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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만 해도 넓은 의미의 중원 안에서 벌어진, 각 세력과 종족 간의 각축전이고 쟁패이며 혼란상이었습니다. 남방의
초나라나 서북방의 진(秦)은 오랑캐 소리를 들었지만, 시대의 대부분 그 주도권을 쥔 쪽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화하의
발달된 문명과 풍족한 생산력에 대해 유목민족, 혹은 중화 밖의 종족들은 경외감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왕망의 신(新)이 제위를
찬탈한 혼란기에도 이들은 감히 중원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삼국의 분열기까지만 해도 그저 지방정권의 유력자에 조력을 제공하여
부수적 이익을 챙기는 데에 그쳤습니다.
그러던 것이 사마씨로의 선양 후 진(晉) 정권이 세워지고, 이 시스템이
도덕적으로나 행정 기술적으로나 영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던 끝에, 마침내 팔왕의 난이라는 최악의 자충수, 내부 분열상을 노출하며
"막장"으로 치닫자, 이른바 5호로 불리던 외부 유목민족이 본격적으로 중원에 진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만만하게 보일 수
없었던 체제가,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되는 상대에게 "저자들 알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군!"이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준 게 바로 서진의
분열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태가 중국사 전체에 끼친 악영향은 실로 중대합니다. 800년 후 석경당이가 거란에 나라를 팔아먹은 건
이 사건에 비하면 약과라고 하겠습니다. 그때 역시, 여진 추장 아골타가 "송나라를 멸망시키지 말라."는 유지를 남기고
죽을(사실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지만) 만큼, 아직은 농경 정착 문화에 대한 외경감이 남아 있을 시절이니 말입니다.
유목민족이 중원의 정착 세력에 대해 혹시라도 열등감 비슷한 게 있었다면, 첫째 물산의 생산이 풍요로워 배를 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고(이 역시 지배계층의 수탈이 가혹하다면 일반 백성으로서야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만), 둘째 부위자강, 군위신강, 혹은
장유유서 등 사람 사이의 질서와 예의가 세련되게 발전하여, 그저 실력과 주먹의 우위가 유일 최고 변수였던 자신들의 풍속과 비교할 수
없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앞다투어 황실의 존엄을 지켜야 할 종실 어른과 번왕이라는 자들이, 황위를
차지하려 내전과 패륜도 마다지 않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니, 누가 저들을 두고 공맹의 인의예지라는 가르침을 받든다고 인정해
주겠습니까? 싸움의 기술만 그저 모자랄 뿐, 하는 짓은 초원의 늑대들이라 경멸되던 기마민족보다 더 타락했으니, 이제서야 변경을
떠돌던 그들, 새외(塞外)의 "오랑캐"들이 버젓이 장성을 넘어 제 실력을 발휘할 마당이 열렸다고나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8왕은 군사력 증강을 위해, 경쟁적으로 흉노, 선비 등의 이민족 실력자와 군단을 초빙하여 우대하기까지 했으니, 황실의 권위가
이미 땅에 떨어진 마당에 그들을 계속 용병으로 부릴 재력과 위신이 서지 않으면, 그들이 번거로운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권좌에
부상하는 건 이미 시간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그 단초가 되었던 것이 바로 영가의 난입니다. "영가"는 무슨 난을 일으킨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진 회제 사마치의 연호입니다. 만력 연간 어쩌구 하듯이, 영가라는 연호를 사용하던 시기(정확하게는 311년인 영가
5년이 본격 시발점)에 벌어졌기에, 이런 이름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오호 십육국의 분류, 정리는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청아출판사의 <이야기 중국사>를 통해 이 시기를 처음 접했는데요. 어린이용 책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와 함께 정리가 되어 있어서 그나마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책도 어린이책치고는 제법 까다로운, 연표 정리와
왕실 세계도가 부분적으로나마 나와 있었고, 어느 민족이 어느 나라를 세웠으며 어느 나라에게 망했는지에 대해 나름 체계화를 시도는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독자의 나이가 어렸고, 이상하게도 중화 사관을 은근 머리에 이식하던 당시 교육과정의 방침 때문에 "이
시기는 더러운 시기!'라는 고정 관념이 배어 있어 그리 재미있게 공부하지를 않았습니다(학교 시험에 잘 나오지도 않고). 지금 보면
비록 사상과 문화 면에서는 퇴보를 보였을지 모르나, 침체된 농경 사회에 공전절후의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동시에 근거 없는
민족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중화 농경 민족에게 단단히 각성의 일침을 놓은 의의가 있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석륵이나
유연 같은, 중국사 전체를 두고 호걸, 영웅으로 꼽을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반대로 음탕, 잔인, 혹은 간사한 개성으로
악명을 남긴 이들도 많이 모습을 드러낸 시기입니다. 이 시절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를
두고 큰 시사를 던져 줄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네이버책 Db에는 "삼기양장"이라고 한국식 독음만 나와 있고, 이 책
표지에는 三崎良章이라고만 나오나, 저자 이름은 미사키 요시아키, 와세다 대 재직 중인 중국사 분야의 대단한 권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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