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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존경받는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이 저자라는 점. 저자의 신앙에 대한 것과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는 앞 부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던 주제.
호기심으로 읽게 된 책이었는데 다음 날 새벽 1시가 지나도록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이 책에서 다섯 가지를 말했음을 밝히고 있다. 첫째는 심리학이 과학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의 종교라는 점. 둘째는 교회가 심리학을 기독교 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며, 교회가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심리학을 일반 심리학과 차별하기 위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 심리학과 동일하다는 점. 셋째는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이며, 인간을 선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이며, 인간은 현재 타락한 죙니아라고 말하는 성경의 근본적인 주장과 반대 된다는 점. 넷째는 심리학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방식, 성공의 법칙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기독교는 성경만으로 '충분한 기독교'라는 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 정도에 놀랐다. 첫째는 저자가 모태신앙이고 많은 수련회를 통해서 눈물도 흘리고 영적인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도 참된 기독교를 알고 믿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용기였다. 둘째는 벤처 기업의 미국 지사장의 직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독서를 통한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서 이 책을 썼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참된 기독교를 알기 전에도 알려고 발버둥쳤을 그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셋째는 현대교회에 너무나 큰 세력으로 등장해서 아무도 그것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반기를 들어도 거의 잠식되어버리는, 심리학의 가면을 쓴 채 들어온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방식, 성공의 법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저자의 믿음이었다.
이 책은 곧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의 중요도와 함께 소위 한국교회의 성공한 목회자와 인기있는 목회자들이 그렇게 옹호하는 빌하이벨스, 릭워렌 등의 비판도 앞으로 나올 책에서 기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니다. 그것은 곧 현재 국제제자훈련원에서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릭워렌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역시 비판의 대상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아버지인 옥한흠목사님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앞으로 두 권의 책이 빨리 나왔으면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나의 지식의 얕음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시대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사랑과 경외감이 더욱 넘쳐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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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멘토] 오랫동안 망설이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책을 읽어 보고서 내용을 다 다루고 싶지만 난 먼저 왜 이런책이 기독교에 대해서 지금 변혁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성적으로 판단 기준이 연약한, 젊은이들에게 상술을 가장한 도서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맞추어 보았다. 조그만 준비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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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동기는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의 새벽설교 말씀을 통해서였다. 옥한흠 목사님의 아들인 옥성호 형제라는 평신도에 의하여 쓰여졌다는 사실과 조엘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라는 내용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기독교가 성공비즈니스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감을 떨쳐버리지 않을 수 없었기에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부족한 기독교 책의 저자는 정말이지 많은 독서량을 통해서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씨에스루이스, 로이드존스 같은 믿음의 거장들의 책을 수없이 보았을뿐더러 심리학등에 관련된 프로이드, 칼융, 에릭프롬 등의 저서들을 독파하고서 이 책을 써갔다는 점이다. 이토록 치밀할 수 있을까, 이토록 통쾌할 수 있을까 특히 프로이드 같은 심리학의 원조들에 대하여 그들의 성장과정과 영적인 그리고 지적인 면에서의 적대적 그리스도라는 점을 밝혀내는 부분을 읽고서는 정말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엘오스틴의 긍정의힘이라는 책을 보십시요 십자가가 나오는가요 모든사람이 죄인이라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통렬한 바울사도의 고백을 조엘오스틴의 설교에서는 나오던가요 단 한마디의 말도 나오질 않습니다. 단순히 역경과 고난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라는 말이 나오니 하나님을 전한다 할 수 있습니까 죄인과 십자가는 그리고 그 십자가로 인한 고난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영광스러운 길이며 단 하나인 구원의 길입니다. 단지 긍정의 힘으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신학의 범신론적 기복사상에 불과합니다. 옥성호 형제의 치열한 십자가 사명에 감사드리며 이 책이 현재 우리의 교회에 암암리에 들어와서 십자가의 복음을 약화시키고 인간내면의 회복만을 탐하는 심리학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공비즈니스를 만드는 왜곡된 복음을 물리치는데 믿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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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반에는 심리학이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에 대한 오류는 무엇인지 나름 자료도 많이 인용하고 분석하셨습니다만, '정신분석=심리학'이라는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가 기본 전제이므로 그 위에 서 있는 논리도 당연히 맞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심리학은 정신분석이 다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자의 말처럼 '과학'이 실험을 바탕으로 한 순수자연과학만을 지칭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지요. 순전한 기독교에서 CS루이스가 예를 들었던 '신사'처럼 '과학=학문'정도의 용어가 되어버렸는데 지난날의 정확한 실험에 근거한'과학'의 기준만 들이대시니 소통이 되지 않아 참 답답했습니다. 앞부분을 읽을때는 논리 비약이 너무 심해서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읽으니 뒷부분 내용에는 기존에 심리학적 기법에 나도 모르게 물들었던 것들을 되짚어 볼 수 있게 되더군요. 초반 170페이지 정도까지는 차라리 없었다면 좋을 뻔 했습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뱅뱅 돌아서 갈 필요는 없었다고 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좋았을 걸. 아쉽습니다. 기대 많이 하고 본 책인데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ps: 평신도의 관점... 이라고 하십니다만, 평신도라고 하면서 왜 옥한흠 목사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부각되게 하시는지요? 화제 거리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이라는 생각에 수긍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마치 미국이민 1.5세대가 '나는 진짜 한국토종'이라고 강조하는 것 같아 애매한 상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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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노력과 수고(?)가 도서 처음부터 끝까지 역력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 만이 돋보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꽤고 있다.
