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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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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 장애를 보는 간략하지만 강한 시선  이때껏 ‘장애’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이 책에서 지적하듯 대부분 매스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것들뿐이었다. 동정과 연민 혹은 장애를 극복한 이들에 대한 존경과 찬사,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박수……. 어느샌가 비장애인인 나에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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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

- 장애를 보는 간략하지만 강한 시선

 

 이때껏 ‘장애’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나의 감수성은 이 책에서 지적하듯 대부분 매스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것들뿐이었다. 동정과 연민 혹은 장애를 극복한 이들에 대한 존경과 찬사,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박수……. 어느샌가 비장애인인 나에게 ‘장애(장애인)’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도식화되었다.

이런 도식화가 불러오는 가장 큰 문제는 ‘장애(장애인)’로 부터 나 자신을 주변화 시켜 버리고 ‘장애(장애인)’를 더욱 타자화 하게 된다는 점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 맺기는 ‘동정과 연민’ 이라는 감정적 중개 없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비장애인의 도움을 극도로 거부하는 장애인들의 마음에는 ‘동정과 연민’에 대한 거부감이 내재되어있다. 그들은 특정한 감정적 중개 없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원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동정과 연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감정들이 사회적으로 주입되었을 때 ‘비장애인’, ‘장애인’ 모두에게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자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관계를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회복시킬 방법은 없는 걸까? 이 책의 저자는 장애를 ‘손상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장애가 된다.’ 라고 재정의 하는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장애의 구분(impairment, disability, handicap)에서 handicap을 제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다. 이는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사회관계의 원활은 의식주의 본능적 욕구에 필적할 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 사회가 행한 정책과 제도들은 후자의 지원에 집중하고 전자를 경시해 왔다. 이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에서 고립되고 격리되었다.

  나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노라 그로스(Nora E. Groce)의 연구’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 해안가의 외딴섬에 거주하는 농인들의 생활상을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그 곳의 농인들은 비농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화(手話)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말이 가지는 의사소통 기능을 수화가 대신했고 지역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 농인들은 배제되지도 고립되지도 않았으며 비농인과 농인은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요즘 버스를 타다보면 저상버스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버스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쉽게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다. 이 지상버스가 바로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수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의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넘어 장애인, 비장애인의 차이를 해소시켜주었다. 최소한 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이 좁혀진 것이다. 차이를 좁히는 것. 이것이 바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을 사라지게 하는 핵심이다. 장애인 문제에 있어 사회의 역할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차이를 메우고 이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급하게 차이를 메워야 하는 영역은 어디가 있을까? 바로 노동의 영역 즉 노동권의 보장이다. 앞서 나는 인간에게 사회관계의 원활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간, 특히 성인의 사회관계는 대부분 노동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무슨 일 하고 계세요?’ 라고 묻는 것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과 사회가 화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기고 사회를 이끌어 나갈 책임을 공유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장애인을 위한 일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한번씩 TV를 보면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와 모범적으로 적응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곤 하는데 그때 그들이 하는 일은 백이면 백 빵을 굽거나,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왜 그들은 그런 일만 해야 하는가. 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노동 선택권은 이다지도 편협하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사실 장애인의 노동권과 관련해서 여러 법이 존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용할당제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하지만 강력하고 실질적인 제재 장치 없는 법은 법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 현재 위의 법들은 장애인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실효성이 부재한 상태이다. 저자 역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노동권과 관련해서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은 막스의 ‘노동소외’와 장애인을 연결시킨 부분이었다. 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서 장애인을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본축적의 힘은 상대적으로 노동의 가치를 반감시키고, 노동을 담당하는 이들의 개성을 축출하여 표준화 시켰다는 생각만 했을 뿐, 표준화의 과정에서 장애인의 노동이 더욱 소외되었음을 인지하기 못했다. 당연한 것임에도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그만큼 장애인 문제에 대해 내가 무관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노동소외를 비롯한 장애인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반자본 운동으로서의 진보적 장애인 운동’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장애인 문제에 있어 계급모순적 측면을 강조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이념적 토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서두에 언급했듯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 되는 것이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특정한 이념을 기초하지 않더라도, 그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둘의 장벽이 허물어 진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나는 오늘 그 벽의 한 귀퉁이를 부수기 시작하였다.

