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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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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C.S.루이스의 글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미 화석화 된 교회 언어의 밖에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깊은 진리를 비범하게 풀어가는 그의 필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었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책 전부를 단번에 독파했고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루이스로 인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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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C.S.루이스의 글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미 화석화 된 교회 언어의 밖에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깊은 진리를 비범하게 풀어가는 그의 필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었다. 그래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그의 책 전부를 단번에 독파했고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루이스로 인한 충격을 무색케 하는 새로운 충격에 휩싸여 있다. D.세이어즈의 '창조자의 정신'을 읽은 때문이다.

 

일찍이 내 생에 이렇게 뛰어난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동시대인으로 서로 교류했던 루이스 역시 그녀의 재능에 가감 없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는데, 한낱 범인(凡人)으로써는 초 고수들이 서로의 내공을 견주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 책은 특별히 작가로서의 세이어즈의 역량이 십분 발휘되어있다. 호수가 그 표면에 아무리 파장을 일으킨다 한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듯이 아무리 파헤쳐 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신비로 남아있는 삼위일체 교리를 그녀는 기막히게 창조적인 방법으로 풀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세이어즈는 신학과 문학이 동일한 경험을 기술하는 각각 다른 두 표현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예컨대 신학과 문학의 한 쪽은 어떤 곳에 강이 있는지를 묻고, 다른 쪽은 확인 가능한 속도로 특정 방향으로 이동하는 막대한 양의 H2O가 있는지를 물으면서, 정작 그 둘이 동일한 현상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이상적인 창조적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삼위일체 교리를 재조명해볼 수 있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여기서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이 책을 추천하려는 것이니만큼 핵심 논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자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고 신앙하길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히 일독을 권하는 마음이다.

 

 



w***y 2010.11.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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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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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세이어즈는 그녀의 추리소설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신학자나 영성가도 넘볼수 없는 깊이를 가지는 영적 세계의 신비에 대한 통찰을 준다. 세이어즈가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 하나님의 창조정신과 그 삼위일체적 창조과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배경이므로 어쩌면 그녀만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이 책은 인간이 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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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세이어즈는 그녀의 추리소설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신학자나 영성가도 넘볼수 없는 깊이를 가지는 영적 세계의 신비에 대한 통찰을 준다. 세이어즈가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 하나님의 창조정신과 그 삼위일체적 창조과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배경이므로 어쩌면 그녀만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간이 따르는 것과 상관없는 법칙이 존재함을 보이며, 그 중 신앙고백이라는 信經이 얼마나 우주의 원리와 일치하는지를 보이고자한다. 인간이 갖는 창조의 욕망과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고백과 일치한다. 그리고 실제 한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에너지를 통해 표현되고, 영향력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힘.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며, 창조물은 창조자의 의도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와지며 생명을 얻는다. 창조자는 창조물을 사랑하여 자유를 주고 자발적 반응으로 사랑에 응답하길 기대한다. 

이런 창조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 三位중 한 방향으로 치우칠때, 아이디어에 매몰된, 행위에 집착하는, 혹은 감정을 중심삼는, 왜곡이 나타난다. 한 창조자인데 분리되어 어느 하나에 흡수된 때문이다. 성부을 위주로 하면 인간의 자유를, 성자 중심성은 하나님의 원래 뜻를, 성령을 강조하면 창조자의 존엄함을 손상 당한다. 삼위가 일체가 될때야 우리의 신앙고백은 온전하여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의 해결이라는 정신구조는 너무도 독재적이어서 여기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한다. 하지만 이 도식은 또한 우리를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매몰시키고 만다. 모든 삶의 경험을 문제로 받아들인 결과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둘러싸이고 마는 것이다. 삶을 문제가 아닌 창조의 매개체와 그 여유의 시공간으로 보는 것이 예술가의 시각이고 창조자의 시각이다. 언제나 해결되며 완벽히 해결되고 주어진 조건내에서 해결되는 유한한 문제는 추리소설에만 존재한다.  

