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우라는 시인의 뼈아픈 후회는 나로하여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남은 자리에 나 혼자뿐일때를 상상하게 한다. 아니 그런적이 있는 나에게 아픈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는듯하다. 가장 첫 귀절인 이 부분이 아마 모든이에게 마음에 와 닿았을거라 생각을 한다. < 슬프다 //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 나에게 왔던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 모두 떠났다. > 나에게 왔던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아픔을 주고 떠나고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보냈을것이다. 한가지 더 내가 떠나보냈던 사람들은 아마 시 속 주인공처럼 마음이 아팠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때 나는 얼마나 못된 사람이었던가를 상상하며 앞으로 어떤일이든 사람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뼈아픈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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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지우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 언제부터 황지우의 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황지우의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그의 시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산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이 쓸쓸함을 바탕으로 한다는 나의 개똥 철학은 황지우의 미학적인 사고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시에 빠져 그의 시 중 몇 편을 방 여기저기에 붙여 놓고 보았던 나는 지금도 그의 시 구절을 암송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언제나 삶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쓸쓸한 것만도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외롭지도 지나치게 쓸쓸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아주 행복하지도 않은 그 중간쯤 되는 이야기이다. 황지우의 시에서도 나는 인간의 외로운 심사를 느낀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지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 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중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건만 황지우에게 외로움이 닿으면 좀더 낯선 언어로써 표현되는 것이다. 슬픔처럼 쌍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하는 그의 싯구는 오랫동안 내 마음의 심금을 울렸다. 이 겨울, 외로움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외로움을 사람의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자신있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개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 나가는 눈보라,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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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회한을 끄집어내는 책이 있다. 바쁜 일상에 함몰되어 나도 잊고 있던, 마음속에 흐르고 있던 탁한 물줄기를 맑게 정화시켜주는 작은 조약돌을 책 속에서 만난다.
이미 오래 전에 나를 울렸던 글은 황지우씨의 시 '뼈아픈 후회'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아팠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니 사실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사랑했던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차갑게 뒤돌아서는 그가 미웠지만 마음속에 고여있는 그의 기억을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자기감정에 취해버리면 빠져 나온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건조하게 말라가던 나에게 때 맞춰 황지우씨의 시집이 쥐어졌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첫 구절에서 목이 메었다. 부지런히 사랑을 쫓았지만 놓쳐버린 사랑......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도 내 단단한 벽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허물어져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 한 편이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될 수 있음을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지금 나는 다시 그 시를 읽고 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이제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다시는 뼈아픈 후회를 하지 않도록,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기 위하여, 지금 나는 다시 '뼈아픈 후회'를 읽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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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들의 사랑은 가벼워졌다. 그러한 시대적 조류속에서 황지우는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을 느꼈을 것이다. 1994년도 소월시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뼈 아픈 후회". 그 이외의 시들에서도 황지우는 사랑의 무거움에 대한 절실한 표정으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연애시에나 어울릴만한 그런 사랑은 아니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회의.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여 왔던 그 사랑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황지우는 단호히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황지우의 이 고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정 사랑을 하였는가. 내가 되뇌인 그 사랑한다는 말을 책임질 정도로 나의 사랑은 헌신적이었으며, 희생적이었으며,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었는지 되돌아 보아야한다.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었는지를 말이다. 이제 되돌아보자. 나의 폐허 속에는 누군가 들어올 길이 있는지를 말이다. 반복되는 사랑의 후회.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후회를 낳는다. 그리고 사랑의 후회는 언제나 뼈가 아프다. 존재 자체를 흔드는 후회를 통해 사랑할 수 있다면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는 탄생의 보람이 있다. [인상깊은구절]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
| 황지우의 시를 읽어 본 사람들은 언어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실감을 할 것이다. 나역시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언어일 뿐인데 황지우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는 단지 언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는 그저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마법사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황지우를 좋아하게 된것은 황지우의 눈보라라는 시를 읽게 되면서 부터 였다. 황지우 시인의 다른 시들도 다 좋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많은 시들 가운데서도 나는 눈보라가 주었던 마음 속의 깊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책에는 황지우의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시도 담고 있는데 한결같이 주옥같은 시들이다. |
| 무능(無能)이 죄가 되지 않고, 삶을 한번쯤 되돌릴 수 있는 그 곳--- (노스텔지어 中) 그래도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中) 작가는 되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제 겨우 스물 두해를 산 나도 내 삶을 돌이켜보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어떤 이유로 하여금 돌아가고 싶은지를 막론하고, 작가도 오죽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다시 되돌아간다면 작가는 뼈아픈 후회따위는 하지 않겠지. 아니, 어쩌면 똑같은 후회를 저질러 놓고 다시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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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소월시 문학 수상작품집을 읽어 보지만 해가 갈수록 시가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단지 옛 시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황지우의 시를 좋아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8회에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한 황지우의 시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아마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보기로 한다.
어둠과 함께 바람이 일었다.
바람에 다시 묵은 쑥대가 무너지는 밤이다.
어린 쥐들은 죽어 새벽 거리에 버려지고
저들
저 불빛도 없는 들창 밖으로
너의 통곡 소리가 들린다.
울지 마라
내가 바람에 일어나 너에게로 간다.
이성복의 '들풀'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문학적인 섬세함이 드러남은 물론 아름다운 희망을 주는 시다. 지금 슬픔을 견디고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무죄를 기다리며 나는 달린다 뱃거죽에 늘어붙은 군살이 빠져 나가는 환상이 고통을 참고 달리게 한다 몸을 둔중하게 만들던 잉여의 살이 빠지면 나는 좀더 가벼워질 것이다,날아오를 만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