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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본 이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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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는 자코메티의 작품 도판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음을 짚어야겠다. 자코메티를 찍은 사진 한 장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자코메티의 작품을 도판으로나마 감상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이라면 이 책 말고 다른 책을 구해보아야 한다.이 책은 도둑 일기라는 소설로 자신을 알리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장 주네가 1954년부터 4년 간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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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는 자코메티의 작품 도판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음을 짚어야겠다자코메티를 찍은 사진 한 장조차 보이지 않는다그러니 혹시라도 자코메티의 작품을 도판으로나마 감상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이라면 이 책 말고 다른 책을 구해보아야 한다.


이 책은 도둑 일기라는 소설로 자신을 알리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장 주네가 1954년부터 4년 간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면서 느꼈던 자코메티에 대한 이해를 크게 세 편의 글로 풀고 있다세 편의 글에 번호가 붙어있거나 해서 구분하지는 않았는데 읽다 보면 그러함을 알게 된다(주네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피카소가 자신이 읽은 가장 훌륭한 예술론이었다고 칭찬한 바 있다고 하니 나의 리뷰가 부족하더라도 글 자체는 피카소를 믿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본다. 올해 초의 자코메티 작품전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더 내용에 공감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주네는 본문만 57쪽에 불과한 이 책에서 자코메티와 그의 작품을 두고 고독이라는 낱말을 무척이나 자주 쓴다일일이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세어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낱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내가 자코메티의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느꼈던 느낌도 고독이라고 할 수 있어서 주네의 시선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자코메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도 여럿 등장해서 자코메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그렇다고 아주 꼼꼼하게 알 수 있을만한 분량은 아니다). 자코메티와 주네가 주고 받는 대화도 여러 장면에서 나와서 자코메티의 스타일을 짚어볼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코메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분량을 제공하지 않는다. 촌철살인의 내용이 자주 등장하지만 피카소처럼 그를 일정 수준 알고 있었던 지인들이라면 칭찬할 글조차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감질나는 내용분량일 수 있겠다.


주네가 이해한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는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대체하고자 한다똑같이 느끼지는 않았지만 리움 미술관에서 자코메티의 걷는 인간을 실물로 처음 보았을 때의 묘한 감정이 일어나는 감상이 드는 글이다.

 자코메티의 예술은 대상들 사이의 사회적인 관계 인간과 그의 분비물이라는 관계 를 맺어 놓은 사회적인 예술은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P.S. 1 열화당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체로 많이 비싸다이 책도 그러하다가끔 밥 속에 섞인 모래를 씹는 듯한 번역까지 감안하면… (편집/구성에 대한 평점은 가격을 포함)

P.S. 2 자코메티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자코메티 평전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절판되어서 도서관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 점이 불편하기는 하다.


a******9 2018.09.17.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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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 | 작가와 미술에 대한 동시대에도 새로운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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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라서 아틀리에라는 공간과 작품에 이야기가 한정되었다거나, 작가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탐방한 외부의 관람객이나 방문객으로서만 쓴 책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장 주네(1910~1986)와 조각가인 자코메티(1901~1966)의 거의 대등한 대화들이 흥미롭다. 1977년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오랫동안 짧지만 훌륭한 예술론 에세이로 평가되며 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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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라서 아틀리에라는 공간과 작품에 이야기가 한정되었다거나, 작가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탐방한 외부의 관람객이나 방문객으로서만 쓴 책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장 주네(1910~1986)와 조각가인 자코메티(1901~1966)의 거의 대등한 대화들이 흥미롭다. 1977년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오랫동안 짧지만 훌륭한 예술론 에세이로 평가되며 읽히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4년 정도 자코메티와 교류하고 있던 주네가 그와 나눈 대화와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과 작품론, 그리고 주네 자신이 작가이자 자연인으로서 갖고 있는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이 혼합되어 무척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남자>)

 

나는 도쿄의 국립신미술관에서 20세기 모더니즘 조각의 거장이라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종이 위에서 작은 사이즈로 보던 그의 조각을 눈으로 보니 미술 작품 감상은 역시 실물을 통한 실제 체험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1935년 무렵으로부터 독특한 인간상을 모색하기 시작한 자코메티는, 여분의 것을 전부 제거한, 본질에 다가가려는 조각을 했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작품들을 관람하고 다시 자코메티에 대해 검색해 보고 책들을 찾아보다 발견했던 작은 책이 이 책이다. 이북으로도 나와 있는 걸 발견해 재구매했다.

