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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권현숙 단편소설집中 순 장(殉葬)
223쪽 미인과 추녀의 사이는 2mm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의 눈이 2mm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미인도 추녀도 없는 천국이 될 것이다.
부석한 눈 두덩에 보라색 라인을 긋고 그 절개선을 따라 스칼펠이 피부를 연다. 눈꺼풀 판이 보이고, 버들잎 모양으로 피부를 박리한다. 혈관들에서 피가 분출되고 지방과 조직을 섭씨 100도로 소작을 한다. 견디기 어려운 냄새다. 삼겹살 굽는 냄새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역겨움이 일어난다. 형이상학이 문제인가? 코의 골 망을 따라 실리콘 주머니를 만든 뒤 콧등에 주입하면 능선이 생긴다. 콧날이 일어난다. 코의 끝을 세우고 형태를 갖춘 환자의 손에는 외국 여배우의 사진이 들려있다.
서른의 막장에 이른 그녀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아직 솔로의 신세이고 회사에서 운전을 하다 뺑소니로 몰려 3개월을 복역한 뒤 집에 오니 전기 수도는 끊어지고 냉장고는 겁 이 나서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 (없는 와중에 그나마 있던 것마저 부패되어 있을 것이 뻔하니까.) 구치소에서 나오면 먹고 싶었던 것들을 차례대로 적어오기까지 했는데 만사가 귀찮다.
연예 기획사의 대장을 둘째 아들로 둔 반장 아주머니의 소개로 로드 매니저가 되었고 연예 기획사의 로드 매니저가 되기 전에는 성형수술에 대해 무지했었다. 쌍꺼풀 테이프도, 코 수정 기구도 알지 못했다. 지금은 얼굴만 봐도 안다. 되는 얼굴과 안되는 얼굴을.... 그녀의 임무는 소속사 연예인들을 성형외과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회사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연예인들을 뽑아 즉시 연마 작업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내부 장기를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가 수정된다.
미인은 왠지 인종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여신, 혹은 별에서 온 사람 같은 느낌. 그런 거다. 그럼 그녀는 어떤가. 일단 여자치고는 키가 크다. 그리고 광대가 튀어나와 코를 감싸고 턱은 사각으로 넓적하다. 그 아래 목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기 위해 간신히 아주 짧게 붙어있고 어깨는 떡 벌어져 있다. 쉽게 말해 남자로 말하자면 떡대가 아주 좋은 장군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자인 그녀는 글쎄.... 아름다움에는 선천적 기호가 존재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있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도록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평범한 다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선고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견해에는 막강한 반대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껍데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 9시 뉴스의 여성 앵커, 재벌과 미인의 결혼, 광고 속 미인,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이다.
235쪽 오, 저 아름다움을 우리는 신의 의지로 받아들이자. 저 자연의 총아는 선악의 피안에 서 있는 것이다. 신적인 아름다움, 그 앞에서 한갓 피조물이 만들어낸 법이나 기준은 그 효력을 잃는다. - 플라톤 [향연]
그녀는 자신의 외모로 인해 뺑소니로 몰렸다고 생각한다. 그날 할머니는 단속반을 피하기 위해 길 건너 복덕방으로 참외 상자를 옮기는 중이었다. 하필 그때 그녀의 차가 아파트 진입로에 들어섰다. 그녀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드는 할머니를 보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후문 주변은 행상을 하는 노점들로 번잡했고 그래서 늘 습관처럼 속도를 줄였기에 그녀는 놀라지는 않았다. 정작 놀란 것은 사방팔방 흩어진 노란 참외들이었다. 할머니는 깨진 참외들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외 한 상자에 십만 원이라며 반반씩 물잔다. 어쨌거나 다친 것은 참외다. 그래서 오만 원을 건넸고 일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아들은 전치 6주짜리 진단서를 경찰서에 제출했다. 밤에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와 뺑소니로 조사할 것이 있다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게 하고는 경찰서로 끌고 왔다.
