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 토익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일이라
회화 위주로 영어가 배우고 싶었다. 일단 영어의 기초부터 다지리라
마음먹고, 서점에 가서 아이들용 영어 동화책부터 뒤져볼까 생각했지만,
막상 서점에 가보니 이책이 눈에 띄었다.
내 영어의 수준은 왠만한 영어는 대략 해석이 될만한 수준으로,
고등학교 때까지 모의고사에서 영어부분 2~3 문제 틀릴 정도의 수준이어서
못한다고 보지는 못하지만,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집어넣어 주는 영어를
외우다시피 본 것이라 문법적 기초지식은 열악한 상태였다.
그래서 기초부터 제대로 다지고 싶은 마음에 남들이 자존심 운운하며 거들떠
보지 않는 중학교 수준의 문법책을 난 아무 거리낌 없이 주문해서 받아보았다.
그럼 서론은 이쯤하고 책에 대한 평가를 해본다.
이 책의 기본 취지는 제목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중학교 교과서로 영어를
다시 기초부터 시작해보자' 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70%는
중학교 교과서에 다 들어있다고 허울좋게 말하는데 이 책의 실상은 어떤가.
과연 이책이 소위 '자존심을 굽혀가며' 중학교 교과서 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의 기준에 맞게 씌여져 있는가.
이 책을 일단 단 한문장으로 평가하고 시작하자면 '수박 겉핥기' 이다.
이 책은 주로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더라 라는 어느 문법책에나 나올법한 얘기들을
중학교 교과서 몇장 책에다 붙여놓고, 조금 자극적인 지문을 통해 간략히
소개해주는 형식이다. '걔네 두시간째 키스하고 있다니까.' 또는 '그 자식이
내 여자친구와 키스하는 걸 봤어' 따위의..
이 정도야 책을 팔아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관심유도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예문의 난이도이다.
이 책의 각장의 뒤편엔 영어 상황예문과 그 사이의 일정한 만큼의 한글 지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제일 처음, 즉 1장의 경우를 보면
'카페로 들어오는 남자를 처음 봤을 때' 를 영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책에서 제시한 답은 'When I first saw a man walking in the cafe,'
가 되는데, 무난히 해석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 예문이 나와있는 1장이 무엇에 관한
장이었냐 하면, 바로 부정관사 a, an 과 정관사 the 부터 설명하는 아주 기초적인
첫장이었던 것이다. 영어가 어려워 중학교 교과서 부터 시작한다는 반가운 마음에
책을 구입해 a 와 the 부터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만들어 보라고 주어진 문장이 왜
'When I first saw a man walking in the cafe,' 씩이나 되어야 하는가.
그 밑에 밑줄 쳐놓고 틀린 곳을 찾아보라고 나와 있는 문장은 더 가관이다.
'All applicants need two forms of valid identifications.' 이다.
이것이 중학교 수준의 영어교재 제 1장의 문제라니. 이 책을 사보는 사람은
a 와 the 가 어떨때 쓰이고 안쓰이는지, 어떤것이 쓰이는 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
가고 싶지, 어려운 예문을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배웠더라면' '들어는 봤는데요' 라는 섹션명칭으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학교 영어교사들을 모욕하는 공격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방식 또한 기존 학교에서 배우던 주입식 교육과 별반 다르
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책이라는 매체임을 고려하면
더욱 효과가 없다. 결국 여기서도 '이럴때는 조동사로 쓰여요.' '이럴때는 과거
분사로 만들어 주면 수동태가 되요' 라며 말만 부드럽게 했지, 이해를 시키지
않고 주입만 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이 이렇게 쉽게 씌여져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
이 있다면, 'Grammar in use' 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요즘 보는 책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책이라 웬만하면 알겠지만, 요즘 보면서도 자꾸 감탄하게
만드는 책이다. 일전에 군대에서 복무하며 잠깐 보다가 분실한채 전역해서 쉬다가
구입한 책이 이 'Try again' 이었는데, 이 책을 다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Grammar in use 를 다시 구입해서 보고는 역시 유명한 책은 왜 유명한지를
알 수 있었다. 무릇 기초를 다루는 책이라면 현상을 만드는 원리를 차근차근 이해
가 가게 해야 될 터인데, 'Try again! 중학교 교과서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 라며
자신은 학교교육과 180도 틀린 것처럼 기세좋게 말해놓고는 역시나 현상만 보고 일
단 외우라고 박박 우겨대고 있으니, 저자가 앞에 있다면 돈이라도 환불 받고 싶은
심정이다.
또한 어이없는 것은 단가만 잔뜩 올려놓은 두장의 씨디이다. 책이 얇아 수박 겉핥
기 식으로 만들었을 지언정, 씨디에 충실한 강의라도 집어넣어 보충을 한다면야
뭐가 나쁠까마는, 두장의 씨디가 책을 그대로 읽기만 하고 있으니 이건 씨디 두장
구워서 돈 긁어먹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한장은 한글강의 내용까지 같이
읽어주고 (거의 그대로) 한장은 예문만 읽어준다. 뭐하자는 건지..
원래 화가나면 글이 길어지는 성격에 글이 터무니 없이 길어졌지만,
제발. 책을 발행하는 취지에 맞게 책 좀 쓰라는 말이었다. 선정적인 예문 몇개
끼워넣어서 관심 받을 생각말고.
확실히 예문은 학교 교과서와는 차별을 두었더라.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