 

자코메티의 가장 유명한 조각, ’걷는 사람‘을 검색하면 나오는 ‘앙상한 숭고함‘ 이라는 수사도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30년대에 초현실주의로부터 거리를 둔 그는 이후 인간의 머리의 조각 제작에 몰두했다. 내가 본 것과 같은 <걷는 사람>과 같은 길쭉하고 커다란 크기로 제작한 조각은 1947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책에서는 작품 창작을 하는 조각가의 본심과 꿈을 자신 뿐만 아니라 느낀 바에 대해 솔직한 문체로 쓰는 장 주네의 펜을 통과해, 그래서 작품을 좀 더 다면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작가 장 주네는 한 말년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신이 쓴 글에서 가장 솔직하다고 말했는데 그의 에세이는 구술 인터뷰의 진솔함와 명료성이 놀랍도록 일치하는 인상이었다.

 

장 주네의 자코메티의 작품론을 조금 옮겨보자면 이렇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인식하고 있는 고독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의 영광이다. 예술작품은 사람이나 생물 혹은 다른 자연현상처럼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누가 의심하겠는가. 시, 그림, 조각 등의 예술은 몇몇 고유한 특성들로 검토될 것을 요구한다. 그림을 예로 들어 보도록 하자. 우선, 그림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도 그리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얼굴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다. 내 생각엔 ─감히 말하건대─ 얼굴을 따로 떼어 놓고 바라보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즉 얼굴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것들은 치워 버리고, 얼굴과 그 나머지 것들이 서로 뒤섞여 얼굴 이외의 점점 더 모호한 의미로 한없이 달아나 버리려는 것을 시선(주의력)으로 제어할 수만 있다면, 혹은 하나의 얼굴을 세상과 단절시켜 바라볼 수 있는 고독을 가질 수 있다면, 그때 이 얼굴 위로 ─혹은 이 사람, 이 존재 또는 이 현상으로─ 모여들어 중첩되는 것이 얼굴의 유일한 의미이다. 얼굴에 대한 미학적 인식을 가지려면 역사적 인식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저명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아틀리에에서 자코메티를 찍은 사진. 빗속에서 걷는 자코메티를 찍은 사진도 유명하다. 이미지 출처:매그넘 포토)

 

5년 전 쯤 2018년, 자코메티 인스티튜트는 파리에서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재건축해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 오픈했다. 파리의 많은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중 하나로서 관광책자에서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새롭게 실린 현재적인 장소, 확실히 방문하기 좋은 아름답고 쿨한 장소가 되었다. 한편 자코메티는 작업 장소인 아틀리에에 대해 큰 작품을 만들 때에도 작은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아틀리에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틀렸다.’ 라고 말이다.

 

열화당에서 나온, 또다른 동시대의 프랑스 소설가가 쓴 ‘저녁까지 걷기’ 라는 책에서는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 조각을 두고 ‘그것은 우리 인간의 무한한 고독과 무한한 취약성을, 취약하지만 삶을 이어가려는 끈질긴 고집을, 분별없이 삶에 집착하는 고집을 보여준다-p.15)라고 썼다. 이처럼 ‘저녁까지 걷기’의 작가도, 장 주네도, 그의 미술론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그의 조각상들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형태로, 고독해 보인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장 주네가 그 고독에 대해 부연하는 부분은 현대의, 정신 건강을 위해 많은 심리학이나 과학책들이 말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동시대에 읽으며 오히려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그 추함이나 악의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바로 그 추함이나 악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생각이 자비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중략)

'내가 말하는 고독은 인간의 비참한 조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존엄성, 뿌리 깊이 단절되어 있어 서로 교류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수도 없는 개별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을 의미한다.'