    

y*******2 2017.04.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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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문제를 운동차원에서 고민하다
"장애문제를 운동차원에서 고민하다 " 내용보기
저자1974년생 단국대 특수교육전공한 장애문제를 운동차원에서 고민하다.노들장애인야학 사무국장, [함게 웃는 날] 편집장… 현장전문가안다: I see - 보고 접하고 경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1. 장애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주류시각) 1) 동정 : 장애 때문에 어려움과 비참함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시혜와 동정을 불러 일으켜 시청자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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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1974년생 단국대 특수교육전공한 장애문제를 운동차원에서 고민하다.
노들장애인야학 사무국장, [함게 웃는 날] 편집장… 현장전문가

안다: I see - 보고 접하고 경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1. 장애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주류시각)
1) 동정 : 장애 때문에 어려움과 비참함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시혜와 동정을 불러 일으켜 시청자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2) 봉사 : 그러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이웃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래서 우리사회가 삭막하지만 아직은 인간미가 살아있는 살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들
3) 극복: 그러한 봉사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장애인의 영웅담

- 문제제기) 스피븐 호킹, 오토다케 히로타다, 이희아 등 강한 집중력, 높은 효율성, 순수하고 낙관적인 태도,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장애인의 모습이 부각될 수록
-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애인은 그 책임은 장애인 개인에게 전락시키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선의를 가지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장애극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2. 무엇이 장애인가
1) 의학적 정의: 손상이 장애다. (주류모델-재활모델)
- 건강조건 : 병리학적인 변화로서의 증상이 있다.
- 손상: 임상적인 질병을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신체적 차원)
- 기능제약:불능: 활동상의 능력 제한이 발생했다(개인적 차원)
- 사회적 불리: 개인의 활동상의 능력 제한에 대하여 사회적 참여의 제한이라는 사회적 반응이 발생했다(사회적차원)
2) 장애에 대한 대안적인 사회적 정의: 손상은 특정한 사회적관계 속에서 장애로 된다.
- 장애란 사회적인 것이며 사회적 억압의 한 형태이다(분리에 반대하는 영국신체장애인연합UPIAS)의 주장




YES마니아 : 플래티넘 s******a 2016.06.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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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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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 제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쓴 글입니다. )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책 제목처럼 이런 질문을 과거 나에게 던졌으면 나는 ‘모른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는 장애를 가진 이는 없었고 가족, 친구, 동료, 그 어디에도 장애인은 없었다. 나는 장애인을 모르고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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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 제가 대학 졸업 직장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글입니다. )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제목처럼 이런 질문을 과거 나에게 던졌으면 나는 모른다라고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는 장애를 가진 이는 없었고 가족, 친구, 동료, 어디에도 장애인은 없었다. 나는 장애인을 모르고 장애를 몰랐다.


하지만 현재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장애인을 접하고 있고 책을 읽은 현재의 나는 남들보다 조금 장애를 안다고 겨우 대답할 있다. 솔직히 전체인구의 장애인의 비율이 10%이상 차지한다는 놀라운 수치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내가 , 고등학교 다닐 적에도 최소한 장애인 명은 있었어야 되는 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을 보지 못했을까? 나중에야 알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시설에 있거나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실을 통해 어릴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내가 알던 세상이 이렇게 비정했었나? 하는 충격과 함께 사회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

 