건축 분쟁으로 업자와 인부들 간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고 재판장은 소란스러웠다. 욕설, 웅성거림, 판사의 호령, 그때 출입문이 열리고 젊은 남녀 한 쌍이 들어섰다. 여자는 자기 얼굴만 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크림색 원피스는 몸매를 한껏 드러냈고 타이트하게 H 라인을 들어냈다. 소요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정적이 흐르고 여자의 하이힐 소리만이 '또각또각' 울렸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조그만 핸드백 속에 넣었다. 그 순간 법정에 불이 들어온듯했다. 크고 아름다운 눈, 까맣고 하얗고 보석 같은.... 아나운서 공채를 준비 중인 그녀는 음주 뺑소니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몇 번의 경고 끝에 경찰이 연행을 해온 것이다. 같이 들어왔던 젊은 남자는 아마도 경찰인듯했다. 재판은 호의적으로 흘렀다. 최대한 공손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그녀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똑똑하고 못생긴 여자 = 재수 없다 무식하고 이쁜 여자 = 순진하다
그녀의 1mm의 두피 아래에는 [교양학부 권장 도서 50선]이 빼곡히 꽂혀 있다. 1이방인2과학혁명의구조3광장4꿈의해석5국부론6군주론7그리스비극8금강삼매경론9논어10돈키호테11두보시집12루쉰13마의산14맹자15목민심서16무정17미디어의이해18백년동안의고독19변신20죄와벌21좁은문22사기23삼국유사24그리스로마신화25설국26파우스트27성학십도28프로테스탄티즘의윤리와 자본주의정신29셰익스피어4대비극30순수이성비판31스완네집쪽으로32슬픈열대33신곡34안나카레리나35양철북36엔트로피36역사38열하일기39위대한유산40이기적인유전자41적과흑42일리아드-오디세이43자본론44자유론45장자46적과흑47예술가의초상48토지49종의기원50황무지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가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269쪽 우리나라 최초로 순장 인골이 발굴됨으로써 한국 고대사에서 문헌상에 단편적으로 보이는 순장 기록에 대한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발굴이 한창인 44호 분 중앙 석실 주피장자 발치에서 금귀고리를 착용한 채 순장된 10대 소녀의 인걸이 출토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자들은 이 소녀가 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첩이나 시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옛날 임금이 죽으면 임금을 모시던 하인과 하녀를 함께 장사를 지내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후에도 임금은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의 발칙한 생각이다. 권력자가 죽음에까지 동반하고 싶어 하는 미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277쪽 미인은 하나님 다음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 파스칼
깜빡 정신을 놓았나 보다. 어두운 굴속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 아득해져 간다. 아득하게 말소리가 들려온다. 내 말 들리세요? 마취가 안됐나?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윙- 윙- 윙 드륵 드륵 드륵 기계진동에 머리가 얼굴이 뇌수가 흔들린다. 얼굴의 모든 뼈들이 진동하고 있다.
차마 내가 출근하다시피 한 병원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인데.... 뭔가가 이상하다.
그래도 단 하루를 살더라도 예쁜 여자로 살고 싶어!
머리 위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이상한 말이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지금같으면 페미니즘에 여성비하에 등등 능지처참 감이지만 그렇게 살아왔다. 고.조선.의 여인과 대한제국의 여인들은.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가 돌아볼일이다. tv이를 잘 보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번 보노라면 다 한 채널인줄 알았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또 저기에도 같은 얼굴이 분신술을 쓰듯 보이는것을 보며 마음이 씁쓸함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니.... 이쁜여자는 아름다운 미인이고 그보다 못한 여자는 개성이 강한 여자가 되는 세태. 뭐 ! 끌어낼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아무튼 마음을 다스리고 . 거울을 한번 본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인간은죽기위해도시로온다#권현숙#세계사#단편소설집#미인#형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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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역시 책 내용도 황사바람의 우울함 못지 않다. 처절하리 만큼 간결한 문체는 산뜻하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차갑게 다가온다.
처음으로 접하는 작가 권현숙...! 사실 기존의 여류작가에게 느껴지는 선입견으로 책을 접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저자의 책을 더 읽고 싶었는데 문체에서 느껴지는 깊이감과 세계관이 예사롭지 않다.
6편의 단편집이라 하지만 각 단편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한 동질적인 내용으로 느껴진다.삶과 죽음으로 크게 구분되어 지는 인간의 삶은 결국 남자와 여자의 연속적인 삶으로 대체되며 그것은 결국 그리움,외로움,절망감,소외감 등으로 변질되어 간다. 우리가 흔히 소설에서 접하는 아름다운 애정 내지 순정은 너무나 사치스럽게 간주되어지기도...