이제 창조의 정신이 문제해결이라는 모더니즘적 시대정신의 대응점에 서 있다.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문제를 유발하는 악순환일 뿐이다.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닌 문제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아야한다. 논리 안의 문제풀이가 아닌 대전제의 창조만이 문제를 소멸한다. 그럴려면 [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현명해지는]지도 모른다.

많은 일들과 해결책의 모색, 프로토콜의 확립, 반복과 경험의 전문성의 세계에서 창조성은 늘 잊혀지는 부분이다. 인간의 됨됨이와 자유의 목적이 새로움을 만드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재생산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불행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라따뚜이의 레미가 말하듯 [나는 더 이상 take 하길 원치않고 make 하길 원해!]라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공통된 내면의 소리이다. 나는 나의 내면의 일그러진 삼위일체를 보며 나를 새로이 창조한 그 창조를 따라 나를 새로이 지어갈 것이다.

s***y 2009.07.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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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로서의 하나님과 예술가 사이의 공통점으로 풀어낸 정통 교리
"창조자로서의 하나님과 예술가 사이의 공통점으로 풀어낸 정통 교리" 내용보기
이 책의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옥스퍼드에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사회는 극심한 인력부족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도 그때까지 허용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학위 수여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는 사정이 있었다. 물론 세이어즈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세이어즈는 활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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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옥스퍼드에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사회는 극심한 인력부족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도 그때까지 허용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학위 수여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는 사정이 있었다. 물론 세이어즈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세이어즈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출판사 편집자이기도 했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주목받는 건 작가로서의 그녀의 업적이다. 양차 대전 전후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추리소설계에서도 나름 유명한 인물이었고(체스터턴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은 걸 보면 확실히 그 시절 추리소설이 인기이긴 했나 보다. 루이스는?), 나중에는 희곡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유독 그녀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잘 담아 녹여낸 작품들을 썼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기 보다는 문학 작품 속에 그 내용을 녹여내는 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창조자의 정신”은 꽤 이례적인 책이었던 듯하다. 이제까지의 작품 활동과 달리 이번에는 기독교 교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책을 썼다는 반응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작가는 극구 그런 관점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드러내며 기독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기독교가 진술하고 있는 교리들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석 작업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사실의 진술과 개인적인 감정 표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작가가 여기에서 시도한 작업은 요컨대 기독교 신앙은 그저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 관한 이해라고 보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반박하면서, 정통 교리(특히 삼위일체에 관한)가 일상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이 작업을 저자의 직업이기도 한 작가와의 유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떠올릴 때 그와 비슷한 현실 세계 속 무엇과 비교하면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들의 작업(주로 시인이나 작가 같은)이라는 것이다. 창조라는 작업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인데, 예술가들이 하는 일(특히 시인과 작가들이)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인 “창조자의 정신”은 하나님과 예술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책 전반에 걸쳐서 삼위 하나님의 본질과 사역을 예술가에 비견해 설명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이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비록 삼위일체가 우리의 논리로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 존재 양식과 기능하는 과정은 충분히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범신론으로 설명하려는 오류에 관해서 “창조적 정신이 작품들을 하나씩 생산해 내지만 창조적 정친이 곧 작품 하나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작가와 그가 쓴 책이 곧 동일한 것은 아님을 보여주며 빠져나간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속성을 예술가의 작업으로 빗댄 부분이 인상적이다. 창조와 예술 사이의 공통점에 관해서는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발견되는데, 나니아의 세계는 아슬란의 노래로 창조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정말로 좋아했는데, 세이어즈는 이 부분을 이 책에서 좀 더 설명적으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학적으로 잘 그려낸다.


확실히 루이스가 인정했던 작가다운 글솜씨인데다,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루이스의 향기도 살짝 묻어 나와서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20세기 초중반 영국에선 루이스와 톨킨과 체스터턴과 세이어즈도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이달의 사락 p*********n 2025.04.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