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저 멀리 고대 그리스에는 알키비아데스란 미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 외모가 어찌나 잘났던지, 어릴 적에는 잘생긴 외모로 아테네의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네들의 부인들을 독수공방하게 만들었고, 커서는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남편들을 전전긍긍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당대 대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라는 든든한 배경도 있었으니 집안의 부와 명성도 가히 출중하다 할 수 있겠다. 요즘 말로 따지자면 명문대에 대기업까지 어려움 없이 들어가곤 하는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 정도라고나 할까. 이리도 잘난 그가 소크라테스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 18세였다. 오만할 정도로 항상 자신만만하고 기세등등했으며 자신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을 숱하게 놀리며 모욕하곤 했던 그이지만, 유독 소크라테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심지어는 스승이 권하는 철학적 삶의 방식에 열중했다고 전해지니 보통 일이 아니었으리라. 아무튼 소크라테스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는 말 그대로 “(그간) 내 영혼이 뒤흔들리거나, 마치 노예 상태에 빠진 것으로 착각해 분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마르시아스 인 소크라테스 선생은 수없이 나를 그런 상태에 빠지게 했기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 나는 누구 앞에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지만, 단지 선생 앞에서만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내가 선생에 반대할 수 없으며 또 선생이 나에게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내 의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내 양심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향연』” 소크라테스도 조카뻘(둘은 19살 차이가 난다)인 그가 싫지만은 않았나보다. 아니, 오히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나에게는 이 젊은이에 대한 사랑이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니 말일세. 내가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하게 된 다음부터 다른 어떤 아름다운 젊은이도 진지하게 바라보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네.『향연』” 그런 그이지만 알키비아데스가 완전히 성장할 때까진 이상 하리 만큼 그를 기피했다.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유혹(?)하기 위해 애달파 하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이가 안타까울 정도다. “나는 선생을 만나 단둘이 있게 되었으므로,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선생이 나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이 선생은 나와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함께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향연』” 이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하늘도 그 정성에 감동했는지 어느 날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만찬에 초대하고,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그와 같은 이불(망토)를 덮고 자는데 까지 성공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짜다, 알키비아데스가 신 앞에서 맹세까지 했으니. “나는, 신들과 여신들 모두에게 맹세하건대, 그늘 밤 소크라테스 선생과 함께 잤지만, 아버지나 형과 함께 잤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걸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향연』” 당대 외모가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그였기에 자존심도 많이 상처받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절규한다. “나는 젊은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선생의 유일한 약점을 나의 아름다운 외모로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갈팡질팡 헤매고 있습니다. 이렇게도 속속들이 노예가 되다시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바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향연』” 소크라테스 스스로도 인정한다. “다른 이들은 성가실 만큼 자네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몇 해가 돼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103a)” 유독 알키비아데스에게 냉랭했던 그이지만 어느 날, 이전에는 들을 수 없던 다정한 목소리로 알키비아데스에게 충고한다. 정치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실 알키비아데스와 같이 커다란 야망을 품은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정치에 끼어드는 일은 아테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멀리 리쿠르고스가 그랬고, 알키비아데스와 가까이 코리올라누스가 그랬다. 더구나 알키비아데스는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유리한 길이 많았다. 우선 이름난 가문에서 부자로 태어났으며,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고, 많은 친구와 친척들이 주위에 있었다. 더구나 뛰어난 웅변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좋은 말과 아름다운 전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아리스토파네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플루타르크 영웅전』”이라고 묘사했겠는가. 오늘날에도 제 분야에서 좀 성공했다거나, 남들보다 좀 잘났다 싶은 사람이 정치(작금의 정치를 과연 정치라 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내버려두자)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학교에서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온 대학 교수나, 경제계에서 제법 영향력을 끼쳐온 사람들도 결국 국회로 향한다. 심지어 연예인까지도 그런다. 예전 신성일이 그랬고, 비교적 최근의 유인촌이 그러고 있다. 배움이나 돈, 대중의 사랑까지도 정치의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들보다도 모자랄 것 없는 알키비아데스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결사반대 한다. 알키비아데스가 스스로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서이다.
