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비굴한 쇠퇴..장렬한 최후..
"비굴한 쇠퇴..장렬한 최후.." 내용보기
900년의 역사..로마제국이 후계자라는 점을 인정하면 BC50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시작되어 1453년 콘스탄티누스 11세로 막을내리는 1500년에 걸친 역사.....   실질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1205년인가 십자군에 의해 어이없게도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당했을 때 끝이 났었어야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은 제국의 앞날에는 비참하고 비굴한 쇠락과 쇠퇴만이
"비굴한 쇠퇴..장렬한 최후.." 내용보기

900년의 역사..로마제국이 후계자라는 점을 인정하면

BC50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부터 시작되어 1453년 콘스탄티누스 11세로 막을내리는

1500년에 걸친 역사.....

 

실질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1205년인가 십자군에 의해 어이없게도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당했을 때 끝이 났었어야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은 제국의 앞날에는 비참하고 비굴한 쇠락과

쇠퇴만이 남아있을뿐이었다....

 

 

1. 안드로니쿠스1세- 길에서 시민들에게 맞아죽은 황제. 선임황제이자 조카인

알렉시우스2세를 교살하고,악정을 편 이 황제부터 비잔티움제국의 쇠락에는

더 이상 브레이크가 없었다.

 

2. 테오도루스1세 라스카리스 - 콘스탄티노플이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이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 니케아 망명정부를 세운 황제. 향해 약 50년간 지속될

망명정부의 틀을 잡고, 향후 콘스탄티노플 수복의 기틀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3. 미카일8세 팔라이올로구스-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조인 팔라이올로구스 황조를 열었다. 하지만, 수도 수복에 미카일8세가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없었다는 것은 약간의 아이러니? 그래도. 현명한 외교술로

향후 200년간 제국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4. 안드로니쿠스2세-약 40~50년간에 걸친 긴 치세. 하지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

며 오히려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5. 요한네스5세-요한네스 6세, 안드로니쿠스4세, 요한네스 7세 등 한 3번동안

황제를 빼앗기고 공동황제를 부여하는 등..참 파란만장한 황제..

하지만, 역시 제국의 쇠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6. 마누엘2세 - 제국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 황제, 그의 대관식은

과거 제국의 화려함을 생각했을때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으리라.

하지만, 자부심과 긍지라는 멘탈적인 면에는 최고였다.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았다는 점이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7. 콘스탄티누스11세 - 제국을 창시한 인물은 콘스탄티누스(1세)였고, 제국의

마지막 황제역시 콘스탄티누스(11세)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와 콘스탄티누스11세

의 어머니의 이름은 둘다 헬레네였다...우연치고는 신기한 인연...

비굴하게 서방에 원조를 해대던 선임황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더이상 불가피했다. 영토는 거의 모두가 사라졌으며,

제국을 유지할만한 힘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11세가 처한 마지막 선택은 항복도 도피도 아닌

장렬한 전사였다.

콘스탄티노플은은 1453년 5월에 함락되었는데, 함락의 자세한 과정은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더불어 콘스탄티누스11세 황제의 마지막 모습 역시도 말이다.......

 

 

http://blog.naver.com/bluemir98

b******9 2009.05.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소화된 제국
"왜소화된 제국" 내용보기
비잔틴 연대기의 마지막 장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우렁차고 힘있게 출발한 제국은 그저그런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영원하고 영원한 제국은 없다지만 참담함이 강하게 느껴진다출세하고 재부를 모았던 위대한 인물들의 몰락도 이와 유사하지 않겠는가?정말 말로는 형언키 어렵다제국의 중간중간에 나라를 바로 세울려는 위인들이 등장하지만 중과부적이다무언가 할려고 하는
"왜소화된 제국" 내용보기

비잔틴 연대기의 마지막 장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우렁차고 힘있게 출발한 제국은 그저그런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영원하고 영원한 제국은 없다지만 참담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출세하고 재부를 모았던 위대한 인물들의 몰락도 이와 유사하지 않겠는가?
정말 말로는 형언키 어렵다
제국의 중간중간에 나라를 바로 세울려는 위인들이 등장하지만 중과부적이다
무언가 할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형국이다
무언가 부족함에 내재하고 재빠를지 못한 행보의 탓도 있다

유럽의 동방에서 중세말엽까지 동방의 여러 제국들과 마지막까지
한줌의 힘도 없을때까지 기력이 소진할때 까지 싸운 모습은 처절하고
처량하기도 하다
강하게 시작했어면 말로도 시원하고 강함을 잃지 않은 것이 좋았을텐데
이건 그런것이 아니고 쇠잔해질때까지 한줌의 기력도 없을때
망했으니 역사가들의 애찬은 아예없을 것 같다

십자군이란 이름뿐인 십자군이고 오히려 제국의 땅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최고의 권자까지 차지할 정도로 동로마는 지쳐있었다
그러니 옆에 있던 오스만의 동양의 위대한 메메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제국을 오스만에게 바친 것이다
즉 한번 힘좀 써보고 망한것이 아니라 그져 내놓을 정도였으니
비참함이 엄습하고 역사의 아이러니 이다

