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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의해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범주로만 헤집고 다녔기에, 그동안의 편협하고 소극적인 앎이나 사고는 주눅이 들수 밖에 없었다. 진정 우리가 철학을 배우고 알아왔었다고 자부할만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의 자만심으로 부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시대의 사고와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의 견해차는 생각하지도 않고....,머리 아프도록 들먹거리던 주제였건만, 머리와 몸통은 어디로 가버리고 꼬리만이 덩그마니 남겨진 내 생각에 얼마나 영향이 남겨져 있을지도 궁금하고.....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와 닿는것은 아마도 시간을 되짚어보는 듯 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의 삶과 행적이 그 시대의 사상가들이나 지금의 우리에게 지대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주제로 남겨졌지만, 거듭 회자되는 이유 또한 우리의 세태가 그때와 별다를 것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정치적 혼란은 사상의 다양성을 야기하게 되는 것처럼, 드러내 놓고 말하는 이가 드물어서 그렇지 각자의 사고에는 일치되는 면이 많을 것이다. 사고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무모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현명함(?) 때문에....., 현실의 굴레에서 그러한 신념을 떨쳐 벗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기대하던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실천강령을 굽히지 않는 것이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 시키고 신들에게 불경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시게 된다. 그들의 논리에 어긋나는 존재였기에 그는 제외를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과연 자신의 의지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분명 옳고 그른것의 구분을 하는 입장에서도 분위기와 경향, 때론 개인적 사정이나 감정까지도 고려해서 눈티를 보게 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보니 옳은것을 행하지 않는 것에 핀잔을 주는 것 조차도 망설이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 격려를 하지만 드러내 적극 독려를 한다기보다 오히려 말리는 경우도 때론 있으니...... "변론"을 통해 실수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 외에 사리에 맞게 그 옳고 그름을 알아볼 수 있는 의미의 혜안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그가 자신을 고발한 이들에게 하는 변론과 자기의 형량에 대한 연설, 선고 뒤에 배심원들에게 하는 연설까지 소개되어진 이 글을 통해 다시금 사고와 그 전환을 모색해 볼 수 있었다.
발전의 양상이 사고하는 것보다 더 빨라지는 듯한 세상이다보니, 때로는 생각의 발상이라기 보다는 동조하고 이끌려 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그 모두가 우리를 위한 결과물인 점을 감안하면 사고의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체적 사고와 그 실천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과 논제들을 통해 알 수 있었으니....., 고전속의 진리들을 다시금 되찾게 되는 이유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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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부쩍 드는 생각은 학교 다닐 때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랍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사는 엄마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엄마가 정말 슈퍼 만능 울트라 엄마여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절실하다니까요. 이번에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랍니다. 저희 때만 해도 철학 하면 그저 머리 아픈 것으로 치부하면서 단순히 철학자 이름만 줄줄 외웠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논리를 펼쳤는지는 전혀 관심 밖이었거든요. 그때 왜 그런 생각을 미리 해서 책도 좀 읽었으면 하고 아쉬움 섞인 후회를 하게 되더군요.
저같이 철학 하면 단순히 머리 아픈 걸 왜 읽나 하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이 책을 집으면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아! 이런 일이 있었고 소크라테스가 이래서 유명하구나 싶은 게 책이 술술 넘어간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당시의 그리스 역사를 살펴보면서 역사도 익히고 그 당시 인물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단순한 연대기로 역사를 살피는 게 아니라 좀 더 입체적으로 역사를 살피게 되더군요. 철학을 다뤘다고 해서 철학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다른 지식까지 더불어 얻게 되네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고 왜 철학 하면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는지도 알게 되었답니다. 그저 민주적인 사회로만 알던 그 당시 아테네가 개인보다는 국가를 더 우선시하고 사회적인 명성과 명예만을 중시했던 반면, 소크라테스는 이런 생각을 일단 회의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기에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삶을 통해서 보다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현대적인 개념의 철학을 알게 되었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에서 어떤 삶이 진정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답을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구나 라는 생각 역시 빼놓을 수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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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연연해 보니 철학은 늘 멀게만 있었다. 누군가 철학적인 말을 할라치면 쓸 데 없는 개똥철학 얘기 집어치우라는 말로 우리 생활에서 철학에의 접근을 거부하고 살았다. 사실 철학이라는 게 별 것 아닌 것인데... 내가 삶을 영위하게 하는 이유가 철학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철학적 태도였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소크라테스라는 한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소득이었지만 그와 같은 성인도 나와 같은 평범한 행복관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안 것이 큰 기쁨이었다. 성공을 향해 자신을 갈고 닦는 데 매진할 것을 요구하는 책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지는 요즘에 세상에 초연한 마음으로 살았던 인물을 만나서 큰 위안의 되었고 색다른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재판에서, 어쩌면 자신이 사형을 선고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의연하게 피력함으로써 진정한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5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왜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이었는지, 그 당시 소피스트는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그가 왜 재판에 회부되게 됐는지, 아테네인들의 배척을 받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그 당시 추구했던 진리가 현재에도 적용되는 객관적 진리였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그가 생각했던 행복관-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또한 세대가 거듭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이라는 데 감탄했다. 목숨보다도 진리의 수호를 중시한 그의 삶을 보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삶으로서의 철학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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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분야는 항상 두렵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등한시했던 철학의 심오한 가치를 인정하고 다가서려 했지만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속으로는 철학에 관련된 것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마치 숙제처럼 항상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나마 요즘 몇 권 안되는 책들을 보며 이게 바로 그 철학자가 이야기한 것이었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나마도 내가 그러한 것들을 완벽히 이해했다기 보다 그저 '읽었다'는 것을 내세울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내 행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지식을 가장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소크라테스 입장에서 보자면 한심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읽었다는 뿌듯함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것이 현자인 소크라테스와 평범한 인간인 나와의 차이점일까.
