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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외로움... 「등대」라는 책이 처음 내게 안겨준 느낌이다. 한손으로 훑어본 후 내 머리 속에는 여러 가지의 책들이 떠올랐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과 같이 하나의 문화재를 저자의 필력과 지식에 맞게 잘 풀어낸 책 일거라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문화유산 답사기를 너무나도 흥미롭게 읽었고, 또 전공 또한 그쪽으로 한 까닭으로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자신있게 책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대충 서문을 읽고, 본문을 읽자마자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등대의 서정성, 건축학적 가치가 서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민족의 역사, 가까웠던 아픔의 역사를 녹여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하나의 등대에. 이시바시 아야히코는 우리나라의 요지에 등대를 설치했다. 아마 일제의 강화도 조약 중 해안측량권의 연장선장일 것이다. 또한 육지에서 1900년 대 본격적으로 철도가 일제의 의해 부설된 것과도 같은 맥락이리라. 본격적인 침투를 위해 육로와 해로를 연결하고, 그 곳을 기점으로 경제적, 정치적 침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팔미도 등대를 읽는 순간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던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낭만과 외로움의 상징. 등대는 그런 것들을 의미하기 이전에 제국주의 침략의 역할을 먼저 하게 된 것이다. 이 땅에 일본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정말 고요하던 섬과 해안 지역에 일본의 선진 건물들이 서게 된 것이다. 당시 세워진 모든 등대들은 해관의 요지였고, 또한 그래서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원래 멋진 곳은 사람의 발길을 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기 때문에 그 곳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모든 등대를 일일이 답사를 했고, 그곳의 지키는 이와의 인터뷰와 특징적인 사진을 찍어놓았다. 너무 멋있지만 정말 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있지만, 그런 이 책의 특징은 어느 정도의 아쉬움을 잊게 해주기도 한다. 결국 등대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등대의 낭만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등대가 있는 섬, 또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의 삶이 그리 녹녹치 않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원체 고기잡이 자체가 예전부터 힘이 든 삶이었지만, 그런 그들의 생활에 다른 곳 보다 먼저 침입한 제국주의는 그것을 더 가중시킬 뿐이었다. 제국주의가 물러나가, 서해와 동해의 경우는 이제 남북의 대립으로 그들의 삶을 위협받기도 한다. 국가간의 정책과, 국가간의 이념의 대립은 시작부터 불행했던 등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분명 더 나아졌을거다. 이제 등대는 그 모든 역사를 다 안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오브제가 된 듯 하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미명아래 지속된 일제의 잔재, 건축물을 없애는 현실에서 등대는 그 시대의 건축사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독도의 등대를 필두로 하는 등대들은 우리의 역사적 영토 분쟁을 오롯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만들어 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등대는 등대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등대라면, 그 뒤에서 등대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관리하고 있는 항로 표지원들이 무대 뒤에 주인공일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항로 표지원이라 불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작가라는 표현보다는 글쟁이, 화가보다는 그림쟁이라는 표현이 단지 그들을 낮게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글쟁이, 그림쟁이에 그들의 정신적인 본능이 숨어있는 것 같다. 항로표지원. 정식 명칭이다. 하지만 등대지기라는 그 말. 우리는 그 말에서 은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아주 오래된 툇마루 달린 외가가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아주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그때 외숙모께서, “가끔 오면 그렇지. 살면 불때고 힘들다.”고 하셨고, 그때서야 그 생활의 불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그런 것이리라... 가끔씩 접하는 우리는 등대지기란 호칭에서 향수와 낭만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업인 사람들에게는 듣기 싫은 호칭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일게다. 처음 책을 폈을 때의 가벼운 마음은 초반 가슴 아픈 우리의 근현대사 역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등대가 소개될 때 마다 ‘이젠 어떤 이야기를 간직한 등대일까?’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그 가슴 아픈 역사 또한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할 과거이기에, 계속 아픔을 느꼈다기 보다는 등대라는 주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집중은 또한 등대 주변의 삶으로 옮겨갔다가, 마지막에는 내가 처음 가진 등대의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역사이지만 풍경으로 다가오는 등대. 그런 등대 앞에서 해질녘 즈음 음악회를 연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한참 읽다 보니 우도에서는 그러기도 한단다.) 이젠 과거의 아픈, 외로운 등대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가져와 융화시키는 작업이 분명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알기에 등대도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 만의 희망을 품은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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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바닷가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등대. 적막한 그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낭만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이 등대를 꼽는다. 