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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은 누구인가? 영화 <매트릭스 (Matrix, 1999)>에 따르면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서 사육되면서 가상현실을 진실로 믿고, 생활이 아닌 생존을 하는 존재일 것이다. 한편 <닥터 모로의 DNA (The Island Of Dr. Moreau, 1996)>에서 인간과 동물의 유전적 조합으로 태어난 제3의 생명체들은 자신이 동물인지 인간인지 혼란스러워한다. B급 영화라 할 수 있는 <오토매틱 (Automatic, 1994)>에서는 탐욕과 폭력을 일삼는 인간들보다 더 순수하고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의 고뇌가 드러난다. 또 <로보캅 (RoboCop, 1987)>에서는 죽은 뒤 사이보그로 새롭게 태어난 주인공이 사람으로서의 기억의 일부가 남아 감정의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최근의 <아일랜드 (The Island, 2005)>에서는 복제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오리지널 인간을 죽이는 이야기까지, SF영화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인간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테크놀로지가 극도로 발달한 미래사회에서 이 질문은 더욱 심각하게 제기될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에서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앞으로의 우리는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새롭게 묻고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태어나지 않고, 체세포의 복제를 통해 태어났다고 해서, 아니면 몸의 상당부분이 기계로 대체되었다고 해서, 그것도 아니면 인간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겪을 정체성의 혼란은 누구의 몫이며, 그들의 생명은 가차 없이 폐기되어도 마땅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자리에 바로 저주받은 걸작이라고도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가 있다.
스모그로 자욱한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 시가지 여기저기에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아오른다.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특수경찰인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Deckard : 해리슨 포드 분)는 화성에서 지구로 탈출한 레플리컨트 네 명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유전 공학에 의해 인간과 비슷한 지적 능력에 신체적인 능력은 오히려 뛰어난 최신모델인 넥서스 6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와 관련된 기억들을 질문하면서 홍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데커드는 넥서스를 창조한 타이렐사에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레이첼(Rachael: 숀 영 분)을 만나는데, 그녀 역시 레플리컨트임이 밝혀지고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레플리컨트를 추격하다가 위험에 빠진 데커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레이첼에게 사랑을 느낀다.
당시 레플리컨트는, 자신들을 창조한 인간에 비해 신체적인 능력이나 지능에 있어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다. 다만 그들의 수명은 4년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지구로의 귀환은 금지되어 있는데, 넥서스들은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신들은 창조주인 타이렐 회장을 만나지만 수명은 창조 당시에 결정되어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
어두컴컴한 낡은 아파트에서 데커드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던 전투형 넥서스 로이(룻거 하우어 분)는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느끼고 건물의 철근에 매달린 데커드를 구하고 최후를 맞고, 데커드는 집으로 돌아와 이미 제거 명령이 내려져 있는 레이첼을 데리고 떠난다.
"난 사람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많이 보았어. 오리온 행성에서 함선이 불타는 모습. 난 암흑 속의 탄하우저 게이트에 씨빔이 생성되는 것도 봤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야.(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a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영화 속에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여러 상징과 암시로 가득하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대립이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립이다. 영화 속의 시간은 밤이 아니면 어두운 나이트클럽 또는 무너질 듯한 아파트 내부로, 오직 데커드의 꿈에서만 밝음이 나타난다. 원작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그려낸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더욱 우울한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편 DVD에서는 잘린 데커드와 레이첼의 도피 장면에서도 밝음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데커드가 찾아가는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립은 타이렐 회장과 넥서스들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로이는 타이렐 회장을 ‘아버지(Father)'라 부르며 수명의 연장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자 그를 살해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모습이다. 영화에서 제거 대상인 넥서스들은 인간들 모두에게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같은 레플리컨트들에게 강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고, 그들의 요구는 바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그에 비해 그러한 레플리컨트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창조물을 감탄하며 바라보거나 단순히 처형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이란 얼마나 비정한 존재인가?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그리고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사이보그, 레플리컨트 또는 A.I. 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과연 그들의 생명(?)이 인간이 창조한 것이기에 우리들 마음대로 거두어가도 되는 것인가를?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를 듣고 비디오를 통해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의 SF영화는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시 본 영화는 그 전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DVD로 본 <블레이드 러너>는 내가 예전에 보았던 비디오 출시판과 다른 것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비디오에서는 어딘가로 가는 데커드와 레이첼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DVD에서는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느닷없는 종결은 이전의 결말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워 마치 영화를 보다 만 듯한 기분이었다.
새삼 <블레이드 러너>는 서너 가지 판본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것은 이 DVD가 갖고 있는 큰 아쉬움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제작사의 상술에 화가 나기도 하고…. <블레이드 러너> DVD가 절판된 이후 많은 이들이 새롭게 출시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2007년도에 확장된 모습으로 출시한다고 예고해 놓고 기존의 DVD를 한 해 먼저 다시 내놓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만들어 놓고는 최소한의 서플먼트도 없이 달랑 영화 본편만 들어 있다. <블레이드 러너>를 진정 기다려온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는 횡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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