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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이란 다 비슷한 걸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어쩜 모두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 중인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아무렴 작가도 한국에서 살며 아이 키우는 엄마라는 입장이다 보니 경험의 스펙트럼이 비슷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모든 아이들이 겪는 일이려니 생각하고 무심하게 넘기는 반면, 이금이 작가와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뜨끔한 이야기로 풀어내니 뭔가 다르긴 다르다. 아니 부럽다. 그러면서도 감사하다. 이런 책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은 원래 <내 말이 맞아, 고래얍!>이라는 책을 보물창고에서 다시 펴낸 책이다. 어쩐지... 읽으면서 어디서 많이 보았던 내용이더라 싶었다. 물론 그것을 금방 알아채지 못한 이 둔함을 애석해하기도 했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대개의 부모 특히 엄마들은(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엄마들은) 첫째 보다 둘째를 더 예뻐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더 관용적이다. 이 책에 나오는 푸르니 엄마도 마찬가지다. 툭 하면 네가 언니니까 양보해라, 동생 잘 보살펴라 등등. '엄만 누구 거야?'에서도 모든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푸르니의 모습을 보며 큰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은 그런 것을 가지고 투정 부릴 나이가 지났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대개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엄마 쟁탈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속에서-아빠까지도- 자신으로 당당히 살아가고자 하는 엄마의 모습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림도 홀가분하게 그려졌다.
밖에서 아이들과 싸우다가 약간의 상처를 입고 돌아오면 부모들 특히 아빠들은 굉장히 흥분한다. 그때는 도덕이고 관용이고 뭐고 없다. 오로지 내 아이가 맞았다는 것만 생각한다. 이런 경험 아마 모두 해 봤을 것이다. 물론 나도 경험했다. 푸르니 아빠의 모습은 어쩌면 대한민국 아빠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그런 시시한 싸움은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가정교육의 힘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고우니가 아빠의 영향(?)을 받아 마지막에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도 푸르니는 조금 컸다고 사리판단을 할 줄 알아서 동생이 막무가내로 우기는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모른다. 아마 고우니도 조금 크면 아무리 아빠가 어긋난 가정교육을 시킨다해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동찬이의 아빠 흉내내기는 압권이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모든 엄마들 혹은 아이들이 '맞아, 맞아.'하며 박장대소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쩜 이리 적나라하게 치부를 드러냈을까... 그것도 직접 어른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생 입을 통해 은근슬쩍 말이다. 이래서 남자들도 아이들 책을 같이 읽어야 한다니까. 집안일 하느라 자신을 가꾸고 챙길 여유가 없는 엄마에게 누구처럼 예쁘게 꾸미라느니 멋지게 차려 입으라느니 주문을 하는 식구들은 또 어떤가. 그러다가 막상 식구들의 요구대로 할라치면 어색하다느니 안 어울린다느니 하며 불평을 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면서 예전의 엄마가 훨~씬 좋다고 아양을 떤다. 실은 그게 아니라 자신들이 불편한 것이 싫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지. 식구들의 이기심이 얄미우면서도 웃음 짓게 만든다. 왜냐...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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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니와 고우니]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경쾌한 동화다. 내가 읽었던 과거의 이금이님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데, 나는 이 느낌이 더 좋다.
푸르니와 고우니 자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엮은 이 책은 그 에피소드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소소한 일상이다. 하지만 작가의 재치있고 날렵한 글솜씨와 이형진님의 유머러스한 그림 덕분에 읽고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 속에 숨어있는 어른을 향한 일침이 참으로 뾰족하다. 자매와 친구가 소꿉놀이를 하며 나누는 대사가 그들의 엄마, 아빠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어찌 뜨끔하지 않을까.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도 싸우면 이겨야 한다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아빠, 엄마는 누구 것인지 다투는 자매, 화장을 곱게 한 친구네 엄마를 보고는 부러워하는 아이들..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참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나만큼이나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은 초4딸. 독후감을 써보기를 권했더니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한다.
푸르니에게. 안녕? 난 유림이 언니라고 해. ('언니' 까먹지마!!)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너와 내가 비슷해서 그래. 나도 남동생이지만 동생이 있거든. 말은 잘 못하는 3살이지만 엄마에 대한 욕심은 똑같아서. 넌 사랑을 아기 때부터 받지 못하고 그래서 화가 나지? 그지? 난 8살까지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갑자기 바뀐 환경때문에 슬퍼. 나도 11살이라서 너와 4살 차이 나지만,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건 똑같단다. 난 가끔 버림받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물론 너나 나나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해. 하지만 느낌은 안들지? 그지? 맞지? 나도 그런 걸.. 푸르니야, 힘내~ (이 바보같은 언니는 힘을 안내고 있어 ㅠㅠ)
딸은 '엄만 누구 거야?'를 인상깊게 읽었나보다. 요즘 딸의 가장 큰 딜레마는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동생이라는 존재이다. 조금 우울한 모습으로 편지글을 쓰고 난 후 덧붙이는 말, "엄마, 이 책 참 재미있다. 그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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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니는 고우니 언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고우니에게 양보만 해야 한다. 한번 언니는 영원히 언니이고, 한번 동생은 영원히 동생이라는 슬픈 운명. 이것은 모든 맏이가 직면한 현실이다. 우리 집에서도 아이들이 어릴 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집 큰애와 작은 애는 만 이 년이 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잠깐 동안이긴 했지만, 두 아이가 기저귀를 같이 차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런데 큰애는 오빠라는 위치 때문에 늘 모든 것을 양보하고 뺏겨야했다. 그래서 큰애는 늘 억울했던 것 같다. 부모로서는 두 아이를 똑같이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다루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쉬운 방법이 늘 '오빠이니까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가 되자, 어릴 적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큰애에게는 그때 일이 적지 않은 상처였는지 아직도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일이 내게는 이미 과거완료 상태였는데, 아이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솔직하게 사과했다. 부모는 전혀 그런 뜻이 없었다고.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했다고 했다. 그 후로 아이의 기분이 좀 풀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큰애가 늘 작은 애에 대해 적개심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특히 맏이에게 공감을 줄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도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섬세한 심정을 살피기 될 것 같다. 아무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차별 없이 좀 더 많이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났다. 그리고 책 속의 푸르니 아빠를 보면 딸에 대한 아빠들의 의식전환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요즘 여성들의 파워가 부상하고 있는 것은, 딸을 독려해주고 밀어주는 든든한 아빠가 있어서임을 알 수 있었다. <푸르니와 고우니>는 저학년 대상의 책이어서 그런지, 기존의 이금이 작가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