정치가는 언제 필요할까. 알키비아데스는 거침없이 말한다. “전쟁이나 평화와 관련된 경우입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또는 그 밖의 나랏일과 관련될 경우입니다.(107d)” 소크라테스의 정리를 빌리자면 “그들이 누구와는 평화롭게 지내고 누구와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지, 그리고 또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숙의할 경우(107d)”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누구와는 전쟁을 벌이고 또 누구와는 그러면 안 되는지를 아는 것은 ‘정의’를 아는 것과 동일한 문제이다. 정의롭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일 테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의 문제는 ‘정의’의 문제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는다. “자네는 자신이 그것(정의로운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나 모르게 배움을 얻은 것인가? 다시 말해 더 정의로운 것과 더 정의롭지 못한 것을 식별할 수 있도록 자네를 가르친 교사한테 나 모르게 드나든 것인가? 그래 그분이 누구인가? 내게도 알려주게.(109d)” 알키비아데스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된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정의로운 것’을 스스로 배웠다고 답한다. 그러나 정의와 같은 심오한 개념을 몇 월, 몇 일, 몇 시에 배웠는지 어찌 대답할 수 있으랴. 정확히 몇 살 때까지 정의에 무지했으며, 정확히 몇 살 부터 정의를 알게 되었냐고 꼬치꼬치 캐묻던 소크라테스의 기에 짓눌려, 알키비아데스는 결국 스스로 배운 것이 아니 노라며 실토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지고 말 알키비아데스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 남한테 배웠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알키비아데스는 “저도 남들처럼 배운 것(110d)”, 특히 ‘대중’에게 배웠다고 에둘러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계속 꼬투리를 잡는다. 대중을 스승으로 삼기에는 그들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일찍이 로마인들은 그리스인을 일컬어 ‘시끄러운 사람들’이라 부르고는 했다. 워낙 논쟁과 토론을 즐기던 민족이었기에 나온 말이다. 몇 명만 있어도 여러 패로 나눠줘 자기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반박해온 사람들인데, 수천, 수만의 대중이면 오죽했으랴. “이런 일들에 대해 대중은 사적인 차원에서 서로 간에 있어서나 각자 자기 자신에 있어서나 동의를 보며, 또 나라는 나라대로 공적인 차원에서 서로 달리 말하면서 시비를 거는 법이 없지 않겠나? (···) 그리고 이런 일들에 의해 다중이 이견이 있는 걸 보게 되면, 그것이 자네에게는 다중이 형편없는 교사라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되겠는가?(111c-e)” 말문이 막힌 잘생긴 알키비아데스. “자네의 침묵을 동의로 간주하겠네.『크라튈로스』” 정의에 관해 스스로 찾아낸 적도 없을뿐더러, 정의에 관해 어느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음이 뽀록났다. 그런 그가 겁 없이 정치를 한다고 하니 소크라테스는 호되게 질책한다. “정의로운 것들과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관해서, 알키비아데스는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이 전여 알지 못하는 것들에 관해 민회로 나가 아테네인들한테 조언하려고 한다는 것이지. (···) 이 사람아, 자네는 배우는 일은 돌보지도 않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가르치겠다는 정신 나간 계획을 착수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말일세.(113b-c)” 이쯤에서 포기할 만도 하건만, 앞서도 말했듯이 알키비아데스의 삼촌은, 아테네와 그리스 또 심지어 여러 야만국가에서까지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거물 정치인 페리클레스였다. 세치 혀로 온 세계를 주무르던 친척을 어려서부터 봐왔으니 알키비아데스는 여전히 그깟(!) 정치쯤을 우습게 생각한다. 더욱이 신화는 그리스 시민들이 황금시대 이래로 계속해서 쇠퇴했음을 지적해왔다. 알키비아데스가 보기에도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이기적여 졌고, 먹고 사는 문제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치가 더 만만해진 이상 그는 더욱 포기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원래 고대 그리스는 이러지 않았다. “폴리스는 격렬히 고민하는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침투되며, 이곳에서는 누구나 항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특성을 부각시켜야만 했고 독특한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임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고 바꿀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의 장소이다.『인간의 조건』” 그런 폴리스에 대한 애착으로 사람들은 배심관, 전쟁, 공적 업무의 관리와 같은 부담을 기꺼이 맡아 왔다. 그러나 폴리스가 쇠퇴함에 따라 “각자는 서로 분리되어 생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의 자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는 전체 인류에 해당한다. 그 이외의 다른 동료 시민들의 경우 가까이서 생활은 하지만 알지는 못하며, 접촉은 하면서도 피부로 느끼지는 않는다. 요컨대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해 있으며 혼자의 힘으로 생활하려 한다.『미국의 민주주의』” 정치 그까지 것 대충 해도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시민들 앞에서 호된 망신을 당하거나, 진땀 흘리며 자기변호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키비아데스는 다시 소크라테스에게 대든다. “그들이 아마 교육을 받은 자들이라면,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자는 운동선수를 상대할 때처럼, 배우고 단련을 하고 난 다음 달려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은 그들도 나랏일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임했으니, 그들과 맞서 싸우려는 자가 단련을 할 필요가 뭐 있고 배우는 일로 애를 쓸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저는 자질 만큼은 이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확신하거든요.