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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회복의 경제학
일본인 진노 교수의 인간회복의 경제학. 인간회복의 경제학은 일본이 겪었던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예측과 나아가야 할 길을 적어 놓은 책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부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온 일본. 극심한 경제난과 경제의 후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상한점을 하나 발견을 하였다. 그것은 지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가 실행하여 실패한 경제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놀랍고, 두려움에 떨게 한 내용이다. 그리고 경제에 복속되어져 인간미를 상실하고만 현대인에게 앞으로 주어지는 과제가 무엇이며, 해답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호모이코노미쿠스-호모이코노미쿠스는 말 그대로 경제적인 인간 혹은 경제인 (P19)라는 뜻이다. 고전파 경제학의 주체가 되는 경제인 가설(호모이코노미쿠스)은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제인 가설의 핵심이다. 즉 인간은 인간 본성의 이기심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끔 하는데 이것이 경제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19세기말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주류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이기심과 공감이라는 양면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서 공감을 지운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삭제가 지금 이 시대까지 유지가 되면서 경제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는 상실이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회경제학의 등장은 신고전파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인간은 인간상호 간의 공감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협력을 가장 경제적인 경제인의 모습이라 주장하게 된다. 사회경제학의 등장으로 경제부분은 정치, 사회부분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중요한 삼요소로 자립 잡게 된다. 재정사회학의 대두. 재정사회학은 자유공동경제화 매우 유사한데 시장경제만큼이나 국가재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인간의 경제 활동은 인간 사회 총체가 유기적으로 관련되는 활동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즉 인간이 자연을 이용한 경제 활동에는 정치, 경제, 사회라는 토털 시스템이 구축 되어야 된다는 것이 재정사회학의 입장이다. 즉 재정사회학의 관점은 호모이코노미쿠스가 아닌 호모사피엔스를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즉 경제의 관념은 인간의 본능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한 창조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의 시작이며, 경제의 출발이다. 경제는 인간의 속성이 아니다. 생각하고, 의지하고, 발전시키려는 인간의 본질이 경제라는 활동을 출현시킨 것뿐이다."(P41) 현시대의 경제학은 인간을 상실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에 온 몸을 던진 결과이다. 압도한 시장경제 원리를 앞 세워 인간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양심도 져버렸다. 인간이 만든 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칼날이 되어 돌아온 많은 인간들을 수렁으로 내 몰아가고 있다. 경제가 만들어져서 지금까지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이 처해진 상황을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실패로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구조개혁, 민영화, 연금파탄, 실업률 증가, 조세 상승 등은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정책의 결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웃 나라에서 실패한 정부 정책과 미국의 주도로 이끌려져온 신자유주의 경제의 말로를 우리는 알아야 될 것이다. 진노 교수는 호미사피엔스를 추구한다. 경제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는 인간 자체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세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그 공동체를 파괴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에폭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에폭의 시대에는 한순간의 결정이 실패냐 성공이냐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한국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 있어 인간 공동체의 선택은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회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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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생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더 효율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한가지 학문인것이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와서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이 경제를 만들어내고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인간을 끌고 있고 인간은 그 경제에 힘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을 비판하는 저자는 철저히 인간 중심적으로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경제란 인간이 자연이라는 환경을 생활에 유용한 재화로 변환시키고, 그것을 인간들끼리 분배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p28 인간은 경제적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창조하고, 협력하다보니 경제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다. p32 기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p56
모두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으로 증명된 진리는 아무꺼리낌 없이 받아들이면서 역사가 증명하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위와같은 진리는 무시하고 있다.