하지만 등대지기,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항로표지원들의 삶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등대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등대에 얽매인 그들은 경조사를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네와 같은 가족과 부대끼는 생활마저도 하지 못한다. 그들이 겪고 있는 깊은 외로움은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제외하곤 설명할 수 없는 등대의 역사와도 잘 부합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등대는 유독 일본의 등대와 그 모양이 흡사하다고 한다. 두 나라의 등대 사진을 놓고 어느 것이 우리나라의 것인지를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등대가 성립된 시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1903년부터 시작된 등대 건설은 191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고 했다.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고 굴욕적인 식민 역사가 시작하던 무렵이다. 그렇기에 등대가 설치된 곳들을 보면 군사적 요충지라 보아도 무방한 곳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나라를 철저히 짓밟고 아시아 전 대륙을 자국의 영향력 하에 두려 했던 일본의 의도를 고려할 때, 등대를 관리하는 직책이 일본인들에게 돌아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진 건 몸밖에 없는 이들이 일본 관리들의 눈초리를 받아가며 쌓았던,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등대인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등대는 영국의 그것을 또 닮았다고 하니, 지배자와 피지배자로서 동서가 가졌던 만남이 우리나라의 등대를 가능케 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역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부끄러움을 감추려 드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라곤 하지만, 등대가 견디어 온 긴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그리고 때론 첨단시설 보강의 필요성으로 인해 축적된 시간을 무너뜨리는 우(愚)를 우리는 범하고 있었다. 가사도 등탑 뒤에 놓여 있는 삭막한 철탑은 마치 발전했으나 인간미는 사라진 도시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아마도 유인등대가 무인등대로 모두 변화한다면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변화는 무조건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등대가 관광 상품도 되어 많은 이들의 방문도 받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지만 등대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한탄하고 있었다. 등대가 지닌 건축사적 중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 등대로부터 역사를 읽어내지 못하는 우리, 새로움은 언제라도 추구될 수 있는 것이지만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 한 달성되지 않는 것임을 우린 잊고 살지 않았나 싶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각 등대를 찾아가는 노선까지 책의 뒷부분에 제시하고 있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우리, 심지어 유럽을 방문해서도 한 나라, 한 도시를 돌아보는데 단 며칠만을 허락하는 게 우리이다. 그런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등대 하나하나를 보듬을 수 있을까? 시간의 무게를 밟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등대를 방문하고자 계획하고 있는 이들은 기억할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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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등대가 있는 곳이 곧 놀이터였는데, 키가 작아 한참이나 올려다 보아야 했는데.
이제 책에서, 아니 글 속에서 등대를 마주하니 내 눈 높이에 등대가 있다. 내 가슴 속에 등대가 들어 와 있다.
가덕도에서 소매물도를 지나 거문도, 홍도를 거쳐 내륙에 있는 영산강등대까지 등대의 바람소리와 외로움을 한 눈에 담아 내는 글맛이 짭짤한 바닷내음과 함께 저리게 다가 옵니다.
가까이 두고픈 내용과 자료로서의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등대를 찾아가는 발걸음에 힘이 실리게 하는 마음에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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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도 전에 제주도 우도 등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마디로 그림같은 등대였다. 저 너머로는 거친 바다물살이 파도치고 드넓은 남해안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지에 바로 등대가 서있었다.
등대, 등대에는 낮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밤에만 불이 들어와 밤길을 가는 선박들에게 길을 일러 준다. 등대가 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등대는, 낮에는 무용지물이요 밤에도 뱃사람을 위한 조명등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등대는 오랜 세월 귀한 생명과 재산들을 지켜왔다. 짙은 안개, 높은 파도와 해일, 번개와 천둥, 폭풍과 절대절명의 순간에 등대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해주었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는가?
그 등대들을 거의 30여년 가까이 찾아 다니며 기록하고 아껴온 사람이 있어서 놀랍다. 주강현이라는 분. 경희대학교 문학박사이신데 어찌 그 먼길 험한 길을 마다 않고 등대를 찾아다니며 치밀한 기록으로 남겼을까? 한때 일본인들의 기록습관이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등대를 읽으면서 이제는 우리의 기록문화도 그들을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해의 아홈 개 등대 남해의 여섯 개 등대 동해의 여덟개 등대 제주의 세 개 등대...
글쎄 그 중 언제 어느 등대를 가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등대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서 쉬었다가 오는 그런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니 말이다.
모든 것이 번잡해지고 복잡해져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절해고도 외로운 밤, 밤바다를 다니며 외롭고 힘든 뱃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등대를 생각할 때, 첫사랑에 실패해서 등대지기가 되고자 했던 어느 선배의 쓸쓸했던 과거가 생각날 때, 이도저도아니면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혼자 읇조릴 때, 나도 책따라 멀고 먼 등대에 머무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