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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예술의 시작은 사람들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했다. 다산과 풍작을 바라며 만들었던 그림과 조각들은 역사시대로 접어들고 문화가 발달하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변한 종교예술로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벌거벗은 신상,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자비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불상 모두 종교는 다르지만 예술가들의 신앙이 창작물로서 승화되었다는 점은 같다. 그래서일까? 걸작이라 불리는 종교예술품을 보면 신앙이 있든 없든 간에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은 모래의 도시 둔황에 운집한 석굴을 보았을때도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다지만 인간은 예술로서 신에게 신성을 부여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수백가지 신의 얼굴]은 제목 그대로 온갖 종교를 막론한 '수백가지 신'의 예술을 모아놓은 책이다. 보통 종교예술을 다룬 책이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등의 굵직굵직한 몸통만을 다뤘던데에 비해 이 책은 지방적 색채의 신화와 지금은 사라진 고대종교의 신들까지 전부 소개하고 있다.(그래서인지 책의 두께가 매우 두터운 편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3가지 주제로 나뉘었는데, 종교별로 나눈 분류가 아니라 공통주제에 의한 분류방식을 취하고 있다. 덕택에 종교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신을 믿은 것일까? 신이 인간에 있어서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비교하여 읽기 쉬웠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고화질의 도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이 매우 생생하게 다가오지만, 그 중에서도 검은 피부를 한 예수의 벽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중동지방에 살았던 예수의 피부색이 가무잡잡한것이 자연스러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늘 부드러운 갈색 고수머리에 푸른 눈을 한 백인으로 묘사되는 예수의 이미지가 익숙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는 scriptorium 이라는 장소가 있었다. 국내에 출판된 역사서에는 흔히 '필사실'로 소개되는 그 곳에서는 많은 수도사들이 성스러운 일과로서 책을 필사하고 아름답게 채색하는 일을 했다. 오늘날에야 책이 '문자'로서 지식전달을 주목적으로 한다지만 문맹자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당시에는 그림이나 기호로서 신의 뜻을 표현해야 했다. 그들이 책에 그려넣는 예수와 성인들의 그림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신앙이자 믿음, 기원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신들의 시대였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은 그야말로 '박제된' 신들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종교적 예술품은 원래의 목적을 잃은채 그저 작품으로서 박물관에 전시될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종교라면 확실히 오늘날은 신들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우리의 삶에 종교가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한 어떠한 형태로든 종교는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 수많은 상징과 기호를 통해 인류의 문화로서 승화할 것이다. 그게 종교의 본질일런지도 모른다.
+ 이 책은 수많은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상징에 대해서는 설명이 약간 부족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좀더 깊게 그림을 파헤쳐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까치에서 출간된 [세계문화상징사전]을 같이 읽을 것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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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종교의 예술작품에서 신의 얼굴을 찾아내다” 이 책은 기원전 14,000년경부터 20세기까지, 또 아프리카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와 문화에 걸쳐 신을 표현한 예술 작품을 총 망라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종교는 무수히 많다. 바하이교,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그리스로마신화 .......(중략)......... 신의 모습들은 각 문화와 종교의 차이만큼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제단화, 자수 족자, 펜화, 묵화, 청동상, 목상, 암벽화등...... 책의 맨 뒷장에 있는 소개처럼 이 책은 350여페이지에 각 시대와 문화에 따른 신의 이미지를 수천점의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이 많은 자료들을 다 찾아내서 수록한 것인지, 그 정성이 놀랍다. 또한 놀라운 만큼 순식간에 수만년의 신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여겨진다. 무심히 넘기던 손길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 올랐다.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를 연상하던 유아적인 ‘신’의 모습을 떨쳐버린 현대인에게 이런 상상속의 ‘신’들을 만나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으로 책을 한, 두장 넘기던 내 손은 신의 이미지에서 몇 가지 공통되는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고대 그리스로마신화속의 신들의 모습은 주로 풍만한 나체(여체)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현대인의 미인이라고 일컫는 삐적 마른 모델들과 닮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조금 통통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대표적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프로디테나 헤라, 그리고 디네프, 사냥의 여신 디아나등등.... 모두 그러하다. 그런데 또 자세히 보면 비단 그리스로마신화뿐이 아니라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모습도 조금 통통하다. 불교의 붓다도 대체로 통통할뿐더러 그 이미지가 여성스럽기까지 하다. 왜일까? 옛 사람들은 왜 신의 이미지를 형상화 하면서 전부 풍만함을 강조하였을까? 아마도 신이나 신의 대리인 이미지에는 오늘날의 비쩍 마른 모델형은 어딘가 인색하고 인정머리가 없어 보이며 창백해 보여 ‘신’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둘째, 기독교의 유일신인 여호와나 예수를 형상화한 이미지에는 거의 그 모습뒤에 후광(오로라)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성인의 머리 위에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볼 수 없는 후광이 있다고 한다. 