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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있는 주황색, 옥색의 큰 띠지를 벗겨내자 책에는 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어디론가 가는 길처럼 보이는 그림의 흔적은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노름마치: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그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 결국 판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책 속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바로 노름마치이다. 지금이야 예인의 길을 걷는 것은 돈이 많이 드는 하나의 진로 중 하나가 되버린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예술을 한다고 하면 뚜렷한 자기만의 분야를 가지고 있는 요즘은 세상에서 노름마치들을 찾아보기란 힘이 들다. 진정한 흥과 멋을 찾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신명나게 판을 벌이는 노름마치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있는 것일까.
지금이야 예술한다고 하면 다들 우와 하는 탄성과 함께 왠지모를 동경을 느끼게 된다. 그 사람이 대단해보이고 나도 예술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을 전공하려면 기둥 뿌리 세개는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예술을 멀고도 먼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노래와 춤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이고 또 천민이었다. 사람 대접은 커녕 짐승 대우만도 못한 천민 중의 천민이 바로 광대였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노래와 춤을 하는 기생들은 몸을 파는 작부로 전락했고, 춤과 놀이를 했던 광대들은 시장에서 각설이 타령을 하는 일당 받는 홍보꾼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예술만이 진짜 예술이라고 믿는 사람들 덕분에 그들은 한없이 어렵고 또 어려운 세상을 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노름마치들의 한 많은 삶과 그들의 노래와 춤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보도자료를 엮은 것이라는 소개글이 있었지만 단순한 보도자료로서의 딱딱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에 대한 저자의 한 없는 존경심과 전통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 직접 찾아뵙고 삼고초려하여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했던 저자의 이야기에서 한 많은 노름마치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동네노인들과 온천에 간다고 집을 나와 세탁소에 몰래 맡겨놓은 고운 한복을 들고 상경했던 장금도의 삶 속에서는 가족들에게조차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과거가 되버린 노름마치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연구에 매진했고 또 발전시켜나갔다. 타고난 춤과 노래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을 가져왔고 계속해서 배움을 더해갔다. 모든 것을 전수해줄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는게 참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요즘은 뚜렷한 한 분야만을 연구하는데 반해 노름마치들은 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재주꾼들이었으니까.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답답하기도 하고 울컥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누가 노름마치들을 이토록 구석으로 몰았을까. 왜이리 우리는 전통예술에 무관심했던 것일까. 국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초빙하신 채수정선생님의 판소리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원시원한 목청에서 나오는 그 매력적인 소리에 한참을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아 정말 판소리가 멋지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항상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감동에 감동이 또 더해졌다. 글로 읽고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혼이 담긴 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명나는 판을 보러 앞으로 자주 가야할 것 같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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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前無後無),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저자가 한 팸플릿에서 썼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전무후무(全舞珝舞), 가장 완전한 춤. 그 춤판의 고수들이 노름마치다. 과연 앞으로는 다시 볼 수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 두 권의 책에 묶였다. 최고의 명인이라 불리는 18인의 고수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편히 앉아 그들의 삶을 엿본다는 게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누군가가 예술은 곧 놀이라 하였다. 그러나 놀이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예술이 되려면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 만만치 않은 놀음판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 있다. 놀음을 마치게 할 정도의 최고의 명인을 일러 남사당패 은어로 '노름마치'라 하니 되뇌여볼 수록 과연 그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4무[武·舞·巫·無]에 사무친 한 사내가 있다. 그 사내가 바로 진옥섭,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심지어는 자신들의 과거를 꼭꼭 숨기며 사는 명인들을 찾아가 그들을 무대에 올리고 이제는 책으로까지 엮었다. 장단을 따라 춤을 추는 듯한 그의 문장은 그대로 춤판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 눈이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춤추는 문장이 저절로 내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진양조로, 때로는 휘몰이로 치달으며.
그 장단에 따라 18인의 명인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위로 치솟다가 아래로 푹 가라앉기를 수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초야에 묻힐 뻔했던 춤꾼이 무대에 올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땐 내 마음엔 뜨거움이 치밀어 오른 반면, 끝내 그토록 기다리던 빛을 보지 못하고 작고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착잡하게 하였다. 일생을 기다리던 명무전에서 춤추고픔을 억누르며 북을 쳐야 했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춤꾼 허종복의 이야기에선 새어나오는 한숨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걸작'에 지정되게 만든 '조선성악연구회'를 이루던 명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밥집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또한 재주로 인해 남다른 삶을 살아온 각각의 명인들의 한 많은 세월에 감히 어떤 감상을 드려야할지. 그들조차도 가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함구해온 이야기들이다. 나로서는 그저 책으로나마 그들을 알게 되어 송구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낄 뿐이다.
