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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歐陽修)의 '상강천표(瀧岡阡表)'
자녀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녀를 온전한 인격체로 제대로 교육하기란 참 어려운 문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똑같이 중요하다.
인생이란 어차피 남녀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일진댄,
어린 시절 가정교육에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골고루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우리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가정적인 어려움을 감내한 채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캐나다로 옮겨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식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열망이 우선적으로 담겨 있다.
온 세계가 지구촌(global village)화 되어 가는 시대에, 글로벌 인재로서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영어 구사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 영어는 일상회화 수준이 아니라, 무수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화하고 그것을 조리 있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다.
인류사회가 최첨단 지식 정보화 시대로 발전해나갈수록, 우리의 메마른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남녀가 어울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이웃과 더불어 정답게 살아가는 것일 게다.
가족의 가치와 인륜 도덕을 모르고 따스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영어를 익히고 전문지식을 갖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녀가 아버지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든지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지 않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아버지의 부재 내지 상실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본다.
그 가능성의 일단을 구양수(歐陽修)의 어머니 정씨(鄭氏)를 통해 발견한다.
정씨 부인은 청상(靑孀)이라는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명문가 출신답게 아들을 반듯하게 잘 키웠다.
집안이 가난하여 지필묵(紙筆墨)을 살 돈이 없자, 모래판을 종이 삼고 갈대줄기로 붓을 삼아 아들에게 철저하게 글자 익히기를 연습시켰다.
구모화적(歐母畵荻)이라는 이 이야기는 한자 습득이라는 기초 다지기에 관한 엄한 모친의 가르침이었다면, 아들의 뇌리 속에 아버지의 형상을 선명하게 심어준 것이야말로 진정한 현모의 모습이리라.
구양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0년 뒤에 쓴 '상강천표(瀧岡阡表)'라는 묘비문에서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들려준 아버지의 모습을 소상하게 적고 있다.
효성스러우며 베풀기를 좋아하고, 지방 관리로서 사형수의 생명을 살려낼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관련 서류를 집으로까지 들고 와 잠 못 이루며 고뇌하던 아버지의 어진 모습이 글 속에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버지의 육신은 구양수가 4세 때 돌아갔지만, 그 인간 됨됨이와 정신적 유산은 아들의 뇌리 속에 평생토록 똑똑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구양수가 중국 송(宋)나라를 대표하는 학자, 문인,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올곧게 살아간 데는 아버지의 인애하신 모습을 들려준 어머니의 인성 교육이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계를 움직인 위인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아버지가 일찍 죽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경우가 허다하다.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되는 공자도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편모슬하라고 해서 무조건 결손 가정이 되는 것도 아니며, 고난이 한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고 영혼을 더 아름답게 살찌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늘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현명한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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