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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볼 때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요리책인줄 알고 들었다가 어...소설이네. 두번째 느낌은 목차를 보면서 재미있겠다. 세번째 직접 읽으면서의 느낌은 이 책 정말 좋다. 덮으면서 눈물 한 줄기 흘리고...
그런데 왜 이 책이 많이 안팔리는 걸까? 광고 홍보가 잘 안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여기에 나오는 요리들도 하나 하나 너무 감질나게 맛있게 보이고, 문체도 좋고, 공감 100배인 책이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 여자를 이해하고 싶은 남자들이 읽어도 좋겠고, 연인에게 요리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한다. 혼자 차려먹는 식탁도 그 나름 분위기를 잡게 해준다.
일러스트가 내용과 어울리지 않아 따로 노는 분위기이며 표지가 썩 매력적이지 않아 눈에 잘 안띄는 것일까.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 읽으면서 따뜻한 마음 함께 하길 바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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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女のこんだて帖 :: 角田 光代 우리 가족은 오로지 주말이나 휴일에만, 그것도 하루 한끼 정도만 다같이 식사를 한다. 가족 구성원이 너무 많아 모이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따로 떨어져 살고 있어서도 아니다. 배경을 얘기하자면 남편과 나, 아이 하나뿐인 단촐한 구성인데다 남편은 직장에서 회식하는 일도 많지 않아 늘 일찌감치 퇴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일 저녁 식사는 늘 나를 제외하고 아이와 남편 둘만이 함께 한다. 이유는 내 위장이 그다지 건강치 못한 탓이다. 결혼 전 부모와의 원활하지 않은 관계 덕에 밖을 전전하고 다니면서 되는대로 먹어 속을 망가뜨린 이후 좀처럼 회복 시키지 못해 여태껏 남들만큼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체력과 영양분이 소진되어 상황은 더 악화가 되었고, 예민한 신경까지 한몫하는 바람에 체중이 초등학교 4학년생 평균치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지금은 다행히 그때보단 3-4kg 정도 만회했다.)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위장약과 소화제를 반드시 함께 복용해야 하거나 외식이나 간식을 먹으면 세번 중에 한번을 토할 수 밖에 없다가 결국 병원에서 '더이상 약으로 만성화 해선 안된다' 며 처방을 해주지 않는 '극약 처방' 을 해주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생명의 위기감을 느끼고 운동을 시작했다. 보통은 체중을 줄이기 위해 운동을 한다지만 나는 오로지 먹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하드하게 트레이닝을 했다. 스스로 한 일 중에 칭찬할만한 일을 고르라면 운동을 시작한 이래 2년 남짓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몸을 관리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1km를 걷지못해 도중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내가 이제는 마라톤 5km, 10km 완주 메달을 좋은 기록으로 꿰차고 이제는 하프 코스 완주를 목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으니까. 무엇보다도 이젠 더이상 먹고 토하지도, 약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먹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외식이 두려워 사람 만나는 걸 기피하지도 않게 되었다. 못먹는 체질 때문에 함께 만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억지로 먹고나서 돌아오는 길에 토해내던 지난날에 작별을 고한 게 얼마나 좋은지. 그런데 위장 이라는 게 참 까다롭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망가지면 망가지는 데 걸렸던 시간보다 회복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것도 부단히 노력해야 되는 일이다. 그래서 이처럼 먹기 위해 애를 쓰는 처지로선 고작 체중을 줄여 보겠다고 먹은 음식을 토해내며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불편함이 있을 정도로 과체중이라면 모를까, 어딜 봐서도 정상 체중인 이들이 그토록 자기 학대를 하는 짓은 보기 안쓰럽다 못해 화가 난다. 도대체 어쩌다 미형의 기준 같은 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깡마르고 허약한 내 체질이 부럽다고 말을 건넬 때는 울컥 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들을 이해하는 말을 고르느라 늘 애먹게 된다. 날씬함에 대한 욕구를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째서 먹는 것의 즐거움마저 내팽겨치려 하는걸까? 