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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늘 흥미를 돋운다. 같은 여자로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산 그들 혹은 나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그들은 해내는 것에 대한 동경심이랄까, 아님 위안이랄까. 요부가 되었거나 위인이 되었거나 혹은 죽을 고생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늘 나를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내 어머니와 같은 나이 혹은 내 할머니와 같은 세대를 살아오신 그 분들의 인생을 엿보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이란 자기하기 나름이고 내가 아무리 힘든 일에 부딪혀 좌절 속에 빠지더라도 살아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환경 속,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내가 그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이런 여자들의 인생을 엿볼 때면 나와는 다른 그들의 삶에서 내 삶을 유추해보다가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면서도 매번 이런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삶속에서 나를 찾아보다가 또 잊어버리고를 반복하게 된다. 삼천포의 잘 사는 집 딸로 태어나 소공녀처럼 자라다가 아버지와 오빠를 찾으러 지리산에 올라갔다가 빨치산이 된 고계연 할머니, 그녀는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쪽발이 동상에 의해 거의 다 잘려나가고 국군에게 붙잡혀 모진 일 다 겪고 풀려났지만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경찰관들의 감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면서 자식들 낳아 보란 듯이 키웠다. 그 긴 세월동안 고계연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는지는 이 짧은 글에도 숨이 턱턱 막히지만 할머니는 그걸 이겨낸 것이다. 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일본군 위안부로 가게 된 김수해 할머니의 탄식과도 같은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이야기는 열네 살에 오빠들을 따라 중국 팔로군에 들어가 죽음의 강이라 불리던 황하강을 건넜던 윤금선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내가 그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대장정』이란 책 때문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홍군이라 불리던 중국공산당들의 행동에 대해 진짜일까? 하는 의문을 조금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쓴 책이니 그들을 우호 하는 글을 쓴 게 아닐까 했다.(반공교육의 결과는 이처럼 무섭다.- -) 그런데 윤금선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니 그들의 행동이 정말이었던 거다. 그들이 대장정 전에 정해 두었던 규칙들을 팔로군들 역시 그대로 지켰기 때문이다. 아무튼 윤금선 할머니는 그 후에 기공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꼿꼿하게 기공 수련을 하는 모습과 내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면 육체도 그에 따른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나. 그 외에 한 달의 인연으로 생긴 딸과 함께 평생을 수절하며 지상엔 없는 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최옥분 할머니, 스스로 기생이며, 황진이이고, 혁명적 예술가라고 칭하던 천생 춤꾼 이선옥 등 그들의 태생과 나이, 환경, 삶은 달랐지만 여자로 살면서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강인하고 지독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들 모두 시대를 잘못 타고났지만 그 모든 수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혹은 삶의 대한 긍정과 희망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결국은 그들이 그 모진 삶에서 승리자가 된 셈이다. 저자인 김서령은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이다. 그녀가 찾아간 여덟 명의 여자들 중에 50년 넘게 종갓집을 지켜오고 자신을 키워주신 숙모 김후웅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이데올로기와 분단, 일본의 침략과 같은 한국의 근 현대사를 몸으로 겪으면서 그 수난을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내 인생은 얼마나 편하고 안락한 것인가? 작은 일에도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현대의 여자들에게 이 책 『여자전(女子傳)』은 힘을 내라며 건네주는 박카스 같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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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구한 인생들 살았구나. 어쩜 이런 인생이 한 권의 책으로 모였을까. 다들 한 번은 신문에서, 잡지에서 보았을 법한 팔자 센 여성들의 이야기. 그러나 이 책엔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냥 일방적인 신파조가 아니다. 수레바퀴에 친 무력한 삶과 그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바람이 오기 전 드러눕고 바람이 지나가기 전 다시 불뚝 일어서는 강인함이 있다. 굳이 민중적 차원에서 어쩌고 저쩌고 이념주장을 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전 편에 걸쳐 살아 있는 생명의 이야기, 그들의 몸부림, 그리고 값진 생존이 담겨 있다. 글쓴이의 맛깔스런 문체가 아이스크림처럼 이야기를 핥고 또 핥게 만든다. 상처가 있었다면 곧 치유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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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우리들의 가장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여성의 삶은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역사를 돌아보게끔 한다.
