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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분이 한동안 유지되면 비슷한 것들을 찾게 되는데 비슷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연속해서 보게 되었다. 중년 앓이 책을 뒤지다가 우연히 찾게 됐다. 요즈음이 장수 시대라 인간 수명이 많이 늘었났다고 하는데 중년에 대한 고민만 했지 노년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두 분의 여류 작가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인데 중년도 힘든데 준비되지 않은 노년은 자신에게는 엄청난 고통이고 주변에도 크나큰 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도 나오지만 어느 보험사의 푯말처럼 "재수없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시대인데, 연장된 평균수명에 따르자면, 25까지가 배우는 시기이고 60까지가 청년기, 75까지가 중년기, 그 이후가 노년기가 더 맞는 분류라고 한다. 40을 불혹이라 명한 이유는 공자때 평균수명이 그 정도이니 40이면 인생을 다 살아온 나이라서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많이 흔들리는 유혹의 세대라는 비유가 더 적절한 듯도 하다. 실 생활에서 40대면 평균적으로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솝 우화의 "수명"처럼 당나귀한테 얻은 시간이라 삶이 그렇게 무거운 것일까? 하여간 중년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도 쉽지 않은 주제인데 이 책에서는 40대는 아직 중년이 아니고 청년시기이고 도리혀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지? 다르게 표현하자면 제대로 사람다운 노년이 되고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하니 나에게는 너무 앞서는 듯도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 나이가 되는걸 보면 막연하게만 미룰일도 아닌 듯 싶다. 호스피스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같은 류의 책들이 가끔은 삶을 멈춰서 바라 보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런 생각만 가지고 살 수는 없기에 자주 읽는 편은 아니다. 죽음을 회피하고 등한시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에 너무 경도되면 도리혀 공황장애가 되지 않을까? 각자마다 강도는 조절이 필요할 듯 싶다. 다만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인 이반일리치처럼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팔팔할 때 미리 생각도 하고 미리 준비하면서 살자는 말에는 동의를 한다. 사람이 자신이 늙어보기전에는 늙음이 무엇인지 미리 경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왕성한 사회활동이 가능한 나이를 지나서는 정말 잊혀져 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인가 보다. 예전에 잘 나가던 사람들도 노년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길이 없고 가끔 전해오는 질병이나 부음을 듣고 알게 된다. 사람에게 늙음과 죽음은 회피해야할 불쾌한 또한 감추고 싶은 것이기에 매스컴에서도 늙음이나 죽음은 잘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상매체에서는 싱싱한 모습만 주로 보게 된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과거의 배우나 명사도 TV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나이보다 많이 젊어 보이거나 그런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볼 수 있다. 사고나 질병에 의한 죽음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올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준비는 중간중간 고민해야겠지. 시한부 인생이 되었을 경우,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의 분노와 절망으로 그 짧은 시간도 허비한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을 포함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은 쌓아 놓지 말고 그때 그때 전달할 일이다.
만약 질병 치례없이 긴 생을 살게된다면 무엇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워야할 듯 싶다. 가령 나이먹어서의 직업은 무엇으로 바꿀지? 한해 한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계속 배워나가는 것이 좋을지? 현실적으로는 비참하게 살지 않기 위해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마련해나갈지? 사람이 너무 아파도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만 노년에 너무 가난해져도 훼손될 것 같다. 노년이 되면 더 적게쓰도록 변해야겠지만 이 부분은 큰 염려를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년에 대한 준비라... 8/16/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