즐겁게 먹고 즐겁게 운동해서 신체 건강한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는걸까? 아니면 운동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먹는 즐거움에 탓하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병들게 하는걸까? 사람을 결국 먹기 위해 살고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음식과 요리가 발달되어 왔나. 짧은 평생 그것들을 다 먹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많이 좋아졌어도 여전히 저녁 식사는 먹기 힘들고 먹고 싶은 걸 먹어도 양이 제한적인 나는 하루중에 많은 시간을 먹는 것을 꿈꾸는데 쓴다. 언젠가는 꼭 먹어야지, 언젠가는 먹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운동을 꾸준히 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 컨디션이 좋아 먹고 싶은 걸 바로 사먹으러 달려갈 때나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옛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 같은 것이겠지만 누군가를 만나 이것저것 먹자고 먼저 말할 때는 마치 지위나 성과를 자랑하는 마냥 짐짓 으쓱하며 뿌듯해 한다. 어쩐지 그렇게 누군가와 만나 함께 음식을 잘 먹으면 이야기도 잘 되고 관계도 순탄해지는 것 같달까. 먹지 못했을 때는 화가 나고 답답하고 짜증스러웠던 일이 먹고나서는 하염없이 너그러워지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가족 관계에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방을 담당하는 내가 제대로 먹지못해 식단이 엉망이 되고 주문 요리로 식사를 때우게 만드니 덩달아 가족들의 건강도 나빠져 갔다. 늘 신경이 날카로워 공연한 화풀이를 한 적도 적잖았다. 남편 안색이 안좋다, 아이가 말라간다는 얘기를 외부에 의해 듣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폭풍같은 죄책감으로 가족을 위한 식단과 요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비록 체질이 완전히 개선되지 않아 함께 마주앉아 맛볼 수는 없어도 지금은 주문 요리는 물론 레토르트 식품도 거의 사지않을 만큼 수제 요리에 온 힘을 쏟는다. 딱히 웰빙을 염두에 두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먹고 싶다하면 과자가 되었든 패스트푸드가 되었든 그땐 그때대로 먹게 한다. 먹는 즐거움을, 먹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방법이든 상관없다. 사먹는 요리보다 해먹는 요리 빈도가 높은 것은 단지 나의 '먹이는 즐거움' 에 대한 욕심 때문이지 엄마나 주부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체질이 이렇다보니 입이 짧아 내가 만드는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다. 자극적인 것을 못먹어서 간을 최소화 하다보니 웰빙하게 드신다는 시댁에서 도리어 나트륨의 중요성을 설파하셨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서 가족은 먹여도 차마 완전 타인 앞에서 요리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요리하는 것은 즐겁다. 만드는 내가 맛없다는 걸 아는데도 남편은 무엇을 만들어 내놓아도 잔반없이 깨끗하게 비워주고 아이는 엄마가 만든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주기에, 그래서 요리가 즐겁다. 그리고 나는 맛없게 만들어도 그저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서 또 즐겁게 먹는다. 비싼 뷔페 식당에서 고작 한두접시밖에 못먹어도, 평판 안좋은 식당에 가서 먹더라도 그저 먹을 수만 있다면,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매일 저녁 식사를 포기해 취침 무렵에는 배를 주려도 내일 먹을 수 있는 것을 꿈꾸며 아침을 즐겁게 맞이하는 것이 내 별볼일 없는 일상의 활력이랄까. 단편집을 쓸 때는 항상 공통된 테마를 염두에 두는 가쿠다 미쓰요의 책답게 이번에는 [요리] 를 테마로 하여 열다섯가지 이야기를 한 데 묶은데다가 친절하게 내용에 나오는 요리들의 레시피를 함께 수록해 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개된 요리의 대부분은 능력 부족으로 차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동이나 피자를 밀가루 반죽부터 시도 하는 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할 뿐더러 대체로 일본식에 맞춘 요리라 실패의 부담감도 크다. 사실 집에 이미 미국, 이태리, 프랑스 등의 두꺼운 요리 원서책들이 있지만 이것도 감히 시도해본 일이 없다. 아마 이 책에 나온 레시피도 그저 머릿속으로 요리 과정부터 맛보기까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그 맛을 꿈꾼다는 것이. 