(119b)” 알키비아데스의 말을 전적으로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왕 정치란 힘든 싸움을 시작할 바에야, 자신보다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무서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고만고만한 자들과 어울린다면 배워야 할 때 배우지 않고, 단련이 필요할 때 단련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결코 ‘남자’가 되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알키비아데스는 생각 없이 말한 죄로 소크라테스에게 다시 한 번 혼쭐난다. 더구나 아테네를 통치하게 되면 스파르타, 페르시아 제국 등과 같은 아테네의 적들을 만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인과 페르시아 인들이 아테네인들보다 우월한 점을 지적한다. 우선 부의 측면이 그렇다. 알키비아데스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동양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전제 군주 페르시아 왕의 재산에 비할 수는 없다(소크라테스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에서 페르시아 왕의 권세를 다시 언급할 정도였으니,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받은 인상을 알만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훌륭한 품행, 영혼의 위대성, 용기, 인내력 등 젊은이들에게 훈련, 승리, 명예 등의 취향을 심어 주는 교육이다. 페르시아 교육의 장점은 더 대단하다. 페르시아 왕은 어려서부터 지혜와 정의, 절제와 용기의 네 명의 선생들의 보살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하면 알키비아데스가 처한 상황은 우울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쐐기를 박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왕의 어머니에게 ‘데이노마케의 아들이 당신의 아들과 맞설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어머니에게는 기껏해야 50므나 가격의 장신구가 있고, 그녀의 아들에게는 300플레트론이 못 되는 땅이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도대체 뭘 믿고 알키비아데스라는 자가 아르톡세륵세스와 맞붙을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의아해 할 것이고, 내 생각으로 그녀는 ‘이 작자가 돌봄과 지혜만을 믿고서 도전하는 군. 이것들이 유일하게 그리스 사람들이 내세울 만한 것이니까’라고 말할 걸세. 그렇지만 알키비아데스라는 이자가 우선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이고, 게다가 교양이라고는 어느 구석에도 없으면서 도전하고 있다면 (···) 그녀는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과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우리의 것과 비교해 보고는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할 걸세. (···) 자신들이 지닌 것을 보고서는 자네가 그렇게 나쁜 상태에서 그녀의 아들과 맞붙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할 걸세.(123c-124a)” 기원전 430년 알키비아데스는 정치계에 입문하여 아테네의 운명을 짊어지려 했다. 그는 적들과 동일한 부를 소유하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과 같은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페리클레스는 무지로 가득 찬 노예 조퓌로스에게 알키비아데스의 교육을 전담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에서 충고한다. 너 자신을 좀 성찰할 필요가 있고, 너 자신을 좀 알 필요가 있다고. “델피에 있는 글귀를 받아들여 자네 자신을 알도록 하게.(124b)”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그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소크라테스는 타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며 등한시하지 말라고 선동한 최초의 인물이다. 소크라테스가 기소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죄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을 망각하지 말고 돌보며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은 쉬 사라지지 않아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역사적인 재판에서도 아테네시민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볼 것을 간곡히 애원한다. “제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여러분께서 젊은이들이든 나이 든 분들이든 간에, 자신들의 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혼에 대해서 마음 쓰는 것에 앞서 또는 그만큼 열성적으로 몸에 대해서도 재물에 대해서도 마음 쓰는 일이 없도록 설득하는 일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물로 해서 사람으로서의 훌륭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훌륭함으로 해서 재물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도, 사적이나 공적으로나, 사람들을 위해 좋은 것들로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요. (···) 이것들은 신이 지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십시오.『소크라테스의 변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을 돌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던 알키비아데스가, 자신의 아름다움만 믿고 아테네의 운명을 담당하고, 타인들을 통치하려고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않으면 타자들을 잘 지배할 수 없고, 올바른 정치로 나갈 수도 없기에, 소크라테스가 나선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단골 레퍼토리였으니 이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을 알키비아데스에게 전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한테는 대놓고 닦달하던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왜? 『알키비아데스』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 소크라테스의 기나긴 기다림에서 살포시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대화의 전반부 전체에는 소년에 대한 사랑, 즉 남성들에 에로스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어 나타난다. 