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문화의 중심지 비잔티움과 그 제국에 대한 역사를 역사같지않은 생생함으로 서술하고 있다. 너무 잘난 서유럽은 역사속에서 동유럽,동로마(즉 비잔티움제국)의 자양분에 기초하고 있다.서유럽에 편협되지 않은 역사인식을 위해서,또한 주류 역사의 끊김없는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일독하고나서 끼고 여행하고 싶다.편안한 연대표와 지도,세밀한 색인이 읽는이를 잘 보좌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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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의 초입에 읽기 시작한 책을 이제야 모두 읽었다. 약간의 독서중독이 있어 다독을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적지 않은 인내심을 요구했다. 이 책을 읽는 독서여행중에 나는 다른 책 40여 권을 읽을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성의없이 만들어진 책이란 뜻은 아니다. 비잔티움제국 시대의 지중해와 콘스탄티노플 지도 등의 볼거리는 책을 읽는 내내 상황의 판단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밖에 연대표도 작성되어 있고 주요인물들에 대한 요약 그리고 방대한 양의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그런데도 "매혹과 열정의 제국 비잔티움, 그 천년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거창한 카피에도 불구하고 왜 책에 몰입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 이런 의문에 빠져들었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1. 이 책은 지난 1988년, 저자 존 줄리어스 노리치가 출간한 <<Byzantium :The Early Century>>의 번역판이다. 원제와 달리 비잔티움 연대기라고 이름 붙인 것은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그로인하여 이 책의 성격이 더욱 명료해져 버렸다. "연대기"... 연대순으로 역사적인 사상을 기록한 것을 말하지 않는가? 특히 "연대기"는 중세 유럽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각 민족의 건국사, 국왕의 사적(事蹟), 전쟁, 교회, 수도원 등에 관한 기록이 많다.
연대순으로 비잔티움의 역사를 기록하다보니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다양한 정황이 등장하면서 책에 몰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게 되었다. 한 마디로 너무 복잡하고 등장인물들도 이름이 익숙해질만하면 금방 사라진다. 이 책은 모두 18개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래 가야 다음 장에는 사라지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름 익히기가 바쁘고 책읽기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2. 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민중의 역사라기 보다는 황제의 역사다. 어느 황제가 어떻게 황제가 되어서 재위기간에 어떤 업적을 이루었고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걷다가 죽게 되는가가 대부분의 내용이다. 부차적인 것으로는 역시 전쟁과 교회,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 등이다. 비잔티움 시대의 민중의 삶과 문화, 상업, 철학, 예술, 과학, 교육 등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간략하게 나타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민중이며 군중은 언제나 황제의 폭거에 참고 또 참았다가 폭도로 변하여 황제를 끌어내려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거나 아니면 푹동에 실패하여 모두 죽고 마는 그런 단세포적인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또는 기억을 새롭게 해준 귀중한 역사적 지식들은 그럼에도 이 책의 존재가치를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
1.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옮긴 330년 5월 11일 역사에 등장한 비잔티움제국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멸망한 1453년 5월 29일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국이었다.
2.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 세력을 천년 이상 막아주지 않았다면 서유럽 세계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학문과 예술, 철학적 성과들 역시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3. 용병의 역사는 이미 비잔티움시대에 꽃을 피웠다. 티베리우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81년 야문족 포이데라티 1만 5천명으로 새 정예부대를 편성했는데 이것은 유명한 <<바랑인근위대>>로 발전하게 된다.
4. 비잔티움 제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제국이었고 자금력 또한 막강했다는 것이다. 위의 티베리우스 콘스탄티누스는 즉위 첫해에만 금을 7,200파운드나 썼고 그밖에 은, 비단 등 기타 사치품을 미친듯이 3년 동안이나 썼다고 한다.
5. 인간에 대한 존엄이 무시되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동서의 역사를 통해 마찬가지이겠으나 비잔티움제국시대 역시 가난한 백성과 전쟁포로는 노예가 되고 반역자는 처참하게 처형되었다. 권력을 위해서는 황제인 자기 아들마저 잡아다가 두눈을 뽑아 버리고 죽이는 어머니(이레네)도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로 실권하여 코와 혀가 잘리는 형을 당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황제로 복귀하는 인간승리(유스티니아누스)도 그려져 있었다.
책읽기에 오랜 인내와 복합적인 사고를 요구한 책 <비잔티움 연대기>. 그래서 아마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은 이 책은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역사적인 사실을 알기 원하는 독자 그리고 중세유럽의 역사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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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제국의 시작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저자는 330년 콘스탄티누스1세의 콘스탄티노플(이는 영어식 표기이며, 당시 시대였던 라틴어로 표기한다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맞다) 천도시기를 비잔티움제국시기라고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테오도시우스1세 황제의 동서분할에 따라 동방황제에 오르는 아르카디우스 황제 시대부터 비잔티움제국은 제 갈길을 단다고 보인다...
이후의 900년에 걸친 장구한 역사동안 수많은 황제들이 스쳐가는데, 1권에서 기억나는 인상에 남는 황제들은 아래와 같았다...
1.유스티누스1세-정말 이런행운으로 황제가 될수도 있을까? 전임황제였던 아나스타시우스1세황제의 미신을 믿는 성격때문에 단지 아침일찍 첫번째로 황제에게 보고를 드렷다는 이유만으로 근위대장(비서였나?) 이었던 자가 황제로 지목된다..유스티니아누스1세황제의 숙부이다...
2.유스티니아누스1세 - 유명하다. 비잔티움제국의 전성기? 로마법대전 편성과 영토회복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내가 보기엔 빛좋은개살구 같다. 벨리사리우스라는 명장을 정말 막 부려먹엇다고 밖에 할 수 없으며, 이탈리아, 아프리카, 에스파냐 정복은 벨리사리우스의 철수, 유스티니아누스황제 의 죽음과 함께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벨리사리우스를 대하는 것을 볼때 쪼잔함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명분만 있고 실리는 부족한 해외정복 전쟁을 통해서 결국 제국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낼정도다..
