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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야간 열차를 탄 나는 첫 차도 다니기 전인 이른 새벽 부산역에 도착했다. 차갑게 식은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도시를 구경한다. 어둠 속에서 설렘과 기대가 부풀었다. 잠시 후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그 곳에서 부산 영화제 ID 카드를 받고 보고 싶던 영화를 잔뜩 예매했다.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는, 하루 4편의 영화를 보기 위한 미친 일정.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보다는 봐야만 할 것 같은 영화를 봤다. 그 때는 학생이었으니까. 웬지 예술 냄새가 나는 영화들만 골랐다. 그래서 졸았다.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그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릴 것 같은 순간 나를 깨운 건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 된 빌 머레이의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Broken Flowers>, 짐 자무시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이후 나는 <천국보다 낯선>을 봤고 <미스테리 트레인>을 봤고 <다운 바이 로>를 <데드맨>을 <고스트 독>을 그리고 <커피와 담배>를 봤다. 몇몇은 끔찍할 정도로 지루했고 몇몇은 기가막힐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나는 졸업을 했고 영화를 관뒀고 회사에 취직했다. 더 이상 짐 자무쉬를 찾지 않았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시간이라는, 이 부지런한 악마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옛 일을 떠올리게 된다. 구석에 쳐박혀 먼지 덮힌 기억을 자꾸만 꺼내본다. 그럴수록 기억은 더 생생해진다. 나는 어느 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거의 동시에 꺼내들었다. 이틀 뒤 내 책상 위에는 이 책이 배송되어 있었다. <잠 자무시> 인터뷰집은 그의 대다수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루하다. 여러 인터뷰를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같은 얘기를 되풀이 할 때가 많다. 확실히 그의 영광은 데뷔작인 <천국보다 낯선>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거의 신화가 된 이 작품에 대해서만 궁금해한다. 이 줄거리도, 유명한 배우도 없는 흑백 영화가 왜 자기를 그토록 매료시켰는지 놀라워 한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짐 자무시의 입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대답은 신통치 않다. 대개의 위대한 예술은 창작자의 이해와 역량을 한참이나 초월하는 불가해한 존재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질문과 힘겨운 대답이 이어진다. 자기 영화를 팔아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짐 자무시는 결코 인터뷰 같은 걸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위한 유일한 위로는 어서 빨리 책장을 덮고 스크린 앞에 앉아 그저 영화를 보는 것이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인터뷰집을 효과적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절대적으로 질문에 집중하라는 것. 훌륭한 질문에 바보 같은 대답은 나올 수 있지만 바보 같은 질문에 훌륭한 대답은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질문을 읽은 뒤 그게 형편없거나 당신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면 그 답변 전체를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유명한 예술가가 되면 모두 이런 곤혹을 치러야 한다. 수 없이 되풀이 되는 똑같은 질문들. 새 영화를 찍기에도 바빴을 이 사교성 없는 남자가 행한 그 끔찍한 앵무새 연기에, 슬픔과 연민을 담아, 진지한 경의를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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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광고와 예고편이 끝난 후, 영화가 시작되기 전 불이 꺼지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 짧은 순간의 어둠. 그 긴장되면서도 편안한 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가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영화 속으로 빠져들 준비를 하는 그 짧은 순간의 고요. 짐 자무시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캄캄한 순간. 고요한 정적의 순간. 그 나른하면서도 편안한 순간의 느낌은 그의 영화들을 닮았다. 삶의 순간들에 관해 무채색빛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짐 자무시. 그의 인터뷰집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강렬한 순간들의 모음 같다. (인터뷰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인터뷰집을 읽게 된 건 순전히 브로큰 플라워 DVD에 수록되어 있었던 감독 인터뷰 때문인데, 좀 더 흥미진진한 그의 이야기들이 더 남아 있을 거라는 나의 예감은 들어맞은 셈이다.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자신이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들려줄 때 더 귀를 기울여 듣게 되는 것처럼, 영화의 바깥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그이기에, 그의 이야기들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천천히 읽었다. 그의 영화에 숨어 있는 고요한 언어들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으로. 기대했던 대로,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넘쳐날 정도로 천천히 읽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전 어떤 것들 사이의 순간에 더 관심이 있어요. 택시 안에 있는 사람보다는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흥미롭죠. 저는 늘 작고 평범한 것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순간들.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그리고 대화 중 이야기가 끊어진 그 짧은 순간, 침묵의 순간들,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고 무슨 말을 할 지 생각하는 순간들. 그러한 삶과 삶의 순간들에 관해 관심이 많다고 하는 짐 자무시. 영화 속에선 쉽게 삭제되고 편집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변함없이 계속되는 그러한 순간들. 그래서 자신의 영화들은 삭제되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그.(그의 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우리의 일상과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건조하고 나른하면서도 보고 난 후, 무언가 알 수 없는 마음의 울림을 남겼던 그의 영화처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 있는 대사처럼 들렸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더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대사처럼, 그의 이야기들은 삶과 영화에 관한 나른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유의 단편들 같다. 이 감독의 매력에 더욱 반하게 되는 건 다음과 같은 말들 덕분이다. “단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웃기지 마쇼. 난 못해. 관두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거죠. 그게 바로 저의 태도인데, 거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전 관두는 쪽을 택하죠. 인생은 너무 짧거든요. 물론 계속 일을 하고 싶죠. 얼마나 길지 모르지만 평생토록 하고 싶어요. 그와 동시에, 제가 어떤 특정한 시스템 아래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하기 위해 저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죠. 잘 진행되기를 바라고요. 만일 프로듀서가 저에게 “이러 이러한 스타 배우를 이번 영화에 꼭 출연시켜야 해. 무난하게 얀 해머의 음악을 써야 해. 촬영이 끝나면 우리가 편집을 할 테니 자넨 그저 어디 여행이나 다녀오게. 걱정할 거 없어”라고 말한다면 전 아마도 누군가를 총으로 쏴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 거예요.”
자신의 신념대로 영화를 만들기를 원하는 감독, 짐 자무시. 이 배짱 두둑한 감독의 신념을 마주할 때 약간의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쩐지 그가 더 마음에 든다. 거창한 서사보다 아주 작은 것들에 더 관심이 많은 이 사람. 그래서 자신을 “그저 소소한 시를 쓰는 마이너 시인”으로 생각한다는 그. 심지어 인터뷰 후,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다시 전화를 걸어 빼달라고 말하는 소심함(?)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돌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신의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다시는 보지 않는다는 짐 자무시. 그의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원서에 있는 2편의 인터뷰를 빼버린 것일까? 너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