빨치산 할머니와 위안부 할버니, 팔로군 출신 할머니를 지나 춤꾼 이선옥 할머니와 명성황후의 한을 풀려 혼신을 다한 이영숙 할머니의 삶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들이 전부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인생'(이 책의 부제)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빨치산과 위안부, 팔로군의 삶보다 춤꾼, 고아원 선생들은 훨씬 '개인적'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시금 반성하며 생각했다. 역사와 동떨어진 개인적 삶이 어디 존재하는가. 춤꾼이라 해서, 종가집 며느리라 해서 어찌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오지 않았겠는가. 나는 아직도 내가 늘 비판하던 주류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만져 살펴보고 또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리고 그 '개인적'인 삶에서 역사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보고 싶던 역사가 아니던가.
이 책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히) 여자의 삶, 우리 할머니들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서문에서처럼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성별로 태어났다는 것이야 말로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정작 나야말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의 삶도 당신들께서 가끔 이야기해주시는 것 말고는 알지 못한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료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급선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첩경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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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픔, 그리고 '세월을 견딘 사람들'의 위대함
소설가 김형경은 추천의 글에서 "<여자전>에 대해 무엇이든 덧붙이는 것은 사족"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너절한 사족'을 붙이지 않을 용기가 내게는 없다. 20세기의 암울했던 우울했던 측면을 가파르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묵묵부답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을 읽기 이전에도 '직업역사들'의 역사를 많이 읽었다. 때로 왜 읽었나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들이 비록 '팩트'이니 '사실'이니 하면서 글을 썼다지만 감동이 오지 않는 것을 어찌할까. 인간의 존엄이라든가 세월의 위대함이 주는 메시지가 없다. 그러니 감동이 있을 리가 없다. 반면 <여자전>은 직업역사가가 쓴 것도 아니고 그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학교역사교과서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긴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세월을 견딘 사람들'의 위대함을 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역사의 힘이라면 힘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만약 인간을 이해하는 담론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20세기 역사서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은 20세기를 살았던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달리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동시대 한국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공통점 말고는 신분도 부도 학력도 환경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모를지라도, 서로 모르는 채 제각각의 인생을 살았더라도, 20세기의 격랑에서 이들은 슬픔을 관통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보따리'를 같이 푸는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의 슬픔은 '한 낱 슬픔'이면서도 '역사적 슬픔'이다. 그들이 본디 영웅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라고 말할 때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풀무질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영웅처럼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웅이기 때문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세월을 견딘 사람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전자가 위대함을 독점하는 것을 역사학에서는 영웅사관이라고 한다. 반면 후자에 주목하는 것을 미시사적 관점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책은 미시사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傳이라는 형식'
엄밀하게 말하면 이 글은 여덟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이다. 물론 8명이 등장하고 이들이 자신의 말로 자신의 삶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들의 말을 글로 표현하는 이는 김서령이라는 저자 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히 뚜렷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물론 저자는 이야기를 역사로 협애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역사를 포괄하면서도 역사 이상인 어떤 것, 저자는 이것을 "소설도 노래가사도 역사도 체험도 모조리 이야기라는 말 속에 녹여낸다"고 표현하였다.
밑바탕이 되는 것, 단순히 역사의 사료이거나 소설의 소재거리가 아니라 역사를 가능하게 하고 소설을 가능하게 하면서 관통하는 형식, 즉 이야기라는 형식을 그는 발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에 역사가 출현할 수도 있고 소설도 등장할 수 있고 영화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저자가 '傳'이라는 형식을 말하는 것은 이런 맥락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야기의 복원>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 '꽃으로 문질러 쓴'
이들 중에는 애초부터 삶의 목표가 분명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운명에 내던져진 채 주어진 상황에서 충실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전자는 발전의 관점에서 포착할 수 있지만 후자는 퀼트의 관점에서 포착할 수 있다. 이 글의 장점은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가 진보이냐 발전이야 하는 논쟁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논쟁이란 것은 대체로 백가쟁명처럼 피어오르건만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할 실제 역사서술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풍요의 빈곤을 말할 때 논쟁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이야기는, 성공한 사람들의 아애기는 발전의 시각에서 쓰여 지게 마련이다. 언제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 성공하게 되었는가, 성공의 정점에 오르게 되기까지 어떤 역경을 거쳤는가 등등. 이러한 이야기는 감동을 주고 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이야기, 그렇다고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꿈을 주기보다는 퀼트의 아름다움을 준다. 이럴 때 아름다움은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고통을 겪고,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출발하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내가 겪어온 인생을 부정할 수는 없어 긍정할 때의 아름다움. 퀼트를 짜면서 주름진 삶을 하나씩 펼치던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에서 나타났던 아름다움도 대체로 이런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할 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면 좋겠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도 저자가 "꽃으로 문질러 쓴"이란 표현을 쓴 것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4. 퀼트의 역사를 쓴 역사가
역사로 국한하여 말해보면, 이 글은 남성역사(history)가 아닌 여성주의 역사(‘herstory')이며 발전의 역사가 아닌 퀼트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의 저자는 퀼트의 역사를 쓴 역사가이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역사가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일 것이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업역사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이든, 타인의 이야기이든 <이야기를 歷史化>하는 일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직업역사가들이 쓰는 역사서술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그러나 직업역사가가 아니라면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다.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역사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업역사가=역사학과 교수’는 아니었지만 푸코는 매우 영향력 있는 역사가이다. 그는 철학자이었으므로 철학적인 담론을 통해 역사인식론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기록더미에서 역사화를 추구하였던 역사가이었다. 이런 점이 푸코를 영향력 있는 역사가로 만들었다.
