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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서 가볍고 얇은 책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책의 내용을 미리보기를 통해서 본 터라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벽장이 꼭 누군가의 집 한구석에만 있겠는가? 우리 마음 속에도 그러한 벽장이 없으리라고 장담 못할 일이다. 누군가를 마음 한구석에 밀어넣고 잊어버리려 애쓰며,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결코 책을 덮을 수 없게 하는 오틸리 바이의 글솜씨에도 찬사를 보낸다. 힘든 독서과정을 멈출 수 없게 하는 힘이 그의 글 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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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에 대해서 5살난 장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이야기로 이불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새아빠로부터 벽장 속에 갇히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접했는데 아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다보니 벽장 속에 갇힌 장이 너무나 불쌍하고, 어떻게 자기 자식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어둠 속에 방치해 둘 수 있는지 아이의 부모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실제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객관적인 시점이 아닌 직접 겪는 아이의 시점이기에 아이의 생각이나 느낌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잘 전달되어져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200페이지 정도의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장의 벽장 속 9개월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언제쯤이면 장이 벽장에서 나올 수 있을까... 장의 부모들이 언제쯤이면 그 아이를 인식하고 그에게 사과를 할까...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장, 배고픔에 굷주리고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장을 마음속으로 위로해가며 그의 부모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좌절하면서 욕하면서 읽었다. 이야기의 끝까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미안해하지 않는 그들... 오로지 주변의 시선만 의식할 뿐인 그들... 벽장 속에 있는 장의 시선은 왜 모른채 한 것인가... 책을 읽는 동안 더 이상은 세상에 이러한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없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어른들이 아이를 그저 자신의 소유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의 인격으로 당당하게 마주보며 그들을 대하길 간절히 소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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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의 심리학자인 작가가 쓴 [벽장 속의 아이]는 실제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4살 때부터 12살 때까지 8년동안, 욕실 귀퉁이 수고관, 엄마와 새아빠의 침대 다리에 묶여, 발견 직전까지 벽장속에 같혀 지내야 했던 한 아이에 관한 기사를 토대로 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장'이라는 다섯살짜리 아이가 오줌을 쌌따는 이유로 9개월 간을 벽장장 속에서 지내야 했던,,,그 공포의 시간과 외로움...절망에 관한 심리 묘사를 너무도 가슴아프게 그려 냈다. 요즘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아동학대에 관한... 사실...아이가 없어 자식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을 마음에 담아 본 적은 없지만,,, 한 마리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외출을 나갔다가 혹시 굶고 있지는 않나,,외롭지는 않나 걱정을 하는 쥔장으로써는 도저히 이해는 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부모가 되려는 이들에게 필독 도서가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아이의 아픔이 아이의 마음이 날를 너무도 아프게했다.... 미안하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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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이 이야기는 장이라는 5살난 아이가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9개월동안 벽장속에 갇힌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소설 이라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실화에 바탕을 둔 책이라는 생각을 하면 시대가 변해도 그렇지 어떻게 '모정이라는 것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괴로운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장의 엄마는 아빠와 이혼후 새 남편을 맞이하게 되고 여기서 뻔히 생각 되듯이 그는 장이 전 남편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오줌을 싼 장에게 벌을 주어야겠다며 벽장에 가두는 일이 일어나게되고, 아이의 엄마는 모정도 버린채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봐 안절부절 못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는데 최선을 다한다. 한줄기 빛도 스며들지 않는 벽장... 참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런 상황들.. 장은 요강에 똥,오줌을 누고 엄마가 넣어주는 스프나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것마저 남자에 팔려 깜빡하는 장의 엄마...
