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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나누는 것. 그것은 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실로 오랫동안 고전으로 인정받아왔다 고전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대단한 스케일과 묘사는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사고는 내가 따라가기에 지나치게 거대하고 술에 취하고 정신이 혼미하고 찌는 듯 더운 소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간신히" 읽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그를 재발견했다 도대체 "죄"란 무엇인가? 그의 "벌"이 구원을 얻기까지의 혼란과 갈등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그의 "죄"가 스스로의 신념 안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세기, 하나님을 믿고 결국 '고전'을 만든 이가 '그런 것'을 "죄"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죄"는 '하나님에게 대적한 것'이다. '신의 권리를 제가 사용한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선악을 판단할 권리는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 죄, 육신이 짓는 죄와 영혼이 짓는 죄, sin과 crime 그의 "이름"이 상징하듯이 (Ras는 러시아어로 '나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의 "죄"는 '사람을 나눈 것'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귀족과 평민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초인과 일반인,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의 분류에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신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신도 하지 않는' 그 선악의 grouping을 '인간도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전쟁도 차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을 인간이 완전히 하지 않을 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게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판단할 권리가 없다 어떠한 가치도 "내 영역"에서는 판단할 수 없다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창세기 2장 16절下 ~ 1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