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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관점에서 조선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더욱이 실록이나 족보 등 한문으로 기록된 1차 자료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그만큼의 해독 능력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연구자들도 한문 위주의 원전 자료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과거 준비를 하면서 한문을 읽고 쓰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환경과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으로서 오랫 동안 한문으로 기록된 조선시대의 역사 자료를 살피면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연구를 해왔던 저자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이 책은 저자가 30여년에 걸쳐 연구했던 논문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국의 역사 연구자와 공동 작업으로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 명부인 ‘방목(榜目)’을 정리하고, 이를 전산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에 간행된 특정 가문의 족보와 전문 기술자를 뽑기 위한 시험으로 운용되엇던 잡과(雜科) 합격자들의 명단까지 확보하여 연구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남성 위주로 기록되던 조선 후기의 족보와 달리, 17세기 이전의 족보에는 4대의 조상은 물론 딸과 사위 및 외손까지도 수록되어 있어 당대 지식인들의 관계도를 보다 정밀하게 구축할 수 있는 자료로 역할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은 다양한 기록들을 전산화하여 검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1970년대부터 이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저자의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를 ‘출세의 사다리’로 규정하며, 과거 합격자의 면모를 확인하고 그들의 활동 양상을 살펴 당대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때로는 특정 지역의 호적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고, 족보에 나타난 기록들을 살펴 당시 ‘종족제도와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 논하기도 하였다. 특히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를 다룬 내용은 그동안의 역사학계의 관점과 뚜렷이 구별되는 면모가 엿보였다. 비록 부분적으로 조선시대 역사에 관한 저자의 ‘해석’에 공감할 수는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역사 자료를 대하고 접근하는 진지한 자세만큼은 많은 연구자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겠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1960년대 초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에 걸쳐 있는데, 특히 한국 현대사를 다룬 6부의 글들은 외국인이자 한국학 연구자로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해방정국에서 미군정이 취했던 일련의 정책들을 ‘한국에서의 미국의 실패’라 규정하고, 더욱이 4.19 이후 군부의 움직임을 ‘5.16 군사 쿠데타’로 명명하면서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의 말미에는 옮긴이의 관점에서 저자의 연구 성과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는 ‘보론’ 2편을 덧붙이고 있는데, 저자가 공동 집필했던 조선 후기 화가와 관련된 원래 논문이 수록되지 못한 채 그에 관한 보론만이 첨부된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 성과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확언할 수는 없으나, 이 책을 통해 한국학을 연구하는 해외 학자들의 연구 동향을 적절하게 살필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