지금 비장애인들은 예전의 나처럼 장애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애초부터 격리시킨 , 서로 정보를 차단시켜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장애가 신체적 손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배제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과거 흑인의 예를 들면서 흑인은 노예라는 공식이 성립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사실 흑인은 피부색이 다른 것이지 노예가 아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장애는 장애일 뿐이다. 이상의 편견을 가진다면 그것은 사회적 관계와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그의 이상형인 사회를 마서즈비니어드 섬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곳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은 존재했지만 수화를 모국어처럼 쓰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것이 장애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많은 장애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신체적 장애가 이상 장애가 아닐 있도록 우리 모두 그들과 충분히 소통을 하고 장애인들을 사회에 참여시킨다면 장애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마서즈비니어드 주민들이 모두 수화를 모국어처럼 쓰듯이,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원하는 모든 곳에 있고, 앞이 보여 책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점자로 세상을 이해할 있고, 들을 없는 장애인이 수화로 의사를 전달 있다면 장애는 분명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가 실현되지 않는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배제시키고 있는가? 그것의 답은 경쟁과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불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는 그들의 효율성이 떨어져도 어차피 인력은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사회에 보탬이 있어서 장애인들의 참여를 허락했지만,
산업화의 정점을 찍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그런 작은 기회조차도 박탈시키는 시스템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이런 현실 속에서 아무런 경쟁력 없이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기본적 시민권 획득이라는 기초적인 논리만으로

생존의 위협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논리가 과연 현실 사회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까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장애인들은 책에서 묘사한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은 경쟁력을 가진 장애인들일 것이다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장애인은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가 말하는 효율이다. 오래된 얘기지만오체불만족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책에는 장애인들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책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책은 자칫하면 장애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사회의 경쟁에서 진다는 착각을 수도 있고, 그것을 은근슬쩍 장애인 개인의 몫으로 돌리려 하는 사회의 오만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인들의 불리한 점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당구를 치더라도 모두의 실력이 자로 같을 수는 없다. 많은 경우 스코어를 달리하여 경쟁을 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들에겐 경쟁은 우정의 수단이고 목적과 수단이 바뀌는 순간 친구는 상처 입게 된다.

 

그리고 책에서 나왔던 황우석 박사의 이야기를 잠시 언급하고 싶다. 만일 실제로 황우석 말처럼 세상이 바뀐다면 더할 없이 좋겠지만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황우석 박사의 한마디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부분이다아직도 많은 지체장애인들이 언젠가 다리로 멀쩡하게 걸을 있다는 자신의 기적을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지금 그들의 공간과 현실을 부정할 있는 여지를 주며 희망은 이미 미래에나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이 심히 우려되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은 자신이 장애인들을 배려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장애인들은 그들에게 동정과 시혜, 봉사, 자기반성의 대상일 뿐일까? 이외의 동기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경쟁력을 갖춘 잘난 사람들이 행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나 장애인들보다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 있는가? 그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하다. 어쩌면 장애인들이 진정 행복한 사회가 비장애인들에게도 행복한 세상이지 않을까? 책은 이렇게 다소 추상적인 많은 문제제기만 하였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은 끝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 거리를 나가보면 분명 예전에 없던 저상버스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동약자 택시가 점점 눈에 띄게 보인다는 것이다또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말하는투쟁 승리로 이끌고 있으며 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현장에는 썩은 사회가 낳은 부조리와 모순들이 적나라하게 비춰져 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어 이런 불운한 사회 속에서 견딜 없었던 무거운 억압들을 쑤셔 끄집어 내고 있었다.


이런 현상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사회가 조금씩 변한다는 암시를 받고 있으며

나도 이런 자본주의의 문명이 언젠가 바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작가는 이미 하루 4시간만 일해도 우리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족하게 충분히 누릴 있는 재화를 얻을 있다고 했고, 이상 효율성의 가치가 아닌, 허영심으로 넘쳐나는 재화보다 정신적인 포만감이 중시되는 새로운 세상이 것이라 확신했다. 

 

 

 



h****1 2014.03.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