책은 때때로 크고 작은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읽고 나서 혼자 간직하고픈 책이 있는 반면, 드물긴 하지만 세상에 알려야할 의무를 느끼게 해주는 책들도 있다. 이 책이 그러하다.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각자의 취향이 유독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책이므로.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울고 웃게 만드는 책, 무엇보다 우리 것이라 더 무심했을 지도 모르는 우리의 예술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많은 삶을 살아온 명인들의 구성진 입담과 저자의 재기 넘치는 말놀이가 당신을 웃게 하고 또 울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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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음과 마침의 합성어로 노래와 춤에서의 최고의 명인, 고수 중의 고수가 노름마치란다. 은어라지만 우리말은 뜻도 뜻이지만 모양새도 참 예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노름마치. 모두들 과거 옛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예술을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즐겼던 춤과 노래를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켰으며 활짝 꽃 피워 열매까지 맺게 했다. 이러한 사실은 진짜 우리 것, 우리 춤과 노래를 보기 위해 알리기 위해 숨어살며 드러내길 꺼리는 그들을 끝까지 뒤좇아 그들의 지나온 삶에 대해 묻고 또 물은 이가 있었기 때문에 알게된 것이다.
노름마치.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들 모두 기생으로 통하는 예기들, 춤추는 처용아비들, 떠돌며 재주를 파는 유랑인들, 무당들로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살다가 세월의 흐름에 묻어 구석으로 숨어 사라져갔다. 지금에야 전통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무형 문화제로 지정하거나 그들의 춤과 노래를 배워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노름마치 그들이 속한 직업은 그 당시 천대받던 평범한 사람이라면 꺼리는 직업들로 지금 여느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로 그런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계신다.
상처받고 아프기까지 한 자신의 삶을 애써 잊고 싶을지도...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기에 지금의 소중한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가족을 위해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으리라.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그가 아니었다면 그의 전통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노름마치의 치열했던 삶의 자취와 그들 자신인 노래와 춤이 우리의 아름다운 유산이 그렇게 그렇게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진옥섭 그 덕분에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이야기, 노름마치들의 이야기를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나마 엿볼 수 있어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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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답변해 주지 못한 답을 책에서 만나다. 돈도 감당할 수 없이 갑작스레 많이 찾아오면 부담이 되잖아. 적당히 잘 운용할 수 있는 경제지식이 필요해. 독서를 하면 경제 지식등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어. 또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간혹 운이 좋으면 지혜를 만나기도 해. 생각의 힘은 각자 다르잖아. 그 세기에 깊으면 깊은 통찰력을 얻기도 해. 중요한 건 그런 생각의 힘, 사유의 힘을 얻기 위해, 가장 최소한의 비용과 장비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책이라는 거지.'
이렇게 답변을 했지만, 책을 잘 알지도 깊이도 없었기에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책보다 더 멋진 만남과 여행등의 다른 체험들보다 독서가 더 매력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에 힘겨웠다. '노름마치' 책을 읽은 후, 후배에게 들려줄 작은 답을 하나 찾아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 네가 말한 체험과 삶의 흔적이 이 책에 담겨있어. 지혜뿐 아니라, 한과 서글픔 그리고 인고의 묵묵함까지 말이야. 체험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이라는 세 박자가 만나야 하지만, 책은 시간과 장소는 네가 정할 수가 있어. 만나려하는 너의 의지만 있으면 말이야. 18인의 예술인의 삶과 한 뿐 아니라 네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을거라 믿어. 네가 생각하려는 의지만 마음에 담고 있으면 말야. 한 번 읽어볼래?'
'놓치지 말고 꼭 읽어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좋은 책은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직접 꺼내어서 읽어보면 된다.
