목표를 알게 되며 경악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사용했던 88밀리 대전차포와 원전... 참 재밌는 구성의 소설이다. 일단 등장인물들의 세대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테러의 배후인 노인 집단과 희망을 잃고 좌절감에 빠진 젊은 세대. 그리고 그 가운데 쯤 세대인 50대 중년의 세키구치까지. 각 인물들은 당시 일본 사회의 각 세대 특징이나 문제들을 대변하는 장치로 쓰인다. 노인 세대는 전쟁과 기아, 폐허속에서의 생존, 국가 성장이라는 굵직한 역사의 증인이며 당사자이다. 젊은이들은 점점 내리막길로 가는 일본 경제의 희생자이며 어떤 해결책이나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려는 안일주의에 빠진 사회로 인해 절망과 무기력감에 빠진 세대이다. 중년세대는 젊었을 적 경제호황기를 보냈지만 갑작스런 경제난으로 가족해체등의 절망을 겪어 고통에 허우적대는 세대이다. 하나같이 사회에 불만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각 세대의 분노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중년 세대는 모든 것이 무능한 자기 때문이라는 자기학대의 형태로, 젊은 세대는 애초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은 듯한 그저 무기력감에 사로 잡혀 자신의 내면으로 절망스럽게 침잠한 형태이다. 노인세대도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전 세대들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분명한 형태의 분노를 표한다. 이들의 살아 온 삶이 역동적이며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한 경험들 때문이다. 테러의 주모자인 노인 집단은 모두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과 관련이 있다. 만주에서 활동한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 재건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결국 한 국가를 경제대국으로 만든 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 일본을 리셋시키겠다며 엄청난 일을 벌이려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 세대의 형태와 그 원인 때문이다. 이상하리만치 그들은 조용하다. 집단목소리를 내야할 때조차 침묵한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당연히 있을 것인데, 여러 지표들이 젊은이들의 힘듦과 고통을 말해주는데도 그들은 조용하다. 목소리를 잊은 듯한 무기력함과 절망으로 분노는 침잠해 가고 그러다 결국 폭발한 일부는 묻지마 칼부림등의 의미 없는 사건만을 일으킨다. 노인들은 생각했다. 이 젊은이들의 이런 형태는 국가사회 자체의 문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여러 국가적 문제에도 해결은커녕 전혀 바뀌지 않는 안일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진 국가기관과 미디어등이 원인이라고. 작가인 류가 본 사회의 문제는 바로 이 변화지 않고 그럴 의지도 없는 국가의 태도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변화를 위해 국가 자체를 다시 리셋시킨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여러 역경 속에서 단련 되어 생존을 한 세대답게 그들의 행위와 계획은 무기력한 세대와 달리 대담하고 적극적이며 망설임이 없다. 흥미로운 건 중년인 세키구치다. 처음에 그는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결국 죄 없는 젊은이들을 희생물로 삼은 흉악범에 불과한 것이라며 테러집단 노인들을 증오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생각에 점점 동화하게 된다. 그도 인생의 여러 절망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회에 필요한 건 리셋시키는 것 뿐이라는 사상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주려한다. 어쩌면 세키구치의 마음의 방향이나 생각의 변화등은 류 자신의 일면적 생각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을 썼을 당시 나이가 아마 60세 였을 것이다. 젊었던 시절의 소설들은 기성세대와 문화를 비웃는 치기어린 내용들이었는데 이제 그도 나이를 먹은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류이다. 사회 기득권에 대한 날선시선은 여전하다. 각 세대를 두루 아우르는 넓은 안목이 더해졌을 뿐이다. 소설은 장르에 충실하다. 특히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은 작가의 뛰어난 묘사로 인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진 듯해서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에 함께 동화되었다.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함께하게 되는 여러 인물들과의 인연등은 모험소설의 맛도 나게했고, 노인들 중 정제계 인사들과 익맥을 형성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인의 만남이나 여러 독특한 인물들과의 서사와 이를 파헤치는 과정등은 스릴러의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주인공의 배경이 기자인만큼 여러 잡다한 지식등이 전개 중간중간에 적당히 인용되어 리얼리티가 더해져 한층 몰입도를 올려준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스케일을 확장해서인지 지리멸렬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작가도 이걸 의식했는지 인물의 감정이나 사고를 정밀하고 꼼꼼하게 묘사해 리얼리티를 부여하려 하지만 이것이 되려 지리멸렬함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이런 것들로 웰메이드 소설로 불리는데 못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