그 어느것도 생명보다 귀한것은 없듯, 그 어느것도 인간보다 귀한 것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 아마 애덤스미스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위와 같은 것을 말한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그 이론을 왜곡한것은 아니었을까?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p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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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 인류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여럿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미래가 올 것인가. 저자는 인간의 속성 중 경제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인간을 호모이코노미쿠스로 정의해서는 곤란하다고 한다. 즉 인간의 이코노미쿠스적 측면은 '생각하는 인간'의 한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로 경제를 학문의 위치로 끌어올린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자기 이익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유가 이기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이기심이야말로 경제의 실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느새 경제에 속박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위한 경제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을 위한 경제란 존재가능한가. 인간적 유대감의 공유가 가능할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의 공동체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책의 저자인 진노 나오히코는 경제학과 전공이지만 너무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FTA문제로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씨끌씨끌 거린다. 신자유주의라는 유혹의 마법에 현혹되어 가고 있다. FTA를 반대하는 측도 찬성하는 측도 결국은 자본주의,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과연 이러한 시대적 태도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다. 최근 이러한 흐름에 비켜서서 대안적 공동체 담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꼬뮨이나 문화사회 등등 대안적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현실성 부족의 문제에 대한 갈등을 이 책은 어느 정도 해소하여 준다. 자본주의를 떠나서 인간이 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의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기적절하게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는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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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상을 살아가는 목표는 무엇일까? 좋은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입고 넓은 거주공간 속에서 풍족한 재산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 모두가 꿈꾸는 모습일 것이다. 나 역시 돈을 좋아하고 좀 더 여유롭게 살고자 돈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네 모습은 돈에 이끌려 다니는 모습은 아닐까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며 끌려다니는 모습을 깨닫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 조금만 더 희생하자 조금만 더 모으자, 그러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 끝은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input과 output이 다르다.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저자 나오히코 교수는 일본경제관념의 문제점과 인간경제회복의 대표적인 케이스인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비교해가며 인간중심의 삶으로 경제학에 대해 재해석하고 있다. 주류경제학인 '호모이코노미쿠스'(경제인)에서 출발한 인간본성을 무시한 경제학에 반기를 들고 인간중심의 '호모사피엔스'적인 경제학을 주장한다. 90년대 잘못된 핸들을 꺽은 일본경제를 비판하고 에폭의 시대를 기회로 삼지 못한채 잘못된 구조개혁에 몰락해가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중화학공업의 시대에서 지식경제시대로의 에폭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한 스웨덴 정부의 올바른 핸들은 인간복지를 존중하며 가장 기본적인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출발한 경제개념으로 중앙집권적인 정치시스템을 벗어나 지방분권적인 그래서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펴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래되고 무능한 인간을 쳐내고 마구잡이 구조개혁으로 인간없는 경제학의 핸들을 고집했던 일본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사회경제상을 보여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케인스식 복지국가의 결점을 보강한 지식경제시대의 스웨덴의 인간중심의 경제학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인 교훈을 제시해준다. 케인스식 복지국가에서는 실직자들에게 실업급여의 현금을 지급할 뿐, 스웨덴의 경제, 사회, 정치시스템에서는 실업자가 다시 재활의 의지를 갖고 복직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다. 큰 흐름에서 보면 당장의 현금지급보다는 재교육으로 인한 경제사회로의 복귀가 한 나라의 재정적인 입장에서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케인스적 복지국가의 마지막 단계이자 1990년대 일본의 잘못된 구조개혁의 핸들을 잡고 있는 듯 싶다. 인간없은 경제는 경제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이 책은 저자의 인간중심의 경제학을 위해 서로가 연대하며 정치, 경제, 사회를 총괄하여 재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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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회복의 경제학
사실, 처음에 이 책을 펼쳐보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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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지수가 곧 국가 경쟁력을 상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경제체제의 모순이 낳은 최대한의 징벌인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가 가져다준 인간상실(인간의 이기심의 분출)은 회복 할 수 있을까? 과거의 민주주의와 새롭게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적 사회구조는 어떻게 다를까?. 21세기 미래 사회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어떤 형태로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21세기가 원하는 사회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되지 않을까? 자본주의 케인스적 복지국가 = 온건주의 사회 인간의 욕구 + 신자유주의 인간 화합논리 사적 경제 인간 경쟁 논리 사회자본+정치. 경제자본+인간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