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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우리학교는 왜 " 주입식 교육의 산물은 한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내던 중 2학년 과정 중에 필수과목으로 1년을 함께 신음하며 보내야 했던 윤리와사상이 떠올랐다. 나름 암기과목 중에서도 애착을 갖고 있던 과목이었기에 그때 혹독한 선생님의 암기 수업법에도 불구하고 나름 기꺼이 수업내용을 받아들였던 추억을 되살려, 이 책을 신청하게 되었다. 서평과 조금 관계 없는 내용이지만, 윤리의 경우 재수생에 비해 재학생에게 무척이나 불리한 과목임에도 불구하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학교의 의도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순히 입시만을 위한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면에서 볼 때, 꼭 한번쯤은 배우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사상/철학 분야라는 생각이 관련 수업을 듣는 내내 떠오른 생각이었다. 앞서 서평을 작성하신 블루가이님의 평가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같은 의견이다. 초급자의 입문서로는 부적절한 매우 심오하고 난해한 내용이었다. 초급자의 한 입장으로써 그나마 윤리와사상이라는 얄팍한 지식이나마 없었다면, 그야말로 흰건 종이요 검은건 글자라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야만 했을 것 같을만큼 어려운 내용이였다. 하긴,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아무리 쉽게 표현하려고 한들 심오한 과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보통 민간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그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 같은 문단을 3~4번 반복해서 읽어야만 간신히 그 의미가 조금은 와닿는 듯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가 이정도인데 하물며 생소한 다른 학자들은 어떠하겠는가. 고등학교때 존경했던 한 선생님으로부터 선진국가일수록 역사학과 철학이라는 학문에 국가적인 투자가 전폭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도 어려서부터 사상과 철학에 대한 이해를 직간접적으로 접해온다면 이런 난해한 도서를 아무런 부담 없이 술술 읽어내려가는 교양을 갖추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도 해 보았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하게 읽었지만 가슴을 울리거나 감명깊은 단락을 지적할 만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때 아무생각없이 펼쳐서 읽고 “이게뭐야”싶었던 <어린왕자>를 접했던 그 느낌이 이랬던 듯 싶다. 아마도 시간을 두고 수차례 읽어야만 고매한 철학자들의 그 높고 높은 기상이 조금이나마 내 가슴에 와닿을 듯 싶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백번 옳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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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똑똑해지겠다고 작정을 하고 선택한 책이다.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이라는, 철학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철학책을 읽다보면 사고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는 발상에 혹해서 말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부터 현재의 슬로터다이크까지, 서양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망라해서 정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책 제목에서 연상되듯이 어떤 철학자 한 두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내가 사랑한 철학자-서양편'과 '내가 사랑한 철학자-동양편' 등으로 세분화해서 책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싶다.
자신을 안다는 것, 혹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는 것이 인식의 출발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철학과는 담쌓고 지낸 20년 동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이 책 앞머리에 나와 있어서 반가웠다. 동굴의 우화, 그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대학 신입생 때 사물의 현상과 본질은 다를 수 있음을, 주관적인 인식과는 별개로 본질이 존재할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그런 생각을 정리했던 나의 노트가 철학개론 시험 때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다. 이 책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하는 서양의 철학사조와 철학자들을 정리해 주고 있다.
고대 철학이 세상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중세의 철학은 세상의 기원이 신이라는 대답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신이 세상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고, 세상의 창조자로서의 신과 그의 피조물로서 인간을 사고하므로써 철학을 '신학의 하녀'로 취급했다는 지탄을 받게 만든다. 사고는 깊어져 근세철학은 중세철학에서의 신을 극복하고 인간과 자연, 인간의 인식이 가능한 세계를 탐구하고, 이상적인 세계의 구현에 철학이 이바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 경험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 등이다.
근대에서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철학은 '인간'에 더 집중하는 경향으로 흐르는 듯 하다. 그러나 관념론자의 헤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할'은 과소평가된다. 계몽주의 등 근세철학이 역사 없는 이상실현을 꿈꿔왔던 반면 헤겔은 사상이든 역사든 '정-반-합'의 3단계를 거치면서 완성된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헤겔에게서 정반합은 사물의 속성이지 의식적인 활동과정이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고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칼 마르크스 등이 대표 철학자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체제를 바꾸고, 세상의 발전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며 등장한 사회주의가 빈곤의 평등과 부패의 만연, 발전에 대한 제약이라는 한계를 드러내며 몰락한 이후 그 철학마저도 부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칼 마르크스 이후의 철학자로서 야스퍼스,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의 실존주의자들과 프랑크푸르트학파,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사조들은 유물론과 관념론을 넘나들며, 역사 속에서의 인간, 언어와 인식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폭을 확장, 심화시키고 있다.
일상의 행복, 돈, 건강 등 생존을 위한 고민이 천박한 것도 아니고, 생존과 생활은 뒷전으로 하고 철학과 철학사조에만 탐닉하는 것이 고상한 것도 아닐 것이다. 정말로 천박한 것은 사고의 대상이 아니라, 깊이 없는, 순간의 호기심 때문에 관심을 보이다가 끈기가 없어 집착을 못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깊이는 없지만, 철학입문서 내지는 개론서로서는 유용한 듯 하다. 개론서를 두권 쯤은 더 읽어볼 생각이다.
- 인상깊은 구절 - '반론의 장점은 무엇인가? 하나의 이론이 개별적 사례를 통해 최종적으로 입증될 때 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일 날씨에서도 그렇겠지만 모든 백조들이 흰색이라는 진술은 더욱 어려워진다. 검은 백조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입증은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론은 가능하다. 포퍼는 학자들에게 그들의 이론을 가장 가능성 있는 이론의 도움으로 철저하게 검토하고 자신들의 원래의 전제를 반증된 것으로 인정하는 전제 조건들을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기초가 잘 세워진 이론을 세우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이론들은 그만큼 더 가치가 있다. 반증은 학문적 품질관리를 의미하는 것이다.'(p.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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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위의 근원적인 질문 세가지 예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존재하는 하는 영원히 소클라테스나 플라톤은 신화의 세계에 관심(최초의 기원이나 인간의 구성물질등)에 대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개인주의를 촉발시켰고,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다시 신 중심의 시대에서 사실 아직도 잘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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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성찰이 조금은 부족한 듯 해서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자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익숙한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근대 철학까지는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반면, 고대 철학자가 탄생한 순간 부터 현대의 철학자까지 너무 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한 책에 담으려 한 탓인지 읽을 수록 책에 빠져들기 보단 책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물론 대부분의 철학자의 핵심 사상은 잘 정리했기에 행간을 읽고 음미한다면 철학 사상의 발전이라던가 더 간단하게는 그들이 고생해서 얻어낸 삶의 고뇌와 철학을 잘 받아 들일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쉬이 읽혀지지 않는 문체와 구성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이 원저에서 구성이 됐는지 번역판에서 이렇게 구성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더 좋은 책을 위해 노력했다면 훌륭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