저자는 의식적으로 역사서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직업역사가들이 ‘어거지로 둘러 놓은’ 형식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형식이 따로 없고 저자 자신이 한 것도 역사라고 한다면 저자는 역사가이다. 천 명의 독자가, 만 명의 독자가 감동을 받고 20세기를 보다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역사를 통해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그것이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 역사일까.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는 푸코 못지 않게 영향력 있는 역사가였다.
5. 동의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표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인터뷰를 할 때 이들은 모두 70대를 전후한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할머니가 맞다. 그리고 70세 할머니의 시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맞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할머니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저 개인의 이야기이고 좁힌다면 여성의 이야기이고 더 구체화한다면 20세기에 한반도-중국 등지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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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구술사"라는 수행평가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은 도데체 구술사가 무엇인지 모른다. "구술사"란 여러분 주위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래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 학생들에게 구술사가 무엇이고 왜 구술사를 과제로 주었는지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책이 이 책"여자전"인 것 같다. 책 속에는 한국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여덟 분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들이 낮설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은 더 친숙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는 교과서를 비롯한 한국의 역사책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더 가까이 있고, 더 친숙했던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책에는 왜 없을까?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듣고 기록해야한다. 그래서 지워지고,뭍혀져 잊혀져버릴 역사의 반토막을 채워넣고, 온전한 역사로 만들어야한다. 여덟분 할머니의 삶 속에서 힘들었지만 발전되어온 한국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분들이 진정 한국사의 주인공이었음을 잊지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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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하고 곡절 많은 할머니 8명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으아. 요즘 세상엔 아무리 기구하다 한들 이럴 수 있을까? 빨치산 할머니의 이야기, 몰락한 종가를 혼자 지키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에서 억장이 무너진다. 춤꾼, 날뛰는 망아지같은 문화예술인 할머니 이야기는 신선했다. 역시 그 때도 죽으란 법은 없었나보다. 자발적으로 비혼모의 길을 선택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런 사연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의외로 많을 것이고 그러면 소수이긴 하지만 문란하다, 괴짜, 미친년 같은 말은 안 들을 텐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종가집 이야기라고 짝꿍에게 말했더니 자기도 그랬단다. 종가집에 시집온 새색시. 시집오는 날부터 일 무더기다. 잠을 못 자면서 1년 365일 일을 한다. 그 많은 대식구 먹을 곡식을 디딜방아로 매일 찧고 사랑방에 있는 남자들 옷을 깔끔하게 유지해야 하고(한복은 빨래할 때마다 전부 다 뜯었다가 다시 꿰맨다) 묵, 엿, 떡 같은 간식도 계속 공급해야 하고 제사는 1년에 18번. 남편은 1달에 1번 어른들이 합방하라고 할 때 잠깐 본다. 잠을 줄이고 줄여도 일은 계속 쌓이기만 한다. 그러는 새에 배는 불러온다. 애도 혼자 몸부림치다 혼자 낳았다. 아들 낳고 며칠 누워 있었던 것이 평생을 통틀어 쉬어 본(?) 유일한 경험. 아이는 두 돌에 홍역으로 잃었다. 열이 나는 아이를 안아 볼 새도 없이 계속 일했다. 심지어 아이를 묻으러 가는 날도 계속 일했다. 그날도 디딜방아를 찧었다. 그런데 남편이 좌익이 되어 집을 나간다. 