그러나 동로마의 정치사는 엿볼것이 별로 없더라도 서양이 힘을 비축할때
까지 동양의 이민족이나 야만족의 침입을 막아냈고
중세 르네상스의 밑거름으로 그리스의 위대한 문화의 징검다리역활을 하였는것은
세계사에서도 길이 남을 업적으로 치부하고 싶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인해서 서양의 물줄기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게 되는 역사적인 맥락으로 이해하고 싶다


k*******n 2011.05.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내용보기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이는 1869년에 출판된 W.E 레키의 [유럽 도덕의 역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평가한 문장이다. 이런 견해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을 만난 18~19세기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보인다. 이렇게 악랄한 평가는 18~19세기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인들이 외국을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본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내용보기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 이는 1869년에 출판된 W.E 레키의 [유럽 도덕의 역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평가한 문장이다. 이런 견해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을 만난 18~19세기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보인다. 이렇게 악랄한 평가는 18~19세기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인들이 외국을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글쓴이의 평가대로 서유럽에서 학문의 빛이 거의 꺼져 있었던 암흑기에 비잔티움 문명이 고대 그리스와 라틴 유산을 대부분 보존해 준 덕분에 서유럽 세계가 큰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안하무인 격이다. 이를 읽는이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글쓴이의 노력은 이 책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3권에서는 드디어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멸망을 다루게 된다.(소제목 역시 쇠퇴와 멸망이다.) 이렇게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멸망은 십자군 전쟁과 콘스탄티노플의 지리적 요건과 교역로의 변화, 대포의 등장과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람들의 이중적 모습이 큰 원인이 되었다. 가장 먼저 십자군 전쟁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십자군 전쟁을 아래와 같은 경로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보면 알겠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십자군 전쟁군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군이 말만 십자군이지 실제로는 약탈자였다는 점이다. 같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비잔티움 제국을 지나면서 십자군은 식량을 약탈하고 백성을 학살하며 특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성전도 약탈하여 수많은 그리스드교 유물이 사라지고 수많은 여자를 강간하는 등 점령군과 다름이 없었다. 이와 같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비잔티움 제국은 수도를 잃고 망명 정부를 세우는 등 더 이상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할 힘을 잃고 말았다. 정말 인간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으킬 수 있는 전쟁 중 최악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라 본다. 이에 대해서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권>을 추천한다. 만화책인데다가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 쉽게 십자군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다만 1, 2권 다음에 3, 4권은 언제쯤 나올련지….)


 

 이어서 콘스탄티노플의 지형적 위치를 언급할 수 있다. 사실 콘스탄티노플은 제국의 수도로서 수비하기엔 천혜의 조건이나 공격적으로 제국을 확장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은 도시였다. 언제나 서유럽과 동방 이슬람 사이에서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두 군데 모두를 막기엔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그 힘을 잃은 상태였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은 동방 이슬람 세력과의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관세 등을 통해 재정을 손쉽게 확충할 수 있었으나 이후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배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제국의 재정은 악화 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포의 등장과 베네치아, 제노바의 이중적 모습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1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콘스탄티노플이 난공불락이었던 이유는 3면이 바다에 접해있어 해로로의 접근이 힘든데다가 육로로는 당시 로마의 기술력이 총 집약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성벽은 안으로부터의 변절자가 있지 않고서는 점령이 거의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점령자인 메머드 2세는 대포를 가져와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콘스탄트노플은 그 생을 다하게 되었다. 또한,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고 같은 그리스도교의 형제이지만 언제나 교역 이익에만 관심이 있어서 비잔티움 제국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하긴 같은 종교라고 해서 이익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를 흘리라고 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긴 하다.)

 

 이와 같은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글쓴이는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를 굉장히 처절하게 써 놓았지만 이렇게 망한 나라가 한 두개 던가? 나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타락한 저급한 제국"이란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비잔티움 제국이 타락하고 저급한 제국이란 면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시대와 비교해 보아도 수많은 궁중 암살과 음모, 배반이 일어나고 무능한 황제가 유능한 황제보다 많았던 점은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또한 글쓴이는 <살라딘>을 제외하고는 이슬람 국가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듯 하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서유럽을 이슬람 문명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글쓴이의 평가에서도 보이지만 사실 그리스도교는 굉장히 타락한 상태였고 문명이나 문화 수준 역시 이슬람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번역에서도 한 가지 지적해야겠다. 이슬람교의 예언자로 마호메트라고 이 책에서는 표시하는데 마호메트는 영어식 표현이고 아랍어 표시법대로 <무함메드>로 표시하는 것이 옳은 표시법이라 할 것이다.(예컨데 우리가 독도라고 부르는 것을 외국에서 다케시마라고 표시한다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비록 순서는 바뀌었지만 이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을 바라보던 시각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a******n 2010.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