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이 영화는 우선 '두 로버트'가 출연한다는 점만으로도 시선을 모으기 충분하다. 한 사람은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인데, 근래 이런 쪽의 배역으로 너무 이미지를 소진했다는 느낌이 없잖으나,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데 어쩌겠는가. 오히려 그가 정통으로 변호사 역을 맡아 나온 작품은 드문데, 더 늙기 전에 이쪽 직역 연기를 더 자주 맡아 주었으면 싶다. 다른 한 사람은 로버트 듀발이
"더 저지" 내용보기

이 영화는 우선 '두 로버트'가 출연한다는 점만으로도 시선을 모으기 충분하다.

한 사람은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인데, 근래 이런 쪽의 배역으로 너무 이미지를 소진했다는 느낌이 없잖으나,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데 어쩌겠는가. 오히려 그가 정통으로 변호사 역을 맡아 나온 작품은 드문데, 더 늙기 전에 이쪽 직역 연기를 더 자주 맡아 주었으면 싶다.

다른 한 사람은 로버트 듀발이다. 대체로 온순하고 겸손해 보이는 인상인데 극중에서 자꾸 독재자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는 이들도 있던데, 미국인들에게 이 배우는 <위대한 산티니>에서의 그 권위주의적인 가부장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한 인물로 이미지가 확실히 각인되어 있다. 그 외에 <지옥의 묵시록>에서 폭탄이 투하되는 해변에서 서핑하는 킬고어 중령 역으로는 우리도 잘 기억하고 있다. 여튼 이런, 확실히 성공한 과거의 선명한 이미지 덕에, (어쩌면) 신작에서 각별히 별개로 노력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뭔가가 있는 것이다.

여튼 이 로버트란 이름을 가진 두 배우가, 이 극에서 부자 관계로 나온다. 이 두 사람이 같은 영화에서 연기한 적이 이 작 말고는 내 기억에 없는데, 이 의의만으로도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기려져서 마땅하다. '기려진다'는 말을 굳이 쓴 이유는, 극중에서 판단력을 잃어가고, 생리 조절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4기 암환자이며, 마침내 인생이란 전투에서 장렬한 전사를 택하는 저 '파머 판사'가 치르는 눈물 나는 곤경이, 어쩌면 실물 배우 로버트 듀발이 곧 맞게 될지도 모르는 여러 어려움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안타까운 예상 때문이었다. 결말에서 파머 판사는 마침내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데(별 큰 스포일러 아닐듯), 이 역시 그를 오래 지켜 봐 온 한 명의 팬으로서 그 느낌이 예사로울 수 없었다. 듀발은 이 영화 속에서 갖가지 난처한 장면을 다 연출하는데, 배우로서 실감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저처럼 기본적인 위신까지 다 벗어던지는 직업 정신에 (너무도 민망하고 미안하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로버트 듀발이 연기한 저지 조셉 파머는 그저 시골 판사일 뿐이지만, 공정하고 면밀한 절차를 통해 가장 현명한 판결을 내려 온 재판관으로 고을 주민 다수에게 기억되길 바랄 뿐인, 지난시절 숭앙되어 온 미덕의 화체 같은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의 카리스마랄까 숨 막힐 듯한 소신에 질려 버린 그 둘째아들 행크 파머는 어려서 소년원에까지 갔다 온 문제아였으나, 타고난 두뇌를 잘 활용하여 명문 로스쿨 수석 졸업에 무패 경력을 자랑하는 거물 변호사로 출세했지만, 평판은 아주 좋지 않다. 그 부친과는 정반대로, 승소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속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픽션 속에서뿐 아니라, 부친의 숨막힐 듯한 훈육 방식에 반기를 들며, 그 부친과는 정반대의 성격(유전적 인자가 사람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감안하면, 오로지 인간이라는 種만이 드러내곤 하는 희한한 행태임이 분명하다)을 지닌 성인으로 크는 예가 우리 주변에도 허다하다. 당장, 투표 행태를 놓고서도 세대 간 갈등이 극명하게 벌어지는 이유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질려 별 이유도 없이 청개구리 스텝을 밟는 예가 솔직히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원칙주의자 판사 슬하에, 세상 못된 잔기술 잔머리는 다 굴리고 보는 협잡의 예술가인 변호사 아들이 나온 셈이다.

파머 판사는 건강 악화, 정년 등의 이유로 이제는 은퇴한 일개 노인일 뿐이나, 자신이 20년 전 강간살인 유죄 판결을 내려 감옥에 넣었던 범죄자와,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친다(20년만에 석방된 처지). 범죄자를 그 죄책에 따라 사형에 처하든지 하지 않고 감옥에 집어 넣는 건 교화의 목적을 위해서인데, 이놈은 개전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는지 노인더러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인 그 여자애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사모님 묘소를 가까운 데 쓰지 그러셨습니까? 가끔 들러서 소변 누기 편하게요.'

