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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 대한 영국식 답변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 대한 영국식 답변" 내용보기
줄리언 반스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알다시피, 그는 프랑스광, 특히 플로베르광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의 이런 자전적 이력과 플로베르의 유명한 소설 "감정교육"에 대한 영국식, 혹은 반스식 답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소설의 2부 말미에 감정교육이 한 번 언급되기도 한다.)   십대 초반의 어린 시절, 이십대 초반의 영국 유학시절, 삼십대 초반의 결혼의 세 부분을 옴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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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알다시피, 그는 프랑스광, 특히 플로베르광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의 이런 자전적 이력과 플로베르의 유명한 소설 "감정교육"에 대한 영국식, 혹은 반스식 답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소설의 2부 말미에 감정교육이 한 번 언급되기도 한다.)

 

십대 초반의 어린 시절, 이십대 초반의 영국 유학시절, 삼십대 초반의 결혼의 세 부분을 옴니버스식으로 엮은 이 소설은 "감정교육"의 주인공 프레데릭처럼 이상주의자 청년의 현실편력기이지만, 프레대릭이 "환멸"을 얻은 것과는 사뭇 다른 지점으로 향한다. 프랑스의 플로베르의 결론에 대한 반즈의 영국식 재반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 반론은 약간 보수적이긴 하지만 유쾌하며 일종의 자조적 느낌을 옅게 깔고 있기 때문에 역겹지는 않다.

 

매우 위트가 넘치고 지적인 소설이다. 반스의 소설들은 기복없이 모두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 처녀작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다른 정보 없이 반스의 소설들을 읽는다면 어떤 작품이 처녀작인지 알기 힘들 것이다. 

 

 

열린 책들의 북 디자인은 대부분 깔끔하고 아름답지만 책의 내용과 별다른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조금 더 생각하는 책꾸밈이 아쉽다.

d*****4 2007.10.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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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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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소위 '빠른'의 수혜자인 나완 달리, 초중등교육을 같이 수학한 친구들은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해서 연초에 신중하게 다섯 명만 골라 반쯤 농 섞인 안부 전화를 넣었다. 깔깔거리며 지분대는 나의 유치한 통화에 누군가는 분개했고, 어떤 이는 자조 섞인 비난을 퍼부었으며, 나머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넘겼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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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소위 '빠른'의 수혜자인 나완 달리, 초중등교육을 같이 수학한 친구들은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해서 연초에 신중하게 다섯 명만 골라 반쯤 농 섞인 안부 전화를 넣었다. 깔깔거리며 지분대는 나의 유치한 통화에 누군가는 분개했고, 어떤 이는 자조 섞인 비난을 퍼부었으며, 나머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넘겼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었다면 너무 방송용일까? 그래서 모 군은 내게 수화기 너머 그렇게 읊조렸던 것일까?

"놀고 있네."

 

명백히 서른 즈음에 읽은 이 소설은 삼십 대 중반을 살아가던 줄리언 반스가 쓴 작품이다. 사실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삶 속에 서서히 적응해 간다'는 투의 성장 소설에 선뜻 마음을 주지 못하던 터였다. 한편으론 사춘기의 치기 어리지만 이유 있는(분명히 당시에는!)삶에의 사보타주 같은 것들을 읽어내기가 버거울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 되기'에 대해 반스가 내린 나름의 결론을 훔쳐 보곤, 그 앞에서 내 삶은 어떻게 투영이 될까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관찰력과 탁월한 구성으로 삶을 대하는 작중 인물의 심리 변화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이 소설은 굉장히 진지하고 현실적이다. 그 지지대는 대륙과 세대의 크레바스를 간단히 뛰어 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옛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도록 귀를 간지럽히며 유혹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애수에 젖은 감상적인 그것이 아니라 조금은 성난 얼굴로 돌아보게끔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춘기는 동적인 시기로서, 마음과 몸이 항상 새로운 발견을 향해 전진에 전진을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사춘기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지 않다. 사춘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적인 시기로 보였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교과 과정이 우리에게 주입됐지만, 이전 과정과 다른 것이 거의 없었다...어떤 구조도 바뀐 것은 없었다. 권력과 무책임은 늘 머물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궁극적으로 어느새 변해 있는 나의 모습을 이들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던 성찰의 순간 마저도. 물론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은 있을 것이기에 특별히 배타적으로 자기 고백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리라. 누구나의 삶 속에 애닉이라는 프랑스 여자와의 만남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메타포의 깊이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특별히 조금 더 심연의 깊이를 경험했을 뿐이다.

 

안락한 삶과 제자리에 있는 물건, 자기가 포함된 공동체를 둘러 보는 시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의미를 그린 마지막 장면은 분명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어린 시절 경멸해 마지 않던 부르주아의 모습이다.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그 몸짓은, 예전에 지하철에서 자신이 선언한 대로 '정해져 있는 규칙에 완전히 어긋나 있는' 현실일까?

 

반스가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읽는 이에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토니의 삶에 손을 들어주는 이도 있을 것이고 크리스의 결론이 자기의 결론 임을 확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기의 삶을 경영하는 것은 분명 일정한 길을 따라가게 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담즙질의 성격에서 나오는지,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에서 나오는지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이건 자유 의지를 믿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자기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일이 부질 없는 것처럼 그저 자기의 운명 앞에서 깨어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삶의 의미가 행복이라는 '신축성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w******1 2008.01.2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