본서에서 저자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마치 한강물을 달여서 한 그릇의 종지에 다 담은 것처럼 말한다. 대단하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정리하고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심리학은 이렇다고 결론 내린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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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자는 "심리학은 과학인가?" 묻는다. 왜 저자는 과학의 영역에서 접근하였을까? 궁금했었다. 과학이라면 그나마 인정해 주려고 했을까?
우선 저자는 과학이라면 성경적이라고 여기는지 묻고 싶다. 과연 성경은 과학적인가? 과학은 성경적인가?
저자가 지적한대로 만일 심리학이 비과학적이라면 정말 사용되지 말아야 할 학문인가? 아니 저자가 말하는 과학부터 생각해 보자. 본서 P.53에서 과학은 '예측 가능하며 조정이 가능한 결과'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심리학은 무의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추측을 할 뿐 그 객관적인 원인을 결코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한다"고 말한다.P.55 그리고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아니면 종교인가?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는지 묻고 싶다.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며, 정신세계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에 가깝다는 논리의 비약을 읽으면서, 왜 한 숨이 나올까?
저자는 이를 논증하려 무척이나 애쓴다. 그러면서 P.63에서 심리학이 유사 종교라는 사실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새해 초 어떤 사람이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갔고, 굿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과 의사의 경우에는 억압된 내면의 자아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무슨 차이냐고 말하고 있다.
정말 차이가 없을까? 굿을 하는 무당과 정신과 의사가 과연 같을까?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할까?
저자는 자기의 논지를 너무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었을까? p.201에서 하나님과 아담의 대화는 오스틴을 논박하기 위해 저자가 상상하여 기술하였다. 말하지 말자. 여기까지만 말하자.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
저자가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친한 동료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밤을 지새우면서 토론하는 거라면 누가 뭐라하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를 바로 세우자고 지적하는 거창한(?) 제목에 비해 전제의 오류가 눈에 띈다. 더 이상의 본서 인용과 거론은 생략하고 싶다.
성경은 긍정적 믿음도 있고 비판적 태도도 있다.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 믿음도 있고, 죄 용서에 대한 긍정도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에 대해서 조차도 긍정적 믿음이 있고, 형통함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있다. 그리고 성경은 자기사랑도 있고 자기 부인도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자아 정체성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 자신도 자신을 드러내고 소개하지 않는가?(출 3장) 만일 설교시간에 정체성을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기가치를 말한다면 이것도 심리학에 물든 것일까? 그리고 땅에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긍정으로 해석하지 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연 긍정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에게 양도하고 결코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
* * *
심리학은 학문의 한 분야이며 도구일 뿐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첫 화두로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인간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문학이나 수학, 물리학이 그렇고 사회과학이 그렇고 비교종교학, 철학도 그렇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본서를 통해 물론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할 만하다. 성경이 텍스트라는 말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현 시대의 기독교 조류를 선지자적인 관점에서 지적하는 바에 귀기울이고 돌아볼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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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자마자 저자의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다가 말았다. 내용이 형편 없어서 접은 게 아니라, 빌려서 쉽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구입해서 최대한 시간을 가지고 읽기로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책은 평가하기가 참 애매하다.
과격하다. 거칠다. 이런 책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경우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하지 거침없고 과격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소위 학문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심리학 전공자가 읽는다면 책의 전반부는 반박의 여지가 많다.
그렇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글임에는 분명하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심리학 자체라기보다는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오해가 없으면 좋겠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바른 전제에서 바른 토론이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글의 비판의 대상은 심리학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이다. 하나님의 성경으로 충분해야 할 기독교가 왜 심리학이라는 것을 차용하는가? 말하자면 이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현대 기독교, 현대 교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경영학과 엔터테인먼트의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믿고 또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리고 앞다투어 개척교회나 소형 교회 목회자들은 이런 매력적인 상품을 찾아 오늘도 이 교회, 저 교회를 벤치마킹하려고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기독교는 심리학과 경영학과 연예 오락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전락한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오늘의 현실적 기독교 모습을 '부족한 기독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329-330쪽).