조만간 보겠지 하던 것이 55년 지나고서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했다. 시집은 몰락해갔지만 종부는 일을 계속한다. 시어른들은 다 죽고, 슬하에 자식도 없는데, 늙은 종부 혼자 그 큰 한옥을 건사하고 1년에 18번 제사를 계속 지내는 거다. 죽으면 썩어질 몸 놀리면 뭐하냐고, 하루에 잠자는 시간만 빼고 계속 일한다. 밥도 남들이 먹지 않는 맛없는 것만 먹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밥은 어색해서 넘어가지도 않는단다. 새 옷도 한 번도 사입어본 적이 없다. 사상(남편 데려간 좌익)이 무섭다지만, 나는 이 할머니의 머리 속의 사상이 더 무섭다. 아마 이 할머니는 그걸 사상이라고 여기지도 않겠지. 무엇이라 이름해야 할까? 가부장주의? 저자 김서령도 뭐라고 이름할지 몰라 머뭇댄다. 사랑? 희생? 자학? 이런 비참한 삶을 찬양하고 여자들더러 따라 살라고 했던 이문열 생각이 나서 갑자기 열이 뻗쳤다. 이런 노예노동을 통해서 남자들은 간식 먹어가며 학처럼 하얀 한복 뻗쳐 입고 공자 왈 맹자 왈 했다 이거지. 내 앞에 이문열 보이기만 해. 그냥 싸대기를 한 대! 그뿐이랴. 예전에는 심지어 국어교과서에 엿을 고고 강정을 만들고 설빔을 한 땀 한 땀 손으로 짓는 어머니의 노동을 찬양하면서, 요즘 여자들은 정성과 사랑이 없다고 하던 수필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전숙희의 ‘설’이다- 다시 읽어 보니 이 수필의 어머니도 지독한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인간애와 정성을 가정 안에 재생시키는 것이 현대인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군. 정작 본인은 대학 다니고 유학가고 글만 쓰면서, 어머니 같은 생활은 꿈에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쩜 이렇게 대책 없는 글을 썼을까. 한편으로 드는 생각. 여기 나오는 여덟 명 다 어쩌면 이렇게도 강인할까? 어쩌면 이렇게도 투덜거리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교육받고 그렇게 세뇌받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타고난 심지가 굳고 곧았던 면도 있는 것 같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능력. 이 여성들이 좀 더 ‘개화된’ 세상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적어도 여성들이 학교는 다닌다는 점에서 세상은 그만큼은 좋아진 게 아닌가 싶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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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영숙이라는 사람은 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머지 7분의 인생은 그냥 놀랍다~ 라는 말밖에 안나오더라.
이처럼 강인하고 질기게 삶을 이어오면서 자신과 주변을 추르리는 인물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느정도 주변에 대한 파급력을 가질까 매우 궁금해질 정도다. 아무리 이런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라고 해도, 정보가 귀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대상이 된 인물들이 주변에 미친 영향이 전달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수십에서 수백명 이상은 되는 정도의 인물이 아닐까?
정말 박노자의 말처럼 이러한 인물들이 있었기에, 이 사회가 망하지 않고 이정도의 진보를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눈물이 핑 돌만한 장면이 너무나도 많다. 에고~ 뭐라 할 말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김후웅이라는 분, 월북한 남편을 두고 혼자서 종가를 지켜온 분의 인생이 참으로 납득이 안갈정도로 기이하고도 질기단 생각이 든다. 55년만에 남편으로 부터 받은 편지에서 자신을 '귀한 몸'이라고 칭했다는 것에서 눈물을 지었다는 장면... 정말 사람은 귀한 것인데~ 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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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저자처럼 지난 세대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 김서령 저자처럼 걸쭉하고 리얼하게 풀어낼 자신은 없지만, 우리땅에서 살아온 우리 윗 세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지금은 우리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모두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가 없지만, 친척 할머니분을 만나면 나는 꼭 6.25에 대해 말해달라고 조른다. 지금이라도 그 이야기를 안 들으면, 남질 않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파는 나의 6.25체험 등등의 책들도 절판된 것들이 많아, 당시의 경험자들의 이야기는 정말 접하기 어렵게 되었다.
친척할머니 한 분께 들은 6.25 피난가던 이야기, 하늘에서 B29가 날아다니던 이야기, 바닥에 떨어진 뜨끈뜨끈한 포탄 이야기, 땀냄새가 진동하는 북한의 앳된 소년군 이야기.. 나는 더 듣고 싶었다.