아이를 둔 엄마로써 정신이 다 나가버린 것 같은 장의 엄마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이에게 폭력과 욕설을 퍼붓는 남자.. 그 남자가 떠날까 두려워 아이도 잊어버린채 그에게 매달리는 그녀.. 엄마 또한 새남편에게 욕설을 듣고 때로는 따귀를 맞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그가 떠나지 않는다면 감수하고 살겠다는 그녀... 엄마는 새아빠를 설득시켜 장을 벽장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은 매번 지켜지지 않는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벽장에서 악취가 풍길때 쯤 아이를 몰래 꺼내어 씻기고 머리와 손톱을 잘라주고 요를 갈아주고 다시 금방 문을 잠근다.. 장은 짙은 어둠속에서 모든 소리에 집중하며 엄마가 무얼하는지 아침인지 점심인지... 상상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공포감.. 세상에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 끔찍함... 장은 갈수록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겨워하며 몸이 어두운 벽장속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그 사이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선 노엘이란 아이가 탄생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자식은 귀하다고... 새아빠는 끔찍할 정도로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아낀다. 아이라면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 터! 자신의 딸은 한없이 소중하고 무엇이든 다 해줘야할 대상인데 장은 결국 벽장에서 9개월을 꼬박 보내고 만다. 엄마의 뱃속에서 보내는 9개월의 시간.. 그리고 벽장속에서 보내던 끔찍한 9개월.... 아이가 없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이웃과 할머니의 신고로 사회복지사와 경찰의 도움으로 세상밖에 나오게 된 장.....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도가니'를 읽었을 때의 그 분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그것...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새아빠가 아닌 엄마를 응징하고 싶어 부들거리는 내 두손... 그리고 금방 멈춰버리고야 말 것같은 터질 것 같은 심장.... 이 분노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1982년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라니.. 거기에 실제 주인공은 9개월이 아닌 8년을 학대와 감금속에 살았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프랑스인과 관련된 사건이었던 서래마을의 냉동실의 아이 사건이 생각난다. 부모가 아닌 인간으로써도 절대로 해서는 안될 범죄.. 범죄라고 감히 이야기 하기에도 너무 충격적인 사건...
누구보다 장의 엄마를 용서 할 수가 없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가라앉힐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책... 머릿속이 아득하게 어지럽다..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 여기엔 단 한 가지 목적밖엔 없다. 이 사회에 소리치기 위해 우리의 잠든 가슴을 깨우는 것,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 -------------------- 작가의 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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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합니다. 그런 선택중에, 생존과 직결된 선택이 있는데, 바로 달아날 것인지, 싸울 것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입니다. 위기 상황에 우리 몸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면서 최대한의 운동성을 뽑아냅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잠깐 동안의 최대화된 육체 능력으로,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것인지, 그 위기의 원인과 싸워 물리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고, 잘못된 판단은 곧 생명을 빼앗기는 결과가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아직 어린 아이는 항상 달아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누가 윽박지르면, 위협하면, 겁을 주면, 꼬리를 사리고 비굴하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비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하지만, 정상적인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주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아빠(혹은 엄마)한테 이를꺼야" 아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방어무기입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아이는 자신의 무기의 절대성을 믿고 자신감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유아기에 보호자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지요. 이 책에서, 주인공인 5살 아이는 처음에 사랑 받고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라지고, 엄마는 새아빠를 찾고, 새아빠는 옛 남자의 흔적인 아이를 미워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자신의 무기를 잃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보호막이 더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는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믿기가 싫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믿지 않는다고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엘리자베스 로스 박사가 말했던 것처럼, "거부-분노-타협-포기-수용"의 과정을 거쳐 5살짜리 꼬마 아이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벽장속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할머니가 아동복지국 직원들과 함께 집을 급습하면서 아이는 구해지게 됩니다. ========== 자신의 아이와 타인의 아이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잘 기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 엄마에게 맡긴다고 아빠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 아빠에게 맡긴다고 엄마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던, 아빠던, 자기가 아이를 잘 길러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 기를 자신이 없는 아이라면 낳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시킨 이후, 수십년 뒤, 범죄율이 낮아졌는데, 이것을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낙태하는 것보다 오히려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피임 없는 성관계 전에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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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저번 주 잠에서 깨자마자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아서 봐야 되겠다는 무슨 신내림도 아닌 그런 계시를 받아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벽장 속의 아이를 데려 왔다. 5살 짜리 아이를 자그마치 9개월이나 좁디 좁은 벽장 속에 가둬 두고 방치해 버린 멍청한 유사 어머니와 그속에서 고통받았던 아이의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처음부터 이 유사 어머니가 사이코패스나 모성애가 전혀 없는 여자였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수긍 아닌 수긍을 했었을텐데, 이것은 나름 사랑의 결실이네 어쩌네 좋은 말은 다 갖고 붙이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쪽쪽 빨고 난리를 치더니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니 전 남자와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영 달갑지 않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사소한 이유로 아이를 때리며 학대하고 벽장 속에 가뒀을 때도 자신은 이러고 싶지 않았으나,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그 남자가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혼자 남게 될텐데 그런 건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며 어디서 되지도 않는 온갖 불쌍한 척은 다 하며 피해자인 척한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길래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라는 팻말을 갖다 붙이고 싶을만큼의 유사 어머니형태로 이런 모성결핍 하자품이 됐을가? 사랑의 결실이라는 아이를 그렇게 내팽겨칠만큼 사랑이 그렇게 좋은가? 내 보기엔 이 유사 어머니는 고귀한 사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육욕에 불타는 교미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다만 아이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의 사랑도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에게 향한 학대에 대한 정당성 아닌 정당성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모성결핍하자품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면, 바로 며칠 전에 재판이 시작된 서래마을 영아 유기사건을 들 수 있다. 서울 서래마을에서 쿠르조의 남편은 냉장고에서 두 구의 아기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DNA감식을 통해 아이의 부모로 밝혀지지만, 이들 부부는 강하게 부인하고 프랑스로 돌아가 버린다. 프랑스에서의 검사결과가 동일하게 나온 뒤 며칠 간의 취조 끝에 쿠르조는 그들이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과 그 전에 프랑스에서 불태워 살해한 영아가 하나 더 있었음을 자백하게 된다. 그리고 기나긴 재판과정에 돌입하게 되는데, 체포된 쿠르조는 정신과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뱃속에서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내게는 이것은 아이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내 일부였죠. 내가 죽인 건 그냥 나의 연장이었습니다.