깐깐한 원칙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말을 듣고 태연히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지 파머는 밖에서는 법관이었기에, 일단은 냉정을 찾고 자기 차에 올라타지만, 이후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놈을 뒤따라가, 자기 차로 그대로 받아버린 후 절명시키지 않았을까. 교화가 불가능한 악종은 그대로 즉결처분, 사적 구제 절차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일종의 자경대 역할을 그 자신이 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저지 파머는 현재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므로, 그 일(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을 기억하지 못한다. 교활하게 기억을 조작하려는 성격, 인품이 아니므로, 정말로 뇌 기능 장애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다만, 객관적으로 자신이 판단을 해 보기에, 그럴 개연성(즉 자신이 놈을 차로 치어 죽여버렸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만약 자신이 판사 입장이라면, 이 노인(즉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물론 평결은 배심원단이 하는 거지만).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증인 자격으로(미국에서는 피고인에게도 증인 신문 가능) 분명히 한 마디를 한다. '아마 내가 그놈을 죽였을 겁니다.' 민완 변호사인 아들 행크는 잽싸게 끼어든다. '그건 팩트의 진술이나 자백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일 뿐이죠. 이건 증언으로서 효력 없습니다.' 그 역시 맞는 말이다.

저지 파머는 말년에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져 혹시 오판을 내렸을 수도 있었을 노인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와 철학에 의거해 후회 없는 언행을 일관했던 공무원으로 모두의 머리에 남고 싶다. 법망 뒤에 숨어서 '잘 모르겠다'로 얼버무리지 않고, 차라리 '구제불능의 쓰레기를 자기 손으로 처단한 소신파'로 기려지고 싶은 것이다. 배심원단을 선별할 때, 아들 행크는 그래서 우파 성향, 다혈질, 백인 중년 남성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리에 남겨 둔다. 인간 쓰레기 하나를 설령 처단했기로서니 이 고명한 법관이 그 때문에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하겠냐는 쪽으로 감정적 호소를 하려는 전략이다.

반면, 전직 판사이자 환자, 고령의 노인에게 살인 혐의로 유죄를 끌어내려는 검사 디컴의 입장 역시 단호하다. 그는 아들 행크 파머의 평소 비열한 수완에 혐오감을 느껴 왔고, 제아무리 고명한 전직 판사의 소행으로 인간 쓰레기 하나가 없어졌다 한들, 사람 목숨이 그런 식으로 지상에서 사라져서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검사의 주장에 전혀 동조할 생각이 없지만, 동시에 또다른 원칙주의자로서 그의 판단이 확고한 그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 인정 해야만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이 역을 빌리 밥 손튼이 멋지게 소화했는데,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건 진정 이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로다주와 듀발 두 레전드의 명연기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니 아예 능가하는 기량으로 화면을 멋지게 수놓았다. 어쩌면 이 사람은 영화에 나올 때마다 이렇게까지나 전혀 다른 개성들로 둔갑할까?

앞에서 '두 로버트들' 같은 명배우뿐 아니라 다른 조연들도 불꽃튀는 연기 대결로 이 영화가 대체 심심할 틈이 없게 한몫을 거든다고 했는데, 로다주의 첫사랑 역 베라 팔미가 역시 그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멋진 맞수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 실력을 자랑한다. 대략 2015년 12월~ 2016년 1월 경 이분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 리뷰에서 꼴보기 싫다며 좋지 않은 평가를 했었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만큼 이분이 해당 배역을 잘 소화했던 결과일 것이다.

어떤 글을 보면 저 칼라 배역이 로다주(즉 행크)의 친딸이라고 적어 놓은 게 있는데, 진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은가? (스포일러) 나중에 서맨사가 자기 입으로 고백하지만, 행크와는 정반대되는 누군가의 힐링이 필요했다면서 그 사람 아이라고 분명히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리뷰를 쓰려면 영화를 끝까지 보기나 하고 써야 그게 최소한의 매너이자 도리.

파머 캐릭터처럼 고상하고 온유하며 일관성 있는 충실한 노인으로 늙는 위대한 영혼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자신의 부친에 대한 반발로 사방에 민폐를 끼쳐 가면서 나잇값 못하고 찌질거리는 추한 인간들도 많다. 교정이 불가능한 인간은 정녕 사적으로 처단을 내려야 정의에 합당한 것일까?

s****o 2023.11.30. 신고 공감 0 댓글 0