3. 헤라클리우스 - 헤라클리우스 황조의 창시자이며, 그리스제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비잔티움 제국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 폭군이었던 전임 황제 포카스를 사로잡은 후 이렇게 말했다지. '그대가 제국을 이 모양으로 만든 자인가?', 사로잡힌 포카스 황제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지. '훗, 그대라면 더 낳았으리 라고 보는가?'.......포카스 황제의 한심함을 제대로 보여준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포카스 황제는 헤라클리우스에 명에 의해 사지가 갈가리 찢어진후 바다에 버려졌 다지. 포카스 황제가 그 전임황제 마우리키우스 황제와 그 가족을 비참하게 죽인 것에 비하면, 적절한 결말이었다고 보여진다.
4. 유스티니아누스2세 리노트메투스 - 왜 별칭이 리노트메투스(코가 없는 자) 이고, 그에 걸맞는 파란만장한 일생과 잔인한 정치는 비잔티움 제국의 가장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5. 이레네 - 비잔티움 제국의 3명의 여제 중 첫번째인 이레네는 남편인 레오4세가 죽고,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6세가 황제 오른후부터 제대로 권력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권력의 맛을 본 여자의 잔인함은 아들인 콘스탄티누스6세에 대한 처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2권, 3권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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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과 과련하여 다른 책들을 접하여 보았으나, 제국의 관련한 책들은 한 권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지라 역시 다른 관점에서 기술된 책들을 참고로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항시 뒤 따르게 마련이다. 노리치의 비잔틴과 관련하여 어떠한 관점에서 기술을 하고 있는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라 기대하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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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장본 Set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서평을 통해 살펴 본 바 여기서는 제 1권에 대해서만 살펴볼까 한다. 1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는 것부터 470년 뒤 샤를마뉴(알고보니 이름이 샤를이고 마뉴는 존칭으로 붙이는 말이라고 한다.) 대제가 800년에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 것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크게 기독교 분열 문제와 황제 등극 문제 그리고 이민족 침입에 대한 방어 문제이다.
일단 기독교 분열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비잔티움 제국 황제는 언제나 이단 문제로 골머리를 썩여 왔다. 초창기에는 아리우스파 이단 문제가 있었으며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사이의 문제가 있었다. 먼저 아리우스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의 견해를 따르는 종파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처럼 영원하고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특정한 시기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창조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완전한 인간이라 해도 '아들'은 '아버지'에게 언제나 복종해야 하므로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Trinity)를 재확인하여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이단 문제는 제국의 분열을 가져왔다.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은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에도 게르만족에게 널리 퍼졌으며 특히 이슬람교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참고로 여호와의 증인도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문제인데 단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견해이고 양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결국 단성론이 이단으로 선고받았으나 이는 이단 정죄를 위한 공의회 참석 인원이 양성론자 위주였고 특히 그들을 매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서 제국의 힘이 분열되자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단의론(그리스도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지지만 단일한 의지를 가진다는 내용)를 펼쳐 그들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하였으나 단의론은 양자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았다.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와 단성론자를 정죄함으로써 종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기던 찰나에 이제는 성상 파괴 문제가 다시 붉어졌다. 십계명에 의하면 우상 숭배를 하면 안되는 것 이었는바 레온 3세 황제는 성상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로마 교황이 이를 비난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분열이 초래되었고 제국은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실 십계명을 잘 살펴보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당시 만연되어 있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었지 성상도 만들지 말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찌되었건 시도 때도 없이 종교 문제는 황제의 커다란 골치거리 였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결속을 방해하였다. 이를 보면 우리 나라는 종교 문제로 현재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는 점이 축복으로 보인다. 종교 문제는 신념과 연관되어 나라를 분열케 하고 이는 곧 국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2MB는 너무 대놓고 기독교 편향 정책을 펴는 바 멀지 않은 미래에 종교 갈등이 심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우리도 종교 문제로 피를 보아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2MB는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어서 황제 등극 문제이다. 비잔티움 제국을 보면 언제나 황제 등극 과정이 암살, 쿠테타 등으로 얼룩져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황실 핏줄이 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처다부제를 통해 형제끼리 싸움이 있었을지언정 황실 핏줄이 완전히 끊겨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가 황제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국교였던 로마 제국의 경우 일처일부제였고 그 결과 황실 핏줄이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동아시아와 달리 황실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황족으로 여겨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황족 여자의 경우 언제나 황제 위를 노리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황제가 죽으면 언제나 피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문제는 이민족 문제였다. 초창기 문화면이나 군사력면에서 근처에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로마 시절에 비해 비잔티움 제국은 근처에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적국이 많았다. 동쪽에는 아르메니아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슬람 세력이 있었으며 카타니아 지방에는 '신의 징벌'이라고 불리던 훈족 아틸라 등 이제 군사적으로도 비잔티움 제국은 이를 압도하지 못하였다. 비록 유스티아누스 대제 시절에 벨리사리우스라는 명장의 힘으로 이탈리아를 다시 수복하였으나 이미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어를 사용한데 비해 이탈리아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는 등 이미 문화적으로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결국 이탈리아 지방은 유스티아누스 사후 다시 이민족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를 보면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로마/그리스 시절의 모든 영광을 잊어 버리고 악덕만 남은 나라라고 혹평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잔티움 제국은 종교 문제, 황제 등극 과정에서 얼룩진 피,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바 비잔티움 제국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하여 이를 보전하였고 동쪽에 있는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제 2권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와 몰락을 이어서 계속 살펴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