저자도 지적했듯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삶과 철학적 신념을 해석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다행이다 싶다. 해석이 아닌 순수한 그의 변론을 읽는다면 반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이렇게 해석해 놓은 것도 중간중간 난해하고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니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고발당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변론>을 전문가가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풀어나가고 있는데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보니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나마도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기에(아니 쓰지 않았기에) 알려진 게 없을 뻔했으나 다행히 위대한 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의 이야기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지금의 소크라테스가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중산층이었던 소크라테스에 비해 귀족 집안의 자제였던 플라톤이 제자로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소크라테스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플라톤에게도 소크라테스라는 스승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을 수도 있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에 주위 사람들, 특히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눈엣가시였을 테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수도 있는 존재라고 여겨졌을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급기야는 사형을 언도 받고 독배를 마시게 된 것이었구나. 그러나 그의 변론을 읽다보면 자신의 운명을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생활할 것을 천명했다고는 하나 어차피 그가 추방당하거나 벌금형을 받는다 해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법정에 서게 될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배심원들을 화나게 한 것들을 보며 왜 이순신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가도 정적들에 의해 죽을 것을 미리 알았기에 선두에 섰던 그가...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문득 둘이 오버랩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으며 과연 내가, 아니 우리가 그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우매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옳은 것의 가치를 정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원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도 저자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건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때로는 편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도 그러니까'라는 변명으로 동조했고 가끔은 내가 생각한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기도 했다. 다수 속에서 내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했던 적도 있다. 기원전 400년대에 있었던 일들이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라는 것이 그저 두려울 뿐이다. 그러기에 이런 고전은 시대를 뛰어 넘고 세대를 뛰어 넘어 계속 공감을 얻으며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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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묘미(妙味)이자 보람이 아닐까.....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얻게 된 여유로 틈틈이 읽게 되는 고전을 통해 마침내 알게되는 진실은, 여태껏 얼마나 단편적인 지식을 품고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이자, 앎에의 욕구가 새롭게 꿈틀거리는 시작이기도 하다.
이번엔 자기성찰의 시조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단지 '너 자신을 알라'나 '악법도 법이다'로 2400여 년의 시간이 훌쩍 흐르는 동안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자아성찰의 토대를 마련한 위대한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얼마전 읽은 책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명언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위대한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정작 갈릴레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여,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힌 것들에 회의조차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평생동안 저서를 남기지도 않고 정식으로 누구를 가르친 적이 없다는 그가 결코 내뱉지 않은 명언임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의 곁에서 그의 가르침과 사상을 눈치챈 이들이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얽힌 연유(緣由)와 진실(?)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단지, 그의 죽음은 '악법도 법'이다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그가 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도 그동안 몰랐다.ㅡ.ㅡ;;), 당시 그리스의 상황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존재(활동), 소크라테스란 한 개인이 그리스라는 국가에 미친 영향 등을 알게 되니, 새로운 앎에 재미가 솟아났다.
솔직히, 처음 책을 펼쳐들 때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위대한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연히 내게는 버거운 철학사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미리부터 따분해하였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죽은 진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당시 그리스의 배경과 사정 그리고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대한 분석과 일반적 철학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로 확대되지 않은 내용이 오히려 소크라테스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하여,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를 알게 되는 기쁨조차 느꼈다.
