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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지만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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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논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강한 자는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이와 같은 질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를 향한 저항은 있어왔고, 저항의 성공은 권력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곤 했다. 우리의 역사는 몇몇 위대한 혁명들에 대해 말한다. 대개의 혁명은 폭력성을 수반한다. 폭력이 용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답하기 힘든 주제임에 분명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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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논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강한 자는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이와 같은 질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를 향한 저항은 있어왔고, 저항의 성공은 권력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지곤 했다. 우리의 역사는 몇몇 위대한 혁명들에 대해 말한다. 대개의 혁명은 폭력성을 수반한다. 폭력이 용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답하기 힘든 주제임에 분명하지만, 혁명의 경우는 더 큰 폭력성을 제어하기 위한 선한 의도의 폭력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선한 폭력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일까? 이 책의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은 압제에 저항할 때조차도 폭력은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상대는 무기를 들고 압박을 가하는데 그보다 더 강한 무기는 들지 못할 망정 비폭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니 이런 주장이 다소 무모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혁명을 통한 사회변혁을 꿈꾸고 무정부주의자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폭동을 일으키며, 심지어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자처하는 몇몇 집단들은 위대한 성전(jihad)를 부르짖기도 하는 것은 폭력이 저항의 수단으로서 유효하다고 그들이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마르크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행동이 저항인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수반한다고 그리고 이는 우리도 잘 아는 문제이다. 지난 9.11 테러가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전쟁은 또 다시 숱한 자살폭탄 테러와 민간인 납치/살해로 이어지고 있음을

 

그렇다면 비폭력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타깝게도 이 단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듯했다. 오히려 우리는 폭력이란 단어의 정의를 통해 비폭력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성격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에서마저도 이는 모호하기 그지 없다. 특히 오늘날의 종교는 권력을 획득하면서 이전의 비폭력적인 성향을 잃은 지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폭력을 주장했던 몇몇 종파들은 종교 내에서 이단으로 치부되어 축출되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강압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과장된 혹은 허위의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과거 중세 시대에 사용했던 타 종교를 억압하기 위해 악한 이미지를 투사시키는 방법은 오늘날에도 어김없이 사용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전에 자주 사용했던 악의 축이라는 단어는 이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예일 것이며, 없는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무모하다 싶은 비폭력적인 방법이 유효했던 적도 있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사회에 심오한 변화를 일으켰다. 심지어 구소련의 붕괴 역시 (구소련 체제 내부의 모순, 부패적 요소 등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미국의 끈질긴 기다림, 즉 비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덴마크인들은 무력 아닌 비폭력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 생명을 나치 치하로부터 구출할 수 있었으며, 체코의 둡체크는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음으로써 소련을 패배시켰다.

 

문득 이전에 읽었던 내 영혼이 따스했던 날들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으로부터 강제로 이주당하던 체로키 족 인디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읽으며 난 온몸 가득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었다. 자신들을 향한 폭력을 말없이 감내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 속에 죽은 동료의 시신을 침묵 속에 운반하는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비폭력적인 방식의 저항이었다. 오늘날 수많은 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이와 같은 숭고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작은 분명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시작해야만 하고, 이미 시작한 이들도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폭력은 결코 폭력을 통해 끊을 수 없기에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방법을 택함으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우리 사회가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 묻기가 두려워진다.

이달의 사락 q*****2 2007.08.1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