 

타인이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자비’가 아니라 인식에 관한 문제라고 쓴 이러한 문장들은 현대 심리학의 솔루션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자비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고독감은 건강에 좋지 않으며 되도록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귀에 익은 옳은 말들과는 물론 사고방식의 맥락이 다르다. 물론 옳은 말들은 옳다. 하지만 만일 그런 상식과 정답에 가깝게 쓰여진 책이었으면 피카소가 ‘내가 읽은 가장 훌륭한 예술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듯하고 이색적인 사고를 가진 책으로는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문장들은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석 같다. 작가가 언급하는 작품들을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보며 본 작품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반추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오늘 구독하고 있는 미디어에서는 경제고통지수 역대 최고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작가는 이 책에, 자코메티의 작품이 집에 있다면 집이 사원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말한 대화를 실었다. 나는 감상자이자 독자로서, 전에 미술관의 아트숍에서 본, 아주 작은 사이즈의 레플리카로 만든 자코메티의 작품을 떠올리며 복사품일지언정 하나의 미술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큰 위안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c******n 2023.03.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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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 잠겨 다른 우주를 상상할 때,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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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우두커니 서 있거나 단호하게 어디론가 걸음을 떼고 있는 가느다란 형상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형상들은 단순 명료한 밋밋함과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위태로움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상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자코메티의 가늘고 부서질 것 같은 작품들은 헨리 무어 (Henry Moore)의 조각상들과 자동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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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우두커니 서 있거나 단호하게 어디론가 걸음을 떼고 있는 가느다란 형상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형상들은 단순 명료한 밋밋함과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위태로움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상하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자코메티의 가늘고 부서질 것 같은 작품들은 헨리 무어 (Henry Moore)의 조각상들과 자동 연결이 된다. 육중하지만 둥그스름하여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 매끈한 질감으로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전해오는 무어의 조각들은 분명 자코메티와 대척점에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자코메티의 길쭉한 형상들은 만져보지 않아도 이미 차갑고 긴장하게 한다. 이런 형상들로 자코메티는 무슨 사상, 철학 또는 이상을 말하려고 했을까?

 

 

 

자코메티는 프랑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시몬 드 보부아르 및 장 폴 샤르트르와 친분을 쌓으며 실존주의의 전형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자유 의지와 선택-개인적 책임-소외와 고독이라는 실존적 문제를 다루었다. 긴 팔다리와 작은 머리를 가진 그의 인물들은 단절과 대중 속의 고독의 주인공들이다. 서로 가까이 있지만 소통하지 않으며, (작품 중앙의 여성 상처럼) 고립된 채 움직이 않고 모두들 뚜렷한 특징 없이 자신에게 몰두해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움직이는 인상을 주도록 공간 관계를 살려 배치했고, 질감이 살아나도록 청동을 손으로 세심하게 다루었다. 평평하고 묵직한 받침대는 가늘고 움직이는 형상들과 대조를 이루어 그들의 고립과 분리, 고독감을 부각시킨다.

-----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에서 알게 된 자코메티.

 

 

 