언젠가 꼭 맛보리라 다짐하고 소망 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즐거운 희망이 생기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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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 상 수상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작품에는 공감 가는 문장이 많아 늘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가볍게 읽기 좋은 연작집 <그녀의 메뉴첩>은 요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채로운 요리의 향연에 일단 매혹당하고 그 속에 담긴 사랑에 취하는 기분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음식이란 윤활유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인들을 만나면 식당이나 카페에 가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차 한 잔 하실래요?”,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때도 “언제 밥 한번 먹자” 라고 하지 않는가. 서먹한 사이라도 함께 음식을 먹으면 화제도 풍부해지고 더 친밀해지는 교감을 나누면서 어색함을 날려버릴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기쁨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나누는 동질감도, 그리운 사람을 추억하는 애틋함도, 모두 음식에 담겨있다. 그런 모든 마음을 담은 15편의 이야기다.
· 첫 번째 메뉴 사랑이 떠났다 [recipe_ 화려한 프랑스식 풀코스]
이 사랑스럽고 군침 도는 열다섯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어갈 즈음이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치며 살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요즘 쿡방이 대세라곤 해도 트렌드를 등에 업은 브라운관 속 요리 방송의 홍수로 인해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오히려 물리는 기분이 들던 참인데 이 책으로 인해 조금쯤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혼자 식당에 가지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 음식은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다는 건 참 흐뭇한 일이다. 사실 요리라는 게 값비싼 재료나 거창한 조리법이 맛을 좌우하는 건 아니고 엄마의 손맛처럼 음식에 깃든 정성이 가장 중요한 맛이 아니던가. 그건 그렇고 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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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음식 레시피와 어거지로 연관시켜서 글을 쓴게 아닐까 하는 불순한 생각으로 읽게 된 가쿠다 미쓰요의 연작소설이다.
나는 좀 비뚤어지고 비딱하게 보는 성향이 어느부분은 있는 터라 -_- (순수하지 못한 나...)
여튼. 15가지의 생소한 요리들 (거의 생소하다) 의 각기 다른 에피소들이 버무려져 있는 가운데, 물론 그녀의 전매특허라고 볼수있는 서로 연관짓기 (마치 영화 <크래쉬>나 <바벨>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아실까)를 해놨다는게 흥미를 끈다.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15명이 서로가 조금씩 알게 모르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난 에피소드 3개쯤을 읽고서야 서로 연관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_-; 첨엔 다 각기 다른 단편인줄 ㅋㅋㅋ )
이런 서로의 연관성이 있기에 단편인듯 단편아닌 단편같은 소설이 펼쳐지는데 물론 나온 요리법들이 어려운것도 많고 재료들이 까다로운 것들이 있어서 따라해볼 엄두는 안 났지만, 좀 억지스럽다고 느꼈던 초반의 느낌을 흥미있다로 바꿔주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나의 불순한 생각과 달리 작가가 요리를 정말로 좋아하나보다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니나 다릴까 책의 말미에 보면 작가가 스스로 다 해본 요리였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요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일이 있었다. 바로 요리를 무척이나 열심히 그리고 정성껏 하셨던 가쿠다 미쓰요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데, 사실 나도 요리하는걸 무척 좋아하는건 우리 엄마의 영향이 지대한지라 (내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직장에서 도시락을 쌀때도 항상 마련해주셨고 아침밥을 건너뛰신적이 없으시다) 외식보다는 늘 집밥을 맛있게 해주셨기에 나 또한 내가 요리하는걸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내가 해놓은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즐겁지만, 그보다는 내입에 맛있게 들어올때도 행복하다.