무서울 정도로 사랑한 대상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다른 대상으로부터 그 공허함을 메우고 싶고 또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갈구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외로움과 사랑이 교차하면서 서로 보완하고 또한 그것이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위대함이 책 속에서 보여진다.저자는 남자와 여자라는 인물들을 폐쇄적인 공간에 등장시켜 그들의 본능적인 행위를 통하여 결국 그들을 너무나도 냉소적이고 하무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대단한 기술(?)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순장'편에서 추녀가 미인이라는 지상최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죽음을 무릎쓰고 성형수술대에 오르는 장면과 미인이기때문에 오히려 산 채로 생매장되는 장면을 오버랩시키므로써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초라한 존재인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설명이 없이 약간 추상적으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성급히 결론을 내리려 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이러한 전개방법을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많은 여운을 남기고 싶어하는 일부 독서 매니아에게는 훌륭한 책으로도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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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 자극적인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강한 이끌림에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권현숙, 처음 접하는 작가, 그녀의 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그녀의 글이 전하는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여섯 개의 단편 소설들로 묶여진 소설집으로 각 단편마다 색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한없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가 가장 깊은 여운을 주는 글로 꼽고 싶다. 가슴 속에 외로움과 고독, 상처를 간직한 두 남녀가 전쟁과 폭동으로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한 나라, 총성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호텔에서 우연인지 운명인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낯선 곳 에서 서로에게 어렵게 다가간다. 전쟁 속 사지로 마치 죽으러 가려는 그녀를 못가게 하려는 그의 모습에 애뜻함이 느껴진다. 불완전하고 위태 위태한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의 쓸쓸한 영혼을 감싸 앉는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여운을 남기며 글이 마무리되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너무 늦게 사랑이 찾아 온게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의 앞으로듸 행방이 궁금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용기를 줄 것이다.
인간은 결국 혼자가 된다. 시끌벅적한 도시 속에서 이래저래 마주치는 사람들과 살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나도 가끔씩 가슴이 막막해짐을 느끼며 혼자 훌쩍이기도 하고 청승을 떨 때가 있다. 외로움, 고독이라는 감정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권현숙의 이 소설집 속에 살아있는 인물들 속에서 뭔가 불완전하고 위태로움을 느낀다. 그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며 그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만은 살아갈 수는 없구나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더불어 살아가야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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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여자와 남자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에 대해 적혀있는 이 책을 보면서 중간중간 잊을수 없는 대목도 있고 한번 읽으면 그 책에 빨려들어갈수 밖에 없는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흡입력이라고 할까? 현대 사회에서의 사람들은 너무 빡빡한 일정과 지루한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자신들의 생활속에서 아마 이 책은 그런 현대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파헤치고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먼 상상속의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황된다거나 그런 마음이 들기 보다는 이 책을 통해 한발짝 더 다가가고 외로움을 느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다시 한번 삶을 되돌아보게하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출간되자마자 따끈따끈한 새책을 읽는 기분은 정말 너무 아까워서 한장한장 넘기는게 너무 행복하고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서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나 또한 물들어가기도 했었다. 인생에 대한 어떤 외로움과 삶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고 사랑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번쯤은 필히 읽어보아야 할 책인것 같다. |
![]() 비전공자가 가장 선호하는 소설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에 나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공자 혹은 평론가가 싫어하고 꾸준히 팔리리는 스테디 셀러" 이렇게 대답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평론가가 싫어하기 때문에 어렵지않고 쉽게 읽히며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난해하지 않고 분명한 스토리 라인과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 나의 대답에 큰 이유일 것이다. 권현숙의 소설집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를 읽자마자 가장 먼저 내가 한 일은 우리 동네 도서관에 권현숙의 다른 소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검색해 보고 없는 것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여 장바구니에 담는 일이였다. 최근에 읽은 단편들 중에는 최고였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중단편들이 하나같이 반짝거리는 이유는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많은 작품을 쓸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많은 작품들 중에 치열한 경쟁력은 뚫은 그야말로 경쟁력있는 작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첫번째 작품 [삼중주]는 소설집의 첫작품으로 딱 어울이는 몰입감을 준다. 