수지 호지 (Susie Hodge)의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을 읽지 않았다면 영원히 자코메티를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자코메티의 작품 <광장 Ⅱ>을 해독하면서 그동안 간간이 호기심을 가졌던 자코메티의 조각상의 세계에 말 그대로 빠져들고 말았다. 단 4쪽에 불과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해 주는 자코메티의 예술은 전무후무한 독창적인 세계이었다. 그의 철사나 막대기 같은 형상들에 실존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다니! 어디까지 특이해질 수 있을지를 다투는 현대미술의 선상에 서 있는 또 다른 한 명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자코메티, 나만의 사유와 언어로 깊이 알고 싶은 그 누군가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예술과 존재방식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기대에 차올랐다. 자코메티의 예술과 삶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아야 했다. 일단 책을 찾아보는데 안타깝게도 심층적 고찰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국내 도서는 대부분이 절판이다. 선택 가능한 딱 두 권의 책, 아쉽게도 작고 얇아 깊고 방대한 탐구를 원하는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우선, 장 주네(Jean Genet)의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 얇은 책이라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겨 호캉스에 데려갔다. 칠십여 페이지밖에 안되니 저녁에 느긋하게 일독할 생각이었다. 할 것 다하고 깜깜해진 밤, 다과를 곁들이며 좋은 분위기에서 펴들었다. 심상치 않은 범죄 경력이 있는 데다가 장 폴 샤르트르와 어울릴만한 문학적 재능과 업적으로 알려진 작가 장 주네 자체도 꽤나 흥미로웠다. 평범과는 한참 동떨어져 보이는 작가가 역시나 결코 범상하지 않는 예술가 자코메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세상과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흐름에 휘말린 듯하다.(---) 걷잡을 수없이 나날이 증폭되기만 하는 이러한 흐름에 사로잡힌 세상과 역사를 보고 있으면, 누구든 공포까지는 아닐망정 슬픔 같은 걸 느낄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향수에 잠겨 다른 우주를 몽상하게 된다.(---) 외양에 가해지는 모든 행위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좀 더 정확히 말해 인간 정신의 - 전혀 다른 모험이 가능했을지도 모를 우리 내부의 어떤 비빌스러운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벗어던지는 일에 몰두하게 될, 그런 우주를 몽상하는 것이다.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 5-6쪽

 


 

 

 

눈앞이 하얘진다. 비록 번역을 거친 문장들이지만, 내 머릿속에 모호하게 들어 있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살아 있는 실체'로 불러내는 제문祭文처럼 읽혔다. 푸석이는 흙 속에 잠겨있던 태곳적 유물들이 황톳빛 먼지를 일으키며 드디어, 세상 안으로 건져올려지는 그 어떤 '발굴'이 시작된 거였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슬픔, 향수, 몽상을 자코메티가 알고 있었고 주네가 자코메티에게서 간파해낸 것이었다. 내가 자코메티의 가느다란 조각상들에게서 황량함과 냉랭함을 느꼈던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호기심과 의문은 장 주네에게서 믿을만한 답을 얻는다.

 

 

 

자코메티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더욱더 견딜 수 없어지는데, 그것은 이 예술가가 거짓된 외양이 벗겨진 후 인간에게 남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기의 시선을 방해하는 것을 치워 버릴 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 아무튼 그의 모든 작품은 바로 이와 같은 추구로 보이며, 그 대상은 인간뿐만 아니라 그 무엇이라고 가능하여 아주 하찮은 사물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자코메티가, 선택된 대상 혹은 존재로부터, 실용적이지만 거짓된 외양을 성공적으로 벗겨낸 후 우리에게 제시하는 이미지는 굉장하다.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 6쪽

 

 

 

자코메티의 형상들이 가늘고 조촐한 이유는 '거짓된 외양'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형상들과 다를 바 없다. 지금껏 실용이라는 미명으로 이것저것들을 덧입고 오면서 '거짓'의 켜를 잔뜩 늘려 왔다. 나의 외양은 점점 두꺼워졌고 그 무게에 스스로 짓눌려 뒤뚱뒤뚱 걷는가 하면 결국, 모든 시선을 방해하는 형국에 이르렀다. 나 자신이 왜곡된 모습으로 살다 보니 이 세상과 역사는 더 슬프고 공포스럽다. 급기야 각성의 순간에 이른다. 이건 아닐 텐데... 순수하고 진실된 내 모습, 정상적인 삶이 가능한 세상... 기억해 낼 수 없는,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는, '우주'를 그리워하며 몽상하게 된다. 나의 안팎에 포진하고 있는 '거짓'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상처'와 '고독'이 드러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러운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 6-7쪽

 

 

 