정신과의사에 의하면 이는 매우 흔치 않은 경우로 쿠르조에 대해 모성거부, 거짓말, 의식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한 검사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영아살해는 그녀에게 있어 피임의 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참 어이없는 짓이 아닌가?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이 뭔지 아는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하자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는 이러한 것에 크게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는 암울한 현실이 더 심각한 것이다. 사회가 변해가고, 성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흔들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른 나이에 성관계를 갖게 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 아이들은 바로 유사 어머니가 되거나 혹은 피임의 한 방식으로서의 하자품이 되길 선택한다. 즉,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도망가 버리거나 혹은 동네 어느 허름한 곳에서 아이를 낳고 바로 질식사 시켜 버린다거나 또는 얕은 모성애를 등에 업고 낳아서 어느 정도 기르긴 하지만, 곧 내 인생을 망쳐 버린 몹쓸 것이라는 딱지 한 장 붙여 주고 여기저기 유기하는 행태를 서슴치 않는 것이다. 또한 유사어머니 혹은 모성결핍하자품에 버금가는 하자품이 뭔지 아는가?
바로 남의 일엔 나서기 싫어하는, 남의 가정사엔 끼어 드는 게 아니라고 배운 우리들이다. 벽장 속에 갇힌 아이만 해도 이웃에서 몇 번이나 아이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었다. 의심이 들고, 아이의 안전이 걱정돼 몇 번 하자품에게 아이의 행방에 대해 떠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남의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 떠는 게 아니라는 되지도 않는 미덕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뭐 그렇게 신경쓰냐며, 그저 그들 부부의 일엔 그들의 손에 맡기는 게 최고라는 룰 때문에 아이는 9개월이나 고통받아야 했다. 조금만 더 강경하게 나갔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써서 살펴 봤더라면 아이는 금방 구출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왜 우리는 남의 일에 큰 신경을 쓰면 안된다고 배웠을까?
이웃사촌이 먼 곳에 사는 형제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혹은 작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네 집 강아지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지도 다 안다는데,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는 데 그런 사이 좋음을 자랑하던 시기는 다 지나가 버린걸까? 어디 한번 잘 살아 보자는 의욕은 어느새 지나친 경쟁제일주의로 돌변해, 내 이웃의 정겨움을 배우기 전에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 너부터 챙겨야 산다라는 이상한 생존방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지내고 있으며, 이웃이라는 것이 자신을 귀찮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다소 오버스러운 위기의식을 자랑하게 됐다. 배려를 잃은 정을 잃은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이웃간에 고성이 오가고, 누구네집 며느리가 뻔히 하루가 멀다하고 지 남편이라는 것한테 머리채가 휘둘러지고, 골절이 됐네, 머리가 깨졌네라는 소리를 들어도 그저 그것은 그 집사정이니 내 알 바는 아니야~라고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 버리는 지경이 됐다. 이제는 제일주의를 벗어 던지고, 배려라는 옷을 입어야 할 때이다. 다시 사랑이라는, 정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어야 할 때이다. 지금도 하루에도 몇천명의 아이들이 벽장 속에 던져지고 있다. 벽장 속에서 웅크리고 자유을 원하는 그 아이가 내 아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그때 가서 곡소리 내지 말고, 지금 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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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속의 아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도 울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에는 책 속에 스며있는 5살 아이의 두려움과 공포,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나 자신이 어두운 벽장 속에 갇혀 있으면서 어둠의 공포와 배고품과 두려움을 같이 느낀 것 같아 잠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동거하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봐,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는 남자를 묵인하고 침대에 오줌을 샀다는 이유로 아이를 벽장 속에 가두어 두고 아홉 달이 흘렀다니, 어떻게 이 참혹한 공포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길수가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이런일이 내가 숨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아동학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열변을 토하곤 하지만 이내 시간이 흐르고 나의 무의식 속으로 사라지곤 했던 기억들이 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일상을 보내며 내가 사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묻어버린데 대한 책임이 느껴진다. 기자 출신 저자가 자신의 직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이 취재하거나 연구한 사례들 중 하나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책이라한다. 특히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과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왜 인간이 인간을 그것도 나약하고 조그만 아이를 대상으로 괴롭히는지 정말 상상이 되지 않고 의문만이 생길 뿐이다. 