책을 받고 2주간 10번을 넘게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하루에 한시간씩 매달렸다. 썼다 고쳤다만을 반복했다. 결국 오늘 수업에 지각하는 걸 감수하면서 마무리 했다. 수업에 늦은 아쉬움보다 서평이 좋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답답한 마음에 더 힘겹다. 좋은 책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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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라는 낯선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노름마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노름'은 놀다의 '놀음', '마치'는 마치다의 '마침'. 즉 '노름마치'란 놀음을 마친 사람, 최고의 잽이(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라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름마치'들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의 고수였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한 천재들이었다. '樂'을 자제하고 책 읽는 것을 최고로 쳤던 나라의 전통 때문에 북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예인들은 한낱 광대에 불과했다. 이 나라 안에서는 단연 으뜸이었지만, '나는 이런 저런 것을 하는 예인입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칠 수가 없었다. 화려했던 과거를 마치 낡은 흑백 사진처럼 혼자서만 고이 간직하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기, 남무, 소리꾼, 광대, 무당, 춤꾼들은 모두 노름마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노름마치'라고 불리워질 수 있었던 것은 화려했지만 아픈 과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기 심화영. 그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나는 한참동안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말그대로 "꽃다웠기" 때문이다. 요즘 내놓아라 하는 미인들은 저절로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녀, 그녀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만큼 그녀의 삶에도 굴곡이 많았다. 보통 예기들은 가족의 경제적인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춤추고 노래한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들은 학교엘 보냈다. 그러나 지나가는 노래에 잠시 어깨라도 들썩이면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가 일쑤다. 처용의 아비들 남무. 처음 춤을 추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처럼 여자의 역할이 필요하면 남자가 여장을 하고 춤을 췄다. 그러던 것이 조선이 막을 내린 후 여자들이 춤을 추게 된 것이다. 선비의 나라 조선에서, 남자라면 당연히 글을 읽거나 농사를 지어야 하는 조선에서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들. 소리꾼들도 외모가 바쳐줘야 최고로 인정 받을 수 있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모가 평범한 사람들은 득음으로 소리꾼의 이름을 떨쳐야 했다. 그들은 득음을 하기 위해 일부러 목을 괴롭히고, 급기야는 뒷간의 배설물까지 먹곤 했었다. 그렇게 득음한 그들은,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나마 다른 노름마치들에 비하면 좋은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 예인들을 한데 묶어서 광대 혹은 광대 놀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광대들은 따로 있었다. 그 유명한 공옥진 여사도 광대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광대 놀음이라고 했을 때, 지정한 광대들은 얼마나 섭섭했을까. 신 내림을 받은 무당, 여섯 노름마치 중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노름마치가 아닐까 싶다. 한부전이라는 이름보다는 '꼬추가루'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그녀의 하나뿐인 결혼 사진은 반쪽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녀가 신내림을 받자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있는 반쪽을 떼어 갔다고 한다. 피붙이들에게까지 외면당했던 그들은 매일 매일을 작두보다 더 날카로운 현실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그들에 대해서 몰랐던 그동안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즐거움과 고통을.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나니 그들의 '놀음'도 보였고 어설프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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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따쿵 쿵따쿵 쿵따쿵 쿵따쿵~ 덩따쿵 쿵따쿵 쿵따쿵 쿵따쿵~
한때 풍물을 배워보겠노라고 쫓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잠시나마 양순용 선생님의 임실풍물을 배우고자 임실의 전수회관에서 뜨거운 한여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겉바람만 잔뜩 든 날라리에 불과했다. 옛것을 배워보겠다는 의지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살려야한다는 주장도 지금 생각해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된다.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얼굴이나 내미는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악기라도 하나 제대로 배워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날라리로라도 듣는 가락은 조금 있었으니 선배들의 장구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확실히 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풍물은 마당에서 하는 놀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나 같은 날라리도 소고라도 하나 들고 따라다니면서 판에 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서구화된 생활풍조 안에서 우리의 전통을 지켜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전통들을 생계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지켜내온 그 노름마치들의 삶은 단순히 어느 경지에 오른 장인 정도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우리의 역사와 한과 개인의 고난한 삶들이 총체적으로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름마치>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쉼없이 흘렸을 그네들의 땀방울이 한 글자 한 글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쉽게만 살아가려고 하는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입으로는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쉽고 편한 삶만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풍족했던 생활로 인해 한량이 되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제대로된 것들을 배우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수십 년 동안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움’이 아니라 ‘겪음’을 통해 노름마치가 되었다. 그래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추어지는 경지에 다다르고,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오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노름마치>를 통해 이 땅의 소중한 전통을 이어가시는 분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미 작고하신 분도 계시고, 살아 계시더라도 대부분 고령이라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그분들의 춤과 노래와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분들의 삶이 이 책을 통해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계속 전수되어 그 전통이 이어갔으면 한다.
* 좋은 글귀
“걷는 건 두렵지만 춤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 몸속에 소리와 음악이 모두 들어 있어, 선율의 흐름 따라 그때그때 춤이 달라진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된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1권, 22면)
“머리끝엔 채상이 놀고, 손끝에는 소고가 놀고, 발끝에선 몸이 논다. 모두가 제각각이니 뼛속까지 익은 자만이 꺼내놓는 절정이다.” (2권, 53면)
by 꽃다지, 2007년 5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