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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급측면(중시) 경제학이라고 하면, 자유방임이라든가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에 대한 신뢰(맹신) 같은 조류에 대뜸 연결시키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보수우파 경제학의 든든한 한 분파 중 하나죠. 이 책의 저자 폴 크레이그 로버츠 교수는 실제로 저 학파가 세계 초강대국의 정책 기조를 장악했던 레이건 시절 핵심 경제 핵심 브레인 중 한 명으로 활약했고, 그 공으로 각종 영전을 수훈받은 인물입니다. 아무리 파격적인 발상을 일삼으며 기존 해석의 전복을 꾀하는 논자라 해도, 세상에 레이거노믹스를 두고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책은 우파보다는 진보좌파 독자들이 쌍수를 들어 반길 만한 주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슈퍼리치들만 배를 불리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해지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자체 정화 기능을 상실했다, 약탈적인 금융자본가(뱅크스터라는 신조어를 씁니다) 말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생태를 총체적으로 파괴시키는 몰염치한 기업 활동 때문에 "세계화"된(되어가는) 지구는 오염되고, 가난해지고, 끝내 모두가 제3세계로 전락할 것이다(이건 저의 요약이 아니라, 저자의 책 곳곳 주장을 합쳐 보면 논리적으로 자동 도출되는 명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의 교육 홍보 자료에서나 볼 법한 주장들이라구요? 다시 저자의 약력사항에 눈을 돌이켜 봅시다. "1981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 연방 정부 재무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독자 눈에 지금 헛 것이 보이는 중인지 원.
사실 돌이켜보면 서플라이 사이드 진영은 국민경제라는 거시경제 단위의 총체적 활력, 건강성에 보다 주안을 두었다는 점에서, 행여 자국의 거시경제에 위해가 될 상황의 변동, 정책의 전환 따위가 눈에 보이면 당연히 공격적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격한 근본주의 우파 같으면 아예 거시의 미시환원을 주창하지, "낡은" 국민경제, 국가 같은 관념을 아예 도외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공급측면학파의 전성기 시절 중진 중 한 분이, 탈규제 글로벌 트렌드 속에 자기반성 기제가 거의 해체되다시피한 신자유주의(이 책에서 그런 표현이 자주 쓰이지는 않는데, 다만 "신경제"가 거의 호환되는 개념이기도 하고, 이 책의 원제가 레세 푀르, 즉 자유방임의 총체적 실패를 지적하는 문구이므로 그냥 써도 무방할 것 같아요)를 맹렬히(좌파보다 더합니다ㅋ) 공격하는 게 어떤 변절(ㅎㅎ), 회심, 혹은 리캔테이션 같은 범주로 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즉, 그로서는 "기존에 밀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는 겁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 경제가 다 죽어간다." 이런 위기의식이 든다면, 그 치유를 위한 처방에 (효과만 있다면) 어떤 내용도 담길 수 있죠. 아 "공급 측면을 강화"하는 게 해당 학파의 사명 아니었습니까.
시민운동가는 뜨거운 가슴으로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학자라면 자신의 입장, 혹은 기존 도그마에 대해 반박을 개진할 때 명확한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직관이 아무리 뛰어난 학자(예를 들면 케인즈)라도 치밀한 논증과 실례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그건 자격이 없다고 봐야겠죠. 석학의 저서답게 그는 첫 장에서 "왜 자유방임주의(특히 자유무역 만능주의)의 신화가 (이제는) 깨졌는가(혹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를 차분히, 치밀하게 설득, 입증합니다.
경제학 중 특히 국제무역론을 전개할 때, 경제학의 개조 중 한 명인 리카도의 "비교우위설", 그리고 헥셔-오린 모형의 언급은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이는 마치 애덤 스미스의 분업론이라든가, 알프레드 마셜의 수요-공급 동일가치설이나 마찬가지로 경제학의 무류(無謬)적 절대 도그마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1980년대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 대표라든가, 우루과이라운드라든가, WTO 설립 당시 선진국들이 개도국을 그토록 몰아댈 수 있었던 원동력도, "아니 학문적으로 당위가 확립된 사항에 대해 왜 정치적 핑계를 대며 회피, 부인하려 드는가? 당신은 대학에서 대체 뭘 배웠나?" 이 한 마디에 반박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제 사정이 바뀌고 있다는 소리니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죠. 본래 삼라만상에는 근본 질서라는 게 있어, 일시적으로 교란, 요동을 겪어도 결국은 정상(normal)로 회귀할 수밖에 없고,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도 그 근본 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걸로 여겨져 왔습니다. 작금의 교란은 그저 일시의 일탈이 아니라는 게 이 책의 시사, 아니 강력한 주장입니다.
저자(뿐 아니라 다양한 학파의 많은 학자들이, 이 책에도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듯 이미 제법 오래 전부터 입을 모아 가던 결론이긴 합니다)는 먼저 리카도의 비교우위설이 대전제로 깔고 있던 두 가지 사실을 들춰 냅니다. 첫째(이건 뭐 이론적으로 빼도박도 못할 명쾌한 논증이라 좀 충격적이기까지 한데요) 각국의 상대가격 비율이 달라야 한다, 포르투갈이 (다른 건 다 접고) 와인만 생산하려면, 그 와인이 다른 나라의 사정에 비해 포르투갈 안에서 훨씬 저렴해야 한다. 영국에서 옷:와인=1:2(단위는 일단 무시합시다)이라면, 포르투갈에서 1:1 정도는 되어야 분업화의 이익이 있다(이 경우 영국도 와인은 접고 옷만 생산하는 게 이익인데, 옷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기 때문이죠). 이익이 있다는 건 두 나라 모두, 같은 노력(자본, 노동)을 투입해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 이를 나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도 종전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포지티브 썸 게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는 어떤가? 물론 편차가 여전히 존재하나, 세계화가 상당히 진척된 지금 어느 나라건 상대가격 구조에 별 차이가 안 나는 게 현실에 가깝다는 겁니다. 옷과 와인의 가격은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대체로 1:2의 비율이라는 거죠. 저자는 상당히 날카롭게 일반의 착각을 지적하는데, 일본의 자동차 회사가 미국보다 싼 값에 자동차를 생산하는 건 리카도의 이론에서 말하는 그 비교 우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자동차가 흔하게 만들어져야 그게 리카도적 의미에서의 비교우위라는 뜻이죠.
두번째로 진짜 충격은 이 부분인데, 리카도는 특히 생산 요소 중 자본의 국제 이동을 거의 상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자본이 다른 마음을 먹고 생산 기지를 (인건비가 싼, 혹은 토지 임대료가 저렴한) 타국으로 옮긴다면, 리카도의 세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지금 자본은 아무 한계 없이 국경을 넘나들지 않습니까?(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세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또 그래서 토빈稅 같은 게 몽상이 아닌 현실 제도 도입이 운위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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