마음이 순결할수록 후광은 더 밝고 환하게 빛난다고 한다. 거의 예외없이 그려진 신성의 상징인 후광속에는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의 신심을 엿볼 수 있을것만 같다. 셋째, 신의 이미지 구조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의 내용을 차용한 신의 이미지는 더욱 더 그러하다. 최후의 심판에 이르어 신이 직접 저울을 가지고 선과 악의 어느쪽이 더 기울어지는지 재고 있는 그림이라든가, 예수가 친히 위쪽으로 올라가는 천당문의 사람들과 아래쪽 지옥문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있는 장면등이 그러하다. 지옥문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창녀나 술주정뱅이, 사기꾼임을 알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단순함의 구조는 옛사람들에게 ‘신’의 이미지를 친근한 사랑과 더불어 두려움이란 이중적인 잣대로 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착한 사람에게는 한 없이 좋은 ‘신’이지만 악한자에게는 징벌을 내리는 무섭고 무자비한 ‘신’인 것이다. 고대의 사제들과 권력자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차용해 그들의 권력유지에 이용해 왔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 글을 모르던 시대에 이러한 그림 이미지는 종교교육에 훌륭한 교과서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책의 맨 앞부분에 등장하는 천지창조부분을 보자.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 후 금기인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되어 출산과 노동의 고통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한눈에 알기쉽게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다섯 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붓다의 형상이다. 그 형상의 붓다는 동서남북 사방에 걸쳐 얼굴이 있고 여러개의 손이 있다. 붓다는 늘 깨어있는 자이다. 늘 깨어있기 위해서는 사방에 걸쳐 두루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아야 한다. 또 무한한 자비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여러개의 손이 필요하다. (이 해석은 자의적인 해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의적 해석이야말로 예술작품을 대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독창성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예는 무수히 많다. 작품 <뉘른베르크 연대기 1494년경>을 해설한 내용을 보자. 지구는 중심에 있고 우주와 천사들은 옥좌에 앉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옛 사람들의 믿음속에는 당연히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었다. 그렇기에 작품속의 한가운데 지구가 놓여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지구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사람들, 날개가 달린 천사뿐 아니라 날개 없는 천사가 그려진 작품, 죽음을 각오한 단식으로 볼이 삐적말라버려 마치 마라(불교의 악마)처럼 보이는 붓다, 풍만한 여체의 형상을 한 붓다, 긴 수염을 가진 근엄한 할아버지로 형상화된 하나님........... 이 모두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을뿐더러 그림을 그린 작가들의 생각과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책장을 넘기던 첫 질문으로 되돌아가본다. 과학이라는 약품속에 박제화되어 죽어버린 ‘신’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 것일까? 아무짝에도 필요없는 골동품처럼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닐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대를 넘나드는 모든 ‘신’의 모습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과 우리 자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로 진보했고 조금 더 똑똑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수염 기른 ‘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괴롭고 외롭고 힘들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때 우리는 ‘신’을 찾는다. 수염기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전지전능함으로 재롱과 투정을 다 받아주는 것처럼 우리도 절대절명의 순간에는 절대자를 찾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유일신이든, 붓다든, 아니면 옛 어른들이 정화수로 물을 떠 놓고 두손모아 빌던 ‘신성’의 모습이든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옛 사람들이 그려놓았던 ‘신들’은 아직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다시 작품들을 바라본다. 그 속에 ‘나’의 모습을 찾고, 옛 사람들의 모습을 찾고, 그리고 우리가 미래의 ‘신’들을 어떠한 모습으로 만들어나가야 할지 곰곰이 숙고하게 된다. 이러한 인류사, 그리고 ‘신’에 대해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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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성품을 엿보다.
우선 이렇게 많은 분량의 다양한 '신의 얼굴'로 알려진 것들을
만나게 되어 놀라웠다.
그 어떤 예술가도 모든 진실을 다 그려내지는 못한다.
또한 신과 똑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본 사람이 없으므로.
다만,구약성경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때로는 단순,소박함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보는 동안 같이 경배에 참여케 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형상을 봄으로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고
신심을 더욱 깊이 가질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신의 성품을 더가까이 느끼게 되고
그 속에 투영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 보고 나면 오히려 보는 것을 넘어 선
신의 모습이 마음에 오롯이 새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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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 것일까. 나라마다 종교마다 각
양각색의 신을 표현해냈다. 코끼리 모습의 신, 많은 팔을 지닌 신, 근엄한 신이 있
는가 하면 가면같은 신의 얼굴도 있다. 이런 다양한 신을 보자니 인간은 어디에 있
든 의지할 절대자가 필요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옛날 인간이 보다
깊은 사고가 가능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보았을 때, 나아가 자신의 존
재에 대해 고뇌하게 되었을 때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럴 듯한 설명을 할 수 있을
까. 아직도 신에 관한 한 논란이 되고 있으니 긴 시간을 지나오고도 앞으로도 이어
질 것이다.
