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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인데, 판매지수가 낮다. 김서령의 작품을 접했을 때, 온몸이 물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기분나쁜, 습기가 아니었다. 촉촉했다. 피부가 울고 있었다. 온통 물기에 젖어 있는 책. 저 깊은 심해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짭잘한 맛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좋은 문장이 많았다.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내어 읽는 게 훨씬 더 와닿았다. 피크에 실린 이별의 과정이란 소설도 참 좋아한다. 소설가에게는 독특한 발상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치도 못한 반전이라든가 오랜 조사 후에 쓰여지는 소설들도 좋다. 그런 소설이 판을 치는 요즘, 오로지 자신의 감각만으로(물론 작가 나름 조사한 바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후속작이 기다려진다. 김서령 작가 파이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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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향한 배려의 정신
김서령의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실천문학사, 2007)에는 타자를 향한 배려의 정신이 돋보이게 나타난다. 소설이 근본적으로 타자를 지향하는 형식이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정립하는 형식의 문학이라면, 김서령 소설은 정확히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현재적 모습을 발견하는 인물들의 형상을 주로 표현한다.
「고양이와 나」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는 포르노사이트에 이따금 글을 발표하며 용돈이나 벌어 쓰는 백수이다. 방송국의 쇼호스트로 일하는 나의 아내는 “쉼없이 재재거리는 강아지 같은 여자”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말이 없어지더니 일본에 출장 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방송국에서 멀지 않은 비즈니스호텔에서 홀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아내의 이러한 행동의 원인을 반추하는 나의 심리적 추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목 ‘고양이와 나’에 암시되는 바, 이 작품은 바깥세상을 알아본 적 없는 고양이와, 한 번도 집안에서 소란을 피워본 적 없는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아내가 느꼈을 권태감의 정체를 넌지시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고양이를 버리는 대신 (즉, 고양이에게 삶의 실상을 보여주는 대신) 고양이의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 꿈속에서는 아내의 가슴을 물어뜯는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지만, 실제의 현실에서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상의 삶에 젖어 일상의 외부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한 인물의 입을 빌어 “버릴 건 좀 버려. 너무 많이 들고 다니니까 손이 무거워서 아픈 거지”(「무화과 잼 한 숟갈」)라고 이야기한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둘 때 몸은 아픔으로 그에 반응한다. 낙태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진’과, 한국에서는 검은 천을 둘러쓰고 사는 것 같아 호주로 이주한 나의 삶은, 마음속의 아픔(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러한 아픔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까? 표제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에서 작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모성의 정신을 제시한다. 모성은 가부장적 신화의 제도적 산물로 치부되어 왔지만, 그녀의 소설에서 모성은 무엇보다도 타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의 진실한 마음으로 표현된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언니를 잃은 열아홉 살의 ‘나’를, 친구 박태원과 그의 엄마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나는 태원이 엄마의 젖가슴에 얼굴을 댔다. 다보록한 가슴에 코를 묻자 뺨을 묻고 싶어졌고 또 귀를 묻고 싶었다. 나는 자꾸만 파고들었다. “아이고, 불쌍한 토끼 같으니. 살아봐라, 세상이 다 그렇게 아린 게니라.” 토닥토닥. 태원이 엄마가 내 엉덩이를 두들겼다. 나는 더 깊이 태원이 엄마의 가슴에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어느 샌가 태원이 아버지가 아기처럼 기어나와 이불 발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보니 태원이도 방문을 열어 놓고 있다. 작은 토끼야, 잘 자. 어두운 방 안에서 태원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긴 귀에, 분명 그렇게 들렸다. (93~94쪽)
태원이 엄마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린’ 세상일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잃었지만, 살아남은 동생 ‘나’는 여전히 그 아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친구 엄마의 가슴 속으로 한없이 파고 들어가는 나의 형상에는 이러한 아린 삶의 흔적들이 오롯하게 새겨져 있다. ‘나’는 어떻게 될까? 이 물음은 어쩌면 중요한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가 태원이 가족과 함께 살든, 따로 살게 되든 그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태원이 엄마의 가슴 속에서 그녀는 따뜻한 사람의 정을 느끼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그녀는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이다.
김서령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감동을 받는 지점은 바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존재들이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펼쳐내는 순간이다. 「쌍둥이들의 방」에서 돈을 벌기 위해 대리모 역할을 하는 명주가, “눈 멀고 뇌가 병든” 쌍둥이 조산아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버릴 것은 버리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김서령 소설의 핵심적 윤리의식이 담겨 있다. 그 핵심에서 우러나온 소설의 윤리는 그러므로 지금 이곳의 아린 삶을 위무하려는 작가의 윤리와 변함없이 맞물려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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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이 잘 변하지 않는 대신 독자들은 많이 변하니까 한국소설과 독자가 만나야되는 접점이 잘 안 생기는것 같다. 김서령이라는 작가는 잘 몰랐는데, 이 소설집을 보고 앞으로 이 작가랑은 접점을 만들 수 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은 같을지 몰라도 다루는 솜씨가 몸에 착착 들러붙는 옷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젠 난무하다시피 하는 일본 소설들보다 훨 낫다! 이 작가가 한국 소설의 끈을 자꾸 끌어다가 독자들에게 이어주었으면 한다. 참 좋은(물론 재밌는) 소설 하나를 보아서, 김서령 같은 작가가 또 있는지를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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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냥 도서관에서 바삐 고름.
오랜만에, 솔직히 골드미스다이어리 이후 두번째로 한국 소설을 빌렸다.
배경지식이 없길래, 표지가 촘 괜찮아 보이는 걸로 골랐는데 속은 너무 슬펐어.ㅠㅠ
되게 근데 음.........
내가 읽을 시간이 초큼 초큼으로 나눠져 있다보니 가끔 헷갈릴 떄가 있었음.
예를 들면 장소가 같은 곳이 몇번 나오잖아. 그리고 임신에 관한 것도 촘 나오고.
아놔 여튼 그랬음.ㅋㅋㅋ
내용이야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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