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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 개 *********************************** 사마 천(司馬 遷; B.C. 2C 중엽 ~ B.C. 80년대 초반)1)이 저술한 <사기(史記)>는 원래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리어지다가 <三國志>의 “위지(魏志)”에서 <사기(史記)>라고 약칭되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은 사마 천(司馬 遷)이 살던 무렵까지의 역사를 기술한 최초의 기전체(紀傳體)의 사서(史書)로, 천하를 움직이는 황제에 대한 연대기적 기술인 “본기(本紀)” 12권, 황제를 구심점으로 하여 그 권력을 지역적으로 나누어 맡은 제후들의 내력을 적은 “세가(世家)” 30권,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개개의 인간들의 전기인 “열전(列傳)” 70권, 제도의 연혁과 그 원리를 추구한 “서(書)” 8권, 여러 사건의 시간적 공간적 연관성을 도표화한 “표(表)” 10권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처럼 <사기(史記)>는 방대하면서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아 들어가는 구조 속에서 여러 편(篇)들이 서로 보완 또는 대칭관계를 이루면서 비판의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2)는 특색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열전(列傳)”이다. 왜냐하면 사마 천(司馬 遷)은 “열전(列傳)”에서 전기(傳記)의 형식을 빌어 개개 인간의 외면적/내면적 모습을 상세히 그리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기(史記)>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동시에 뛰어난 문학적 수사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밀한 뜻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사기(史記)>는 단순한 역사서로 간주되지 않고,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과 수사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인문학의 기본을 쌓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사기(史記)> “열전(列傳)”부분의 국내 완역본은 정범진 등 40인 번역본(까치), 김원중 번역본(민음사) 등이 있으나 내가 굳이 완역본이 아닌 편역본을 선택한 것은 완역은 아니지만 이성규 편역본이 <사기(史記)>의 해체, 재구성을 통해 “열전(列傳)”의 내용을 전해줄 수 있고, 또 “가장 권하고 싶은 번역본”이라는 교수신문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뢰할 만한 번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은 편저자가 중국 고대사 전공자라는 장점을 100% 살려, 앞부분에 “사기해설: <사기>의 구조적 이해를 위한 시론(試論)”를 두어 저술의 동기와 목적, 구성과 서술의 특색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열식 전기의 지루함을 벗어나 중국 고대사회의 형성이라는 주제 아래 통일 제국으로써의 “진(秦)”의 성립과 몰락을 주제별로 조명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재구성하였다는 점에서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다. ********************************************************************************** 백이 숙제(伯夷叔齊) – 공적(公的) 의무와 사적(私的) 의리의 혼동 <사기(史記)> “열전(列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이 백이(伯夷)와 숙제(伯夷)이다. 일종의 서문 격인 셈인데, 이를 이성규 교수는 “역사 속에서의 인간의 운명이라는 문제에 대한 사마천의 총론적인 입장을 개진3)”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쨌든 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끝까지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킨 의인(義人)으로만 생각하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형제간의 사적(私的) 의리를 지키기 위해 고죽국(孤竹國)의 군주라는 공적(公的)인 의무를 내팽개치고 주(周)로 망명한 무책임한 사람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 비록 공자(孔子)에게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다른 사람의 묵은 악행을 생각에 담아두지 않았다. 원망이 이 때문에 드물었다.)”4)라고 칭찬받았지만, “충(忠)”과 “의(義)”의 사전적 정의(定義)에 얽매여 주왕(紂王)의 폭정으로부터 백성들을 해방하겠다는 무왕(武王)의 발걸음을 지체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자신들의 대의(大義)에 충실했다면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기보다는 굶어 죽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러지도 못했기에 훗날 사육신(死六臣)의 하나인 성삼문(成三問)에게 當年叩馬敢言比(당년고마감언비) 그때 말고삐 잡고 감히 그런 말할 때는 大義堂堂日月輝(대의당당일월휘) 대의가 당당하여 햇빛처럼 빛났었네. 草木亦占周露雨(초목역점주로우) 초목도 주나라의 비와 이슬을 먹고 자란 것 愧君楢食首陽薇(괴군유식수양미) 그대 수양산 고사리 먹고 연명한 게 부끄럽지 않는가. 라는 비웃음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는가.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이는 이상을 추구하고, 또 다른 이는 물질적인 풍요를 원한다. 백이 숙제(伯夷 叔齊)가 나름대로 “인(仁)”이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소개하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富)”를 추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변으로부터 대접받으며 살아간다. 예컨대, 오씨(烏氏)의 목장주인 라(倮)가 봉군(封君)에 준하는 예우를, 파촉(巴蜀)의 과부인 청(淸)이 객례(客禮)5)를 각각 진시황(秦始皇)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이 가졌고, 또 그 재산을 지킬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전통적으로 청렴한 관리에 비해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관리가 청렴한 것도 상인이 정직한 것처럼 모두 부(富)를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정신적인 가치도, 물질적인 풍요도 모두 추구할 겨를 없이, 그저 곤궁한 현실에 치여 그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매일매일 죽지 못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품팔이 농부였던 진승(陳勝) 6)은 능력도 배경도 없지만 곤궁한 현실을 운명으로 체념하는 대신 “원한에 사무친 감정으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창한구지(悵恨久之)]7)” 폭발시킬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것뿐이었기에 성공한 다음에 옛 친구의 무례를 포용하지 못하는 등 무능함을 드러냈고, 아첨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있다가 결국 자신의 마부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가(世家)”에 편입된 것은 위대한 진제국(秦帝國)이 결국 하찮은 품팔이 농부의 기폭제적 역할에 의해서 와해되었다는 것을 지적8)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목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허망한 결말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
1) 사마 천(司馬 遷), <사기 – 중국고대사회의 형성 - >, 이성규 편역, (서울대출판부, 1987), p. 8 2) 사마 천(司馬 遷), 앞의 책, p. 82 3) 사마 천(司馬 遷), 앞의 책, p. 29 4) 주희(朱熹), <논어집주> 1, 박헌순 옮김, (한길사, 2008), p. 319 5) 신속(臣屬)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의 예우. 6) 진승(陳勝; ? ~ B.C. 209) – 자(字)가 섭(涉)이어서 진섭(陳涉)이라고도 한다. 오광(吳廣)과 더불어 병사로 징발되어 가다가 큰 비로 기일을 어기게 되자, 그 일행 900명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봉기가 불과 6개월 만에 진압되었지만,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이자 진제국(秦帝國) 타도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는 데 의미 있다. 7) 사마 천(司馬 遷), 앞의 책, p. 286 8) 사마 천(司馬 遷), 앞의 책, p. 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