꿈일런가? 분명 어느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서 보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도 사진으로 남긴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내 눈에 아른거리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대신하여 책에 사진으로 담겨 있는 자코메티의 형상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온몸에 울퉁불퉁한 점토 자국을 지닌 채 혈혈단신 서 있거나 걸어가기 시작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마다 상처를 안고 고독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자코메티의 손길로 각자의 상처와 고독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거짓된 외양을 벗어던지고 상처를 자양분 삼아 고독하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자리를 정립해간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명료하게 해독이 안 되는 샤르트르의 그 난해한 실존적 존재, 실존적 삶... 자코메티의 형상과 주네의 문장으로 스르르 해체되어 내게 와닿는다.

 

 

나의 짐작은 백 퍼센트 틀렸었다. 가볍고 작은 이 책은 순조로운 일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문장마다 두세 번씩 곱씹게 한다. 문장마다 뭔가 귀중한 것을 숨겨 놓고 있는 것 같아 이를 열렬히 찾게 한다. 모든 문장에는 지대한 관심과 애정, 지식과 체험이 녹아 있어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며 사 년에 걸쳐 쓴 글! 자코메티를 잘 모르고 주네는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하룻밤에 일독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던 게다. 한 번 읽어내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집중력을 다해 읽으면서도 표면적인 분위기만 겨우 감지할 따름이다. 이 책에는 본문에 언급된 작품을 바로 보여주는 사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안개 자욱한 길을 걷는 기분이다. 나의 (실제였는지 꿈이었는지 분간도 되지 않는 ) 흐릿한 기억과 다른 책에 실린 사진을 참고해야 한다. 그래도 주네의 이야기와 호흡을 같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큼직한 판형과 두터운 분량으로 나와 있어 자코메티의 작품을 더 많이 더 크게 볼 수 있을 외국도서를 주문해 두었다. 이 책을 기다리며 주네의 글을 다시 읽는다. 자코메티를 충분히 알고 싶어 하는 나의 애타는 마음속에서 주네의 글이 한 글자 한 글자 선명하게 타오르기를.

 

 

 

사 년에 걸쳐 쓴 이 글은, 마치 일기처럼 매번의 만남 뒤에 작성되고, 다시 고쳐 쓰고, 앞서 쓴 글을 다시 사유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고, 좀 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어떤 체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대로 기록되면서 작품을 마주한 감정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L'ATELIER D'ALBERTO GIACOMETTI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자코메티와 나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반짝이는 이름, 장 주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e 2021.03.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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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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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자코메티 특별전에서 작품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스위스 100프랑 지폐에 수록된 인물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대표작이다, 라는 정도 뿐.그런데 전시회 마지막 부분 '묵상의 방'이라는 곳에서 바로 그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을 코 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뭔가 미묘한 기분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묵직함과 감동 그 자체였다.(그때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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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자코메티 특별전에서 작품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스위스 100프랑 지폐에 수록된 인물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대표작이다, 라는 정도 뿐.

그런데 전시회 마지막 부분 '묵상의 방'이라는 곳에서

바로 그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을 코 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

뭔가 미묘한 기분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묵직함과 감동 그 자체였다.

(그때 개인적으로 인간사의 커다란 작별이 있어서 더 뭉클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시회에 다녀온 후 이 책을 통해 자코메티와 좀 더 친숙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장 주네라는 작가를 통해 지극히 일부분에만 가닿았으려니 생각하고 있다.

책 도입부에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 하나가 있어 적어본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YES마니아 : 로얄 b******l 2019.04.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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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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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더욱더 견딜 수 없어지는데, 그것은 이 예술가가 거짓된 외양이 벗겨진 후 인간에게 남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기의 시선을 방해하는 것을 치워 버릴 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p.6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중" 내용보기

자코메티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더욱더 견딜 수 없어지는데, 그것은 이 예술가가 거짓된 외양이 벗겨진 후 인간에게 남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기의 시선을 방해하는 것을 치워 버릴 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p.6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p.27

b******s 2019.02.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