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악마 - 레이몽 라디게 & 지식의 악마 - F.모리악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프랑스 사람을 직접 만나보거나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어서 실제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해선 감을 잡기 어려우나, 문학이나 영화를 통해 접한 프랑스 젊은 사람들은 시대가 어떻건간에 그 나이 또래에 비해 너무 조숙하다 생각된다. 우리로 치면 30-40줄에나 들어 느낄 법한 인생의 혼돈과 고초를 다 격고 있고, 생각도 지나치게 철학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생각은 근간에 제목이 비슷한 프랑스 소설 두 가지를 접하며 다시금 느낀 바이다.
사춘기 말 완전한 성년이 되기 직전의 남자 주인공들은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조숙하다.사실 그들은 보통 아이들과는 차별되는 천재성을 타고 났다고 소설초반에 깔리기는 하나 그래도 이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처음부터 조숙한 성향을 타고 났다기 보다는 프랑스 특유의 문화적 토양이 그들을 너무 일찍 푹 삭아 버리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백년 흐른 건 아니지만 소설 속 배경은 꽤 오래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나 지금이나 프랑스는 애들이 어른 같은 생각을 하거나 어른들이 하는일을 너무 일찍 경험하는 것에 별로 엄격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경험들은 그저 인간의 성장과정중 하나의 인격 객체가 겪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인정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어디에나 인지상정이란 것은 있어 유부녀를 흠모하거나 바람피거나 선생님한테 반항하거나 수업을 빼먹거나 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하는 묘사되나, 딱히 주인공들이너 주변인들이 그런 도덕률에 크게 가책을 느끼는 듯 보이지 않는듯하다. 소설이 개인의 심리묘사에 치중함으로써 사회적 비난보다 오히려 중인공들의 내면의 변화를 묘사하는데 집중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서 벌어졌다는 것을 염두해둔다면 사회적 비난이란 것도 주인공들을 약간 기분상하게 하는 해프닝 정도로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타락함으로써 고리타분한 학교교육과 신앙이 가르쳐주지 않는 도덕과 좀 무관한 인생에의 법칙을 더 많이 깨닫는듯한다. 그래서 이들을 지식의 악마/육체의 악마라고 했을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과 사랑놀이를 10대들이 했다고 하는 사실에만 놀라며 작품을 접하면 말안듣고 고집센 왕따들의 못된 짓거리로 밖에 보일수도 있겠으나, 주인공들의 나이를 염두해두지 않고소설내용으로만, 어떤 인간들이 사랑의 아픔을 느끼고 질투하고 절망하고, 헌신적이었다 이기적이고, 결단력 있어 보이나 결국은 어쩔줄몰라 끊임없이 해매고....하는 이야기를 본다면 과연 어쩌면 이렇게 치밀하게 사람의 감정의 흐름을 잘 훑어 낼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된다. 모리악이야 워낙 치밀한 심리묘사의 대가로 알려져있고, 장콕토의 애인이었다가 20살에 장티푸스로 요절한 레이몽 라디게란 작가의 요란스러운 인생사만큼 이 소설이 인정받는것도 탁월한 심리묘사때문이다.
그래서 애들 사랑놀이가 애들 얘기처럼 보이지 않나보다. 그래도 이런일들이 수십년전에 이미 프랑스에선 20살도 안된애들이 했다고하니 섬찟하면서도 인간을 그렇게 빨리 조숙하게만드는 프랑스만의 문화적 토양이 매우 부럽다 생각이든다. 갑자기 내가 그들의 나이때 무엇을 했나 생각을 해본다. 수능 모의고사와 야간 자율학습, 선생님 회초리 따위가 한창 자라나던 내 정신을 너무 피폐하게 하지 않았을까. 좀더 리버럴한 사회 속에서 자랐다면 과연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사춘기는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 흘러가는 세월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난 정말 너무 많은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