내가 한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뭔가 지금 가족들에게 나도 무언가 일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좋다. 늘 받기만 하지 않고 나도 무언가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다는 뿌듯함. 가족의 구성원의 일을 조금은 하고 있다는 생각.
시대를 아우르는 맛있는 음식에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그녀의 메뉴첩>
따라해볼만한 음식이 극히 적다는 점은 아쉽지만, 읽어볼만했고 또 그 사정을 알게되니 공감이 더 갔다. 읽게 된 계기는 불순했지만, 역시 그녀의 책은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지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 에피소드 마다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있는데, 책은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이 그렸나 싶은 정도의 아주 미약한 연관성밖에 있질 않다는 점이다. 이경아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작품들인데, 컨셉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만, 아무래도 책에 연관지어서 등장인물이나 소품들, 의상들을 기대했는데, 좀 많이 동떨어진 그림들이 있던 점정도이다 (예를 들면 장바구니를 든 보통의 아주머니인 주인공이 아이와 함께 서둘러 가다가 진열된 부띠끄를 보고 자신의 옷차림을 초라하게 느끼는 장면이 있는데 삽화는 어느 유럽의 거리를 걷는 늘씬한 아가씨가 부띠끄를 보고 있다....) ㅠㅠ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은 작가의 말에서 가져와 봤다 -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밥을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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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음식을 다루는 에세이나 소설 중에서, 냉정하거나 인간미를 결여한 내용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아마 음식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소통의 수단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음식 에세이, 음식 소설이 그래왔고, 가쿠타 미쓰요의 연작소설 <그녀의 메뉴첩>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연작소설이라는 점에서 특이성을 지닌다. 열다섯 편의 짤막한 소설들이 이어진다. 전편의 소설에서 엑스트라급으로 잠시 등장한 인물이 다음 편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연작소설에서 다루는 사람들의 인생은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연결고리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의외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에게는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조연에 불과한 삶을 살아간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고민이 타인에게 있어서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고, 내가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선 의외로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열다섯 가지의 이야기에는 열다섯 가지의 음식이 등장한다. 각 음식은 나름의 사연을 지닌다. 그리고 주인공의 심경을, 처한 상황을 대변해준다. 헤어진 연인을 잊기위해 먹었던 화려한 프랑스식 풀코스 요리, 언제나 준비하던 저녁식사를 하지 않자 남편이 직접 준비한 미트볼 스튜 등, 인생의 전환점이나 소박한 일상 곳곳에는 계속해서 음식이 자리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읽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조금 현실적으로 그려본다면 음식에 대한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루 세 번의 식사, 그리고 간식. 매일 무얼 먹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사람은 언제나 음식과 함께한다. 설령, 음식을 접하지 못하게 될 때는 그만큼 힘든 상황임을 의미한다. 무탈한 상황이라면, 생활의 틈틈이에 음식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직접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게 되면서, 음식에 대한 의미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먹을 음식, 내가 만든 음식을 먹게 되는 사람의 마음, 식재료가 오게 된 경로와 식재료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정성. 교과서적인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음식이 내 생활에 꽤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음을 대신하는 듯하다. 최근 들어 읽고자 하는 책들마저도 반 이상이 음식과 관련된 책인 것을 봤을 때도 그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각 음식을 만드는 법까지 제시되어 있는 꼼꼼한 책이지만, 스토리가 많이 짧은 점이나 '메뉴첩'이라는 직역된 제목 등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기도 했다. 그래도 참신한 책임에는 틀림 없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일상은 계속된다. 일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의 일생이 계속되는 한, 이러한 음식에 관한 책은, 사람의 마음을 담은 따뜻한 음식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마음 속으로 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