현대인의 고독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속에 여자주인공이 몰래 아랫집 남자의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장면은 긴장감이 느껴져 좋았고 특히나 마지막 반전은 단편 특유의 산뜻함과 더해 머리가 멍해지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수업]이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 유학생 동거커플이 사별한 후 여자가 겪게 되는 거대한 상실감과 유학생 동거커플의 힘든 외국 생활 속의 한국인의 생각같은 것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 것에 대한 집착, 그것만이 깊이라고 생각하는 너는 [깊이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철학적이고 모호한 주제는 무수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번번이 심사의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평생을 두고 풀어야할 주제를 몇 년 안에 끝내려고 하는 너의 조급한 태도 역시 프랑스 교수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작은 주제를 작고 끝까지 전개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데...." 아담은 모른다. 주제 하나를 인생의 잣대로 삼는 한국적 자존심을. "너무 많은 것을 논문 한 편에 집어넣으려면 무리가 생길 텐데...." 아담은 모른다. 생을 걸고 덤비는 한국 사람의 욕심을. "나는 남들처럼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아요." 못 말리는 너의 논문에 대한 환상.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는 학문의 기초요 시작일 뿐이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는 학문의 완성이요 끝이다. 아담은 입을 다문다. 본문 169페이지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어지는 여자 주인공의 회상 속에 한 장면이다.작품 속에는 이러한 여자의 회상이 유독 많은데, 그 이유는 남자가 죽고 그 남자와의 일들을 회상하고 아파하기 때문이다. 그냥 넘어갈 만한 이러한 이야기 속에도 작가의 깊은 이해가 없이는 이런 장면을, 이런 대화를 창조해내기 힘들다. 왜 이 소설집을 읽으며 쉽지 않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경의로운 의문은 작가의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고 본질을 파악하고 여러가지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어체도 아닌 것이 그냥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속삭이듯 이야기가 진행되고 시점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소상한 일상적인 이야기을 하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 인물들이 느끼는 묵직한 고독과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순장]에서처럼 우리 주위에 늘 있지만,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사회의 모순 속에 읽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에게 이상하리만치 깊은 애정을 느끼고 그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느낀 것은 그냥 그런 동정심이 아니라, 그들이 상상 속의 그들만의 도시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나라는 생각을 들게끔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느끼는 죽음과 상실과 그리움이 바로 그들을 통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가의 여러가지 장치와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전개는 이 소설들의 힘이다. 내전 중인 도시, 우리 동네 뒷산의 어두운 동굴,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텅빈 아파트, 죽음이 만연한 노인이 살고 있는 집의 열린문, 죽음으로 질주하는 오토바이, 까마귀가 새까맣게 앉아 있는 나무로 둘려쳐진 창가.... 생경한 풍경 속에 이야기를 집어 넣고 익숙하게 만들어 버리는 권현숙의 소설집 [인간은 죽기 위해 도시로 온다]는 한편의 소설을 읽고 다음편을 읽기가 두려워질 만큼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초월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그리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이야기는 그렇고 그런 단편집에서는 결코 볼 수없는 재미를 포함하고 있다. 살아가며 간혹가다 느끼는 이상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구할때 다시 읽으면 좋을 소설들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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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때는 언제나 싱숭생숭하기 마련이다. 이런 저런 일들도 손에 잡히지 않고,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거리는 어쩐지 끝도 없이 느껴지고, 몸과 마음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뭐라 단정지을 수 없는 느낌의 표지와 제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평범한 A와 B의 사랑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사랑의 설레임, 집착, 이별의 슬픔, 분노 등이 때론 낭만적으로 때론 더없이 냉정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몇 번이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사랑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기쁨만큼의 슬픔을 동반한다. 이 책은 그런 점을 드라마틱한 요소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적당한 담담함을 더해 표현하고 있어, 내 입맛에 꼭 맞았다.
벚꽃잎이 비에 젖어 바닥에 떨어져, 저희들끼리 또 하나의 무늬를 만드는 걸 보면서, 잠시 나의 지나간 사랑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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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제목이지만, 나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작가. 하지만 그녀의 소설집은 한 번에 나를 매혹시키고도 남았다. 특히나 주변에 아무도 없이 자신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는 도시인, 현대인.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외로워요,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요. 라고 외치며,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기대와 바램을, 소설은 불친절하게도, 그 어느 해결책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짠,하니 나타나서 그들의 외로움을 부둥켜 안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멍해졌던 작품이었다. 소설에서라도 현실이 아닌 환상을 꿈꾸고 싶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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