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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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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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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 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 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 만질 때

나는 새 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 11p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렇게 책을 소리 내서 읽는다.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이 부분은 정말 가슴이 탁 막힌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고,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 할 말조차 앗기면 모슬포에 누우리라

뭍으로가지 않고 물길 따라 모슬포 고요가 되리

슬픔이 손 벋어 가리킨 곳

모슬포 길들은 비명을 숨긴 커브여서

집들은 파도 뒤에서 글썽인다네

햇빛마저 희고 캄캄하여 해안은

늙은 말의 등뼈보다 더 휘어졌네

내 지루한 하루들은 저 먼 뭍에서 따로 진행되고

나만 홀로 빠져나와 모슬포처럼 격해지는 것

두 눈은 등대 불빛에 빌려 주고

가끔 포구에 밀려드는 눈설레 앞세워 격렬비도의

상처까지 생각하리라

 

- 31p <모슬포 가는 까닭 - 제주시편1>

 

 

마음껏 외롭고 싶다면 모슬포로 떠나야 겠다.

같은 바다를 보고도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니,

정말 시인은 하늘이 내려주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꽃의 내부도 밤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

고치같은 어둠 어디선가 동백꽃이라 말하는 순간이 있다

 

- 65p <너를 밤이라 부르겠다> 본무 중에서

 

이 부분을 읽는데 김경주가 생각났다.

'꽃의 내부'라는 말은 김경주가 자주 쓰는 단어니까.

 

'너를 밤이라고 부르겠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밤'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봄이 오기 전에 피는 꽃의 향기가 진한 것은

눈의 무게를 이겨낸 나뭇가지가 휘어지는 것은

울음을 디딘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

뼈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육체가 되어 버린 낭떠러지 아래

그는 커다란 비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66p <비명> 본문 중에서

 

봄을 기다리는 겨울은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언제 꽃이 필까, 날은 언제 풀릴까, 마지막 눈은 언제 내릴까.

 

휘어진 나뭇가지를 보며

울음과 울음 사이를 생각하는 송재학 시인의 필력에 감동했다.

이 시를 읽으니 추운 겨울이 기다려진다.

눈이 오는 날이면,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눈이 쌓이면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 어긋난 나무의 뼈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조금은 거창하지만, 시를 읽을 때 마다 마음이 말랑 말랑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오래 폭설을 기다렸다

 

해평 마을의 빈집은 해면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랑, 낙동강의 결빙음, 매지구름은

내 육체가 붙들던 난간이었다

간유리문을 지날 때 어딘가 지독하게 아프다가

물바람마저 사금파리 빛 띄우면

히말라야시다는 가지 꺾고 귀로를 가로막는다

입술이 닿은 성에꽃에 매달린 내 청춘이

온기 한 점 구하지 못할 때

빈집은 폭설에 무너진다

 

그 사랑에는 육체를 피한 흔적이 있다

 

- 68p <빈집>

 

 

'빈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기형도가 생각나고

'빈집'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난다.

그리고 이제는 송재학도 생각날 것 같다.

'입술이 닿은 성에꽃에 매달린 내 청춘'

춥고, 고달픈 젊은 날의 슬픔이 전해지는 듯 하다.

 


 

 

이 시집은 겨울에 읽어야 할 것 같다.

추운 겨울 봄을 기다리며, 꽃을 기다리며 책을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말랑해질 것 같다.

 

이별 후에 듣는 시시한 슬픈 음악보다

이 시집을 펴고 한 편 한 편 소리내어 읽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고,

늦도록 잠 못드는 사람들에게 특히 좋은 자장가가 되지 않을까 한다.

 

 

2012년 10월 5일 다 읽음 : D

 

s*****6 2012.12.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