심리학, 경영학,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저자의 비판이 대상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이 중 첫 번째 권으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을 읽고 난 후의 당혹감이 생생하다. 아니 뭐 이런 자기계발서가 종교 서적으로 둔갑했담? 하나님이나 믿음만 언급하면 모두 기독교 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씀은 전혀 없는 기독교 서적이라니. 정말 미국적인 책이구나.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는 점이었다. 기독교의 본질과는 멀어보이는 이런 책이 크리스천들의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여러 모로 안타까웠다. 물론 그런 서적들이 가지는 나름의 효과가 있겠지만, 말하자면 이런 거다.
아이를 정말로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가 아무리 단 거를 좋아해도 아이에게 단거를 많이 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조를 때마다 과자를 주는 부모도 없다. 엄마는 아이가 밥과 반찬을 먹고 건강하고 튼튼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초콜릿이나 사탕, 과자는 당장 입에는 맛있지만 건강에는 좋지 않다. 단 음식을 많이 먹은 아이는 인내심이 없어지고 난폭해진다고 한다. 밥을 안 먹은 아이는 약골이 되고 병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크리스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너무 피곤할 때 먹는 사탕이나 초콜릿이라면 괜찮겠지만, 그것만 좋아해서 정작 밥 먹기를 거부하거나 싫어한다면 이건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조엘 오스틴류는 가끔 먹는 초콜릿이나 사탕은 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주식이 될 수는 없다. 초콜릿이나 사탕이라면 무조건 나쁘니깐 먹지 말라고 할 것인가 가끔씩 약간의 양이라면 괜찮다고 할 것인가는 이후에 논의될 문제일 따름이다.
저자의 기본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는 본래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기독교다운 기독교,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충분한 기독교'가 '부족한 기독교'가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교회의 영적 삶에 대한 충분한 진리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330쪽).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쓴 책이 바로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이다.
성경으로 충분한 기독교가 왜 심리학, 경영학, 엔터테인먼트에 의존하는 부족한 기독교가 되었는가?
이를 위해 심리학의 실체(사실 이 부분에서도 '심리학' 자체보다는 '기독교 심리학'이 바판의 대상이다)에 대해 설명하고, 그 허상을 비판한 후 성경으로 충분하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것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첫째, 심리학이 과학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의 종교라는 사실. 둘째, 교회가 심리학을 기독교 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며, 교회가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심리학을 일반 심리학과 차별하기 위해 '기독교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독교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 심리학과 동일하다는 점 셋째, 심리학은 본질적으로 인간 중심이며, 인간을 선하다고 보는 임장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이며, 인간은 현재 타락한 죄인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근본적인 주장과 반대된다는 점 넷째, 심리학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자기 사랑, 긍정적 사고 방식, 성공의 법칙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 다섯째, 기독교는 성경만으로 '충분한 기독교'라는 점 (이상의 내용은 책에서 인용, 331쪽)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자의 문제의식과 진정성만은 존중하고 싶다. 많은 도전을 준 게 사실이다.
심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자'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여한 사람으로서 나는 과연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을 나 역시 비판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여전이 '충분한' 크리스천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암튼 현대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며 갈증을 느끼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거칠고 과격한 주장에 혹할 수도 있겠고, 역으로 '걸리기만 해봐라. 맘껏 까주겠다.' 작정하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중립적으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자기의 지점이 어디인지 스스로 분석해보고 앞으로 자기가 갈 방향을 모색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교회는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단순한 주장은 울림이 크다. 성경으로 충분한 기독교, 스스로의 힘과 위상을 세울 수 있는 기독교, 세상과 짝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광야에서 고독하게 외치는 선지자의 소리같은 이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울러 본인 스스로 매우 외로운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나만 남았나이다!)이라면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해 준비하신 의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1. 저자가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라는 게 중요할까? 2. 재밌는 사실이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저자들의 책을 번역한 곳은 대개의 경우 '두란노'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꼬투리 잡기 좋은 빌미 거리가 될 것 같아 우려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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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라서 더욱 유명해진 저자이죠~ 물론 본인이 원하거나 의도한 바는 아닙니다 ^^
이 책은 기독교 안에 들어와있는 심리학적인 요소들과 그 뿌리들을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평신도로서 이렇게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저자는 기독교 심리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왜 심리학은 반기독교적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갑니다. 전체적으로 유익한 글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보다 폭 넓은 시각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교리와 체계적인 분석이 너무도 중요하지만, 기독교는 교리적인 인식으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학문적인 분류, 그 근원을 파헤치는 것.... 강력한 논리에 따라 이런 글을 써 나가다보면, 오히려 논리속에 신앙이 갇혀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심리학에 있는 것을 기독교가 빌려온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기독교 신앙의 풍성함 속에 있는 심리적인 요소들마저 다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폭 넓은 시각... 아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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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에서 옥성호씨가 5장-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굵은 글씨의 내용이 의미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감사한다.