한 소년을 한 남자로 성장시킬 수 있는 이 사랑은, 오히려 알키비아데스에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키비아데스가 자라는 동안 그의 육체만을 원하는 남자들은 그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정작 알키비아데스가 자기 자신을 배려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한술 더 떠 그들은 적나라하게 말해 더 이상 알키비아데스의 몸이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때 그를 버렸다. “그러면 자네의 육체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이 시들면 떠나가 버리지 않겠나? 혼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것이 더 나은 쪽으로 가는 한은 떠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나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자네의 육체가 시들어서 다른 사람이 떠나더라도 곁에 남는 사람일세.(131c-d)” 원래 그리스 사회에서 동성애는 기성세대가 2세들을 교육하는 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 남성은 소년과 성관계를 맺지만, 그 과정에서 소년과 함께 운동하고 도덕적인 지도를 함으로서, 소년의 몸과 마음을 성숙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애인이 결합될 때, 각자에게 적합한 원칙에 따라서, 곧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애인을 위해 어떤 봉사든 다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원칙에 따라서, 사랑받는 사람은 자기를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의 뜻에 따라 어떤 행동이든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원칙에 따라서 결합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애인의 지혜와 덕을 위해 기여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자신의 교육과 지식 일반의 증진을 우해 열성을 기울일 때, 오직 이 두 원칙이 일치할 때에만 한 소년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명예로울 수 있습니다.『향연』” 하지만 이럴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성인 남성 어른은 필연적으로 둘 간의 관계에서 능동적 역할을 맡겠지만, 소년은 수동적 역할·여성적 역할을 맡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년도 언젠가는 폴리스를 이끌 한 주체가 될 몸이기에 언제까지나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는 없다. 그래서 동성애에 관대했던 그리스 사람조차도, 다 큰 성인남자간의 동성애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그렇다고 이들의 성적 열망을 잠재우기에는 욕망이 너무 크다. 따라서 이 모순은 소년이 자라남에 따라 점차 그 관계를 사랑(eros)에서 우애(philia)로 전환시킴으로서 해결한다. 성인 남자는 자신의 ‘지혜’로서 소년에게 구애를 하고, 소년은 아름다운 ‘몸’으로 성인을 만족시켜 주었다. 성인의 지혜는 점차 소년에게 이어지고 소년은 그 대가로 제 몸을 허락한다. 점차 소년은 나이를 먹고 매력이 사라지지만 이 둘은 ‘지혜’를 통해 평등해지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우정 역시 돈독해져간다. 육체의 동반자에서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고나 할까. 한참 전성기의 그리스에선 이래야 정상이었지만, 쇠퇴기의 그리스는 그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알키비아데스의 추종자들은 알키비아데스의 몸에만 정신이 팔려 필리아의 단계로까지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알키비아데스의 추종자들은 그의 몸에만 관심이 있던 나머지, 이 에로스를 우애로 전환시키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에 입문하는 것과 같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 모두 여기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가 나이 들기를 기다리고, 그의 가장 화려한 청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육체에 대한 사랑을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바꾸는, 다시 말해 필리아(philia)의 관계를 이룩하기 위해서다. 오직 소크라테스만은 그들이 결코 하지 못한 일, 바로 알키비아데스의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조언이 필요한 순간, 그 역할을 했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곁을 떠났다. 그제 서야 소크라테스는 나선다. 자신은 그에게 속하는 것(육체)을 사랑한 것이 아닌, 그 자신(영혼)을 사랑했노라고. 돈 많고 집안 좋고, 게다가 얼굴도 잘생긴, 하지만 이 모든 것 때문이 아닌, 단지 소크라테스란 선생을 뒀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정녕 부러워진다. “클레이니아스의 아들 알키비아데스한테는 그를 사랑하는 자가 과거에도 현재도 딱 한 사람만 있는 듯하니, 그가 아낄 만한 이 사람, 소프로니스코스와 파이나레테의 아들인 소크라테스다.(131e)”
노자 도덕경에는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란 말이 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감으로 가득 찬 야심만만한 청년 알키비아데스에게 이깟 말이 들리기나 했을까. “‘알키비아데스, 자네는 현재 지니고 있는 것들을 유지한 채 살고 싶은가, 아니면 그 이상을 얻고 싶지만 그럴 가망이 없으면 그 즉시로 죽고 싶은가?’라고 신께서 물어 오시면, 내가 보기에 자네는 죽음을 택할 것 같네.(105a)”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알아본 스승 말대로 그는 현실에 만족하는 대신, 그 이상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내딛었다. 알키비아데스의 죽음을 예견(?)한 소크라테스의 말마따나 그의 정치 역정은 그다지 순조롭지만은 못했다.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고 전쟁에 연승하면서 아테네에서 기반을 쌓은 그는, 그를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으로 스파르타로 망명하고 만다. 스파르타 왕의 총애 받는 참모로 숨죽이며 살던 것도 잠시, 워낙 걸출한 인물이라 그런지 결국 왕비와 간통했다는 죄로 다시 페르시아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 기원전 404년 살해당하기 이전까지 다시 아테네로, 이오니아로, 페르시아로 자리를 전전하던 알키비아데스. 역사에 무수히 등장하는 그저 그런 3류 배신자로 스쳐져갔을 법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둔 행운으로 소크라테스의 수많은 친구들처럼 역사 속에서 스러지지는 대신 우뚝 솟을 수 있었다(플라톤 저서의 대부분은 소크라테스와 이야기를 나눈 인물의 이름이 제목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알키비아데스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꽃이 될 수 있었다. 화려했던 외모만큼이나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의 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