그렇다면, 그가 죽은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괘씸죄'와 너무도 '올곧은' 그의 가치관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시 신에 대한 종교생활이 굳건한 국가의 기초가 되었던 그리스(아테네)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는 소크라테스는 위험한 인물로, 당시의 사회에 반(反)하는 생각을 퍼트리고 다니는 그의 행동은 대다수 보수주의자들과 국가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가 신탁을 통해 부여받은 신의 사명이라는 그의 주장 또한 그리스인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어쨋든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에 의해 재판에 회부(回附)되고 마침내 사형을 선고(宣告)받은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과 삶을 스스로 변론(辯論)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을 사형(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소크라테스의 최선(最善) 의 변론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알게 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통해 떳떳한 가치관과 확고부동한 의지가 위대한 삶을 만든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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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일반인들보다 뭔가 복잡하고 형이상학적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책에도 나와있듯이 철학은 인생에서 가장 궁극적인 물음, 즉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가에 대해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무언가 항상 골똘히 사고하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고정화 된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어려운 철학의 대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인들의 고소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본인을 변론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변론의 전문이 실려 있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지은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부분을 싣고 풀이한 것이 여간 반갑지 않다. 변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자신의 무죄에 대한 변론, 형량에 대한 변론, 사형 선고 뒤의 고별 연설이 그것이다. 세 가지 이야기에는 모두 소크라테스의 윈칙이 밑바탕 되어 있다. 자신의 도덕적 원칙을 기반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철학은 포기할 수 없으며 철학적 활동은 신의 명령이자 아테네를 위해서도 최선의 것임을 역설한다. 소크라테스의 고대 철학적 사상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된다. 인간 자체의 존엄성에 무게를 둔 민주주의 정신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남녀노소,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 받을 권리를 가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인간 존중의 사상이 제대로 지켜내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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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번역된 책을 읽다가 도저히 읽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내가 왜 그 책을 읽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별 상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읽어내기 힘든 소크라테스의 법정 진술 ('변명'이 아닌 변론이어야 한단다)을 알기 쉽게 천천히 설명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준 책이다. 글쓴이 나종석 님께 감사드린다.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당시 사회에서 왜 그토록 문제가 되었으며 사형까지 받고 죽어갔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토대로 소크라테스의 변론 원전에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긴다. <책 내용 중에서> 거짓 겸손- 자신은 무지하다고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폭로하는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한 대화 방식은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그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돈을 받고 지혜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소피스트, 즉 지혜의 매춘부로 알려져 있네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진정 그런하지를 반성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깨우치도록 돕는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신이 아테네를 위해 자신에게 맡긴 사명이라고 결론 짓는다. 캐물음 재산을 모으는 일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일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훌륭하게 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를 가장하려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공격하는데서 줄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다. (답은 내놓지 않고 계속 당혹스런 질문만 포붓는 소크라테스는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내 생각)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선을 행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덕은 지식이다. 개인이란 옿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립적인 주체라는 각성이 시작된다. 타인은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적인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제 타인은 상호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도덕과 진리를 함께 추구하고 실현할 동등한 동반자로 간주된다. (소크라테스와 노무현. 약간 비슷한다. 너무 솔직하게 잘난 척을 한다고나 할까? 자신의 원칙을 잘난 척하면서 고수한다고 해야 할까? 자신들이 이런 발언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끝내 그 발언을 해야만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읽으면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올바르지 못한 일을 고의로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부당하게 보복하지 말라는 주장은 소크라테스 정의관의 핵심 명제들이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그들(제자들)에게 겉멋을 들게 만들고 기존의 가치관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갖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된것은 설득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뻔뻔스러움과 몰염치가 부족해서"이며 아테네 시민들이 듣기에 "가장 기분 좋은 말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 자체가 바로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다. 자네가 설마 모를 리 없겠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는 나보다 낫게, 나보다 즐겁게 생을 보낸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나는 가능한 한 선한 인간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최선의 생애를 보내고, 전보다 한층 더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 자각하는 자가 가장 즐거운 생애를 보내는 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네(소크라테스의 회상) 시대가 변했어도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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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마치 철학의 시조이듯이 말이다.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면 그의 제가 플라톤은 한 쌍인듯 생각이 난다. 스승과 제자이면서 동시에 많은 배움을 주고 받았을 그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당사자인 소크라테스가 아닌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서 쓰여진 책이다.
제자 플라톤에 의해서 엮어진 변론은 죽음을 문전에 두고 자신이 왜 죽을 수 밖에 없는가 가장 타당하게 여기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말들로 엮인다. 책을 읽기전에는 고리타분한 관념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다고 하는 그리스의 진실된 상황을 알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민주적인 것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 그런 통일된 목소리의 배후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상은 뒷전으로 한 채 획일적인 사상을 담아내려는 지배계급의 조정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틀리다. 아~ 이런 것이 오해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민주국가 그리스는 애초부터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시작된 개인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자기 변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이 100% 타당하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 조류에 가장 반항적이고 요지부동이었다는 사실이 제자인 플라톤에게도 저술을 남길 수 있는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타협하는 스승을 보았다면 이들도 상황에 맞추어 말을 바꾸는 괴변론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뭐든지 처음부터 자연적으로 최고의 가치에서 이루어는 것은 없다. 전체의 횡포, 기존의 규격과된 가치관에 대한 반항없이는 진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