그러나 오류와 반박하고 싶은 내용들이 너무 많아 반론을 구체적으로 달지는 않겠다. 이유는 최소한 한페이지에 한군데 이상은 오류이기에 반론을 달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다. 만일 저자가 원한다면 이메일로 구체적인 책의 무가치성과 잘못된 것들을 보내주겠다.
5장의 굵은 글씨들을 제외하고는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다. 도올처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몇가지 지식과 책으로 포장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는 가벼운 책이다.
어떤 결론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자신의 입장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증명하고 정당화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저차원의 사람들이 있다.
이책으로 인해서 이 책의 출판사 대표?이신 평상시 존경했던 백금산 목사님에게도 실망감을 느낀다.
참고로 조엘 오스틴의 처신과 말에 부정적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옥성호 저자는 한가지 진리를 놓치고 있다(한가지만 반론하자). 믿음의 말이 긍정의 말로 둔갑되어 사용 되어진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긍정의 말은 감사의 말이라고... 예수님이 부정적이 었던 상황이 있었다는 다는 것은 누구의 가치판단인가? 바로 저자의 기준이다. 착각하지 마시라~!!!
나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살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과 다른 표현일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한다.
아무리 고난과 고통의 시간이라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았는가?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라는 말도 심리학인가? 너무 긍정적이라서????
저자여~ 저자가 비판하는 심리학의 병폐를 인정한다. 심리학의 수많은 부분들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당신의 짧은 지식으로 성경을 빗대어 비판하지 말라!
그러나 나의 결론은 횟칼이 건달에게는 살인무기이지만... 일식요리의 장인에게는 소중한 예술의 도구이다. 옥성호님의 열정과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기에 감사하지만 3권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나에게 이 책들은 참으로 돈 낭비였다!!!
혹시나 도올의 뒤를 밟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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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인도
30년 이상 교회를 다니면서 매주 반복되는 설교를 듣고 있고,
나름대로 유명하다는 목사님들의 말씀을 인터넷으로도 듣지만
결코 변화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하였고
때론 인간은 원래 죄악된 존재이니 그냥 편하게(?) 죄짓고
또다시 회개하면 되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말씀의 칼로 내 골수를 쪼개지 못하고 흠집만 내다가 말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전적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분은 철저히 말씀을 통해 성경진리를 설명하셨다.(강해설교)
그러자 그 유명하던 목사님의 설교를 수없이 들을 때도 꿈쩍도 하지 않던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내 스스로가 한없이 부족한 죄인임을
그 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 지금껏 내가 들었던 설교는 단지 내 마음을 잠시 훈훈(?)하게 해 주었던
교훈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이 시대를 사는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물든
설교를 들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쓰러질 수 밖에 없던 사실이
차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기독교인(가톨릭 포함)이 20%가 넘는다는 왜 한국은 이토록 부패했는가?
7%의 제대로된 교인만 있어도 그 사회는 변화된다고 한다.
아니.. 내 생각에는 2-3%만 있어도 변화가 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이었던가?
최소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못해도 한 번은 교회에서
설교를 듣지만 왜 변화되지가 않을까?
"에이.. 우리가 죄인이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서 그런게 아닐까? 마치 과거의 나처럼...
이런 얘기를 풀어가다 보면 끝이 없다.
그냥 이 책을 무조건 사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결코 1만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아줄...
몇천만원, 몇억의 투자가 부럽지 않은 그런 책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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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어야 하나?
결론은 이것아닌가? 에큐메니아계열의 신학과 전통보수신학의 대결
온통 혼란이다. 혼란~~ 진정한 복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기독교의
의미을 전해야하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이런수준은 고사하고
과연 자기가 믿고잇는 신앙이 정상적이지 의문을 품고 잇다.
문제는 목회자들도 이것을 모르다는것이다. 분명히 성경속에는 에큐메니적인
상황과 극본신학의 양대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잇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들의 선택상황이지, 목회자나 성경을 연구하는 평신도들의
신학개념으로 흑과 백으로 나눌 상황이 아니다.
긍정적인 사고, 분명 성경에도 존재한다,
그와동시에 근본적인 구절도 분명존재한다.
문제가 되는것은 이런 성경적 신념이 예수님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잇다는것이다.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 오늘날 교회에도 버젓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전혀 행동하는 신앙은 존재하지않는다.
테레사수녀에 대한 신학적 비평을 하는사람들아, 지나가는 노숙자에게
천원짜리 한장주지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만 생각해라.
신앙적 만족감을 위해, 성경을 연구하지말고
정말 빵하나조차 먹을수없는 사람들을 도우는 신앙을 연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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