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는 내내 나는 과연 이 소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에게는 아직 가난이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단지 소설이 매우 아름다운 문체로 쓰여졌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이 소설의 아름다운 문체보다는 과연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더 옳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17세기 러시아의 사회의 저류를 형성하고 있는 밑바닥 계층의 처참한 세계가 두 명의 화자가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해 섬세하게 드러난다. 이야기는 바르바라라는 젊은 여성과, 그녀의 사촌이면서 동시에 그녀를 사랑하는 제부쉬킨의 편지를 통해 밀도 있게 전개되어 나간다. 사십대 중반의 제부쉬킨은 9등관 서기이며 하루하루 간신히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흔히 러시아 리얼리즘 소설에서 9등관은 늙고, 멍청하고, 나약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소설에서도 9등관인 주인공은 비슷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고골의 <외투>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까끼처럼 무조건 사회적 힘에 승복하는 인물은 아니다. 제부쉬킨은 소설에서 '생각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 '생각'이 하찮거나 허황된 상상일지라도 제부쉬킨은 책을 읽기도 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킬 줄도 알고 세계를 바라보는 독자적인 안목을 소유한 자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며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9등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런 점을 인식한 듯 작품 내에서 제부쉬킨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골을 비판하는 장면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그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읽게 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하지만 제부쉬킨 역시 마음은 착하지만 사람들에게 왜곡된 시서으로 따돌림을 받는다. 오히려 제부쉬킨에겐 사회적 힘보다,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 더 심한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는지 온 집안에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난 깜짝 놀라서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귀를 막지 않고 반대로 더욱 귀를 기울인다는 겁니다.>, <이 기분나쁜 삼류 문사들은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이 발바닥을 돌에 대고 걷는가 혹은 발끝으로만 걸어 다니는가를 살펴본다는 거죠.>, <나를 파멸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삶의 이 모든 불안, 이 모든 쑥덕거림, 냉소, 농짓거리입니다.> 이런 시선은 결국 돈과 관련된 사회구조가 원인일테지만 제부쉬킨은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이 오히려 돈의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항상 떨어진 단추와, 헤진 구두, 말쑥한 옷차림에 대해 신경을 써야하는 것도 인간들의 기분 나쁜 시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자기 방어라고 할 수 있다. 외모와 차림새가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방어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일 수 밖에 없다. 제부쉬킨이 시선의 문제를 걱정할 때 바르바라는 돈에 대한 직접적인 고민을 한다. 바르바라는 9등관의 반대편에서 월등한 독서량을 지닌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논리적인 지식만 갖추고 있을 뿐 삶의 전체를 통찰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제부쉬킨보다 뒤떨어져 보인다. 제부쉬킨이 보낸 소설을 두고 바르바라는 하찮은 통속 소설이라고 비난하지만 오히려 푸슈킨의 소설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제부쉬킨이다. (그래서일까 이름도 닮아 있다!) 그녀는 제부쉬킨의 정성이 담긴 편지에 답장을 해주긴 하지만 그녀의 답장은 상당부분 돈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다. 그리고 제부쉬킨을 이해한다기보다 제부쉬킨을 변화시키고 문학적 열등에 대해 불평한다는 점에서 숨겨진 위선이 엿보인다. 결국 그녀는 돈을 선택한다. 뒷글에 쓰여진 해설에 보니 '가난의 사회학'이란 말이 눈에 띤다. 프랑스 문학이건 러시아 문학이건 간에 가난과 돈에 얽힌 소설들이 대부문 문학사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