가장 흔히 보아왔던 기독교의 신이나 부처 이외에 눈길을 끄는건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신들이다. 정말 신을 표현한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키가 작고 허
약한 모습을 한 신은 하급신을 표현한 것이란다. 두꺼운 입술과 납작한 코를 한
중남미 신이나 아프리카의 신을 보자니 백인의 예수가 떠오른다. 아무리 절대자를
표현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들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었다. 동물과 합쳐진 형상
의 신은 어떻게 생각해낸건지 신기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신은 다 모아놓은
책을 보자니 눈이 이리저리 돌아간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판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쉽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설명과 함께 읽다보면 양이 만만치 않다. 한 번에
다 보려 하지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면서 천천히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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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보는 종교철학-<수백 가지 신의 얼굴>
<수백 가지 신의 얼굴>은 고전의 감동과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기사들로 문화인의 교양지를 자처하는 격월간 잡지 <안티쿠스>에서 발간한 단행본이다. ‘이미지로 보는 종교철학 1’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림과 조각상 등 시대와 민족, 또는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신의 이미지는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다.
책이라기보다는 도첩 혹은 도록이라 해야 더 정확한 소개가 될 만큼 저자 레베카 하인드는 기원전 1만 4천 년 전부터 20세기 현대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인류에 의해 숭앙된 ‘신’과 그 형상의 이미지들을 모아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무려 1천점에 달하는 이미지들을 집대성해 소개하는 저자의 탐구열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기독교에서의 하나님, 카톨릭의 하느님, 이슬람교에서의 알라, 불교의 부처와 보살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뿐만 아니라 고대의 토템과 샤머니즘의 정령으로서의 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각 문명권과 민족에게 고유한 신의 이미지들을 망라한 신의 형상을 통해 저자는 시대와 민족,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신의 얼굴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의 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안의 신에 머무르지 않는다. 신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고대의 신에서부터 유대교와 기독교,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해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부두교 등 인류의 발자취와 더불어 생겨나고 믿어져왔던 모든 신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각 민족의 고요한 민속신앙에서의 신의 모습까지 살피기 위해 저자는 수만 년 전의 돌조각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신은 그 신을 믿는 사람 혹은 민족의 수호령일 때도 있고, 때로는 그들의 악습을 벌하는 징벌자일 때도 있으며, 어느 시대에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메시아이기도 하다가 어느 종교에서는 가여운 중생들을 떠나지 못하고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을 미루는 보살의 모습으로 현존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신하면 으레 그리스도 예수나 부처를 연상하곤 하는 우리의 굳어진 선입견을 떨쳐버려야 한다. 비록 세계 문명의 발달사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탓으로 많은 사료 역시 그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우리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거나 접할 수 없었던 소위 제3 문명권의 신앙과 그들이 상상한 신의 얼굴과 대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기독교의 성서에 나타나는 신만이 아니라 돌에도 나무에도 가면에도 짐승의 형상에도 신은 있었고 그 신은 기독교가 내세우는 기복신앙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 형상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똑 같은 구원의 신으로 여겨진다. 우리 안의 귀신을 내쫓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삶의 고단함을 기댈 수 있는 인식 존재로서의 신은 어느 시대 어느 신앙에서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다 같은 신이다.
영어의 'God'은 그래서 단지 신일뿐이다. 유일신 하나님도 아닌 것이며 다신교의 여러 신들의 총체적 지칭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개(Dog)가 물구나무서면 신이라는 농담에는 신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며 결코 그 자체로 존귀한 것도 아니요 존귀한 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패러독스가 숨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신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장황하게 신의 모습을 적시하지 않는다. 치열한 탐구정신으로 고대에서 현재까지, 문명에서 비문명의 터전까지 전 지구에서 발견되고 수집한 자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들 스스로 신의 얼굴과 대면하고 깨닫도록 도울 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풍습에서, 동양의 신비주의적 부적 등의 사료에서, 고대의 암각화와 벽화에서, 거장들이 창조한 그림과 조각에서, 이름 없는 편찬자의 복음서 삽화에서, 마모되고 깨진 오래된 돌조각에서 당시를 살았던 인류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신들의 얼굴이 두툼한 책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너무 많은 신의 모습들로 인해 제대로 인사하기도 어렵다. 이야기 그림책을 보듯이 넘기며 보다가 특별한 정신의 자장이 울릴 때, 그 신과 조우하여 궁핍한 내 상상력의 곳간을 채우면 그만이다. 그림책을 소개하기가 난감하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고 보아왔던 종교들의 신을 제외한 몇몇의 신들의 형상을 플래시 이미지로 소개한다.
선별의 원칙은 없다. 다만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는 고대 신앙의 상상력과 문명 이전의 토속 신앙에서 드러나는 상상력의 소산들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언뜻 불교의 신인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 힌두교의 신이기도 하고 이슬람의 것인 듯이 보이는 자료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기자 역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제1부 ‘자연과 인간을 보살피다’, 제2부 ‘우주를 관할하다:신의 우주론’ 그리고 제3부 ‘여러 형식으로 존재하다’로 나누어져 있는 책 속의 신들은 여러 분의 관심으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신의 형상을 왜 그렇게 표현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은, 거장과 이름 없는 예술가를 막론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미루어 짐작해보는 여러분들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