그리고, 가족이고 친척이기 때문에 물어볼 수 없는 강제위안부 이야기. 주위에서는 다들 그때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만 들리고, 실제로 정신대에 갔다왔다는 이야기는 가까이서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은 본명 혹은 가명으로 이 질곡한 세월을 살아온 이 시대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우리가 궁금해 했지만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의 윗 세대의 고난과 역경,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같이 감동적인 이야기들... 보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일생 세 가지 커다란 설움(어려서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설움,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라는 설움, 돌아와서는 교포라는 설움)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연구가 윤금선 할머니 이야기. 한달의 인연을 영원으로 간직한 최옥분 할머니, 문화판의 화끈한 여걸, 박의순 할머니 등등 정말 여기 나온 여덟 할머니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드라마 같고, 감동적이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나를 아는 것이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강추.
인상깊었던 구절
p65 반세기 넘게 홀로 가문을 지켜온 종부 김후웅 할머니 1925년 생 김후웅이 어려서 배운 여자가 갖춰야 할 4덕은 이런 것이었다. '첫째 평소에 남과 다투지 말고 둘째 고난 중에서도 상대를 원망하지 말며, 셋째 쌀 한톨, 음식 찌꺼기 한 웅큼도 버려서는 안되며 넷째 아무리 급한 일을 당해도 놀라움이나 기쁨이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라'
p142-146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연구가 윤금선 할머니 1930년 생 "사람은 채식하고 소식해야 해요. ... 소식하고 채식하면 탐심이 없어져요. 탐심이 없어지면 만족감도 절로 따라오지요. 고기에는 죽으면서 품은 그 짐승의 한이 배어 있어요. 그게 우리 몸에 자꾸 쌓여서 좋을 일이 있겠어요?"
"노인들이 한을 품고 죽게 해선 안 돼요. 돌아갈 때 웃으며 화평하게 가는 노인이 많아야 나라가 잘돼요. 불행하게 세상을 뜬 노인이 많으면 나라에 재난이 그치지 않게 돼 있어요.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고 힘 없고 무력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나라가 복 받고 잘살 거예요. .. 원한을 품고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 원한은 이 땅에 남게 돼요. 그 신호가 나라 안에 공업이 돼서 남아 있으면 후손이 잘될 수가 없어요. 자연에 자꾸 따스한 사랑을 줘야 해요. 그 따스한 사랑이 결국 세상을 화평하게 만들거든요. "
"주변에 있는 사물을 천대해 보세요. 불만을 가지는 감각이 반드시 있거든요. 반대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면 주변이 반드시 환한 감각으로 보답을 해오거든요. 노인들을 만나면 늘 그렇게 권해요. 대화상대가 없어 외롭다고 자식들 원망하지 말고 꽃이라도 심어놓고 말을 걸어보라고. 그러면 집안에 화기가 절로 생겨난다고."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 세상을 뜨는 그날, 미소를 띠며 단정히 앉아 '그동안 고마웠어요. 다들 안녕히 계세요'라고 세상에 즐겁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사관이다. 세상이 고해라지만 인간으로 탄생한 그 자체가 굉장한 축복인데 감사하고 가는게 온당하지 않겠냐는 거다.
화가나면 그릇에 물을 떠놓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라. 물기운이 마음의 火기운을 곧 다스려줄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녀라. 불편하거든 자기가 여섯 살인 아이(남자는 일곱 살)라고 생각해라! 그때의 몸과 마음의 생기와 약동을 떠올려봐라. 인생에 대해 미소를 지어라. 남에게 항상 좋은 파동을 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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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모신문의 리뷰였다. 사실 글의 내용보다는 김서령이라는 저자에 대한 기억이 먼저였다. 저자의 전작 ‘김서령의 家’에서 보여준 김서령의 글솜씨(집이라는 공간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글로써 감상 할 수 있게 해 줄수 있을 만한 필력) 때문이었다. ‘여자전’은 21세기를 살면서 역사속으로 점점 아득히 잊혀져만 가는 한국현대사의 8분의 우리네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8분의 인생 모두가 너무나 치열하고 진지하여 단번에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역사는 항상 큰 사건, 큰 인물 중심으로만 배워 왔던터라 우리네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 바로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기회였다. 그것도 여성들의 삶속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더욱 좋았고 계속해서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김서령의 家’에서 한국근현대를 치열하게 사셨던 ‘여자전’으로 그리고 그 다음 김서령 작가의 작품은 어떤 책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찾아 올까?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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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말 참 많이 들어보기도 하고 해 보기도 하면서 자랐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