이런 현실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얼마 전에도 친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밥도 주지 않고 옷장 속에 가두어 두고 학대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이들은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인간성의 부재로 갈수록 우리 사회가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지나 않을까 심히 두렵다. 이런 미래를 맞이하기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의식을 깨워야 한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고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잠시 동안의 분노만 느끼고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잠자는 의식을 깨워, 내가 무시하면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자각 하여야 한다. 나의 작은 불씨가 우리의 미래를 밝게 비출수도 있다는 희망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문제를 만들어가야할 책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장과 함께 느낀 공포들이 지금도 생생한데, 5살 아이의 조그만 마음에 왜 그런 상처가 박혀야 하는지 아직도 작은 아이의 아픔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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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단순히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이야기 였더라면 맘 한 켠에 위로를 받을수 있으련만, 실화 소설 이었다는 데서 경악하게 한다. 5살난 장이란 아이가 단지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벽장에 9개월이란 긴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새 아빠가 장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치더라도 엄마의 행동은 어떻게도 이해불가이며 이해해줄 가치가 전혀 없다. 자신들의 성적 쾌락에 질러대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을 어린 아들, 그 소리를 어린 장은 새아빠가 자신의 엄마를 학대하는 소리로 이해함에도 엄마는 아이에게 아무 거리낌이 없다. 캄캄하고 좁은 벽장이란 공간 속에서 겪는 고통은 5살 아이가 견디기엔 너무나 가혹하기 짝이없다. 벽장속에서 장이는 한줄기 빛을 따라 꿈틀대는 소리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 하기엔 장이의 모습이 너무나 아리도록 아프다. 책의 중반이 넘어가도록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끝을 먼저 읽고픈 충동이 일기도 했다. 아동학대에 관한 책을 본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요즘 화요일 밤,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보도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몸이 떨리도록 분노하고 분개하지만, 지금은 이 책에 온전히 빠져 이 이야기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슴 아픈 일로 받아들여진다.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의 뱃속에서 빠져나오듯 자신도 벽장속에서 빠져 나올걸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젠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공포는 자신의 영혼을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게 한다. 어미 새의 부리에 잔혹하게 찢긴 채 둥지에서 내동댕이쳐져 울부짖을 힘조차 없는 장이는 마지막 사회복지사에 의해 발견되는 모습은 사람이라 말하기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것도 어린 아이들 상대로 이렇게 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한 모습을 보이는지, 지금 이 순간도 이렇게 학대당할 아이들이 있을거란 생각에 또다시 울적해진다. 관련법규 마련이야 차후의 문제고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따뜻한 관심이 학대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늘지 않게 하는 길 일수도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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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화제의 실화소설이란 타이틀이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표지에 눈만 댕그러니 있는 모습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벽장속에 5살짜리 아이가 9개월동알 방치된채 공포와 싸워야만 했던 순간들을 어찌 글로 다 담을 수 있을까? 이불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벽장속에 갇힌 아이~ 새남편이 자기를 떠날까봐 벽장속에 갇힌 아이를 방관만 하고 있는 장의 엄마~
어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수 있을까??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한 아이의 인생을 이렇게도 무참히 질밟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둠의 공포와 싸워야했던 아이~ 언젠가 꺼내주겟지 하는 희망이 깨어질때마다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야했던 가엾은 아이~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면서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었고 온몸이 떨렸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이의 상처가 많이 희미해졌기를 기도하며 폭력에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더이상 없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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